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맹학교 사태로 본 시설의 소유와 권리
본문
최근에 있어왔던 장애우복지법인과 장애 당사자들간의 갈등은 장애우들이 권리를 찾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적 현상 중의 하나이다. 특히 이번 한빛원의 경우에는 이러한 대립구도를 잘 보여준다. 법인 측의 입장은 자신들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고, 시각장애우동문회측은 자신들의 권리로서 운영권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갈등은 단지 현상적으로 표출되는 문제가 아니라 장애계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갈등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한빛원은 여성시각장애우 운동의 대표자인 고 한신경선생님께서 설립한 법인이다. 처음에는 여맹원으로 시작하여 여성시각장애우들의 교육을 담당하였고,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특수학교와 생활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한빛원은 시각장애우에 의해 시각장애우들을 위해 건립되고 운영되어온 법인이었으나, 그 운영권이 고 한신경선생님의 올케에게 주어졌다. 초기에는 동문회 측과 법인측 간에 큰 갈등은 표출되지 않았으나, 법인운영을 법인설립의 정신과 운영자들간의 1차적 관계가 존재하는 않는 3세대 운영진으로 넘어오면서 문제는 대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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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이사진은 법인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여 시각장애우들과의 1차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운영이 보다 쉽다고 생각한 정신지체인 사업으로 전환하려는 듯한 의구심을 받게되면서 시각장애우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반면 동문회 측은 법인과 시설이 시각장애우들을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곳이기에 그 운영 주체는 시각장애우들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왜 이런 갈등이 발생되는가
이러한 문제들이 생겨나게 된 원인은 첫째, 장애우들의 재산을 장애우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의 사유재산은 물론 심지어 장애우 법인의 소유권까지도 장애우들의 비장애우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장애우복지를 위해 후원받은 재산들이 비장애우 가족들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되는 현실은 법인을 설립.운영했던 장애우 당사자들이 깊이 반성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둘째, 장애우들의 세상을 보는 시각부족이다. 장애우들 스스로 만든 법인들이 그 가족들의 손에 넘어가 오늘날의 갈등구조를 낳은 것도 사실 장애우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한 데서 생겨난 것이다. 현재 굴지의 장애우복지법인들이 장애우 설립자 사후에 비장애우들이 운영권을 갖고 장애우를 위한 기관으로 전환된 경우가 허다하다.
셋째, 장애우 스스로의 능력 부재이다. 장애우들이 이러한 법인들을 물려받아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일반 사회에 심어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여러 이유들이 있을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사회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것은 스스로 능력을 키우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서로가 양보하고 이해하면 된다고 할 수 있겠으나, 보이지 않는 이해득실이 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은 결코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유재산으로 간주하는 법인의 속성이나, 금권과 독재로 이루어지는 일부 장애우 집단들의 모습들을 그냥 이대로 바라보면서 언제까지나 대결구도로 치달으며 대립과 투쟁을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애우 스스로 권리 요구해야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몇 가지를 든다면 첫째, 모든 법인의 사회이사 제도 도입의 보안책 마련이다. 2001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서 사회이사 제도에 대한 논의는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먼저 문제점으로 시, 군, 구청장들이 임명하는 사회이사들이 진실로 사회이사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시, 군, 구청장들이 행정관료가 아니라 정치인들이고, 또한 법인을 담당하는 일선 공무원들 역시 장애우복지의 전문가들이 아닌 상황에서 이들 손에 사회이사가 임명되고, 이러한 이사들이 법인에 들어온다면 지금의 현실에서는 개선점보다는 문제점이 더욱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이사의 자격을 구체화하고 시.도지사로 그 임명권을 조정한다거나, 사회이사를 임명하는 비정치적 특별위원회를 둔다거나 하는 등 보안책을 마련한다면 사회이사 제도의 도입은 법인의 폐해를 견제하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장애우 스스로의 자기정화이다. 우리를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를 사회가 인정해 주는 토대 위에 세워놓아야 한다. 물론, 우리를 무시하고 소외시켰던 사회의 불합리한 태도를 그대로 참고 견디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권리와 능력을 외치고 인정받는 보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시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데서 사회의 위기가 오듯이,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면 우리 장애우들 또한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전의 발판으로 만들 수 있는 준비된 장애우들이 요구된다.
이러한 사회적 장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남들이 알아서 저절로 해 주는 것은 아니다. 2002년 4대 선거에서 여성비례대표의 수는 법으로 인정하게끔 여야의 합의를 이루었다. 이는 여성들의 표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비례대표제도를 여야가 추진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표의 대부분이 영향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노인들의 표도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양당 모두가 노인복지예산에 대해 깊은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있으나, 사실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로 노인들의 표가 많은 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애우의 경우에는 사회적인 관심과 배려가 여성이나 노인들의 경우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사회에서 먼저 우리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로 인해 투쟁에서 얻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를 귀찮아하며 어쩔 수 없이 도와주는 형태들이 많은 면에서 나타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주장과 노력으로 권리를 요구하고 찾을 수밖에 없다. 이미 남들이 알아서 해 주는 시대는 끝났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첫째, 우리 스스로가 내부적인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장애우집단은 이상한 집단이라는 사회의 인식이 생겨나서는 결코 안 된다.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으로 한데 힘을 모아야 한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사분오열하는 오늘날의 모습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그리고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면서도 장애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죄부를 받으려는 생각 역시 수정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후진들을 이끌어주고 키워서 더 이상 비장애우들 가족들에게 장애우복지사업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과오는 범하지 않는 장애우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일반사회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반사회는 우리의 투쟁대상이면서 동시에 도움을 받으며 우리가 몸담고 살아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비장애우와 장애우가 함께 하면서 우리의 문제를 같이 풀어 가는 사회적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사회를 적으로 생각하면서 투쟁의 역사를 써 나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도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도 우리를 인정하면서 우리와 그들이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로서 하나 될 때 우리 장애우들의 권익은 얻어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를 인정해 달라는 주장을 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인정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장애우와 장애우계의 비장애우간에 자리잡고 있는 현재의 갈등구도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구도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갈등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는가가 성패의 관건이 된다. 이 갈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너도나도 없게된다면 그 갈등은 멸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좋은 결실을 얻어 서로간의 만족과 화해로 해결된다면 그 조직은 보다 성숙된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듯이, 인간이 살아 숨쉬는 한 이러한 갈등은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우리 장애우계에 갈등이 있다고 해서 우리를 손가락질하는 사회의 시각은 사라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표증이며 이러한 존재의 의의가 앞으로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결실로 나타나기 위해 우리 모두 정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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