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pendent Living 자립생활인가, 독립생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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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t Living(IL)이 한국 사회 장애우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도입단계이기 때문에 이념적인 부분은 물론 ‘자립생활’과 ‘독립생활’이라는 두 가지 용어를 두고서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용어만 놓고 본다면 ‘자립생활’이 조금 더 친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국내에서 IL운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기관이 정립회관인데 이곳의 자립생활지원사업이 일본의 자립생활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인독립연대 등 장애우단체와 한신대 성숙진 교수를 비롯한 장애우복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립생활’보다 더욱 능동적인 의미로서 ‘독립생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IL의 본래 의미에 부합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이념과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불붙고 있다.
Independent Living이 장애우운동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며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볼 때, 올바른 용어 선택은 앞으로 IL운동이 우리 나라에 올바르게 정착하는데 풀어나가야 할 여러 가지 선행과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우의 완전한 사회 참여 및 독립적인 생활권 보장을 중시하는 자립생활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이미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장애우복지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차츰 재활 패러다임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자립생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특히 중중장애우들 사이에서는 자립생활 이념이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립생활이 장애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중증장애우들의 빼앗긴 인권 문제에 대한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중증장애우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Independent Living을 둘러싸고, 용어와 이념에 대해 각기 다른 분산된 목소리를 냄으로써 하나의 이념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강조하기 위해 ‘자립생활’용어 사용
Independent Living 이념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8년 <재활> 12월호에 다니구치 아키히로의 ‘중도신체장애자의 자립생활’이란 글이 번역되면서부터다. 그 후 1995년 서화자 씨의 “장애인의 자립생활 이념에 대한 사회사업적 고찰; 새로운 지역복지의 창안을 지향하면서”(<社會福祉> 1995. 4)를 시작으로 학술지에 자립생활 이념이 속속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립생활운동 이념이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은 정립회관의 자립생활지원사업으로부터이다. 정립회관은 1997년 미국의 버클리자립생활센터에서 연수를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휴먼케어협회와 함께 1998년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직원연수, 강연회, 세미나, 동료상담교실, 중증장애우 자립생활 체험프로그램 등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2001년부터 자립생활 지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IL운동의 이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수용한 정립회관은 왜 자립생활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일까. 정립회관 김동호 기획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국제적으로는 Independent Living과 IL로 쓰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자립과 독립을 혼용해서 쓰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단지 정립회관에서 자립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자립(自立)의 ‘自’자가 ‘스스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IL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강조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립생활에서 도움이나 지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립생활은 적절한 도움을 받을 때만이 가능하다. 단, 도움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관리하고 선택할 수 있으면 된다.”
김 팀장은 “Independent Living을 독립이라고 쓰는 것은 이 이념이 시작된 미국의 개인주의 성향의 영향으로 이 용어를 독립생활로 정의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서 상 독립이라고 하면 가족으로부터 의존성을 탈피해 혼자 사는 것을 지향하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동양사회의 가족공동체 개념이나 전통적인 문화를 깨뜨리면서까지 굳이 혼자 살아야 할 필요는 없을 뿐더러,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의존적이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살아간다면 자립생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에서 독립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장애우들이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의존적이고 억압받아왔던 존재에서 해방되어 생활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자립이라는 단어가 자립작업장 등의 용어에 사용되면서, 마치 장애우들이 직업적 능력을 가져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오해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김 팀장은 자립생활과 독립생활 두 가지 용어가 함께 사용되다가 우리 사회 정서에 맞는 것으로 정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 IL운동이 대부분 복지관과 재활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계 보이고 있어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정립회관의 경우, 자립생활 패러다임이 지금까지 우리 나라 복지서비스의 근간이었던 재활 패러다임과는 큰 차이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두 패러다임의 차이점이 곧 패러다임간의 충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립회관 김동호 기획팀장은 “자립생활이 확산되면 기존의 재활서비스 종사자들이 어디로 가야하는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지만, 자립생활이 확산되더라도 재활 패러다임이 커버해야 할 부분은 존재한다”며 자립생활 패러다임에서 