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과 편견에 맞서 당당한 목소리로 세상속에 선 장애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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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3일부터 7박 8일간 장애우 6명, 비장애우 4명이 포함된 10여명이 우리 나라 국토종단을 목표로 도시탐험을 떠났다.
이들은 땅끝마을 해남에서 출발하여 전라도 광주, 경상도 대구, 충청도 대전, 그리고 서울로 이어지는 대장정을 하면서 우리 국토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공교롭게도 이들이 떠난 4월 13일부터는 대상 시설에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 부과하는 제도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장애우 도시탐험 국토종단을 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우리나라 중심 대도시에서의 장애체험을 통해 편의시설 환경을 몸으로 부딪혀 점검하고, 이를 통해 장벽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졌다.
이번 국토종단에는 강원도 원주의 장애인 공동체 "작은집"의 강복희(39.뇌병변장애)씨와 조영일(25. 지체장애)씨 가족, 구족화가가 꿈인 김경아(34.뇌병변장애)씨와 미현(37)씨 자매, 한빛맹학교의 손의권(11. 시각장애)군과 영길(42)씨 부자, 침례신학대 친구 사이인 오영철(31.뇌병변장애)씨와 성원석(26.비장애우)씨, 한빛맹학교 사제지간인 고종현(17.시각장애)군과 차현화(26.담임교사)씨가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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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종단당시모습 |
장애우 도시탐험 국토종단 7박 8일간의 일정 속에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을이나 일행을 감동으로 몰아넣을 눈물날 것 같은 멘트는 없다. 단지 10명의 참가자 모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환경인지, 장애우들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한다고 만든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법"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행되고 있는지 몸으로 느끼고 돌아왔다.
장애우의 안전과 편리를 도와야 할 편의시설이 그저 전시 위주의 시설에 그치거나 오히려 장애우들에게 더 큰 장애물이 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참가자들과 함께 모든 일정을 동행 취재하면서 우리나라의 장애우들이 장애와 비장애라는 차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한 편견으로 장애우들이 자신의 결정권마저도 빼앗긴 채 이 사회 속에서 얼마나 많이 유아취급을 받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편의시설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부류만이 편하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참가자 모두는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장애우를 위한답시고 전시적으로 들여놓은 몇몇 가지의 장애우 전용 시설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장애우와 더불어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애우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일반 국민들에게는 더더욱 편리한 세상이 될 것이며, 결국 장애우를 배려한다는 것은 국민 모두의 삶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드는 일임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지뢰밭같은 위험천만한 국토의 모습과 장애우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편견들을 만날 때마다 이제 장벽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 더 이상은 미뤄둘 수 없는 숙제임을 느꼈다.
4월 13일 금요일
해남 땅끝마을비 앞에서 출정식,
드디어 장애우 도시탐험 국토종단 시작
새벽 5시 30분 어스름한 새벽 여명 속에 국토종단의 첫 번째 도시인 해남 땅끝마을비 앞에서 장애우 도시탐험 국토종단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신용호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출정식에서는 10인의 참가인을 대표해 오영철씨가 참가자 전원의 힘찬 의지를 담은 출정선언문을 낭독함으로써 해남에서 서울까지 7박 8일의 일정이 시작됨을 알렸다. 이제 서서히 떠오른 붉은 태양을 등뒤로 이들의 첫걸음은 시작되었다.드디어 출발!
해안을 끼고 있는 국도 4km를 오전 9시부터 1시간 가량 도보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비장애우 4명의 참가자는 각각 두 눈을 가린 채 케인을 사용하고, 휠체어를 이용하여 장애체험을 했다.
