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만족하는 자원활동, 유료도우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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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계에서 장애우의 자립생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중증장애우가 가족의 보호를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을 말하는 자립생활은 그러나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처럼 복지가 취약한 나라에서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족하지만 장애우의 자립생활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하는 제도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유료도우미 제도다. 장애우가 자원활동으로 불려지는 서비스 이용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수혜 대상자가 아닌 소비자라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유료도우미 제도는 현 단계에서 장애우의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가장 선진적인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료도우미 제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자원활동에 대해 대가 지급
근이양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는 최영자(55)씨는 지금 혼자 산다. 시인과 구족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지금 9년 동안 생활했던 시설에서 나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조그만 단칸방을 얻어 살고 있다.
중증장애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녀가 그나마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바로 유료도우미가 파견돼 그녀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영자 씨를 돌봐주고 있는 유료도우미는 근처에 살고 있는 비장애우 손난순(41)씨다. 손 씨는 오전 10시쯤 최영자 씨의 집을 찾아 최씨가 세수하고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준다. 그리고 밥을 먹여주고 방 청소를 해 준 다음 오후에는 최씨의 말벗이 되어 준다. 중간중간 최영자 씨의 신변처리를 해 주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손난순 씨는 거의 가족과 다를 바 없이 최영자 씨를 돌봐주는 셈인데, 이렇게 그녀가 최영자 씨를 돌봐주고 받는 대가는 한 시간에 3천5백원이다. 물론 손난순 씨가 순수한 자원활동으로 최영자 씨를 돌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속성을 따져봤을 때 손 씨가 자원활동만으로 거의 매일 최영자 씨 집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손 씨의 보살핌을 받는 최영자 씨 입장에서도 지금은 대가를 주기 때문에 손 씨가 오기로 약속한 시간을 넘기면 독촉전화를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제공하는 아무런 대가가 없다면 최 씨가 독촉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유료 도우미 제도는 서비스를 받는 장애우 당사자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우미 모두를 만족시키고 있다.
내친김에 또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부산시 금정구 부곡동에 사는 척수장애우 김현익 씨(41). 그는 유료도우미 제도를 활용해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다. 김현익 씨는 교통사고로 하반신마비의 장애를 갖게 됐고, 그 여파로 아내와 이혼하고 지금은 혼자 고등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키우며 살고 있다. 근처에 사는 어머니가 생활을 돌봐주지만 연로하고 지병이 있어서 큰 도움이 못 되고 있다.
이런 김현익 씨에게 유료도우미가 파견된 것은 올해 4월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홍정흠 씨가 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유료도우미가 파견되면서 김현익 씨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예전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외출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김 씨는 요즘 유료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부산시 명장동에 있는 부산척수장애인협회에 출근해 일을 보고 있다.
유료도우미 홍 씨는 김 씨의 외출을 돕는 것 뿐 아니라 김 씨의 집안 일도 맡아 해 주고 있다. 또 아이들 밥도 차려 주고 연로한 김 씨의 어머니 말벗도 되어 준다.
“유료도우미가 생기면서 제 생활이 많이 달라졌어요. 우선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저 혼자 신경을 써야 했는데 지금은 도우미가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니까 마음이 많이 안정이 되고, 면도나 머리 감는 것, 양치질까지 도와주니까 사는 게 정말 편해졌지요.”
가정도우미보다 유료도우미 선호
이렇게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유료도우미 제도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가족지원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2000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실시하고 있는 장애우 복지 프로그램이다. 현재 서울·경기 15가정, 부산 10가정에 유료도우미가 파견돼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유료도우미가 뭔지 설명해 보면, 이 제도는 기존의 자원활동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자원활동 제도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유료도우미가 장애우와 그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시간에 장애우 가정에 파견돼, 가사, 외출이나 출퇴근, 그리고 운동 등을 도와주는 제도이다. 즉 쉽게 말해서 장애우와 그 가족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를 도우미가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제도인 것이다.
이 제도의 장점은 무엇보다 장애우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도우미에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무료 자원활동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서비스의 지속성과 책임성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게 됐다.
또 장애우 입장에서는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떳떳하게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취지가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다 보니 이 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우들의 만족도는 무척 높은 편이다. 가족지원센터에서 유료도우미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지민희 팀장의 말을 들어보자.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우 가정 중에서 유료도우미 덕분에 경제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도우미가 가서 장애우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에 가족이 경제 활동을 하게 돼서 생활 형편이 좋아졌다고 하고, 또 도우미가 있어 장애우가 직장에 다닐 수도 있고, 외출도 식구들 도움 받지 않고 할 수 있어서 이 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우들은 모두 만족해하세요.”
