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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장애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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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발 지하철, 갖가지 사람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그 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출근 시간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좀 뜸해지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생존을 위해 그 일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그들, 지하철의 구걸하는 장애우들을 만나보았다.

▲지하철역의 장애우

 

 

3월 14일 오후 3시

무작정 전철역으로 향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는 또 무작정 사당역으로 향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사당역이라고 했다. 기자는 2호선 사당역 승강장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3월 14일 오후 3시 30분 사당역 승강장

흰색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우 한분을 만나다. 취재를 요청하였으나, 한사코 거절했다. 실의에 빠진 기자는 사당역에서 2호선 기차를 잡아 타고 전철 가는대로 따라갔다.

 

3월 14일 오후 3시 50분 신림역

전철이 신림역 즈음을 지나려는데 전철 바깥의자에 앉아 있는 장애우 한분이 눈에 띄었다. 달려가 보니 역시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지체장애우.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로 반신을 사용할수 없다 했다. 역시 한사코 취재를 거부하였으나 한참동안의 설득 끝에 간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 이일을 시작했나?

 한 사오년 되었다
이 일밖에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나? 기초생활보호법의 수급권자가 될 수 없나?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

가진 재산이 있어서인가? 아니다. 가진 재산이 뭐 있겠는가 시골에 할아버지 선산이 있다. 논도 아니고 그냥 산일 뿐이다. 밥도 안나오는 선산이 있다고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다.

이 일 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뭔가.

공안들한테 걸리면 최소한 3만원짜리 딱지를 끊는다. 집에 그런 딱지가 한뭉치 있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이 짖궂게 굴지는 않나?

왜 안그러겠는가? 얼마전 TV에 나같은 사람뒤에 배후가 있느니 어쩌느니 하는 보도가 나간 이후로 더 심해졌다. 상납하는 깡패가 있는게 아니냐며 때리는 사람도 있고, 술취한 사람이 침을 뱉는 경우도 있다.
한달에 며칠이나 이일을 하나?

일요일은 쉬고 최소 20일 이상은 일한다.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되나?

그냥 일한만큼 번다. 매일 매일 달라서 딱히 이야기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대충 얼마나 되나?

그냥 대충 먹고살 만큼 번다.

 

3월14일 오후 4시 20분

그 때 마침 지나가는 녹색제복의 사내가 보였다. 그가 말한 지하철 공안이었다. 그 지하철 공안을 쫓아가 말을 걸어 보았다.

 

공안일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었나?

지금 2년째다.
여기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분들이 총 몇 명이나 되나?

2호선에만 이삼십명 정도 된다.
사람이 자주 바뀌는 편인가?

아니다. 구걸하는 사람들은 항상 일정하다. 그사람이 그사람이다.
구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장애우인가?

그렇다 하지만 가짜 장애우도 많다. 전체에 육칠십퍼센트는 가짜라고 보면 된다. 그 중에서도 시각장애우의 경우는 가짜가 더 많다. 눈만감으면 되니까. 그런 가짜 중에는 우리같은 공안이 오면 실눈뜨고 본다음에 도망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
보통 연령대는 어느정도인가?

오륙십대가 가장 많다. 거의 오륙십대라고 보면 된다.
어느 전철역에 이 분들이 많은가?

보통 우리가 섬식으로 된 승강장이라고 부르는 곳에 많다. 그러니까 양쪽 전철 사이에 승강장이 있는 경우인데 이런 승강장이 갈아타기에 용이해서인 것 같다. 다름 호선은 모르겠고, 2호선에서는 신림역이나 삼성역에 많은 것 같았다.

자기 구역이 있어서 자기 구역에서만 일을 하나?

그런 것 같다. 보통 시각장애우 분들 같은 경우는 그렇다. 아무래도 보이지 않으니까 구간을 정해 놓는 것 같고 나머지 분들은 사람이 좀 많은 구간으로 다니는 것 같다.

아까 밑에서 만난 구걸하는 장애우 이야기를 들으니까 걸리면 뭐 딱지를 뗀다고 하던데, 무슨 법에 저촉되어서 딱지를 떼는건가?

철도법과 경범죄에 의한 것이다. 물품판매 행위의 경우 경찰서까지 가야하고 벌금도 최고 10만원까지 될 수 있다. 하지만 구걸하는 경우는 인근소란행위로 경범죄에 걸린다. 이런 경우는 경찰서까지는 가지 않는다. 데리고 가봐야 신분증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더 힘만 들 뿐이다.
하지만 3만원이면 하루 벌이에서 꽤 부담이 될텐데.