해남시에서의 장보기 체험이야기
오전 11시경 해남 읍내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오후 2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해남 읍내 재래시장에서 2인 1팀이 되어 진행요원이 알려준 물건을 사 오는 과제를 수행하는 체험을 시작했다. 도시탐험의 모든 과정이 진행자의 도움 없이 각자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첫 번째 도시탐험 관문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전동휠체어와 수동휠체어를 타고 체험을 한 팀들은 좁은 골목과 울퉁불퉁한 도로사정, 무질서하게 주차해 놓은 차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재래시장에는 너무 많은 턱들이 산재해 있어 바로 앞에 목적지를 두고도 턱의 높이가 조금이라도 낮은 길을 찾아 우회하거나 위험한 차도로 내려서서 도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전동휠체어의 경우 무게가 엄청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턱 위로 휠체어를 들어올리기 어려워 문제가 많았다.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 농협을 찾은 휠체어를 탄 참가자들은 탁자에 손이 닿지 않아 은행 한편에 있는 소파에 엎드린 채로 예금청구서를 작성해야 하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시각장애우들의 경우에는 이동의 어려움이 더했다. 이들의 경우 직선 보행이 어렵기 때문에 충분한 인도 공간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도에는 너무 많은 물건들이 쌓여있거나 간판들이 불규칙하게 널려 있어 사실상 인도에서 도보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내려서 걸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특히 길을 건널 때 횡단보도 앞에 점자유도블럭이나 음성유도신호기 등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시각장애우의 도보는 실질적으로는 목숨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 물건을 사기 위해 상점에 들어갔을 때 상인들의 태도는 장애우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례로 고종현 군과 차현화 교사가 옷감을 사기 위해 포목점을 찾아 가게문을 두드리자 주인은 문을 다 열지도 않은 채 문틈으로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면서 "이거 받고 가라" 말을 했고, 옷감을 사러 왔다고 얘기하자 필요한 만큼 줄 테니 그냥 가지고 가라는 등 동정의 표시를 해서 장애우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이외에도 시각장애우들이 길을 물었을 때 정확한 방향이나 거리를 알려주기보다는 비장애우들에게 하듯 손가락으로 "여기, 저기"를 가리킨다거나 도보로 5분 정도의 거리임에도 "그냥 택시 타고 가라"고 종용하는 등 아직도 장애우들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해남에서의 도시탐험을 마친 일행은 오후 6시, 광주에 도착해서 하루동안의 경험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문제점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가자 강복희 씨는 "이번 체험 속에서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장애우에게 호의적이고 인식개선도 많이 이루어졌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우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차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장애우들이 사회 참여에 너무 소홀했던 탓이기도 하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장애우의 사회 참여를 늘려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편의시설을 늘리고 장애우들의 입장에 맞춰 편의시설을 만들어나가는 무장벽공간의 사회 모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대도시의 공공기간에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부족하고 미진하나마 편의시설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재래시장이나 도로, 은행, 병원 등의 생활시설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으면 이루어지기 힘든 실정이라 생각된다. 물론 정부가 장애우 정책을 얼마만큼 잘 세우고 이를 실천해 나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변화와 장애우들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4월 14일 토요일
공공기간의 편의시설 살펴 본 광주 도시탐험이야기
광주에서의 도시탐험은 5개 팀이 3개 조로 나뉘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공공기관을 방문하여 편의시설을 점검하는 주제로 진행되었다.오전 10시 광주터미널 광장 앞에 모인 참가자들은 시각장애우로 이뤄진 제1팀(손의권, 손영길, 고종현, 차현화)은 전남 도청을 방문해 홍보 리프렛 가져오기, 동사무소에서 등본 신청하기의 과제를 수행했다.휠체어 장애우들로 이뤄진 제2팀(김경아, 김미현, 오영철, 성원석)은 광주시립미술관을 관람하고 홍보 리플렛과 기념품 구입, 시립민속박물관 방문의 과제가 주어졌다. 역시 휠체어 장애우들로 구성된 제3팀(강복희, 조영일)은 백화점 쇼핑과 전자상가를 구경하는 과제를 받았다. 세팀으로 나누어진 팀들을 각자 과제 수행 후 3시 30분까지 광주고속터미널로 집결하도록 했다.
