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산책로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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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서울에서 시각장애우를 빈번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어딜까? 시각장애우 복지관이라고 대답하면 틀린 답이다. 정답은 시각장애우를 만나려면 남산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시각장애우들은 지금 이 순간 남산에 있는 것일까? 답은 남산 중턱에 조성돼 있는 왕복 7킬로미터 산책로다. 이 산책로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유일한 시각장애우 산책로다. 무엇보다 차가 다니지 않아 시각장애우들이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남산 산책로, 산책로를 찾아 장애우들을 만났다.
시각장애우 밀집지역 회현동
남산에는 산책로만 있는 게 아니다. 보기 힘든 시각장애우 교회도 두 개나 있다. 중턱에 있는 한국맹인교회와 남산교회가 바로 그 교회인데 꽤 많은 시각장애우 신도들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남산 바로 아래 회현동에는 낡은 서민아파트인 시범아파트가 있다. 이 아파트에도 시각장애우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전체 350가구 가운데 20여 가구가 시각장애우 가구이라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서울역 앞 그리고 남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회현동과 양동에는 유독 시각장애우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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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로에서만난사람들 |
지금은 이사가고 없지만 회현동에 안마사협회가 있었다. 강조하면 회현동에 안마사협회가 있었기 때문에 시각장애우들이 회현동으로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사연을 알아보면, 70년에 생겨서 90년대에 역삼동으로 이사가기까지 30여년 가까이 회현동에 자리잡고 있던 안마사협회는 단순 협회가 아니었다. 시각장애우들에게 안마사 자격증을 내주는 교육기관 역할을 수행했다. 맹학교를 나오지 않은 시각장애우가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안마사협회에서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지만이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안마사로 일하거나 혹은 안마시술소를 차려 생업을 이을 수 있다.
좀 더 풀어보면,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안마사는 70년대에 시각장애우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었다. 그래서 시각장애우들은 직업을 갖기 위해 안마사 협회를 찾았고,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없었기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협회가 있던 회현동 인근에 하나 둘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 회현동에 사는 대부분의 장애우들은 그 때 회현동에 발을 들여 논 장애우들이다. 그래서인지 거의가 장년층이다. 청년 시각장애우들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든 직업을 갖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산 부근으로 몰려들었던 시각장애우들, 그들이 지금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남산 산책로를 주로 찾고 있다.
운동하기 위해 눌러 사는 장애우들 많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바람이 불면 꽃비가 내렸던 4월 초 어느 날 산책로에서 시각장애우인 정해원 어르신을 만났다. 지금 안마시술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30년을 회현동에 살아 누구보다도 남산 인근 시각장애우들의 삶의 궤적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어르신 자체가 척박한 시대를 산 시각장애우의 작은 역사였다.
"장애를 가졌다고 가두어 놓고 밥도 안 주고 말이지, 그래서 발육도 못하고, 집에 손님이 오면 피아노 밑에다 밀어 넣고 못 나오게 하고 그랬어. 옛날에는 이렇게 못된 부모들이 많이 있었어. 나도 예전에는 돌아다니다 보면 재수 없다고 침을 뱉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내가 차비를 내는 건데도 나를 보고 도망가는 택시도 많았지.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산 세대가 우리 세대였지."
-요즘은 어떠세요. 형편이 나아졌나요?
"시각장애우들이 옛날보다 사는 형편이 나아진 건 분명해. 70년대 초만 해도 서울시내에서 자기 집 가지고 있는 시각장애우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어. 그만큼 살기 어려웠단 말이지. 내친김에 말하자면 70년 전에는 사우나가 있었지. 돈 많은 사람들이 고급사우나에서 우리한테 안마 받고 그랬는데, 서울시내 고급 사우나가 열 군데 있었어. 그런데 한 사우나에 안마사는 네다섯 명밖에 필요하지 않았던 거야, 그러면 열 집에 다섯 명씩 해봤자 오십 명밖에 안되잖아. 그만큼 시각장애우들이 먹고살기 힘들었다는 얘기야. 그러다가 70년대 초반에 안마시술소가 한두 군데씩 생기더니 70년대 중반에 가니까 네다섯 군데로 늘어났는데 그래도 안마사들이 일자리 얻기가 쉽지 않았어. 그리고 비장애우 주인들의 횡포가 무척 심했지.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그러고, 시간 지키지 않는다고 구박하고, 이런 저런 횡포가 아주 심했어. 그래서 우리가 모여 이런 놈들한테 당할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일자리를 확대하자고 결의했지.