우리도 다 딱지를 떼는 건 아니다. 우리도 그분들의 그 일이 생계임을 알기 때문에 웬만하면 딱지를 떼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만약에 그분들 중에 라디오를 켜시거나 그런 분이 계시면 라디오라도 끄게 하는 그런 정도이다.
이제 월드컵이 가까워져서 단속이 더 심해질 것 같은데 어떤가?

물론이다. 다음달부터는 외국인이 많은 서울의 4개 구역은 집중 단속 구역이 된다.

보통 하루수입이 얼마나 될 것으로 보이나?

우리도 모르지만 이렇게 계산을 해보자. 전철 1량에 두세사람정도는 바구니에 돈을 넣는다. 잔돈일때도 있고 천원짜리를 넣는 사람도 있다. 대충 전철 1량에 천원정도를 벌수 있다고 치면 전철은 총 10칸이니까, 전철을 한바퀴 다 돌면 만원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 대에 만원정도라고 잡으면 수입은 자기가 전철을 몇 대 타느냐 에 달려있다. 10대면 10만원이고, 20대면 20만원이고. 물론 정확한건 아니다. 그냥 대충 짐작을 해 보는것일 뿐, 아무도 정확한 수입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럼 벌이가 나쁘지 않은 않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연금이나 국가보조금을 받는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지하철 공안과의 대화를 마치고 기자는 다시 다른 구걸하는 장애우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탓다. 시내 쪽의 지하철이면 그들을 좀더 쉽게 만날 수 있지 않울까 하는 생각으로 동대문과 충무로 일대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을 쉽게 만날 수는 없었다. 날씨는 꾸물꾸물 하고 시간은 퇴근 시간무렵이 되어가고 있었다.한산하던 지하철이 점점 붐비기 시작했다. 어쩔수 없이 기자는 다음 취재를 기약해야 했다.

 

3월 21일 오후 1시

지난 번 취재 때 너무 늦게 시작한 취재 때문에 그들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좀 일찍 나서 보았다. 이번에는 한역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2호선을 타고 계속 돌 요량이었다. 방배역에서부터 2호선을 타고 한참을 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모한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에 전철에서 내리려고 하는 찰나, 반대쪽 승강장의 전철문이 열리고 흰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우 한분이 전철에 올라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월21일 오후 2시

기자는 잽싸게 반대쪽 전철로 옮겨탔다. 타고나서 보니 그곳은 홍대 입구 전철역이었다.
맨 끝 칸에서부터 구걸을 시작하는 그를 따라가 보았다. 대낮이어서인지 지하철안은 붐비지 않았고, 행패를 부릴만큼 술에 절어있는 사람도 없었다. 보통, 전철 한칸에 한 두 사람 씩은 바구니에 돈을 넣었다. 동전일 때도 있고 지폐일 때도 있지만, 대개가 짤랑짤랑 소리라는 잔돈이었다. 물론 아예 아무도 돈을 넣지 않는 칸도 있었고 너댓명이 돈을 넣는 칸도 있었다.

지하철 중간까지 갈 무렵이었을까? 시각장애우 아저씨가 반대편에서 구걸하며 오는 지체장애우 아저씨와 마주치게 되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지체장애우 아저씨가 시각장애우 아저씨를 보고 길을 터주고 시각장애우 아저씨는 더듬더듬 흰 지팡이로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그렇게 기차 열량을 모두 지나가고 마지막 칸에 당도했을 때, 기차는 정확하게 신림역에 도착해 있었다.

신림역에서 그가 내리자 딱 그 마지막 칸에 시각장애우 한분이 또 기다리고 계셨다. 두분은 서로 지팡이를 두드리며 인사를 하셨다. 미리 약속된 만남인 듯 했다. 기자는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일한지 얼마나 되었나?

한 4-5년 되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왔다갔다 하나?

홍대입구전철역에서 신림전철역까지 신림전철역에서 삼성역까지 왔다갔다 한다. 우리는 꼭 거기까지만 정해서 왔다갔다 한다. 다 가운데 승강장이 있어서 갈아타기가 쉽다.

그럼 다른 호선, 1호선이나 3호선은 안타나?

우리는 2호선만 탄다. 우리는 성남에서 오는데 보통 2호선은 성남 사람들이고 1,3,4호선은 서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어려운 점은 없나?

우리는 딱 정해진 길로만 다닌다. 시각장애우들은 다 그렇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서로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지체장애우들은 그냥 막 다니기 때문에 자꾸 우리랑 부딛친다. 아까 좀전에 나온 지하철에서도 부딛쳤다. 그럴때가 가장 난감하다.
그럼 대충 이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다 아는사이일 것 같은데?

대충 안다.
몇명이나 되나?

 2호선에는 이삼십명 정도.
승객들이 행패를 부리지는 않나?

