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진정으로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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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적 소수자, 흔히 동성애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성애 중심주의인 이 사회에서 비정상이라는 그릇된 시선을 감수해 내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모임이 있어 찾아보았다. 여성 성적소수자 인권모임인 <끼리끼리>와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인 친구사이 방문하여 한국에서 성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우리사회는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애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걸 무슨무슨 중심사회라하며 비난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이성애자 이기 때문에 가능한 발언이다.
당연하다는 말 속에는 늘 폭력이 숨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히도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모든 종류의 차별, 편견과 마찬가지로 성적소수자의 문제 또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끼리끼리의 아담한 사무실 밖으로는 오월답지 않은 흐린 날씨가 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끼리끼리의 상근간사 27세 에림씨가 끓여준 찻잔을 마주하고 앉아 첫 방문답지 않은 편안함을 느낀것은, 어쩌면 그 흐릿한 날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 그리고 레즈비언
"한국사회에서는 여성 이라는것부터 불평등의 씨앗을 안고 있다는걸 의미하죠. 게다가 레즈비언이라면 이중의 편견에 쌓이게 되는 것은 더말할 나위가 없죠. 보통 레즈비언문제를 지나치게 급진적이다, 시기상조이다, 사적이다 라는 이유로 인권의 문제에서 배척시킵니다.
하지만 소수자의 문제에 있어서 시기상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문제를 회피하려는 수단일 뿐이죠. 그리고 레즈비언 문제를 사적이라고 하는데, 사적이라면, 성적 지향성이라는 그 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왜 편견을 가지는걸까요? 왜 정치적으로 배척시키죠?"
보통의 경우 동성애자라는 커밍아웃은 사회로부터 아웃팅당하는 결과를 낳게된다. 자기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당당해 지기 위해 대사회적으로 자신을 알리는일이 결과적으로 사회로부터 엄격한 소외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홍석천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소외라는 것은 단순한 따돌림의 수준을 넘어서 완벽한 추방을 의미한다.
"95년도에 레즈비언 세 분이 대 사회적 커밍아웃을 했었어요. 좀더 자유롭게 동성애 운동을 하기 위해, 그리고 동성애 문제를 더 널리 알려내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하신거죠. 결과는, 세분 모두 회사에서 해고당했죠. 그리고 지금은 어떤 연락도 두절된 상태에요."
특히나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성적소수자는 자신의 성적정체성을 제대로 찾아가기도 전에 뭇남성들의 대상화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레즈비언 포르노그래피에요. 레즈비언 포르노그레피에서 레즈비언은 철저하게 남성들의 성적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해요. 포르노에서 레즈비언들은 마치 이성과의 빈번한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쾌락을 찾기 위해 동성애를 선택한 것처럼 보여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레즈비언은 문란하다. 라는 식의 편견이 만들어진 걸 꺼구요. 사실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모두 동성간의 육체적인 성관계만을 중시한다던지 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동성애자를 동성연애자가 아니라 동성애자라고 부르는거죠."
당신은 언제, 왜 당신이 이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았나요?
사실 기자는 에림씨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싶었다. 도대체 언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되었는지 그것을 확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이 되어서야 기자는 언제, 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사실 어떤 사람이 레즈비언이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고정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이성애자이지만 언젠가는 레즈비언이 될 수도 있는것이고. 지금은 레즈비언이지만 언젠가 다시 이성애자가 될 수도 있는 것 이니까요. 문제는 이 사회가 하나의 성적 정체성만을 정상이라고 간주하고 인정하고 있다는거죠. 이 억압이 좀 덜한 사회에서는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기가 더 수월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설사 자신이 동성애의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편견의 벽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자신의 동성애성향을 억누르고 살아가겠죠. 결국 중요한 것은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자신이 선택할것이냐 마느냐에 문제에 달려있는것이죠.
저의경우는 글쎄요, 중고등학교때무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활동을 하게되면서부터 더 명확해 졌다고 할수 있죠. 또 그 질문에 대해 좀 다르게 대답을 하자면 다시 뒤집어서 이런질문들 드리고 싶어요. "당신은 언제, 왜 당신이 이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았나요?""
예림씨의 마지막 대답에 기자는 잠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기자또한 한번도 자신이 언제, 왜 이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은 일이 없다. 그저 당연히 그려려니 했을 뿐, 세상이 다 남자 여자 짝지어 사니 그렇게 사는 것이 맞으려니 했을 뿐, 그러고 보니 이성애 중심의 이사회가 어쩌면 존재 했을지도 모를 기자의 동성애 성향을 거세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씁쓸해졌다.