도청과 동사무소 방문한 제1팀 이야기
제1팀의 참가자들은 버스를 이용하여 도청과 동사무소에서의 과제들을 수행했는데 도청에서는 시각장애팀이 들어가려고 하자 4명 중 한 사람만 일을 보러 들어가라며 이들을 막아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들어간 후에도 계단 앞에 점자유도블럭이 설치되어 시각장애우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미지를 갖게 했지만 실질적으로 점자로 제작된 리플렛이나, 점자 등본 등의 행정서류를 접할 수 없어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행정 편의가 절실함을 보여주었다.
참가자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공무원 역시 시각장애우들을 안내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이들이 사용하는 케인을 잡고 이끌어 시각장애우들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행정기관에서 장애우들에게 실질적인 서비스를 주는 효율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위주의 행정인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면서 장애우들에게 올바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공무원들을 교육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이용할 때에도 불편함은 계속 이어졌다. 지하철 같은 경우 안내방송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탈 행선지의 열차가 들어오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마다 방송을 해서 내리기 전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버스는 정류장에 서 있는 동안 타고자 하는 버스가 오고 있는지 아닌지, 막상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스에 승차해도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서 내리기 위해서는 운전기사를 상대로 여러 번 물어야 어렵사리 알 수 있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조금의 관심만 가지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방법은 시각장애우가 리모컨트롤에 원하는 노선번호를 입력하여 원하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음성으로 알려주는 것과 또 하나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적외선으로 노선번호를 감지하여 지하철역에서와 같이 안내방송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립미술관 찾아 나선 제 2팀 이야기
전동휠체어가 두대나 있는 관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제2팀의 참가자들은 도보를 이용해 시립미술관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곳곳에서 이들 앞에 장벽들이 나타났다. 도로 곳곳의 턱과 계단, 심한 비탈길 때문에 바로 건너편 길에 목적지를 두고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철로 건너편 길로 가기 위해 철도건널목을 찾아 30분 이상 골목을 헤매야 했고, 이동 중에 화장실 이용을 위해 주유소에 들렀지만 막다른 골목에 있는 화장실은 좁아서 도저히 들어갈 수 가 없었다. 1시간 이상을 참다못한 급한 마음에 거리에 있는 교회마당으로 들어갔지만 이곳 역시 두어 계단 위에 화장실이 위치하고 있고, 휠체어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문을 열어 둔 채로 어렵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립미술관을 목전에 둔 채 헤매기를 3시간, 지나가던 학생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시립미술관에 이를 수 있었다. 시립미술관의 경우 공공시설인 만큼 첫눈에 보기에는 이동로에 경사로도 설치해 두었고, 미술관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2층으로 이동하여 관람하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경사로는 폭이 너무 좁아서 휠체어가 올라갈 때 한쪽 바퀴가 공간에 뜬 채로 불안하게 올라간다던지, 경사로가 너무 가파라서 수동휠체어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시립미술관과 같은 울타리에 있는 시립민속박물관의 편의시설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휠체어로는 2층을 관람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참가자들이 2층에 꼭 올라가야겠다고 말하자 박물관 관계자는 그제야 이동식리프트를 가져왔는데 휠체어에 탄 채로 짐짝 옮기듯 안전벨트를 묶은 채로 한참을 어렵고 불안하게 이동하는 모습에서 참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나마도 전동휠체어의 경우는 이동식리프트 사용마저 불가능해서 그저 멀찍이서 바라만 보다가 돌아와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과제 수행 후 참가자들은 광주터미널로 가는 길에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려 했으나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의 밧데리가 방전된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는 일은 불가능했다. 여러 기관에 전화를 걸어 차량을 알아본 결과 광주장애인복지관의 리프트가 장착된 벤 차량의 도움을 받아 목적지에 세팀중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백화점과 전자상가에 간 제3팀 이야기
백화점 같은 경우에는 터미널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쇼핑에 별 무리가 없었지만 전자상가는 차로 20분 이상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휠체어 팀인 제3팀은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택시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아 한참을 거리에서 서 있어야 했다. 어렵게 잡은 택시이긴 했지만 가는 길에는 기사 아저씨가 휠체어를 트렁크에 실어주고, 운전하는 동안에도 이들을 배려해 서행하는 등의 배려를 보이면서 비교적 친절하게 목적지에 내려주어 덜 고생스러웠다고 한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에서 탄 택시였다. 타는 순간부터 불만스런 얼굴로 이들은 대하던 기사는 트렁크 문만 열고는 휠체어를 실어줄 생각도 하지 않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뒤따르던 자원활동 학생들이 택시에 타는 것을 돕고, 휠체어를 트렁크에 실었다.
