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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님비라뇨?…도와야죠!”

지역사회 장애우시설 모델로 주목받는 대전 모두사랑장애우야간학교 오용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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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의 교육전 회복을 위해 장애우야간학교가 문을 열었다. 지난 6월 18일 대전시 서구 월평동 성민빌딩 3층에 문을 연 모두사랑장애우야간학교(교장 오용균)가 바로 그곳으로 성인 장애우들에게 배움을 위한 기회의 공간이 되고 있다.

모두사랑장애우야간학교는 대전 최초의 장애우야간학교라는 점에서도 주변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학교에 인근 주민들과 각 기관들의 온정이 이어지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우시설이 자신의 집 근처에 들어서는 것에 인심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월평동 일대만큼은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란 말은 없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전국적으로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님비현상을 무색하게 하는 이웃사랑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우시설의 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자신의 소유를 아까워하지 않고 외려 남에게 베푸는 것을 행복해하는 교사들이나 이 곳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이 사람들은 분명 오장칠보를 지닌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놀부의 ‘심술보’가 아닌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같은 ‘사랑보’ 말이다. 시민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는 모두사랑장애우야간학교의 모습과 끊이지 않는 이웃들의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장애우 교육권 회복 위해 장애우가 설립한 야학

들어서자마자 왁자한 학생들의 소란스러움이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다. 비좁은 공간에 따로 교무실이나 교장실이 없고 그저 선생님과 학생들이 사무실과 교실을 오가며 수업 준비하랴 장난치랴 바쁘다.

모두사랑장애우야간학교(이하 모두사랑야학)는 지난해 10월 장애우권익보호단체인 한빛다사랑나눔회(회장 오용균)가 지역 내 순수 장애우전문야학 설립을 추진키로 결정한 이후, 대전공동모금회, 지역기업인 계룡건설과 해찬들 등의 지원과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설립된 교육기회를 놓친 장애우를 위한 순수 장애우전문야학이다.

지난 6월 18일 개교한 ‘모두사랑야학’은 현재 초등, 중등, 고등, 특수교육 4개 반에 30여 명의 학생이 재학중인데 검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비장애우들의 그것보다 몇 배의 노력과 고통을 참아내는 배움터로 자리하고 있다.

이 야학을 탄생시킨 오용균 교장(56, 서구 삼천동) 역시 하반신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1급 장애우다. 올해로 장애우 사랑운동펴기 8년째인 오 교장은 이전에는 공군부대를 호령하는 군인이었다. 그는 6년 전 뇌수막증으로 수술을 받고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다. 공군비행단 의전장교(중령)였던 그에게도 장애우가 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일이 단 몇 달만에 나타났고 그는 한참 왕성하게 일하고 인정받을 나이인 마흔 여섯에 뇌수술을 받고 장애우가 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92년 1월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걸어서 수술실에 들어가서 휠체어 타고 나왔어요. 예편심사를 위해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젊은 나이에 장애우가 된 병사들을 많이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내 짐도 무거웠지만 그들에게는 더더욱 대책이 없었습니다. 저렇게 폐인이 되겠구나 싶더군요. 그래도 나에게는 가족이 있고 자녀가 있고 그간 살아온 40여 년의 인생이 있었습니다.

젊은 장병들은 정말 낙심해 있었고 마음의 고통이 너무 심해 장래같은 건 생각할 꿈도 꾸지 못하더라구요. 게다가 너나할 것 없이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구요. 그런 생각들을 몰아내고 사회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애우가 되고 나서 오 교장은 맥없이 무시당하는 자신을 수없이 발견했다. 자신의 인격에는 변화가 하나도 없는데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돈이 없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언제나 자신의 앉은 키 만큼만 대접해 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기 권익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오 교장은 장애우로 그가 살아가면서 할 일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94년 10월 대전 법동 중앙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던 장애우들과 물리치료사와 함께 한빛다사랑나눔회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어려운 중증장애우들을 돕거나 이들 가정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단체를 통해 장애우를 대하다 보니 저학력이라는 열등의식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장애우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됐다.

“몇 년 전 30대 중반의 장애우가 글을 몰라 운전면허 취득을 못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형식적인 장애우 교육행정이 안타까웠습니다. 장애우가 겪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저 학력에 따른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겁니다. 교육소외에 따른 이중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장애우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장애우 스스로가 수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과감한 자기만의 가치관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라고 야학설립 취지를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학교 교실

모두사랑야학 설립이 처음부터 수월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였다.