80년대 초반부터 시각장애우들이 안마시술소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80년대 말이 되니까 서울시내에 2백 개 정도까지 늘어나 있더라구, 안마시술소가 2백 개면 시각장애우 사장이 2백 명이고, 한 시술소에 다섯 명씩만 일하고 있어도 줄잡아 일천 명의 시각장애우 일자리가 생겼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일손이 부족할 정도였지. 안마사로 일하면서 착실하게 산 장애우들은 돈도 조금 모으고, 거의 다 집도 갖게 됐지. 그랬는데 지금은 그놈의 IMF 때문에 곤란을 겪는 장애우가 많은 실정이지."
-그럼 이 근처에 사는 장애우들은 모두 안마사들인가요?
"그렇지. 지금 이 산책로에 오는 장애우들도 거의 다 안마사들이야."
-안마사 협회가 회현동에 있었기 때문에 이 근처에 사시게 된 건가요?
"그 이유가 가장 크지.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야. 다른 이유도 있지. 예를 들면 직장이 중심권에 있다보니까 회현동에서 산 장애우들도 많은데, 가까운데 롯데호텔과 조선호텔 등 큰 호텔이 많잖아. 거기서 일 하느라고 이곳에 정착한 안마사도 많아."
-양동에도 장애우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던데?
"거기는 주로 지하철을 타고 구걸하던 시각장애우들이 30여 명 모여 살았지. 나중에 거기 정리되면서 성모자애원으로 다 옮겨갔어."
-궁금한 게 있는데 안마 요금이 처음에는 얼마였나요?
"내가 처음 일한 게 67년이었는데, 한 번 안마 받는데 그때 돈으로 2백원 했거든. 우리한테 120원이 돌아왔지, 그러다가 조금씩 올라서 지금은 협정 가격이 3만3천원이지."
-회현동 어디 사세요?
"나 시범아파트에 살아. 실은 다른데 집이 또 한 채 있는데 여기 사는 것은 이 산책로가 있기 때문이야. 나처럼 운동하기 위해서 다른데 가지 않고 일부러 여기 사는 장애우들이 꽤 많아."
시각장애우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지 않다는 게 큰 장점
남산 산책로에는 시각장애우들을 위해 유도블록과 추락방지용 난간, 그리고 곳곳에 음성인식 신호기 등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다. 모두 서울시가 설치한 시설들이다.
그렇다고 비장애우의 출입을 제한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일반 산책로에 시각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해 놓았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 산책로는 일단 시각장애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왕십리에 살면서 역학에 종사한다는 송춘식 씨는 산책로의 장점을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거의 매일 여기 옵니다. 일단 차도 안 다니고 위험하지 않으니까 좋죠. 인천이나 구리, 남양주에서도 매일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우니까 그 돈 모아서 매일 택시 타고 오는 거죠. 우리 시각장애우들에겐 마음 놓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거의 없어요. 이 곳 산책로가 유일하죠. 그래서 여기 와서 친구들 만나고 운동도 하고 놀다가 가는 거예요."
산책로에서 만난 다른 시각장애우들도 송춘식 씨와 대동소이한 말을 했다. 영등포에서 왔다는 한 어르신도 "시각장애우이기 때문에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늘 운동부족으로 몸이 안 좋지. 집 근처는 위험해서 다니지도 못하는데, 여기 와서 산책하면 몸이 개운해져. 그래서 멀지만 여기 오는 거야." 라고 말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산책로는 왕복 7킬로미터이다. 그래서 걷기만 해도 충분히 운동이 된다는 게 시각장애우들의 공통된 말이었다.이렇게 시각장애우들이 많이 남산 산책로를 찾다보니 매주 월요일 산책로에서는 작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가 주관해서 남산을 찾는 장애우들에게 점심을 주고 경품 추첨을 통해 우산 등 생필품을 장애우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월요일에는 산책로를 찾는 시각장애우들이 유독 많았다. 산책로에서 월요일 행사를 주관하는 연합회 복지체육팀 팀장 박재홍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산책로를 찾는 장애우들이 몇 명쯤 되나요?
"하루에 많게는 70명에서 평균 50명 정도가 산책로를 찾고 있습니다."
-산책로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차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고, 두 번째는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거죠. 그래서 시각장애우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지 않다는 거, 이게 장애우들이 산책로를 찾는 주된 이유입니다."
-산책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겼나요?
"장애우들이 서울시에 요구를 해서 편의시설이 갖춰진 겁니다. 작년 10월쯤 시각장애우들이 서울시에 몰려가서 이 산책로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편의시설을 갖춰 달라고 요구했죠."
-언뜻 느껴지는 문제가 있는데, 안마업에 종사하는 장애우들은 여기를 아니까 알아서 많이 오는 것 같은데 직업 없이 집에 있는 재가 시각장애우들은 여기 오는 게 불편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우니까 힘드시겠죠.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명동역에 내려 걸어오시면 제일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계단이 많고, 숙달되지 않은 길이니까 오시기 어렵겠죠. 조금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산책로를 찾는 장애우들이 주로 장년층인것 같던데?
