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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청각장애우 교육의 산실, 갈루뎃대학

[기 획 - 미국의 장애우 복지 현장을 가다(2)]

본문

갈루뎃대학은 청각장애우를 위한 전세계에서 유일한 대학으로 학부과정은 물론 석·박사 과정까지 설치되어 있다. 또한 국립시범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그리고 여러 가지 연구 및 서비스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청각장애우에 대한 교육과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갈루뎃대학이야말로 미국 청각장애우들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는 사례이다. 갈루뎃대학의 이러한 명성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어서 한국 청각장애우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모든 강의가 수화로 진행되는 학교 >

하지만 막상 워싱턴에 도착해 갈루뎃대학을 취재하는데 문제가 생겼다.교수나 학생이 대부분 청각장애우이라 영어수화로 인터뷰해야 되는데, 한국수화도 모르는 기자로선 불가능한 것.그래서 시간도 몇배나 걸리고 취재원도 지치게 하겠지만 일일이 영어로 문장을 적어 주고받는 필담 형식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 워싱턴의 한인장애우단체에서 영어수화 통역을 해 줄 사람을 구했다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갈루뎃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는 비장애우 교포여학생인데 한국어와 영어, 한국수화와 영어수화를 모두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청음학(Audiology)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제니(한국명 이유진·23)가 기자의 취재소식을 듣고 학교 안내를 해주기로 했다. 9살 때 미국에 이민 온 제니는 아버지가 청각장애우여서 누구보다 청각장애우의 아픔을 안다. 그래서 대학원을 마친 후 의대에 진학해 이비인후과 의사가 되서 청각장애우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갈루뎃에서는 모든 강의가 수화로 진행돼요.그래서 비장애우가 여기 들어오려면 수화를 배워야 한답니다” 제니의 안내로 참관한 강의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강의실은 학생과 교수가 서로 수화를 잘 볼 수 있도록 고대 그리스 신전처럼 아래쪽 강단부터 부채꼴 모양으로 책상이 놓여 있다. 학생들은 뭔가 토론하는듯 바쁘게 수화를 했고, 교수 역시 수화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학교 시설 역시 청각장애우에게 유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기숙사나 연구실 방마다 바깥에서 전등불을 껐다 켜는 것으로 초인종을 대신할 수 있게 한다거나 곳곳에 청각 장애우용 문자전화를 설치하는 등 학교측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제니는 “갈루뎃에서는 저같은 건청인이 소수여서 오히려 차별을 받는다니까요”라며 웃었다.

제니는 또 “갈루뎃대학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님 대부분이 청각장애우이고 총장님 역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우이다”며 “지난 88년 갈루뎃 학생과 동문, 교직원들이 이 사회에 맞서 시위를 한 끝에 청각장애우 총장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교수의 요구에 의해 임명된 청각장애우 총장 >

현재 갈루뎃대학의 7대 총장인 킹 조던(I.King Jordan )박사는 젊은시절 교통사고로 청력을 잃은 후 갈루뎃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재직해 왔다.


지난 88년 3월 갈루뎃대학 이사회가 가장 신망을 얻던 청각장애우 조던 박사 대신 건청인을 임명하자 학생과 교수들이 대학의 문을 닫아 걸고 ‘우리에게 당장 청각장애우총장을 보내달라(Deaf President Now)’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 운동은 미국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 장애우기관, 학교, 협회, 심지어는 정부부처도 장애우가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결국 이사회에서 임명한 건청인 총장이 1주일 만에 중도하차하고 조던박사가 총장 직책을 맡게 됐다.


지난 88년 3월 갈루뎃대학 이사회가 가장 신망을 얻던 청각장애우 조던 박사 대신 건청인을 임명하자 학생과 교수들이 대학의 문을 닫아 걸고 ‘우리에게 당장 청각장애우총장을 보내달라(Deaf President Now)’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 운동은 미국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 장애우기관, 학교, 협회, 심지어는 정부부처도 장애우가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결국 이사회에서 임명한 건청인 총장이 1주일 만에 중도하차하고 조던박사가 총장 직책을 맡게 됐다.