오는 동안에도 과속과 불친절로 이들은 내내 불안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목적지인 터미널 앞은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50미터 전방 차도 한복판에 이들을 내리게 하기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도로에서 내린 조영일 씨가 턱을 내려서는 순간 휠체어 바퀴가 터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해 급히 경찰 순찰차를 타고 인근에 있는 오토바이 수리점에 찾아가 수리를 마쳤다. 이들은 택시기사의 불친절로 인해 다소 화가 났지만 영일 씨는 가고 싶던 전자상가에서 MP3를 구입해 즐거워 했고, 한번도 휠체어 바퀴 수리를 해본 적이 없는 오토바이 수리 가게 아저씨가 성심성의껏 휠체어를 무료로 수리해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인상을 받았다.
4월 15일 일요일
편의시설 전혀 없는 야구경기장에서 겪은
대구 도시탐험이야기 1
하루동안 참가자들은 대구 야구경기장에서 LG와 삼성의 경기를 관람하고, 양발운전자 박재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저녁때는 볼링장에서 볼링게임을 즐겼다.
특히 야구를 좋아하는 영철, 경아, 영일 씨는 출발 전부터 각자 응원할 팀을 정하고는 오늘 경기의 승부에 대해 가늠해보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야구장에서는 편의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사로 없는 높은 계단들, 좁은 통로로 인해 휠체어 장애우들은 좌석에 앉는 것이 어려웠고, 진행요원들의 등에 업혀 이동해야만 했다. 김경아 씨는 "야구장의 수많은 계단을 보면서 못 오를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옛말이 생각났다"는 말로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야구경기장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표현하면서 "장애우를 배려한다면 계단 한쪽에 가파르더라도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더라면 이렇게 힘들게 이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외야석 쪽에 앉기를 원하는 참가자들에게 진행요원들은 3루수 방향이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그쪽 자리에 앉기를 강요했다. 이는 장애우들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는 처사로 올바른 배려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장애우들에 대해 진정으로 배려한다면 적어도 장애우들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아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박찬호를 좋아하는 야구광 조영일 씨는 휠체어에 엎드린 채로 야구장 통로에서 관람을 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은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생 처음 와 본 야구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마음상해할까봐 그랬는지 "난 원래 야구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로 주변 사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좁은 통로와 화장실 문제때문에 대부분 끝까지 야구경기를 관람하지 못한 채 불편한 마음으로 경기장을 나와야만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양발로 운전을 하는 박재현 씨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들 양발운전이 가능하게 만든 그의 차량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참가자 가운데 장애우들은 양발만을 사용해서도 운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차량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장애우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부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저녁식사 후에는 볼링장에서 게임을 즐겼는데 볼링장은 진입로와 게임장 내부에 경사로를 만들어 놓아 휠체어 이동이 가능했고, 수동 휠체어의 경우 마루 위로 올라서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생전 처음 즐기는 볼링에 즐거워했는데 김경아 씨와 강복희 씨는 발을 이용해 공을 굴려 핀을 쓰러뜨리기도 해 주위의 박수를 받았다.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본래 저마다의 삶의 폭을 넓혀가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우들의 문화생활을 가로막는 이렇게 높은 벽들이 존재하는 한 장애우들의 문화향유권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4월 16일 월요일
지하철을 이용한 대구 도시탐험이야기 2
오늘은 대구 지하철을 이용하여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즐기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제는 과제 수행을 위해 참가자들이 서로 회의를 거쳐 작전을 세우는 제법 조직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대구관광정보센터에 모인 참가자들은 저마다 컴퓨터를 이용해 지역정보를 입수한 후 지하철역을 찾아 흩어져 이동했다.
