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에겐 대한민국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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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9일 오전 7시 경 대구시 중구 동인초등학교 뒷편 옥수수 밭에서 쓰러져 있던 심의웅 군을 이 학교 안아무개 교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심군은 코피를 흘린 채 쪼그려 앉은 자세로 쓰러져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입 안에는 먹다 만 날 옥수수가 가득차 있었다.
심군의 사체를 검안한 의사는 ‘영양실조 및 비출혈로 인한 심부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북대학교 병원 법의학과에서 부검한 결과 두부외상 및 경막하출혈로 사망원인이 밝혀지면서 심군의 사체가 발견된 동인초등학교 인근의 불량배들을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벌인 결과 5명의 불량 소년들의 집단폭행에 의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가정이 파괴된 이후 정신지체장애 소년이 8개월 동안 대구시내를 헤매며 구걸 등으로 끼니를 이어오다 비참하게 숨을 거두게 될 때까지 우리 사회가 너무도 무심하고 비정했다는 것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무방비상태로 방치된 채 어렵게 생명을 연명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어린 소년의 삶의 행로를 따라가 보았다.
생계보조금도 가출한 어머니 계좌로, 먹을 것 없어 앵벌이하며 생계 연명
올해 15세 된 심의웅 군은 지능지수 74의 정신지체 경계급으로 학습장애가 있었다. 88년 부모가 이혼하고 96년에는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현재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해왔는데 2년 전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부터는 거의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파괴된 채 혼자 방치되다시피 했다.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한다는 구실로 집을 떠나 사실상 다른 남자와 살고 있으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와 심군이 한 달간 외상으로 먹은 식료품값을 갚아 주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학습부진을 이유로 특수학교로 전학할 것을 여러 번 강요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그대로 학교에 다니다가 결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기결석으로 중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학교라는 울타리에서도 떠나고 만다.
그나마 가끔씩 연락을 해오던 어머니가 최근 불어난 카드 빚에 쫓기기 시작하면서 올해 초 부터는 아예 연락이 끊겼고 매달 지급되는 생계보조금마저 가출한 어머니의 계좌로 입금돼 최소한의 먹거리도 마련할 수 없게 되자 수돗물로 허기를 때우며 앵벌이 생활로 고단한 삶을 버텨 왔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심군의 집이 불량배들의 아지트가 되면서 심군은 쉴 곳마저도 불량배들에게 빼앗긴 채 쫓겨나 거리를 배회했다.
시신을 인수했다는 심군의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심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으나 평소 앵벌이 일을 하던 심군때문에 경찰서에서 걸핏하면 연락이 와 그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하다며 심군 이야기라면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역사회와 국가로부터도 버림받은 어린 생명
그렇다면 심군이 이렇게 무방비로 사회에 방치된 동안 우리의 복지체계와 이웃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심군의 가정을 담당했던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는 “심군은 우선 장애우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장애우로서의 어떤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만난 바로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의사표현이 분명하고 말도 잘하는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4월에 이 동사무소로 와서 심군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된 것이 5월 말경입니다. 그 후 여러 번 심군의 집을 방문했지만 항상 밖으로 나돌고 있어 만날 수 가 없더군요.
그래서 문에 돌아오면 동사무소로 찾아와 달라고 메모를 남겼더니 어느 날 찾아 왔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시설에 입소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는데 강력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그때 억지로라도 시설에 보냈으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후회도 됩니다. 그러나 동사무소 안에 있는 3명의 사회복지사들이 1500세대를 관리하고 있으니 적절한 관심이나 조치가 제때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점도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초등학교시절 1년 6개월 동안 심군의 심리치료를 맡았었던 지역사회복지관 심리치료사 역시 심군의 사망소식을 듣고 비통해했다.
“의웅이가 처음 우리 복지관 심리치료실에 온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할머니가 의웅이를 데리고 오셨더라구요. 지능지수 검사를 해본 결과 아이큐가 74로 정신지체 경계급이긴 했지만 종합적인 행동으로 평가해 볼 때 정신지체장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됐어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고 공상을 많이 하긴 했어요.