전문가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립생활을 표방하고 있는 곳은 정립회관을 중심으로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2001년 2월 국립재활원은 중증장애우의 전인적 사회재활의 필요성과 자립생활 패러다임으로의 변환에 부응하는 새로운 재활훈련사업을 계획하기 위해, Task force team을 구성하여 기존의 직업훈련과정과 직업전훈련과정을 폐지하고 재활 프로그램의 일부로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또한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생활센터를 표방한 센터들도 설립되고 있다. 2000년 7월 동대문종합복지관 부설로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가 설립된 데 이어 2000년 8월에는 전남 광주에서 우리이웃자립생활센터 개설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립생활이 복지관이나 재활원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면서 기존의 재활 러다임 안에서 자립생활을 접목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낡은 프로그램이나 서비스에 새로운 이름을 입힌 것은 독립생활이 아니다
Independent Living을 독립생활로 사용해야 한다는 쪽에서도 무조건 독립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IL운동의 핵심적 정신을 잘 이해한다면 자립이나 독립 어떤 용어로 불러도 상관없지만, 국내의 IL운동이 그 이념의 핵심을 비껴가고 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회장은 “독립생활 이념을 기존의 프로그램이나 서비스에 단지 새로운 이름으로 옷을 입히는 식으로 사용하거나 일시적 유행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중증장애우들의 생존권과 인권에 직결된, 너무 중요한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윤 회장은 “흔히 IL운동을 자립생활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이념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독립생활이라는 용어가 적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독립생활이라는 말 속에는 그동안 제대로 된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한 중증장애우들을 독립적인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 달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독립생활이라는 용어 속에는 독립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부조리와 투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일본의 자립생활이 우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 현실이 일본과 같은 것도 아닌데 진지한 검토없이 일본에서 쓰고 있는 용어를 그대로 들여와 쓰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며 IL운동의 이념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은 “사실 우리 나라의 IL운동이 일본의 자립생활에서 많은 부분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나라가 일본의 복지정책을 모방하고 따라 간다면 상당 부분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일본의 자립생활의 경우, 시설에서 사는 장애우가 자신의 계획과 의지에 따라 생활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까지를 자립생활로 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며 Independent Living을 어떤 용어로 정의할 것인가에 따라 IL운동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독립생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국가가 제공하는 장애우 소득보장과 도우미서비스
한신대 재활학과 성숙진 교수가 쓴 「독립생활의 초석」이라는 글에 따르면, 중증장애우들을 위한 미국의 Independent Living(IL) 운동은 70년대 초 미국 버클리와 보스톤에서 독립생활센터가 시작되면서 본격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생활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제도적인 준비는 1935년도에 제정된 장애우, 노인의 소득보장에 영향을 미친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과 장애우, 노인의 의료혜택과 관련된 1965년도 Medicaid, Medicare 제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업재활이 힘든 중증장애우의 경우, IL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제안된 PL95-602 법안이 재활전문가들과 장애우단체, 장애운동가들의 노력으로 1978년 통과되었다.
즉, 미국에서 IL 운동이 계속 성장, 확산되어 완전히 뿌리내린 배경에는 사회보장법을 통한 중증장애우의 소득보장 부분과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일상 생활이나 사회 참여가 불가능한 중증장애우들에게 생존권과 다름없는 유료도우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Medicaid 등의 제도적 장치가 존재했던 것이다.
따라서 중증장애우들이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삶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사회가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IL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정신이었던 것이다.
성 교수는 “독립과 자립이라는 두 가지 용어가 처음 IL 운동을 시작했던 미국의 중증장애우 운동가들이 강조한 IL 운동의 핵심 정신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혼선을 줄 수 있다면 이것을 명료화시키는작업은 무척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며, Independent Living 이념이 우리 나라에서 다소 왜곡되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성 교수의 말에 따르면, IL 운동의 기본 정신은 중증장애우들이 의존적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가 장애우 스스로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며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우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제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 교수는 독립생활을 위해서 국가가 중증장애우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도우미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ndependent Living의 용어를 둘러싼 이번 공방은 쉽게 결론이 내려지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각계의 목소리가 IL 운동을 제대로 정착시킬 수 있는 에너지로 작용해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해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자립생활이라는 용어를 쓰는 쪽도, 독립생활이라는 용어를 주장하는 쪽도 결국은 중증장애우들의 진정한 사회통합을 희망한다면 각자의 입장과는 별개로 중증장애우들의 소득보장 수준을 현실적으로 높일 수 있는 문제와 유료도우미 서비스 재정을 국가에서 담보해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을 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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