지난 해 10월부터 자료수집과 관계기관간의 협력관계 구축 등을 거쳐 대전공동모금회의 기금 출연과 지역기업인 계룡건설과 해찬들로부터 모두 60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 받고, 이와 동시에 오 교장의 개인 시집 판매 및 자선음악회를 통해 학교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모았지만 막상 학교를 세우려 나서보니 이웃들의 거부감이 너무 깊어 새삼 절망을 곱씹어야 했다. 평소 장애우에게 관심을 보여 온 기업과 사회단체들을 찾아다니며 교실 임대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고, 어렵게 임대계약을 한 건물에서도 계약 하루만에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해 온 것이다.

이미 학생들과 교사, 자원활동자까지 다 모집된 상태였는데 개교가 늦어지자 학생들과 교사 모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금의 건물을 새로 계약해서 개교할 수 있긴 했지만 오 교장은 그 상황을 그저 묵인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임대 계약을 해약하면서 두 가지 얘기를 했습니다. 첫째는 임대계약 위반에 따른 보상금 지급, 두 번째는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우는 정치, 경제, 문화 등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 법률에 의한 실정법 위반도 책임지겠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위약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장애우를 보는 차별적이고 잘못된 시각에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소송중입니다. 얼마 전에는 합의보자고 연락이 왔는데 내 개인적인 손해 때문이 아니라 450만 장애우들을 위해서 당신들을 처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개교 후에 학교 주변 이웃들의 온정이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신문에 난 것을 스크랩해서 그 분한테 보냈어요.”

이런저런 이유 끝에 학교는 꾸려졌지만 학교 운영 역시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재정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학생 대부분이 중증장애우들이라 학교까지 오려면 대부분 차량봉사하는 분들과 연결을 해야 하는데 이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교감선생님은 오후에 학교에 나오자마자 매일같이 학생들과 차량자원활동자들을 연결하기 위해 오후 내내 전화를 붙들고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오 교장은 “지금은 봉고차로 학생들을 데려와 수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데려다 주는 자원활동자가 있긴 해도 차량 자원활동자가 늘어나면 더 쉽고 빠르게 장애우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으니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기대한다”면서 이와 더불어 특수교육을 전담할 특수교사 및 현직교사들의 자원활동, 차량자원활동자가 부족해 시민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역주민과 상인들 속속 “후원할 터”

모두사랑야학 역시 처음 개교했을 땐 장애우시설이 동네에 입주하는 데 대해 주민들이 반발하는 님비현상을 무척 우려했었다. 하지만 당초 우려와 달리 이웃에서 각종 후원이 쏟아지고 있다.

제일 처음 학교에 후원의 뜻을 밝혀온 곳은 학교 주변에서 영업중인 포장마차 상인들이었다.

개교한지 3주쯤 지난 7월 초 인근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병무 씨가 사무실로 찾아와 봉투 20만원을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그가 들고 온 돈 봉투는 다름아닌 학교 인근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들이 어렵게 모은 귀한 사랑이 담긴 돈이었다. 게다가 매월 후원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이모집이라는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박경수 사장은 “남의 땅에서 불법장사를 하는 우리 역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라 넉넉하지 못해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가번영회장님이 작은 정성이라도 모아 우리 지역의 장애우학교 지원하자는 데 모두들 찬성했고, 지금은 열한집이 한 달에 한 번씩 회비를 걷어 학교에 정성을 전달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학교 건물 1층에 세들어 있는 대성생고기타운이라는 식당에서도 학교의 어려운 사정을 전해 듣고는 학생과 교사들에겐 식비를 30% 할인해 주겠다고 나섰다.

대성생고기타운 임 사장은 늦은 시간 선생님들이 가끔 식사를 하곤 하는데 알고 보니 모두 자원활동을 하는 분들이라 놀랐다며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 나와 장애우들을 가르친다니 너무 훌륭한 분들 같아 식사라도 부담없이 하실 수 있게 해 드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임 사장은 이 가게를 열기 전 중화요리집을 할 때도 한 달에 두 번씩 시간을 내서 고아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을 해주는 일을 하는 등 언제나 자신의 가진 것을 이웃들과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웃에 장애우학교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장애우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나이만 하더라도 집에 장애우가 있으면 무조건 숨기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분들은 아마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나이든 학생들이 이렇게 열심히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는 걸 보면 마음이 찡해요. 길에서 만나면 그저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이니까 휠체어도 밀어드리고 차에서 내릴 때 도와드리기도 하는데 그렇게 부딪히다 보면 다를 거 하나 없는 그저 평범한 이웃임을 새삼 느낍니다. 다른 지역에서 장애우시설이 생긴다고 하면 왜들 그렇게 반대하고 나서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같이 험한 세상에 사람이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요. 정부에서도 못하는 일을 한 개인이 나서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건 당연한 거죠.”라며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방송이나 잡지에서 자꾸 찾아와 쑥스럽다고 했다.