그런데 가족지원센터에서 하고 있는 유료도우미 프로그램이 민간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인 반면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유료도우미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서울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가정도우미 파견사업이다. 현재 서울시는 저소득층 가정 중 독거 노인과 중증장애우 가정에 유료 가정도우미를 파견해 가사 일을 도와주고 있다. 이 가정도우미와 유료도우미가 다른 점은 가정도우미의 경우는 한 도우미가 하루에 대여섯 가정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장애우들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모두 들어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정도우미는 특성상 장애우들이 필요로 하는 시간보다는 도우미가 방문하기 편한 시간에 장애우 가정을 방문하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도 가사 일에 한정돼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정도우미가 유료도우미와 다른 점은 가정도우미는 하루에 여덟 시간을 꼬박 근무해야 한다. 그래서 자원활동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도우미가 직업인 반면에 유료도우미는 아직까지는 자원활동 개념의 울타리 안에 있다. 또 유료도우미는 가정도우미와 달리 여러 가정이 아니라 한 가정이나 많아야 두 가정을 선택해 장애우에게 일대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우들은 가정도우미 보다는 유료도우미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구체적으로 유료도우미 프로그램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현재 서울 경기의 경우 열 명의 비장애우가 유료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서비스를 받는 장애우 가정은 15 가정인데 도우미가 10명밖에 안 되는 것은 도우미 수입과 관련이 있다. 현재 장애우들은 한 달 50시간을 기준으로 유료도우미 서비스를 받고 있다. 앞에서 예를 든 최영자 씨의 경우는 한 달 100시간을 사용하고 있지만 예외를 적용 받는 장애우는 한 두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장애우들은 모두 한 달에 50시간 한도에서 유료도우미를 부를 수 있다.
그러면 이런 계산이 나온다. 한 명의 유료도우미가 한 장애우에게 50시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가정하고 유료도우미가 받는 대가는 1시간 3천5백원 곱하기 50시간 즉 17만5천원이다.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치고는 너무 적은 대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이 많은 유료도우미는 두 가정을 선택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봤자 한 달 35만원인데, 유료도우미가 아직까지는 자원활동 개념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복지 프로그램으로 실시해야
“지금 유료도우미를 하겠다고 대기하고 있는 비장애우가 스무 명 정도 돼요. 수요와 공급이 잘 안 맞는 게 이 프로그램의 어려움이죠. 예를 들어 유료도우미를 원하는 장애우는 남성 장애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도우미를 하겠다는 분들은 여성들이 더 많거든요.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 도우미는 남성 장애우 가정에 가기 싫어해요. 그리고 지역도 맞아야 하는데, 장애우 가정과 유료도우미가 사는 곳이 가까워야 장애우에게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장애우 가정과 도우미가 사는 곳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연결해 주는 것이 힘들어요.”
지민희 팀장의 말이다.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유료도우미 제도를 실시하면서 원래 취지는 서비스를 받는 장애우가 직접 도우미에게 돈을 지급함으로써 일종의 고용 관계 유지를 통해 장애우가 유료도우미로부터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장애우들은 도우미들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지 못하고 대신 이용 확인서 성격을 띤 쿠폰을 지급하고 있다. 원래 취지가 반감된 셈인데, 그렇게 된 이유는 서비스 이용 장애우들이 대부분 혼자 사는 경우가 많고, 중증장애 때문에 은행을 가는 것이 어려우며, 결정적으로는 센터에서 장애우들에게 입금할 때 은행 수수료가 붙고, 또 장애우가 도우미에게 입금할 때 붙는 수수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사적으로 도우미에게 돈을 지급하면 근거가 남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단다.
또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우들이 대부분 지체장애우에 편중된 것도 이 프로그램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가족지원 센터에서는 현재 정신지체 장애우 한 가정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우뿐만 아니라 가족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부모 대신 도우미들이 정신지체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수요는 많지만 기금이 제한돼 있어 현재 정신지체인 가정에 유료도우미를 파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료도우미 파견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한계는 이 프로그램이 민간 지원 사업이기 때문에 시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길어야 내년 말까지만 공동모금회의 기금이 지원된다.
그 이후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가족지원센터에 따르면 현재 생각하고 있는 대책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우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과 정부나 지자체에서 사업비를 대주는 방안, 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단다. 하지만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우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은 이용 장애우들 대부분이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저소득층이다 보니 크게 현실성이 없다. 그렇다고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장애우만 이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하면 이 제도 시행의 취지에 맞지 않아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안은 정부나 지자체가 장애우 복지 정책으로 유료도우미 프로그램을 받아 실시하는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전망이 그렇게 밝지 않다는 것이 지민희 팀장의 말이다.
또 하나 자원활동에 대한 토대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우리 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이 제도의 도입이 너무 이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제도 시행으로 아직까지 저변이 확대되지 않은 무보수 자원활동자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몇 가지 어려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료도우미 제도는 장애우 자립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당사자들인 장애우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장애우들과 유료도우미의 목소리를 더 들어본다.
“도우미가 있어서 병원도 함께 가고 이발소나 산책도 갈 수 있게 되어서 좋아요. 우리 가족들도 나가 있어도 도우미가 있으니까 안심이 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을 해요. 저처럼 장애가 심하면 장애우를 수발하느라 다른 가족들이 묶여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도우미가 오는 바람에 처음으로 작은아들 집에 다녀오셨어요. 그리고 도우미는 가족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전에는 제 아내가 저를 수발하느라 파트타임으로밖에 일을 하지 못했는데 도우미가 오고 나서부터는 오전 9시에 나가서 저녁 9시까지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이 제도 저 같은 중증장애우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무엇보다 좋지요. 그리고 제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우미가 도맡아서 해 주니까 고맙지요. 특히 신변처리는 친한 사이가 아니면 부탁하기 어렵잖아요. 도우미가 아는 사람이니까 믿고 부탁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시설에서 나올 때는 이런 몸으로 어떻게 살까 눈앞이 캄캄했는데, 지금은 불편함은 없어요.”
“저도 사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도우미 활동을 하면서부터 장애우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저도 많은 도움을 받으니까 좋아요. 바라기는 지금 한 시간에 3천5백원인 이용료를 올리기보다는 장애우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요. 도우미를 이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장애우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도우미도 경제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되니까 서로가 좋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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