지난 6월 연세대에서 열린 장애우재활국제학술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조던총장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DPN운동은 미국 청각장애우들의 자기역량강화에 획을 긋는 일이었지만 아직도 가야 할길이 멀다”며 “우리 갈루뎃대학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청각장애우들에게 교육을 통해 사회생활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갈루뎃대학은 원래 교육운동가이자 언론인이 아모스 켄달(Amos Kendall)이 의회를 설득하고 지역유지로부터 땅과 돈을 기증받아 컬럼비아대학 부설로 장애우학교를 세운 것이 그 시작이다. 1856년 청각·시각장애를 가진 아동들을 위한 학교로 시작된 갈루뎃대학은 1865년 청각장애우만을 위한 학교가 된 이래 엘리트 청각장애우를 배출하는 산실이 됐다.

이후 켄달은 미국에서 최초로 청각장애우 학교를 세운 토마스 홉킨스 갈루뎃(Thomas Hopkins Gallaudet)의 아들인 에드워드 마이너 갈루뎃(Edward Miner Gallaudet)을 총장으로 위촉했다. 현재 갈루뎃대학을 만든 주역인 에드워드 마이너 갈루뎃은 자신의 어머니가 청각장애우이어서 누구보다 청각장애우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갈루뎃대학의 이름도 이들 가족에서 딴 것이다. 갈루뎃대학 교정에는 각각 이들 부자의 동상이 세워져있어 갈루뎃가족이 초창기 학교발전에 매우 큰 역할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졸업생의 60% 이상이 전문직에서 종사 >

한편 갈루뎃대학의 2000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대학원 졸업생 69%와 대학졸업생 86%가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 대학 졸업생들의 연평균 개인소득은 남성의 경우 38,000불, 여성의 경우 33,000불이었다. 또 전체 졸업생중 24%는 50,000불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대학원 졸업생들은 교사(37%), 교육 그리고 직업상담가(11%), 컴퓨터 프로그래머·분석가(11%) 등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 졸업생의 60% 이상이 교사(39%), 직업상담가(16%), 청각연구학자(6%) 등의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 이외에도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분야에까지 갈루뎃 졸업생들이 진출해 있다.

이 같은 취업 현황은 우리 나라의 청각장애우 학교 졸업생들 대부분이 단순·기능·기술직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조던총장은 “솔직히 미국도 아직 장애우 실업률이 비장애우 실업률보다 월등히 높다”며 “장애우들도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 직업선택이 중요하며 이것은 고등교육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갈루뎃대학으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 >

조던 총장은 또 “그동안 우리 갈루뎃대학에 한국의 재능있는 청각장애우 학생들이 많이 유학왔다”며 “그들 대부분 학위를 마친후 귀국해 한국 청각장애우의 복지를 위해 앞장서고 있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갈루뎃대학을 졸업한 한국 학생들은 상당수 되지만, 2001년 현재 재학중인 사람은 학부 1학년인 정훈 씨(27) 뿐이다. 그리고 내년 갈루뎃 입학을 위해 김승현군(20) 씨가 어학연수를 밟고 있다.