처음 시작된 두류공원 구도로에는 시멘트로 작은 경사로를 곳곳에 만들어 놓아 비교적 휠체어가 다니기 용이한 탓에 수월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큰 도로로 나가자 여전히 인도에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량사이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던 김경아 씨가 앞에서 오는 오토바이를 피하려다 휠체어와 함께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1시간 가까이 헤매다 찾은 지하철역 역시 이들에게 만만하지 않았다. 휠체어 리프트에 사용 열쇠가 매달려 있지 않아 역무원을 호출한 후 10분 가까이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했고, 휠체어 3대가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는 김경아, 김미현, 강복희, 조영일 팀은 7구간을 타고 가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 이동시간이 2시간 이상 걸려 영화관에 가기 전에 기진하는 일이 발생했다. 더욱이 역무원이 휠체어리프트 조작방법을 잘 알지 못해 김경아 씨가 오히려 역무원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느리기만 한 휠체어리프트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동안 사용자가 계속해서 버튼을 눌러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장애우들은 역무원의 도움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휠체어리프트의 경우 사용가능한 중량이 205킬로그램으로 명시되어 있었는데 전동휠체어의 경우는 휠체어의 무게만도 200킬로그램 가량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실제로 전동휠체어는 휠체어리프트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이동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장애우들은 휠체어리프트 시설을 두고도 계단으로 휠체어를 들어서 이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휠체어리프트가 도대체 장애우의 생활을 편리하게 돕기 위해 만든 시설인지 아니면 전시용 시설인지 알 수 없었다.
어렵게 도착한 극장에서도 난관은 계속 이어졌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좁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극장 안에서는 휠체어 따로 사람 따로 업히고 들려서 이동해야 했고 극장 내부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마련되어 있지 않아 맨 앞줄 구석에서 불편하게 영화를 관람해야했다.
조영일 씨는 "처음으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 보았는데 리프트가 너무 높고 흔들려서 겁이 나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을뿐더러 훨씬 더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강복희 씨 역시 "휠체어 장애우들은 돈이 있어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이동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은 도보로 다녀야 하는데 시에서 리프트가 장착된 봉고차량을 1시간에 한 대 씩이라도 구간을 정해서 지역에서 운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장애인도 택시비 정도의 이용료를 내고 타면 되고 유지비용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느냐"면서 복지관과 정부공공기관간에 장애우가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 이들은 연구소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리프트 장착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각장애우팀 역시 지하철을 이용해 과제를 수행했다. 다행히도 지하철 역사안에는 지하철 노선이 점자로 표시되어 있어 행선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점자유도블록이나 핸드레일 끝부분에 점자로 위치를 표기해 놓아 버스보다는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막설명에 대한 음성정보가 없는 영화관에서 이들은 어떤 장면이 어떻 진행되는 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영화관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 역 입구에서 만난 다섯명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웠다면서 시각장애우들을 정확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안내했다. 아이들은 시각장애우의 반걸음 앞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잡고 인도하면서 길가에 꽃과 나무들의 생김새, 하늘빛깔과 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림그리듯 설명을 하여 그 동안 지쳐있던 참가자들의 마음의 문이 열게 하는 역할을 했다.
