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학교 또다시 불붙는가?
교사, 학생들 집단 폭행 당해 중경상
본문
지난 2002년 3월 16일 새벽 0시 40분 경,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있는 에바다 농성 생활공동체인 해아래집에 괴청년 10여명이 침입해 약 20분 동안 자고 있던 농아 학생들과 교사를 집중 구타하고 집기를 파손하는 일이 발생했다.
96년 겨울, 복지 재단을 운영하는 어른들의 강제노역과 폭력에 항거해 농성을 벌인 지 6년.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던 에바다학교 사태가 또다시 폭력으로 번져 장애우 시설비리 척결을 바라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해아래집 폭력사태의 내용과 앞으로 에바다 재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한밤중의 날벼락 같은 테러
에바다 사태가 학생들의 폭력사태로 거듭 이어지기 시작한 것은 97년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에바다 사건이 언론과 감사원의 감사 등으로 모두 밝혀지자 구 비리재단측은 농아 아이들을 강제로 예배에 참석시키고 일부 졸업생으로 하여금 이들을 협박해 결국 학생들은 농성하는 측과 구 재단을 옹호하는 측으로 나뉘게 된다.
이때부터 구 재단측은 학생들을 행동대원으로 내세워 농성하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6일에 해아래집에 괴청년들이 들어와 난동을 부린 까닭 역시, 3월 15일 밤 방영된 MBC PD수첩에서 해아래집에 살고 있는 이성존 씨와 이경훈 씨가 비리 재단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언을 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재단측에 불리한 증언이었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이성존 씨는 현재 해아래집에서 생활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에바다학교에 남아 구재단측을 옹호하는 농아인 친구들과도 친분이 있던 터라 얼마 전 시내에서 농아원 친구들을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농아원에 사는 친구로부터 “구재단측 사람들은 우리들이 해아래집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도록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문제는 이성존 씨가 그 내용을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해아래집에서 학생들과 함께 자고 있던 신연실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건이 일어나기 1시간 전부터 에바다농아원에 살고 있는 졸업생이 성존이와 경훈이의 핸드폰으로 ‘직장문제로 의논할 게 있으니 하북농협 앞에서 만나자’는 문자가 여덟 번이나 왔어요. 성존이와 경훈이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만나자고 문자를 넣었더니 자정쯤에 알겠다, 잘자라고 답신이 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약 30분 뒤에 해아래집으로 들이닥쳤어요. 해아래집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던 시간이었는데 어디선가 여러명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겁이 나서 제가 112에 신고를 하는 순간, 갑자기 현관문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열명 정도의 남학생들이 신발을 신은 채로 몰려들어 왔어요. 우선 2명이 들어와서 전화기를 뺏고, 핸드폰 밧데리도 다 뺏어 가더라구요. 그러더니 집안에 집기를 다 때려부수고 에바다 시설비리 관련 비디오테이프를 파기한 후에 성존이와 경훈이를 방으로 데리고 가서 집중적으로 두 아이를 때렸어요.”
한밤중에 벌어진 집단 테러로 이경훈 씨는 발목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아무런 방어를 하지 못한채 발로 차이고 주먹질을 당했고, 이성존 씨는 얼굴과 턱에 중상을 입었으며, 아이들을 보호하며 함께 잠을 자던 신연실 교사가 이를 제지히다 역시 집중 구타를 당해 긴급히 송탄에 있는 중앙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1명 오긴 했지만 농아인 학생들에게 구타당했고, 나중에 여러 명의 경찰이 왔을 때는 이미 괴청년들은 난동 후 도망간 후였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방 구석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남아 있고 피묻은 옷가지들이 널려 있어 그날의 일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현재 해아래집 어린 학생들은 밤이 되면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밤잠을 설치며 떨고 있는 상태다.
신연실 교사는 이러한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기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날 난동을 부리고 간 학생들이 특별히 해아래집 식구들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저희 교사들과도 잘 지내는 학생들이에요. 단지 구 재단세력들이 아이들에게 폭력을 학습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 온 학생들 중에서도 몇 명은 기물을 파괴하거나 사람들을 때리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눈치만 보고 있었어요.”
이미 법적으로는 구 재단세력들이 에바다농아원에 관여할 수 없도록 문제 해결이 난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일까.
법이 있고 공권력이 있는 나라에서 왜 범법자들을 방치하는가
에바다재단은 지난해 12월 인권시민단체에서 추천한 인물들로 이사회를 과반수 구성하여 새롭게 농아인협회 부회장인 변승일 씨를 영입함으로써 정상화 할 수 있는 길을 트는 듯 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구 재단측 인사들의 강한 반발로 학교와 농아원에 출입마저 통제하자 에바다복지회 이사회(이사장 윤귀성)는 지난 1월 23일 구 재단측 인물 15~20여명에 대한 ‘출입방해금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고 지난 2월 9일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판결을 받았었다.
말 그대로 구 재단측 인사들을 에바다에서 분리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이에 따라 2월 28일 에바다학교 권오일 교사와 에바다복지회 사무국장 남정수 씨, 평택지원 집행관 2명이 에바다농아원 출입문에 법원의 ‘출입방해금지가처분 등 결정’을 공시하는 문건을 붙이러 갔다가 농아원생 15∼16명에 의해 주먹과 발로 심하게 폭행당했다. 평택지원 집행관 2명 역시 농아원생들의 방해로 법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권교사는 코뼈가 부러지고 무릎뼈에 금이 가 각각 6주의 진단을 받았고, 남사무국장은 이가 3개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권오일 교사는 “구 재단측 인사들은 학생들에게 폭력을 사주해 운영을 파행적으로 몰고가는 범법집단입니다. 구 재단측 인물들을 농아원생들과 분리시키지 않는 한 농아원을 거점으로 한 농아원생들의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법원에서 ‘출입방해금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상태 아닙니까? 경찰이나 시청에서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경찰과 시청에서 적극성을 가진다면 에바다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평택 경찰과 시청의 문제를 지적했다.
에바다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들은 “우리 나라는 수사권이 검찰에 있기 때문에 경찰이 강력한 수사를 할 수 없다. 경찰은 수사절차에 의해 일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에바다 사태가 6년이라는 시간동안 지속되면서 장애계에서 조차 적극적인 움직임과 관심이 주춤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장애우 교육시설과 생활시설인 에바다 농아원과 학교가 그 시시비비를 떠나 빠른 시일 안에 정상화되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농아원과 학교의 정상화에만 무게 중심을 둔다면 평택시청이나 보건복지부는 그 운영권을 다시금 구 재단측으로 부여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법적으로 구 재단측 인사들이 농아원과 학교 운영권에서 손을 떼야한다고 결정이 난 지금, 경찰과 평택시청의 능동적인 움직임이 절실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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