이들에 뒤질세라 학교 건물 뒤편의 푸른 주차장에서는 학교 교사와 차량 봉사를 하는 분들에게 무료주차 스티커를 나누어 주어 우선 주차하게 해 주차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장애우야학을 개교했는데 교사들이 주차할 곳이 없어서 주변을 돌다가 수업에 늦기도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사실 이 근처는 경마장과 유흥시설이 많아서 저녁시간이면 주차장이 만차될 정도라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장애우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 오시는 선생님들이 주차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면 되겠나 싶어서 학교에 관계된 분들이라면 우선 주차하실 수 있도록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름을 묻는 기자에게 사람살이라는 게 원래 혼자 살 수 없어 되어 있어 서로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데 이름까지 알아 무엇하겠냐고 사람좋게 웃어보였다.

대전보훈병원 의료진, 학생들에게 이동진료 실시해

학교와 학생들에게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비단 이웃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8일에는 대전보훈병원의 의료진들이 학교를 찾아 병원에 내원하기 힘든 학생들에게 이동진료를 실시했다. 이 날 이동진료에는 홍인규 진료부장을 비롯하여 내과과장, 흉부외과과장, 물리치료실장, 간호사 등 6명의 의료진이 동참했다.

대전보훈병원 김엽 원장은 “오 교장은 국가유공자로 오래 전부터 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오신 분입니다. 특히 장애우주차시설이나 화장실, 턱없애기, 공중전화 높이 낮추기 등 병원의 장애우편의시설을 개선하는데 많은 아이디어를 주신 고마운 분이에요.”라면서 “국가유공자로 장애우가 되신 분들은 그래도 국가로부터 진료혜택이나 연금들의 혜택을 받지만 일반장애를 가지고 있는 환우들은 국가에서 받는 혜택이 미약하거든요. 그래서 이동의 어려움으로 병원에 오시기 힘들었거나 사회적 편견의 시각 때문에 병원에 오시기 꺼려하셨던 분들에게 이동진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진료는 간단한 건강검진에 그친 것이 아니라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수술을 통해서 장애의 정도를 조금 완화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경우 무료수술을 할 수 있도록 장애정도와 특성을 체크하는 일도 병행되었다. 또한 그간 이동의 어려움으로 병원진료를 받지 못해 건강이 악화된 두 명의 학생을 병원으로 내원하여 간기능검사와 위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사실 보훈병원에 있는 의사들은 일상적으로 장애우들을 만나고 치료하는 분들이니까 그 분들이 어떤 부분의 진료가 필요한 지 좀더 빨리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이번 진료를 계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양적인 진료보다는 질적인 의료혜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어요. 진료에 참가하신 선생님들이 하는 얘기가 앞으로는 안과와 치과 의료진도 필요하고, 수술을 통해서 장애정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학생들 가운데 지속적인 진료나 수술 등을 통해 장애정도를 한 단계라도 낮출 수 있다면 기존의 우리 병원 환우들에게 피해가 미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용한 의료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수술에 드는 예산 부분은 병원 시설을 이용하면 되고 전문의 자원이 있고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약품이나 그런 것들은 쓰고 나서 보고하면 되거든요. 앞으로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지속성과 질적인 내실을 기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제 첫발을 내딛었으니까 조금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주세요.”

이날 진료가 끝난 뒤 임상병리실장 김종관 씨는 전 학생과 자원활동 교사 모두가 먹고 남을 정도의 피자 파티를 열었다. 또한 대전보훈병원의 여직원으로 구성된 한빛회에서는 매월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교사들과 학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둠을 몰아내는 배움의 열기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나는 열 살입니다.”

초등부 수업시간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인사다. 현실적으로는 이미 지나버린 먼 옛날이지만 그래도 그 시절 다 하지 못했던 공부를 그 때 마음이 되어서 열심히 해 보자는 의미가 담겨있는 듯도 했다.

