[연대1]인권운동사랑방 창립 10주년
본문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그 어떤 것에도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반대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억압하지 않는 진정한 진보의 세상을 인권의 이름으로 건설하는 길에 다시 우리를 헌신하렵니다. 그 길에 인권운동사랑방이 밑거름이 된다면, 그리고 그 운동에 우리 인권운동사랑방 성원들이 쓰여진다면, 우리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갈 것입니다.”
거침없는 그들의 10년, 인권운동사랑방(이하 사랑방)을 찾아갔다.

〈우리의 인권운동 어디로 가야하나〉
“10년 전 우리들이‘전문적 인권센터’를 제안했을 때, 주변에서는 부정적이었죠. 자유권 중에서도 특히, 국가로부터 탄압 받던 현안들을 운동으로 풀어 가는 것이 인권운동의 주류였잖아요.”사랑방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박래군씨(사랑방 상임활동가)의 기억이다. 그리고‘인권운동’에 대한 고민도 덧붙였다.“사회권적인 측면에서 개인의 피해 혹은 잘못이 사회구조적인 것에서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더이상 자유주의적인 시각만으로 인권운동을 할 수는 없게 된 겁니다. 그래서 진보주의적인 인권운동이 필요하죠. 인권침해를 끊임없이 만드는 구조와 체제를 바꿔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적 인권운동이에요.”
〈노트북 컴퓨터와 전화, 팩스만 있다면 절대로 우리의 길을 막을 수 없다,
국내 최초 팩스신문「인권하루소식」〉
사랑방-하면 곧장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인권하루소식」이다.「인권하루소식」은 사랑방의 활동가가 잡혀가는 것을 속보로 알려내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른바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화 되려는 상황이었다. 사건 초기에 국내외 운동단체들의 조직적인 항의가 거세니까 더 이상 사건으로 조작하지 못한 것이다.‘이게 싸움의 무기라 될 수 있겠구나’라고 착안한 사랑방 식구들은 바로 팩스신문을 만들어 낸 것이다.「인권하루소식」은 당시 첨단 매체였던 팩스를 이용해 사건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인권’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나 사건들을 인권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언론들에게 「인권하루소식」은 중요한 취재원이기도 하다.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사랑방의 인권의식이 제도권 언론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방은 1996년도에 우리나라 최초로 사전검열을 거부한‘인권영화제’의 막을 올렸다.
그 때에는 영화제도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주류 영화나 다큐멘타리 영화가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었다. 그러한 시기에 인권영화제는 한마디로‘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준식씨(인권활동가, 인권운동사랑방 창립)는 그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영화제를 준비하면서‘사전심의’라는 검열하는 제도를 알게 됐어요. 당시 영화인들은‘공대위’까지 만들고 심의에 반대하고 있었죠. 영화제는 당연히 사전 심의를 거부하고 고난의 길로 나서게 됐죠. 이렇게 해서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과 영화를 통한 인권교육이 같이 가는 기막힌 사업이 된 거예요.” 이렇게 시작된 인권영화제가 올해로 6회째(5월30일∼6월5일)이다. 요즘은 영화제도 다양하고, 비주류 영화들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인권영화제가 맡아야할‘몫’이 있다. 영화를 통해서 대중에게‘인권’을 알게 하는 것이 그 몫인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양지마을 사건〉
사랑방은 98년에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양지마을의 인권유린 실태를 폭로했다. 사건을 맡았던 박래군씨의 기억이다.“당시 그 시설이 워낙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KBS나 MBC도 접근을 못하고 있었죠. 그래서 새벽에‘기습’을 했죠. 들어갔더니, 철장이 쳐져 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5년∼10년 동안 갖혀 있었고...” 그 이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시설에는 부랑인이 아닌데도 주변 조치원이나 대전 역 등에서 납치 당한 사람들도 많더군요. 이것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시설에 감금되어 있는 것을 이 사회가 묵인한 거에요.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일부 사람들은 격리되어도 좋다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던 겁니다. 검찰에서는 이 사건을 횡령부분에 맞추어서 사건을 최소한 축소시킬려고 합디다. 그 때 시설장이 2심까지 가서야 겨우 3년형을 받았죠.” 하지만, 민사소송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국가가 그때 수용됐던 사람들에게 25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배상하도록 판결되었는데, 이 금액이 많다고 국가가 항소했다나? 박래군씨는 “그 때 나온 사람들 절반 이상이 다시 부랑인이 됐어요. 이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 잘못만 따지더라도 상당히 크잖아요? 그런데 국가가 책임질려고 안해요. 시설부분은 문제를 폭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사랑방은 98년도부터‘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기구 설치 민단단체 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국가인권위원회 바로 세우자!’를 결성하였고, 이것이 현재‘국가인권위원회 쇄신을 위한 열린회의’(이하 열린회의)로 이어지고 있다.
10돌 기념자료집에서는 이 활동의 의미를‘국가인권위원회의 올바른 설치와 바로 세우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노동·장애 등 광범위한 사회단체들이 인권이란 이름 하에 모였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 인권 개념의 폭을 넓혔고, 특히 운동 사회 내에서 인권을 중심 화두로 광범위하게 연대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사실, 인권위는 조사관 한명이 60-70건의 사건을 맡고 있어, 사건 조사에 전체 역량을 쏟아붓다보니까, 정책을 만들고 제시하거나 인권적인 현안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것에도 역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비민주적인 운영방식이나 위원의 자질문제 시비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현재 25개 단체가 연대하고 있는 열린회의에서는 앞으로 사건접수부터 해결과정까지 적극적인 모니터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법개정문제까지도 포함해서. 열린회의가 인권위와 적극적인 역할분담을 통해서 서로를 상승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길 기대해 본다.
〈독립군 정신, 인권운동사랑방 운동 새로운 원칙 선언〉
사랑방에서는 운동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독립군 정신’이 그 핵심이다. 홍보담당 이주영씨의 말을 들어보았다.“자생력을 갖는 활동가가 되는 것이죠. 활동가 중심의 조직운영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방의 활동가는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인권 운동을 합니다. 이것은 곧 활동가 모두가 운영주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디갈 수는 있겠지만, 또한 사랑방은 94년부터 ‘인권정보·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한 장짜리 성명서에서부터 두툼한 국내외 인권이론서까지 약 3,500여권을 준비해 놓고 있다. 자료실을 담당 최은아씨는“사랑방에서는 운동의 모든 과정을 근거 자료로 남겨서, 또하나의 자료운동을 펼치려고 합니다. 인권침해와 이에 대한 활동을 선례로 남겨서, 누구나 쉽게 인권회복을 위한 방법을 알 수 있게 하자는 것이지요. 또한 접근이 어려운 정부의 자료를 계속 확보하여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사회구조까지 건드리는 비제도권적인 인권운동단체, ‘인권운동사랑방’〉
기자는 사랑방의 활동가들의 말을 정리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의 20주년도 취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사랑방은 인권운동의 좀 더 근본적인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비제도권적인 활동, 원칙적인 활동, 사회구조까지 건드리는 인권 활동을 할겁니다. 이 활동들이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옳은 것이라면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운동을 전문화시키고, 필요한 부분은 연대하여 힘을 실어갈 것입니다. 사랑방은 진보적인 운동을 고민하고, 비제도권에서 자유롭게 협력하고 비판하면서 운동해 나갈 것입니다.”
글 최희정 기자 / 사진제공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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