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복지서비스 향상 위해 대체복무제도 도입하자
본문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병역의무제를 실시하는 우리 안보현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문제는 좀처럼 풀기 어려운 숙제다.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에 따라 병역거부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종교 교리를 내세워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다수다.
그런 가운데 신앙에 따른 전과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 관심사다. 현재 징병제 아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남북한을 포함해 48개국이며 징병제는 있으나 민간 분야 대체봉사, 군대 안 비무장 복무를 인정하는 나라는 독일·프랑스 등 30개국이라고 한다.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추세가 늘어나 우리와 같은 분단국인 타이완에서도 지난 해 도입했다. 타이완의 경우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서 사회복지 환경과 서비스의 질적향상을 가져왔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도 이제 사회적 약자인 이들의 문제를 인권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구제하는 한편 이를 통해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을 꾀하는 전향적 모색이 필요한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대체복무제 도입한 타이완
타이완은 2000년 7월부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했다.
“대체복무제는 절대 안 된다.” 1997년 타이완의 국방부장관은 이렇게 단언했다. 하지만 불과 3년 뒤인 2000년 1월 ‘분단국가’인 타이완의 입법원(국회)은 대체복무법안을 통과시켰다. 1987년에 이르러서야 계엄령이 해제되고, 90년대 중반까지 2천여만명의 인구로 남한에 조금 못 미치는 60만명의 병력을 유지할 정도로 타이완은 ‘병영국가’였다. 그리고 여전히 군대 내 자살률이 사회의 3∼5배에 이르고 군 의문사도 발생한다. 그런데도 대체복무제가 시행된 것이다.
96년부터 대체복무제의 입법을 위해 노력해 온 치엔시치에(簡錫皆) 입법위원(국회의원)은 “처음에는 아무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라며 “빠른 도입에 나조차 놀랐다”고 말한다.
2000년 7월부터 시행된 이 법에 의해 타이완 젊은이들은 병역과 공익서비스를 ‘선택’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리고 31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감옥 속에 갇히는 대신 사회 속에서 봉사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논의가 여호와의 증인 문제를 중심으로 촉발된 것에 비해 타이완에서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적 양심범에 관한 논의는 뒤늦게 1999년 10월에 제기되었다. 타이완의 경우 여호와의 증인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복역 중인 사람은 당시 40여 명에 불과했다. 이 제도 도입에서 이론적 기수 역할을 한 치엔시치에 의원은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이었지만, 여호와의 증인 문제 때문에 대체복무제도가 논의된 것은 아니다. 타이완의 경우 보다 포괄적으로 사회복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관심에서 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99년 10월에 열린 공청회에서 이 문제에 관한 심도있는 토론이 이루어졌고, 이에 관계인사들이 국방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방부는 인권존중과 병역의 형평성의 원칙에 따른 제도의 개혁을 약속했다. 또한 우리 나라와는 달리 타이완의 기독교계는 종교적 양심에 따른 대체복무 제도의 도입에 대해 아무런 반대를 표명하지 않았고, 이들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마침내 2000년 1월 15일 입법원은 「병역법 수정안」과 「체대역(대체복무)실시조례」를 통과시켰고, 이 제도는 2000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평탄했던 것만도 아니다. 치엔시치에 의원은 1996년 2월 처음으로 대체복무 제도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기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어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가장 혜택을 보게 될 대학생들 역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타이완대학 학생회 등 주요 대학의 학생회들 역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자 치엔 의원은 학생회와도 접촉하기 힘들어 몇몇 동아리를 찾아다니며 동아리 간부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국방부 역시 치엔 의원 등이 대체복무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자 병력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절대로 도입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대답없는 메아리와 같던 대체복무 제도 도입 운동에 돌파구가 뚫린 것은 1997년 7월 국방부가 「국군정실방안」을 채택하여 군 병력의 감축과 장비의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부터였다.
한편 치엔 의원은 대체복무 제도의 도입과 병행하여 군복무기간의 단축을 추진했다. 군복무기간 단축 문제가 제기되자 젊은이들은 대체복무제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활동과 병행하여 치엔 의원은 사회복지단체를 찾아다니며 이 제도를 도입하면 사회복지시설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배치될 수 있어 사회복지의 질을 급속히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득했다. 사회복지단체들은 처음에는 군인들이 와 봐야 별 도움이 안될 것이라며 시큰둥했다. 그러나 치엔 의원 등이 유럽국가의 예를 들면서 대체복무 제도의 장점을 끈질기게 설명함에 따라 사회복지단체들도 이 제도를 지지하게 되었고, 1998년 8월에는 20여 개 단체가 참가하는 「사회역민간추동연맹」이 결성되었다. 추동연맹은 1999년 2월과 3월에 세 차례 공청회를 열어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 사회복지, 환경, 그리고 원주민 복지 등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널리 선전했다. 처음에 치엔 의원과 민간단체에서 대체복무 제도를 추진할 때의 명칭은 사회역으로 사회복지, 환경보호, 의료, 교육, 외교(해외파견)등 공익적인 요소가 중심이었으나, 정부가 이 제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경찰역(보안경찰, 교통, 순찰, 교정)과 소방역이 포함되어 전체 인원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고 현재는 명칭도 체대역으로 변화되었다.