초등부는 학교 안에서도 가장 학생이 많아 왁자지껄한 교실이다. 이곳엔 부부 학생도 있다. 이현숙 씨와 엄일섭 씨가 그 주인공인데 한없이 부끄러워하기만 하는 현숙 씨와는 달리 일섭 씨는 “몰랐던 것을 알아 가는 재미와 뿌듯함이 있어 무엇보다 좋아요. 시작할 때는 그저 무언가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공부를 하다보니 욕심이 생겨 이제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항상 욕심이 많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윤성해 씨.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뇌성마비장애우인 성해씨는 연필을 손에 쥘 힘조차 없었다. 입학면접에서 선생님이 “눈으로 보는 학습만 가능할 텐데 어떻게 하려느냐”고 묻자 윤씨는 “선생님이 대신 노트 정리해 주시면 되잖아요?”라고 되물었단다. 그러나 선생님이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자 윤 씨는 눈물겨운 노력을 시작되었다. 우선 책상 모서리마다 테이프를 붙여 종이를 고정시킨 뒤 자기 의지와 따로 움직이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꼭 붙잡아가며 선긋기 연습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뒤 집에 돌아가서도 글씨쓰기 연습으로 밤을 지새기를 나흘. 마침내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게 됐다. 김창순 초등반 담임 교사는 “성해 씨의 노력이 참으로 눈물겨웠다”며 “자신감이야말로 어떤 장애도 이겨내는 힘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께 세 밤만 자면 다시 학교에 오는 거냐고 거듭 묻는 한윤섭 씨. ‘네, 아니오’만 얘기하던 그가 자기 의사 표현을 얘기하게 된 것이 너무 기뻐 선생님은 한윤섭 씨 자랑을 늘어놓는다.
정신지체장애우인 송재영 씨는 얼마 전 개근상을 받고 나서 생전 처음 상을 받은 게 너무 기뻐 먼 곳에 사는 친척들에게 보내겠노라며 교무실에서 상장을 복사해 가기도 했다.

지난 8월 25일에는 학교에 경사스런 소식이 날아왔다. 중등부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은자 씨(45세)가 검정고시에 합격해 개교 이래 검정고시 1호 합격이라는 기쁨을 안겨준 것이다. 앞으로 검정고시 준비와 함께 공인중개사 시험을 병행준비하는 김은자 씨는 공인중개사로 활동하게 되면 그동안 받은 많은 혜택을 다른 학생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는 생가가을 가지고 있다.

1교시 수업이 끝나자 종소리가 울린다. 수업이 끝나도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은 좀처럼 ‘교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교실에서 시작해서 교실에서 끝나자’라는 생각을 가진 선생님들은 밥먹으러 가는 시간이 아까워 식사도 나중으로 미루고, 학생들 역시 잠시의 시간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책상 곁을 떠나지 않는다. 다시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은색의 종이 시간의 의미를 일깨워주지만 이 곳에서의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다. 밤 10시의 어둠은 배움의 열기로 가득한 이들로부터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전문 지식인으로 구성된 교사진

대부분의 야학이 대학생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반해 이 학교의 선생님들은 현직 교사이거나 교수, 연구원, 대학원생, 벤처기업가 등 각 분야의 전문지식인으로 구성돼 있다.

전·현직교사, 학생,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자원활동 교사들과 차량 자원활동자들은 이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들이다. 오 교장은 “학생, 교사, 차량자원활동자의 3박자가 중요한데 지금 차량자원활동자의 문제가 가장 시급한 상황이다. 멀리는 천안, 신탄진에서도 학생들이 오는데 차랑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어려움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원교사로 활동중인 김영호(보문고 교사, 국어 담당) 씨는 한겨레신문에서 학교의 개교 소식을 보고 그 다음날로 부부가 함께 오 교장선생님 댁으로 찾아가 인연을 맺은 경우다.

이미 다니던 교회에서 다섯 쌍의 부부가 매달 마지막주 일요일에 논산 ‘작은자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터였는데 그래도 무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부분을 함께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자원교사 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장애우에 대한 차별의 문제는 온정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편견의 벽이 부서져야 하지요. 모두사랑학교의 교훈은 정의, 사랑, 진실입니다. 이중에 정의가 맨 앞에 있는 것은 정의없는 사랑은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그저 자기만족감으로 흐를 수도 있구요.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건 온정주의가 아닌 정의가 앞서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차량자원활동도 함께 하다 보니 몸으로 부딪히고 개인적인 대화도 많이 하게 돼 학생들과는 이제 조금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학교는 학년제가 아닌 과정제니까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교육,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사회에 낼 수 있는 사람들로 교육하는 것이 제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이렇게 제 계획을 말씀드리는 건 혹시라도 제가 게을러져서 이를 실천하지 않을 때 따끔하게 질책해 달라는 의미에서 입니다.”

김 교사의 얘기는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동안 우리들이 오랫동안 다녔던 학교에서 만났던 권위적인 교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구석 때문이었다.

교사들은 “교장선생님께서 혼자 혼신의 힘으로 시작한 학교지만 발전은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대학원생 및 공무원, 교사들의 자원활동이 상당수 되지만 아직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현직 교사들의 참여가 저조해 함께 동참해 줄 선생님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다.

그 동안 장애우시설은 주민들의 반대 민원 때문에 사실상 들어설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습들과는 너무 다른 대전 모두사랑장애우학교에 넘치는 교사들과 이웃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피곤에 지친 몸을 가눌 수 있게 해 주는 서늘한 산 속의 넉넉한 품처럼 느껴져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훈훈했다.

작성자이나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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