크고 작은 단체들과의 연계르 통해 소수자 인권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터
끼리끼리는 여성적적소수자 인권모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여성단체로서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성간의 결혼을 통해 법적 테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레즈비언은 기본적으로 비혼여성과 같은 삶의 조건에 놓이게 된다. 복지의 혜택을 꿈도 꿀수 없을 뿐아니라 대출이나 융자등에도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레즈비언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크고작은 여성단체와의 수평적 연대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끼리끼리의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 각종상담단체 , 시민단체에 동성애 바로알기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연대를 위해서 존재를 알리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사실 지금은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 시급합니다. 레즈비언에대한 인식자체가 낮은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레즈비언의 존재를 증명한다면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사이", 남성 동성애자들의 쉼터
종로에 위치한 친구사이 사무실은 낮에는 한국 동성애자들의 가장 큰 축제인 퀴어문화제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올해로 3년째를 맞게되는 퀴어문화제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문화적 장이 부재했던 우리나라에 새로운 동성애 문화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친구사이 사무실은 저녁 7시에서 10시에 걸쳐 개방하고 전화 상담을 받는다. 8시가 넘어가자 조용하던 사무실이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남성 동성애자라고 하면 대개가 여성적인 외모와 약간 튀는듯한 분위기를 상상하기 쉽겠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들은 길거리에서 숱하게 스쳐지나치는 보통 남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무지게 2002퀴어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강정현씨는 "남성동성애자들을 사회적인 남성에 대한 인식- 남자다워야 한다던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던가 하는것들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하죠. 그런것들이 실제로 집안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구요. 저 같은 경우는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는데요. 물론 많이 어렵죠. 하지만 평생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거니까요. 보통의 경우 남성 동성애자들이 여성스러운 말과 태도를 가진다, 오버액션을 취한다, 남성성을 거부 한다.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매체에서 보여지는 게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그려졌기 때문인 것 같구요, 뭐랄까 저는 게이들이 일반 남성들보다 좀더 예민하다, 라는 표현을 쓰고싶어요" 라고 말했다.
게이들 중에서도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한 경우는 있지만 레즈비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상이다. 96년도에 문화 평론가인 서동진 교수가 자신이 레즈비언이란 사실을 밝혔고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임태훈 대표또한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한 예다. 하지만 그들을 레즈비언의 경우처럼 완벽한 아웃팅을 당하지는 않았다. 친구사이 대표 김병석 씨는 "대사회적 커밍아웃의 경우 철저한 자기기반을 가진 경우에야 가능합니다. 자신을 지지 해 주는 지지세력이 있고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이 있을 때 사회로부터 자신의 일을 하면서 아웃팅당하지 않을수 있겠죠" 라고 밝혔다. 하지만 왠지 성적소수자의 세계에서조차 레즈비언이 더 불리한 조건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것은 기자의 지나친 비약일까?
동성애자가 퇴폐적이라구요?
정보통신질서법은 인터넷상에 올릴수 없는 퇴폐적인 내용들을 규정하고 단속하고 있다. 이를테면 수간, 근친상간, 유간등의 내용이 나오는 퇴폐물은 정보통신질서법에의해 규제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퇴폐등급중 퇴폐2등급에는 동성애가 포함되어 있다. 동성애가 퇴폐2등급이기 때문에 동성애 관련 사이트도 모두 퇴폐2등급이다. 퇴폐등급으로 분류되면 학교, 학교 주변의 PC방등 청소년이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한하여 접속이 불가하도록 차단되고 있다.
"저희 사이트 들어와 보셨죠? 저희사이트에 청소년에게 유해한 음란한 내용이 있던가요? 저희 사이트는 동성애자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일 뿐입니다. 더구나 성적 정체성이 서서히 결정되는 나이인 청소년시절에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면 당연히 도움을 청해야죠. 그걸 무조건 차단 한다고 될일입니까?"
지금 동성애 사이트의 대표격인 X-ZOEN또한 지난 8월 청소년유해 매체물 판정을 받았다. X-ZOEN의 대표는 지금 소송을 진행중이다.
나와다른것은 나쁜것이다?
그것이 성적소수자의 문제이던, 장애우의 문제이던, 노숙자 문제이던, 문제의 본질은 나와 다른 것은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미성숙한 의식에서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이성애자인데, 그래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성애자인데, 저 사람은 아니다. 저사람은 뭔가다른사람이다.라는 생각, 더 나아가서 그래서 나는 옳고 저들은 나쁘다. 비정상이다라는 식의 단정. 그러한 생각은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 사회를 좀먹는 그릇된 사고방식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나와 다르지만, 또 한편 하나도 나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동성애자라는 면에서 나와 다르지만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것.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할 기본적인 삶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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