"저희가 파악하기는 40대 중반이 제일 많으신데, 안마업 현장에서 은퇴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이 곳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안마하면 1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아무래도 체력적인 소모가 심하니까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더 이상 안마업에 종사할 수 없죠."
-산책로에 추가로 필요한 시설은 없나요?
"많지요. 우선적으로 비올 때를 대비한 쉼터가 필요한데, 현재 장애우들이 운동하고 나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시와 협의하고 있습니다."
성숙된 시민의식 아쉬워
박재홍 팀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남산 산책로에 시각장애우 편의시설이 갖춰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렇지만 그전에도 장애우들은 남산 산책로를 많이 찾았다. 연합회 체육분과 위원장 유정하 씨는 과거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편의시설이 갖춰지기 전에는 장애우들이 주로 밤에 여기 왔죠. 밤에는 차가 다녀도 띄엄띄엄 다녔으니까, 밤에 여기 와서 운동하고 새벽에도 많이 왔어요. 별 수 없었죠. 장애우들이 운동을 하고 싶은 욕구는 강렬한데 갈 곳이 없었으니까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여기를 찾았던 거예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여기가 천국이죠."
유 씨는 바람으로 "수영장 같은 시각장애우를 위한 체육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 는 말을 덧붙였다.
현재 남산 산책로를 관리하는 곳은 서울시 산하 남산관리사무소다. 내친김에 관리소 관계자들 말도 들어보자.
시각장애우들이 산책을 하다가 배수구로 떨어져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5천만원을 들여서 난간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시민들의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배수로를 정리하고 경계석만 설치하면 되지 별 필요도 없는 난간을 설치해서 예산을 낭비하느냐는 항의 전화였죠.
저희가 음성 신호기도 설치해 놓았는데 시민들이 이 시설을 발로 차서 고장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직 시민의식이 성숙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산책로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우 입장에서 보면 산책로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산책로 입구에 횡단보도가 없다. 그리고 운동하다 잠시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어 장애우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을 들어봤다.
서울시 장애인 제도과 박필숙 팀장은 "산책로 입구에 횡단보도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커브길이어서 횡단보도를 설치하기 어렵다는 경찰청의 답변을 들었다."며 횡단보도 설치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리고 쉼터 설치에 대해서도 "남산은 공원 구역이라 있는 현재 있는 건물도 철거하고 있다. 그래서 쉼터나 사랑방 같은 건물을 새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몇 가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산 산책로는 시간이 갈수록 시각장애우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정보를 하나 드리면 남산 산책로는 비단 시각장애우들뿐만 아니라 비장애우들도 반할 만한 서울의 숨겨진 공간이다. 왕복 7킬로미터를 걸으면서 마주치는 시각장애우들과 반가운 인사도 나누고, 모처럼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런지,
남산에 가면 시각장애우들을 만날 수 있다.
글/ 이수지, 이태곤 기자
시각장애우들의 오락 "윷놀이"
젓가락 모양의 막대를 사용하는 윷놀이는 시각장애우들이 즐겨하는 놀이이다. 이 윷놀이는 첫째, 10개의 막대기(일명 젓가락)로 윷을 노는 점. 둘째, 말이나 말판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머리 속에 말판을 그려서 말을 놓는다는 점. 셋째, 대부분의 시각장애우들이 공통적으로 아는 말판의 각 자리의 고유한 이름이 있다는 점이 비장애우들이 하는 윷놀이와 다른 점이다.
시각장애우들이 윷놀이를 하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윷놀이를 함께 하는 시각장애우끼리 약속된 방법으로 1부터 10까지 표시해 놓은 막대 모양의 젓가락 10개에서 세 가락을 한번에 뽑거나 한 가락씩 나누어 뽑는다. 뽑은 세 가락의 숫자의 합을 더해 십의 자리의 숫자는 버리고 일의 자리 수만 남긴다. 일의 자리 수 1은 도, 2는 개, 3은 걸, 4는 윷, 5는 모, 6은 다시 도, 7은 개, 8은 걸, 9도 다시 도, 0은 개다. 도, 개가 나올 확률은 약 30%라고 한다.
돌아가며 막대기를 뽑은 다음 머리 속에 그려놓은 말판에 자신의 말과 상대방의 말까지 고려하며 가상의 말을 놓는다. 따라서 시각장애우는 윷놀이를 할 때 나의 말과 상대방의 말까지 어떻게 부리는지 기억해야만 한다. 이 윷놀이는 둘이서 할 수 있고 편을 나눠서도 할 수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몇 번 하다보면 익숙해지는 비교적 간단한 놀이라는게 시각장애우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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