특히 부모의 이혼과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탓으로 남녀 성역할에 대한 혼돈이 많았던 것 같고,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과는 달리 돌출된 행동으로 어떻게든 주변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하곤 했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계실 땐 복지관에도 꼬박꼬박 오고 이야기도 잘하고 그랬는데 중학교 입학하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보질 못했어요. 아마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면 별 문제없이 잘 살았을 아이였을덴데… ”라며 안타까워 했다.
기자는 그곳에서 심군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렸던 그림 몇 장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그림에는 유난히 아빠의 모습을 크게 그려 놓아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갈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고 여러 그림에 뾰족한 도구들을 그려 넣어 마음속에 내재된 공격성이 표현되어 있었다.
심군이 살던 아파트에서 심군을 안다는 몇 명의 이웃주민들을 만났다. 심군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외상으로 간식거리를 먹었다는 식료품가게 아주머니는 “올해 초만 해도 의웅이가 엄마와 연락을 했어요. 우리 집에서 이것저것 외상으로 가져다 먹으면 엄마가 한달에 한번씩 가게에 와서 외상값을 갚아 주고 가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3월 이후로는 통 소식이 없더라구요.
아파트 사람들이 의웅이네 집에 불량배들이 들끓으니까 경찰에 신고했다고 듣긴 했는데 그 후로는 아이가 보이질 않더라구요.”라고 말하면서 심군이 평소에도 자주 수돗물로 배를 채웠으며 TV에 나오는 북한 아이들처럼 몸이 왜소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들은 심군이 역 대합실이나 은행 현금인출기 안에서 새우잠을 잤으며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걸로 배를 채우고 이마저도 어려우면 내다버린 음식까지도 먹었다고도 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심군의 친구가 되어준 또래는 없었다. 심군과 1년동안 상인중학교에 함께 다녔다는 김아무개군은 “의웅이가 엄마가 용돈을 주고 갔다면서 가끔 먹을 것을 사주었어요. 학교를 그만둔 후엔 가끔씩 어디를 다녀오는 것 같았는데 거짓말같긴 하지만 걸어서 부산에 갔다왔다는 얘기도 들었고, 가끔씩 엄마를 만난다면서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곤 했어요. 아이들한테는 항상 놀림을 받았죠. 다들 ‘이상한 아이, 정신나간 아이, 모자란 놈’이라고 부르면서 같이 놀지 않았거든요”라고 말해 심군이 또래 아이들 속에서도 소외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냉대 굶주림 없는 하늘나라에선 편히 쉬길
그렇게 수돗물로 허기를 때우며 고단한 생을 버텨오던 심군의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약자에게 너무나 함부로이고 가혹하기만 한 우리 사회의 폭력 속에 방치되었다.
지난 7월 8일 오후 다섯시쯤 소년은 허기진 배를 끌고 배회하다 동인동 한 오락실 앞 시내버스 승강장 벤치에 누운 채 잠에 들었다. 마침 근처를 서성이던 윤모 군 등 불량배 5명이 보기가 싫다는 이유로 심의웅 군을 깨웠고 “담배가 있느냐”고 묻고는 담배가 없다고 대답하자 ‘담배 피우러 가자’면서 동인초등학교 뒷편으로 끌고 가 빗자루로 때리고, 발로 쓰러뜨린 후 짓밟다가 심군이 일어서서 도망치려고 하자 따라가 주먹으로 마구 때려 정신을 잃게 했다. 뇌출혈을 일으킨 채 버려져 있던 소년은 극심한 허기를 느꼈고 무의식적으로 잡히는 대로 생옥수수를 입에 털어 넣다가 그 상태로 싸늘히 식어갔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정신지체소년의 죽음으로 덮어 둘 문제가 아니다. 한창 가정 속에서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자라야 할 나이에 그 누구의 보호도 없는 무방비 상태로 홀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나약하기만 한 심군이 동년배의 불량배들에게 조차 함부로 화풀이해도 되는 단지 무생물적인 존재에 불과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 동안 힘없는 사람들에게 함부로였던 모습을 어린 청소년들이 무의식중에 학습한 결과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책임을 지엄하게 물어야 한다. 가정에서 버려진 정신지체소년이 허기진 배를 움퀴어 쥐고 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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