신체등급은 현역, 체대역, 면제로 나뉘는데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대체복무를 원하는 사람은 체대역을 신청할 수 있다. 복무기한은 현역은 1년 10개월이고 대체복무자 중에서 신체등급상 체대역 판정을 받은 사람의 복무기한은 현역과 같지만 자원에 의해 체대역을 신청한 사람은 4개월이 긴 2년 2개월이다. 이들은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은 후 8주간의 역종별 훈련을 받는다. 종교적 이유로 체대역을 신청한 사람은 4주간의 군사훈련이 면제되는 대신 복무기간이 현역의 1.5배인 2년 9개월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체복무제를 아시아에서 최초로 도입한 국가가 된 타이완은 현재까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이 안보를 위협하거나 군회피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염려와 실현된 현실 사이에는 가끔 거리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도 어쩌면 그런 문제인지 모른다. 정작 문제는 반세기 넘게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아 온 허울뿐인 형평성, 끝내 지우지 못하는 불안감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타이완의 대체복무제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이들에게 치엔 의원은 말한다. “타이완은 40만 병력으로 280만의 중국 군대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중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강요하며 기회만 있으면 타이완에 으름장을 놓지요. 얼마 전 타이완의 국방장관도 중국이 타이완을 점령하는 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인정하더군요. 하지만 무력으로 땅을 점령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점령할 수는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비폭력적인 대체복무를 통해 어려운 사람들의 삶과 사회에 대한 애정, 세계평화를 배우게 됩니다. 대체복무가 사회복지와 평화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거지요. 한국도 병력 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대체복무 도입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대체복무제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는 사회복지서비스 향상
우리 나라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 논의가 전개되면서 지난 3월과 5월에는 이 문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어 토론회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타이완의 대체복무제도를 돌아보는 참관단이 꾸려져 7월 8일 타이완으로 떠났다.
참관단 자격으로 타이완을 방문하여 이 제도를 직접 돌아보고 온 성공회대학 한홍구 교수는 타이완에서 대체복무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나타난 성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의 확대를 들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입법과정에서 경찰역, 소방역 등에 대체복무자들의 절반 가량이 배정되어 사회복지의 확대가 애초 의도했던 만큼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수천 명의 인원이 사회복지시설, 교육기관, 의료시설, 환경보호기관 등에 배치되어 활동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관단이 방문한 기관 중에서 타이난성 노인의 집의 경우, 원장은 지난 몇년 간 자신이 바라던 인력충원이 대체복무자 10여 명이 배정됨으로써 한꺼번에 해결되었다고 기뻐했어요.
타이완에서 앞으로 대체복무제도가 확대될 경우 이들을 독거노인이나 장애우들의 가정이나 생활 터전에 배치하여 이들의 개인 도우미로 활동하게 하는 등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나라 역시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될 경우 장애우를 비롯한 사회 소외계층들에게 주어지는 서비스의 질이 지금보다 훨씬 향상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긍정적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 시설에서도 대체복무자들의 배정을 이유로 일반직을 감원하려는 경향이 일부 나타난 것이나 사회복지 분야에 대체복무자들이 대거 투입될 경우 대체복무자들에게 지급되는 봉급은 현재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현격히 낮기 때문에 임금 하락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타이완에는 현재 1300∼1400여 개의 사회복지 시설이 있는데, 대체복무자들이 일하고 있는 곳은 국공립 기관 100여 개 소뿐이다. 앞으로 대체복무를 계획대로 민간의 사회복지 시설이나 개인에게까지 확대할 것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는 실정이다.
대체복무제 법안의 초안 완성됐지만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반발로 무산
지난 7월 20일, 국회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대성명에 부딪혀 연기되었다.
입법을 추진해 오던 장영달 의원과 천정배 의원은 7월 2일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공동으로 발표한 입장글에서 “대체복무제 논의가 교리를 둘러싼 종교간의 갈등과 분쟁의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교계의 자율적 논의와 연구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청회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빠르게 진전되던 대체복무제 도입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한기총은 성명을 통해 “여호와의 증인이 집총을 거부하고 병역을 기피하는 이유는 국가와 정부를 사탄의 조직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대체복무제 도입은 그들을 위한 특혜입법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호와의 증인의 수혈거부 등을 언급한 뒤 “종교의 자유와 소수의 인권보장을 내세워 여호와의 증인이 끼치는 폐해는 간과하고 마치 양심적인 종교인으로 포장하고 미화하는 발상은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기총이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나섰지만, 기독교 내 의견이 ‘반대’로만 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한기총과 KNCC 등 여러 기독교 사이트에 “종교문제가 아니라 인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기독교 신자들의 의견도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기총의 반대성명이 나오기 전인 지난 3월 15일 부산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인권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과 같은 존귀한 인권’이라며 대체복무제에 대한 지지입장을 밝하기도 했다. 최근 기독교 내부의 반대입장 표명에 대해 부산 기윤실쪽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인이 아니라 기독교인 입장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일부 기독교인의 풍토가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렇게 입법 추진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자 시민사회단체가 적극 입법화 운동에 나서고 있다.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활동을 벌여 온 시민사회단체와 변호인단은 기독교계 원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각계의 견해를 모아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제로 한 토론회 개최를 결정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운동을 펼쳐 온 평화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등 시민단체들은 “일부 기독교계의 반발 탓에 공청회가 연기된 것은 심히 유감”이라며 “시민사회의 여론 형성을 통해 다시 입법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연합(UN) 인권위원회는 97년 결의를 통해 “정치적 이유든 어떤 종교이든 종교 내 어떤 교파이든 신념의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 청년들은 우선 현역과 대체역을 선택할 수 있고, 대체역 중에서도 자신의 적성, 전문성, 능력을 고려하여 역종을 선택할 수 있다. 청년들은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일하게 됨으로 현역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던 상황에 비해 병역의 의무에 보다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 제도의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공익근무나 사회봉사 등 대체복무를 병역복무 기간보다 길게 하고 강도를 높인다든지 하는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병역 복무자와의 형평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들을 보호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글/ 이나라 기자(n29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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