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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장차법을제정하자 (5)-국가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에 대한 조심스러운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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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대통령인수위원회는 노무현대통령당선자의 사회적차별금지를 위한 법 제정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논의에 착수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사회적차별금지를 위한 위원회조직을 인권위원회 산하에 설치하고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인수위에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해 10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장애(인)차별금지법(안)」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토론자로 참석하길 원한다는 공문을 보냈을 당시만 해도“전혀 논의된 바 없고 한 단체의 의견에 입장표명하기 어렵다”며 일축했던 인권위의 행동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갑작스럽고 발빠른 행보이다.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다.

장애관련 4대 법률을 강화하면 된다던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현재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국가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반갑다. 하지만 장애계에서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와 장애계의 가장 핵심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실행기구, 즉‘국가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그 위상과 역할, 독립성 여부는 왜 중요한 것일까? 안선영 변호사의 글을 통해 장애계의 입장을 정리해본다.


국가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에 대한 조심스러운 목소리
얼마 전인가요. 그 동안 다소 갈등구조를 보여주었던 장애계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단순히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관심을 가지고 작게나마 참여를 하고 있던 저로서는 얼마나 신바람이 나던지요.

아마 저같이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할 사람 많을 것입니다. 이제 가칭‘장애인차별금지법추진협의회’가 만들어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동안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고 논의하던 각각의 모임들이 하나가 되겠지요. 아울러 차별에 대한 각 단체 및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담아 내는 작업들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겠지요. 정말 신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움직이고 있는데 말이죠, 우리의 상황에는 아랑곳없이 국가인권위원회나 보건복지부 등의 국가기관이 너무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내부기구로서 차별시정위원회를 두겠다는 의견을 이미 인수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압니다. 대통령 당선자 공약의 위력을 절감할 뿐입니다.

아직 가칭‘장애인차별금지법추진협의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정해진 바 없습니다. 다만 그 동안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던 저로서는 당연히 ‘국가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라는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정하고 있는 위원회는 장애차별을 조사하고 이를 구제하는 업무를 중심으로,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정책 및 제도들을 마련하는 등 장애인의 문제를 보다 감수성 있게, 보다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구입니다. 명목상의 위원회가 아니라, 장애 가진 사람의 눈높이에서 장애인의 차별을 바라보고 이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위원회를 원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러한 업무를 담당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일단 회의적입니다.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로써는 장애인차별에 대한 최선의 해결기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거든요. 왜 그러냐구요?

첫째,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 제1호로 진정이 접수되어 장애차별임이 인정되었던 제천시 보건소장 승진임용탈락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4개월이 넘는 조사기간을 거쳐 장애차별이었음을 인정했을 뿐,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조치는 전혀 없었던 사건인데요, 결국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확보를 위해 다시 별도의 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소송 중에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제천시는 피해자의 무능력과 불성실 때문에 임용에서 탈락한 것이라면서 인신공격적인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2001년 여름부터 시작된 이 사건이 2003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한 채, 아직도‘장애차별’이냐의 여부를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차별임이 인정되고도,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실질적인 구제조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별도의‘국가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를 요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차별행위를 한 자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시정권고를 받고도 따르지 않을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할 수 있는 대책이 무엇인지 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둘째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제가 차별금지법 모임을 통해 차별 유형들을 살피면서, 그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에서의 차별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듯 장애인차별이라는 것은 실제로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과연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지요. 장애차별의 특성상 차별여부를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에는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감수성 있게 접근해야 하는데, 국가기관에 의한 모든 인권침해와 사인에 의한 모든 차별행위를 전부 다루고 있는 현재의 인권위원회로서는 그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진정사건 2,600여건 중에서 차별진정은 130건, 장애인차별은 15건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장애차별에 있어서의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을 낙관적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와의 중첩적인 역할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남녀차별개선위원회 또한 그 전문성 때문에 독자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으며, 성차별과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하는 사건이 드물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장애차별금지위원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셋째는 국가인권위원회법상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차별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합리적 배려를 거부하는 행위까지도 차별의 범위로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헌법에 사회권으로 규정되어 있는 부분까지도 종합적으로 다룰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보면 헌법10조부터 헌법22조까지의 자유권 및 헌법 11조의 평등권 침해로 한정하여 조사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 23조 이후의 사회권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도 관여를 할 수 있는 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넷째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감수성의 문제입니다.
보조기를 착용한 장애인이 대중목욕탕에 들어가고자 할 때 손님 떨어진다고, 입장조차 거부당할 때, 통합교육의 시행으로 어렵게 일반학교에 입학한 정신지체장애인이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때, 언어장애가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114에 전화를 했는데 그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놀림을 받다가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어졌을 때, 이런 문제를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야유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차별을 당한 장애인에는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는 이런 사안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들에게, 또는 진정을 접수하는 직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것인 지 궁금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드는 다른 인권침해 사건들에 밀려 일상에서의 장애차별사건들이 너무도 쉽게‘각하’당하는 것은 아닌지요.

마지막으로 사족임을 알면서 덧붙입니다.
엊그제 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가인권위의 2003년 중점사업으로 보아「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행위를 근본적으로 시정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사회 각계의 종합적인 의견이 반영된 차별금지법 시안을 마련하고자,「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2년 10월에 한 장애인단체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법(안) 공청회를 하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참여를 요구했을 때, 위원회 자체 내에서는 아직 논의된 바 없다는 이유로 참석을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 위원 중의 한 분이 참여해 주긴 하였지만,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2003년 중점사업이 될 정도로 그 필요성을 절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취할 입장은 아니였다고 보는 것이지요.

우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단지 법 제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장애인단체 및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그 목소리들이 담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바로 당사자인 장애 가진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자신들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아무 실효성도 없는 명목상의 차별금지법을 만들지는 말아 주십시오. 우리들이 당사자가 되어 그 내용을 채울 것이고, 우리들이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 작업이 10년이 걸리더라도 다 함께 천천히 가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입장이 무시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작성자안선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차별금지법제정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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