제니와 정훈 씨, 승현 씨와 함께 갈루뎃대학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하며 청각장애우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92년 서울 선희학교를 졸업한 정훈 씨는 청각장애우 선교잡지 ‘낮은자의 행복’에서 기자로 일한 경력을 가진 젊은이로 갈루뎃에서 청각장애우 교육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정훈 씨는 지난 6월 갈루뎃대학의 조던 총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영어수화통역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컴퓨터그래픽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번 돈을 모아 유학왔다는 정훈 씨는 “갈루뎃에 유학 온 세계 각국 청각장애우 학생들의 경우 99%가 자국 정부나 장애우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다”며 “우리나라에도 장애우를 위한 국비유학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갈루뎃의 1학기 수업료는 유학생의 경우 8000불로 매우 비싸다. 정훈 씨는 “물론 학비 부담이 크지만 갈루뎃에서 배우는것이 너무 많아 전혀 아깝지 않다”며 “특히 한국에 있을때는 무능한 사람 취급당하며 살아서 그런지 삶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는데 미국에 와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월 서울애화학교를 졸업한후 모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다 어학연수를 온 김승현군 역시 “여기 올 때 많은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갈루뎃대학은 한국의 청각장애학생에게 꿈의 대상이다”며 “갈루뎃대학의 좋은 환경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국제수화, 즉 영어수화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김승현군은 “한국에서 청각장애우들이 대학에 가지만 수화통역사 등이 없어서 중간에 그만두기 일쑤고 어찌어찌 대학을 졸업해도 거의 취업에 실패한다”며 “한국에도 갈루뎃대학 같은 청각장애우를 위한 대학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년에 평택에 생기는 장애우전문대학과 관련해 정훈씨는 “장애 종류와 상관없이 한 학교에서 모든 장애우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일지 모르겠다”며 “청각장애우의 경우 학습에 가장 중요한 듣기가 안되기 때문에 다른 학생과 몰아넣는 식이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식당에서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계 청각장애우 학생들을 여러 명 만났는데, 청각장애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으로 입양됐다거나 가족이 아예 전부 이민왔다는 얘기를 털어놔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훈 씨나 승현 씨, 제니 같은 젊은이들이 있어서 우리나라 청각장애우들의 미래가 어둡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이번 갈루뎃대학 방문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인터뷰 장애학생의 대학생활 돕는 장애지원센터


갈루뎃대학은 청각장애우를 위한 대학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의 다른 일반 대학은 장애우 학생이 다니기에 잘 되어 있을까?

두 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잘 돼있다”


미국의 대학은 대부분 학교 내에 ‘장애지원센터(Disability Resource Center)’를 두고 있다.장애지원센터란 문자 그대로 장애학생들이 학교내에서 학습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장애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지원프로그램은 장애정도에 따라 이동부터 학습까지 관련도구와 도우미를 제공하는 등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중증 휠체어장애우에게는 학교통학이 용이하도록 ‘리프트 차량’을 지원하고 있으며 기숙사에서는 1층에 여러 편의시설이 딸린 가장 크고 좋은 방을 배정한다. 시각장애 학생이 약시나 준맹(準盲)일 땐 독서확대기를 제공하고 전맹(全盲)일 땐 점역사를 교실에 지원·배치한다. 또 청각장애우를 위한 수화통역사와 글을 쓸 수 없는 중증장애우를 위한 대필사도 지원한다.


워싱턴의 명문인 조지타운대학 역시 장애지원센터를 운영하는데, 시각장애우를 위한 음성 컴퓨터 등 첨단기기와 함께 학습능력이 부족한 장애우들을 위한 공부방도 마련되어 있다. 조지타운대 장애지원센터측은 “시험시간도 다른 학생이 1시간이면 학습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2∼3시간을 줘 장애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지타운대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학들은 장애학생이 단 1명뿐이어도 학교 건물을 개축하여 장애학생에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려고 한다.전통을 중시하는 하바드대학도 장애우를 위해서 2백년 넘는 유서깊은 건물을 개조할 정도로 미국사회의 장애우에 대한 배려는 놀라운 수준이다.

장애지원센터에서 장애우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먼저 입학지원서에 장애 여부와 종류 그리고 그 장애로 인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기술하도록 하고 있으며 입학후 학교 내 장애지원센터에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지원센터는 장애우에 대한 각종 서비스 외에도 장애학생에 대한 바른 이해, 인식 개선 그리고 권익신장운동도 함께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들이 매년 4월 첫째주를 ‘장애학생의 권익신장주간’으로 설정하고 장애우 비디오 상영, 장애학생용품 전시, 장애접근지원센터 개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조지타운대에서 만난 한국유학생 김경진 씨(30·사회학 전공)는 “미국 대학은 한국의 대학과 달리 장애우가 학교환경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는 일은 절대로 없다”며 “지체장애우 뿐만 아니라 시각·청각장애우가 일반 학생과 함께 공부하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     

‘기회의 평등’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대학의 장애지원센터를 보면서 한국에서 편의시설 미비로 학교를 상대로에 소송을 낸 박지주소송연대가 떠올랐다.


글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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