왜 안그러겠는가. 나라에서 돈주는데 왜 나와서 이러냐면서 욕을 하기도 하고, 술취한 사람은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그런다.

 

그때 반대편 전철에서 문이 열리면서 시각장애우인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셨다. 세분이 함께 점심을 드시러 가신다 했다. 길을 잘 안다는 아저씨가 앞장을 서고, 세 분은 함께 복잡한 역사를 빠져나가셨다.

 

3월 21일 오후 2시 30분

어쨌든 인터뷰 한건을 마치고 잠시 안도의 숨을 내 쉴 무렵이었다. 낯이 익은 아주머니 한분이 구걸하는 시각장애우 한분이 전철 타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어디서 보았을까 생각을 해보니 좀 전에 시각장애우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때 알은척을 해오던 어주머니였다.

무슨 숨은 속사정이 있는걸까 싶어서 그녀를 따라 지하철에 올라탔다. 아주머니는 시각장애우 아저씨를 지하철에 태워주고는 혼자 휘적휘적 앞으로 가고 있었다. 기자는 아주머니를 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아까 저기 뒤에 계시는 시각장애 아저씨 타시는데 도와주시던데 어떤 사이 인지.

아무사이도 아니다. 그냥 앞이 안보여서 도와주는 것 뿐이다. 난 모른다.
아주머니는 자꾸만 이야기를 피하려고 했다.
아무 사이도 아니면서 왜 도와주었나, 원래 아는사람인가?

아는 사이는 아는 사이다.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한 동네 사는 사이이다.
그럼 아까 그 시각장애우 세 분도 다 아는 사이인가?

그렇다
그럼 아침에 성남에서 여기까지 올 때 같이 오나?

그렇다
그럼 아주머니가 안보이는 분들을 신림역까지 모시고 오는건가? 위험하니까?

그런 셈이다. 그냥 봉사 차원에서 하는거다.
그리고 전철을 갈아 탈때마다 태워주고 내려주고 하는건가?

그렇다. 홍대입구에서 신림까지, 신림에서 홍대입구까지 같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수고비를 조금 받지 않나?

아니다. 수고비는 무슨.
그래도 조금을 받을거 같은데.

조금, 받는다.
하나만 물어보자, 근데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 수입이 얼마나 되는가?

모른다. 정말 모른다. 아무도 그런건 이야기 안 해준다.

 

한사코 돈을 받는 것을 부인하던 아주머니는 마지막에는 조금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사람많은 전철이 시각장애우들에게 위험하지 않을 리 없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약간의 수고비를 주고 안전하게 전철을 타고 내리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이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역시 아주머니에게서도 이들의 정확한 수입을 알기는 어려웠다. 아마 이들의 수입은 이 세계의 불문율인 듯 했다.

 

3월21일 3시 20분 방배역

이만해면 되었지 하고는 사무실로 향하는 전철을 타고 오던 중, 바닥에 앉아서 다니면서 노골적으로 바구니를 들이밀며 구걸을 하는 젊은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다리를 쓰지못하는 지체장애우인 것 같았지만, 그러기에는 왠지 성한 사람의 다리 같았다. 한쪽 손은 붕대를 감고 있는 그는, 자신의 나이를 서른 넷이라고 밝혔다.

 

언제부터 이일을 시작했나?

10년도 넘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길인가?

을지로 입구에 간다.
그곳에 왜 가나? 쉬러 간다.
술을 좀 마신거 같은데.

좀 마셨다. 2병 마셨다. 술이라도 마셔야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다.
손은 어쩌다가 다쳤나?

이 손은 완전히 못쓰는 손이다. 손가락이 다 짤렸다. 5년전엔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손이 들어가서 이렇게 되었다. 완전히 못쓰게 되었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데, 왜 그러나.

얼마전에 구걸 하고 있는데 여기서 뭐하는 짓이냐면서 왠 젊은 남자들이 칼로 얼굴을 그어버렸다.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어쩌다가 지금 이 일을 하게 되었나?

나는 고아다. 어렸을때부터 이일을 했다. 지금은 집도 없고. 그냥 전철역에서 먹고자고 하면서 이일을 한다.

 

그와 헤어져 지하철을 빠져 나오면서, 기자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생존의 방식이 존재 하는 곳이 도시이긴 하지만, 하필 구걸을 해야 만 하는 그들의 삶이, 또 하필 그들의 대부분이 장애우 라는 사실이 못내 아프게 다가왔다.
왜 하필 구걸을 하느냐고, 다른일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누군가 물어올 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시 이렇게 묻겠다. 당신이, 가진것도 없고, 장애우인데다가, 국가보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제 늙어버린, 사람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구걸을 하는 그네들의 삶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죄 없는 자만이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중 돌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글 사진 박채란 객원기자

작성자박채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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