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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함께 그리는 미래’

기쁜우리복지관의 만화기능훈련교실/만화제작작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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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선생님이나 부모님 몰래 교실이나 집안에서 가슴을 졸이며 교과서나 이불 아래 만화책을 숨겨놓고 이야기와 그림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바쁘게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를 설레게 했던 만화는 그림과 말이 결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내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없는 시각적인 형식으로, 그 탁월함으로 인해 최근 예술의 핵심영역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창조적인 표현 수단인 만화에서 장애우의 직업 영역 확대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 발굴하고자 노력하는 기쁜우리복지관의 ‘만화기능훈련교실’과 ‘만화제작작업장’을 찾았다.


교실에서라면 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만화책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다른 한쪽 벽에는 졸업생들의 작품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는 조용한 교실에는 종이에 펜 닿는 소리만 가득하다. 3기 교육생들의 수업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서로간의 어색함이 조금은 가시지 않은 기쁜우리복지관(강서구 가양동)의 만화기능훈련교실 수업 풍경이다. 9월에 교육생을 모집하고 10월부터 수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전국장애인창작만화페스티벌에 참여했던 터라 오늘이 두 번째 수업이라고 한다. 오늘의 수업은 가로와 세로로 선을 긋는 것으로, 언뜻 보기에 어렵지 않은 일인 것 같지만 그것을 연습하는 교육생들의 손길에서 초심자들의 조심스러움과 진지함이 묻어난다.


<취미반으로 시작하여 직업훈련까지 >

복지관에서 취미반으로 야간에 만화강좌가 시작된 것이 지난 1998년, 수강생들의 반응이 좋아 2000년에 정식으로 과정이 개설됐고 같은 해 10월 첫 졸업생이 나왔다. 장애인교용촉진 공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만화기능훈련 교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10시부터 4시까지 주 5회, 1년 과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수업내용은 만화기초이혼 및 만화기초데생, 크로키, 표현기법, 포토샵과 일러스트 등 만화를 그리는데 필요한 기초기술과 나아가 캐릭터, 카툰, 극화, 에니메이션 등 만화와 관련된 다양한 영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교육 후반기에는 작품 워크샵을 통해 개인작품을 만들어 취업에 필요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뿐만 아니라 업체견학이나 만화 관련 행사 참여 등 수업 이외에 다양한 과외활동들이 진행된다고 한다.

양은순 직업훈련교사는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을 1년이라는 시간에 압축해서 배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려는 분들의 성실성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3기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수업 분위기가 활기가 넘치거나 하지는 않아요. 교육생 대부분이 청각장애우와 지체장애우인데 수화를 모르는 분들이 청각장애우와의 의사소통이 아직 서툰 것도 이유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수업이외에 만화가 관련된 다른 활동들에 참여하고 졸업여행 등의 행사를 함께 치르면서 친밀감이 점점 쌓여갑니다. 만화훈련교육과정에서 수업 뿐 아니라 좋은 친구를 만나고 사회적 관계도 연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만화기능훈련교실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수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많은 손길들이 필요하다. 2년 가까이 함께 하는 수화통역사 2명이 요일을 정해 10시부터 4시까지 계속되는 수업에 함께 한다. “저도 수업을 시작하면서 수화를 배워 청각장애우와의 의사소통이 힘들지는 않지만, 전문적인 용어나 컴퓨터관련용어는 수화통역사들의 통역이 필수적이지요.”라고 양은순 교사는 말했다.

수업 중간 휴식시간에 만난 한 교육생은 만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일이 직업으로 연결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면서, 처음이라 어색하고 힘든 부분도 있지만 만화와 연관된 다양한 내용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만화를 통해 이루는 꿈>

이렇게 만화기능훈련교육을 수료한 교육생들은 1기 15명, 2기 18명으로 이 중 4명은 에니메이션이나 사회복지분야로 대학에 진학했고, 다른 사람들은 에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작년에 생긴 복지관 내 만화제작작업장에서 일감을 맡아 독자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만화기능훈련교실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양은순 교사는 “만화는 그리는 사람의 독창성과 예술적 감각을 드러낼 수 있는 반면, 다양한 경험과 고도의 지적능력을 요구하는, 육체노동의 강도가 높은 작업입니다. 그렇지만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면 자신의 평생 활동 영역을 갖게 되지요. 지금까지 장애우가 만화 영역에 진출한 경우가 드물어서인지, 특히 편마비 장애우들이 편안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의자 등 원활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용구 개발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 각종 공모에 참여하여 많은 경험을 쌓는 것과 함께 학생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생기는 많은 에피소드를 동호회 회지 형식으로 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기능훈련교실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복지관 2층에 있는 만화제작작업장을 찾았다. 지난 해 문을 연 이곳 만화제작작업장에서는 만화기능훈련교실을 수료한 7명의 만화가가 일하고 있다. 지금 작업장의 일감은 인터넷 학습지 등에 만화나 이미지 컷 등을 만드는 것과 플래시애니메이션 제작이다. 올해 장애인 창작만화페스티벌에서 극화부분 동상을 수상한 이 작업장의 막내 송지은 씨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광이었어요. 그래서 만화에서 제 꿈을 찾고 싶었지요. 지금은 만화와 관련된 다양한 영역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 후 저에게 맞는 분야를 집중해서 배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라며 소박하게 웃었다.

물론 만화제작작업장 식구들이 일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을 의뢰하는 쪽에서 만화에 대한 애정이나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신체적 장애를 염두에 두고 ‘일을 잘 해 낼 수 있을까’우려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낄 때, 지속적인 일감 확보에 대한 부담을 느낄 때, 자신의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힘들 때, 그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의 희열과는 또 다른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서간 이들이 드물어 길이 뚜렷이 나 있지 않은 까닭에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같은 크기의 두려움을 마음에 품은 만화기능훈련교실과 만화제작작업장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가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이후에 걸어 갈 후배들의 모습을 언뜻 떠올려 본다. 취재가 끝나고 나오다가 마주친 복지관 뜰에 있는 탐스러운 열매를 품은 감나무처럼, 만화에 대한 이들의 애정과 노력이 소중한 결실을 맺기 바라는 마음이다.


글·사진 이수지 기자(soo3881@naver.com)


 

작성자이수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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