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장애우복지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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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장애우인권, 운동, 그리고 복지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현존하는 법 중 장애우차별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법인 ADA(미국장애인법)를 제정한 나라, 그리고 자립생활운동(Indipendent Living Movement)이 시작된 나라가 미국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숙경 인권센터 팀장이 작년 11월 삼성복지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후원으로 실시된‘사회복지사해외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미국의 대표적인 장애우운동단체, 자립생활센터, 정책당국, 연구기관 등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다음은 연수 참가기를 간추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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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장애우복지현장 |
<미국 장애우운동의 전위부대 ADAPT>
11월 3일 덴버에서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ADAPT(American Disabled for Attendant Programs Today) 본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말로 ‘활동보조프로그램 촉진을 위한 미국장애시민모임’이라는 뜻의 ADAPT는 1983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아틀란티스(지금도 동일한 이름의 IL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이동권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면서 결성되었다. 현재는 48개의 지부를 두고 가장 급진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전에는 ADA 통과를 위한 지속적이고 급진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이곳에서 우리를 맞아준 밥 존슨(Bob Jonson)은 6명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사무실 모든 벽마다 빼곡이 전시된 ADAPT의 활동역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80년대 우리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이동권 투쟁을 벌였어요. 싸움은 APTA(미국대중교통협회)의 회의를 따라다니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죠. 그러다 1990년 ADA가 제정되면서 이동권 문제가 해결된 이후로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PAS(Personal Attendant Service)로 줄여 부르는 활동보조서비스는 중증장애우가 지역사회에서 자주(自主)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활동보조인을 지원해주는 서비스다. 대부분의 주에서 실시되고는 있지만 주별로 격차가 크다고 한다. “한해동안 시설에서 중증장애우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예산은 4천만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하기 위한 활동보조서비스에 지원하게 되면 예산도 크게 줄어들고 동시에 장애우의 자유로운 생활도 가능해집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활동보조서비스는 거의 대부분의 주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우리의 의료보호에 해당하는 메디케이드(madicade)에서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고 한다. PAS서비스를 실제 운영하는 일은 IL센터가 담당하고 있다. 메디케이드에서 시간당 12달러(우리 돈으로 약 1만 5천원)를 IL센터에 지불하는데, 이중에서 7∼8달러 가량이 PAS에 임금으로 지급되고, 남은 4∼5달러 정도를 IL센터의 운영경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연수기간중 방문한 IL센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유사했으며 IL센터 운영비의 50% 이상을 이것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열린 연구를 진행하는 RTCIL>
우리말로 ‘자립생활 연구와 훈련 센터’라는 뜻의 RTCIL(Research & Training Center on Independent Living)은 1980년 자립생활 분야의 당면이슈를 조사·연구하기 위해 NIDRR(국립장애와재활연구기관)의 지원과 캔자스주립대학의 인력이 협력하여 설립되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초대소장인 짐 버디(JIM BUDDY)교수와 지금의 소장인 글랜 화이트(GLEN WHITE)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척수장애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글랜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캔자스에 도착한 첫날 밤 글랜 교수의 집에서 파티가 열렸다.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자리였다. 그곳에는 글랜 박사의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김경희 씨와 임지희 씨, 폴란드 유학생 모니카, 베트남 유학생인 소아마비 장애우 호안 얀, 브라질의 유학생인 시각장애우 니콜 그리고 글랜 박사가 한국에서 입양한 딸과 아들 등 다양한 민족이 모여 있었다. 모두 자립생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음날 열린 세미나를 통해 RTCIL에서 이루어진 방대한 양의 연구물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연구제목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다. “지난 9·11 테러과정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응급상황에 대처하지 못해 피해가 컸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응급상황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의 대처방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흥미로운 주제였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반드시 연구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미국 자립생활운동의 창시자인 에디 로버츠(Ed Roverts)가 RTCIL을 방문했을 당시의 연설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비디오에서 에디 로버츠는 “누구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며, 자립생활운동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권옹호(advocacy)”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세미나 이후 베트남에서 온 호안 얀과 함께 그녀가 실습하고 있는 로렌스 IL센터를 방문했다. ADAPT에서 운영하고 있는 IL센터와 비슷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아틀란티스 IL센터가 운동성을 강조하는 분위기인데 비해, 이곳은 프로그램이 중심이 된 우리의 복지관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이 중심이 되어 운영된다는 점과 차별에 대응하는 인권활동이 주요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복지관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강하지만 권위적이지 않은 리더>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해서 서둘러 찾아간 곳은 파라쿼드(PARAQUAD) IL센터였다. 파라쿼드의 대표는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변호사인 로버트 펑크(Rovert J. Funk)다. 그는 ADA 제정 당시 백악관에서 법 제정과 관련한 실무를 담당했었다고 한다.
파라쿼드는 시카고에서 찾아간 엑세스리빙(ACCESS LIVING) 자립생활센터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버클리 자립생활센터와 함께 미국에서 오래되고 규모가 큰 10개의 IL센터 중 하나라고 한다. 이들 초기에 설립된 센터들은 IL운동을 전개하고 ADA 제정을 이끌어낸 리더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재활법에 의해 그 후 설립된 센터와는 구분되는 특별한 예우를 받고 있다. 현재 미국 내 IL센터는 약 400여 개 정도 되는데 이들 센터는 규모나 활동성에 있어 차이가 매우 크다고 한다. 로버트는 파라쿼드의 설립자인 맥스(Max J. tarklof)가 지병으로 쉬게 되면서부터 파라쿼드를 이끌게 되었다. “파라쿼드는 현재 초기 IL운동의 철학 궤도로부터 많이 이탈해왔습니다. 프로그램이 중심이 된 것이죠. IL은 프로그램이 아닌 운동이며 철학입니다. 이 점을 스텝들과 함께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버트가 매우 남성적이고 강한 리더쉽을 보여준 반면, 시카고의 엑세스리빙(ACCESS LIVING)의 대표로 있는 마르코 브리스토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리더쉽을 보여주었다. 마르코 브리스토는 장애문제에 대한 대통령 직속기구인 ‘전미장애인협의회(NCD)’ 전 회장을 역임한 여성장애우로 매우 밝고 겸손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밥과 마르코 브리스토와 후에 워싱톤에서 만난 쥬디 휴먼(Judith Heumann) 등은 70년대 IL운동을 함께 해온 오랜 동지들인 것 같았다.
이들 센터에서 나는 스스로 신념을 실천해오면서 갖게 된, 강하지만 권위적이지 않은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성과를 일일이 파악하고 있으면서 자주 칭찬하고 격려하는 분위기, 운동을 하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생활을 인정하는 시스템 등 여러 면에서 성숙되어 있었다. 그러나 파라쿼드에 비해 엑세스리빙은 보다 급진적인 운동에 호의적이었으며 시카고 ADAPT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카고 시와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카고 시의 경우 50여 명의 스텝으로 구성된 시장 직속 ‘장애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마르코 브리스토 대표의 주선으로 위원장인 데이비드 핸슨(David K. Hanson)을 만나 직접 시카고의 장애우정책 집행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데이비드 역시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우였다. 차분한 느낌의 데이비드는 “50여명에 이르는 스텝들이 시카고 시의 장애우정책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자신은 장애를 가진 사람과 단체의 입장에서 시의 다른 부처의 이해를 구하고 장애우정책을 세워나가는 일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는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를 포함하여 위원회의 과반수 이상의 스텝들은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에서 만난 장애를 가진 공무원들>
워싱턴에서 우리는 NCD(전미장애인협의회), NCIL(National Council on Independent Living, 전미장애인자립생활협의회)를 방문하여 미국 장애우단체의 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 볼 수 있었다. NCIL은 1978년 재활법(1974)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립생활센터를 늘려가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현재 700여 개의 단체가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주요 활동내용은 회원옹호활동, IL센터에 대한 교육훈련, 매년 개최되는 컨퍼런스와 상담 등이다. 공화당 정부가 들어선 취근에는, 사회복지예산이 감축되는 흐름과 ADA의 약화 움직임을 저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활동의 방식은 우리의 연대활동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IL을 위한 단체간 연대라는 점과 워낙 넓은 곳에 회원단체가 흩어져 있는 탓에 전화로 회의를 진행하는 Tele Conference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NCIL의 사무국은 회장이 선출되는데 따라 회장의 출신지로 옮겨다닌다고 한다.
다음으로 우리의 보건복지부 장애관련부서에 해당하는 미국 재활청 RSA(Rehabilitation Services Adminstration)와 장애 및 재활과 관련한 연구조사를 지원하는 연방기구인 NIDRR을 방문했다. NIDRR에서는 현재 재활과 IL에 관련한 연구활동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기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의 PAS에 관한 조사의 경우 버팔로에 있는 WID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주제에 관한 1년 지원예산만도 약 6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RSA에서 IL사업(Independent Living Branch)의 책임자로 있는 제임스 빌리(James Billy)는 한쪽 팔을 절단당한 장애우였다. RSA는 1973년 재활법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주로 재활서비스와 관련한 예산을 지원하고 관리·감독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제임스는 “아직까지 미국의 장애우정책에서 직업재활분야가 단연코 우세하긴 하지만(이는 IL센터가 전국 400여 개인데 비해 직업재활을 담당하는 에이전시(Agence)는 전국 약 5천 4백여 개에 이른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IL운동의 결과로 그동안 ‘장애우를 대상화한다’는 문제제기를 받아왔던 직업재활서비스가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다’며 IL운동이 직업재활을 선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오후에는 연방 교통국의 시민권 분야의 책임자로 있는 마이클 윈터(Michael Winter)의 사무실을 들러 미국의 교통문제에 있어 시민권과 관련한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이클 윈터 역시 휠체어를 타는 장애우다. 그는 “최근 테러로 인해 강화된 공항에서의 검색과정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과 외국인이 차별 받고 있다”며 이와 관련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저스틴 다트 부인과의 만남 “WHAT IS YOUR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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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스틴다트미망인 |
원래 연수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얼마 전 타계한 ADA의 근간을 일구어 낸 저스틴 다트 미망인과의 만남이 주선되었다. 워싱턴 근교의 버지니아주 근교에 있는 아파트 로비에서 만난 그녀는 일본인이었다. 단아하게 머리를 뒤로 묶은 다트 부인은 생전의 저스틴 다트와 함께 활동하면서 남긴 사진과 자료들을 하나 하나 설명한 후 간직하라며 선물로 사진을 주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맞아 조용히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라는 간결하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모두들 조용히 망설인 끝에 ‘정의로운 사회’, ‘장애가 있는 사람이 차별 받지 않고 동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꿈을 이야기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역시 그렇다고 했다. 모두들 꿈꾸는 사회는 결국 하나라며 ,다트 부인은 “우리를 형제자매로 기억하겠다”고 말하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미국의 장애계를 돌며 느낀 것은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인정과 지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인정과 지지가 없이는 어떠한 사람도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궁극적으로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자세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박숙경(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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