4월 17일 화요일
한밭도서관 시각장애우실 이용해 본
대전 도시탐험 이야기
대전에서 시각장애우 참가자인 고종현 군은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는 대전의 한밭도서관 시각장애우실을 찾았다. 그러나 도서관은 입구에서부터 100미터 이상 떨어진 건물까지 점자유도블록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찾아가기 힘들었다. 막상 시각장애우실을 찾았을 때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점자목록함이 있기는 했지만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에는 분류기호가 점자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 이용자가 직접 서가에 들어가서 책을 찾아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또한 점역사를 따로 두고 있지 않아 한밭도서관에서 직접 제작했다는 점자 성문기본영어 책자에는 발음기호 등에 오타가 나있는 경우도 많았다.
함께 동행한 차현화 교사는 "일반 도서관에 시각장애우를 배려한 시설이 있다는 것 외에는 실제로 원하는 정보를 획득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사서들이 책을 가져다 주는 친절을 보이긴 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친절한 안내가 아니라 시각장애우 스스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라고 말했다.
백화점에 가서 만화전시회를 둘러보는 과제를 수행했던 김경아,김미현 자매팀은 전동휠체어 때문에 오늘도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궁리 끝에 대전동구청 사회복지과에 연락을 했더니 편의시설 담당자가 직접 자신의 차를 가지고 한걸음에 다가와 전동휠체어를 분리해서 트렁크에 싣고 목적지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주셔서 힘든 체험이었지만 아직은 살맛나는 세상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10명의 참가자들은 대전에서의 도시탐험을 끝으로 과제수행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에는 계룡산 근처에서 휴식을 취한 뒤 4월 20일 서울에 입성했다.
해남에서부터 서울까지 우리나라의 주요도시들을 누비면서 편의시설 환경을 몸소 점검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앞으로 세상과 더 많은 사람과 만나서 장애우들이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임을 알려내고, 불편한 편의시설에 대해서는 더욱 명확하고 당당하게 요구해서 개선해내야 함을 느꼈다고 말했다.이번 도시탐험이 커다란 계기가 되어 앞으로는 장애우에 대한 변화된 인식과 모두가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장벽 없는 세상의 자유로움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국토 종단 도시탐험을 다녀와서, 오영철"
개인적으로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어 수동휠체어를 타는 일이 불편하기만 했던 나에게 전동 휠체어를 타고 여러 도시를 체험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전동휠체어의 경우 대도시의 큰 건물들 즉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등을 이용하기는 그나마 편리했지만 그 건물까지 이동하는 경로에 있어 많은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환경에 살고 있음이 너무나 허탈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번 국토 종단 도시탐험 체험을 통해 얻고 느낀 점은 물론 전동 휠체어의 보급도 중요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전반적인 인식의 개선,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의 확보, 지역과 지역을 연결할 수 있는 차량지원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각각의 도시에서 과제 수행을 하는데 있어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은 대전에서 유일하게 한 대가 있을 뿐이었고, 나머지 도시에서는 차량의 미비와 정보를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해서였다. 즉 집밖을 나와서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전동 휠체어의 편리성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영역이 소실되는데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장애우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다."
김경아, 김미현 자매
설레는 맘도 있었지만 7박 8일의 국토종단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
다. 그러나 그림공부를 우리에게 세상과 부딪혀보는 경험이 꼭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하다가 정 힘들면 중도에 포기하지 뭐하는 심정으로 참여를 했다. 도시탐험 첫날은 놀러간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즐거움은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좁은 인도는 그나마 경가가 있는 곳이 많아 휠체어가 지나가기엔 불편하기 그지 없었고, 전동휠체어는 10센티미터가 넘는 턱에서는 여러 사람의 도움 없이는 보행이 불가능했다. 화장실에 가는 문제 역시 번번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더군다나 대구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리프트에 열쇠도 달려있지 않았고 역무원조차 작동법을 몰라 오히려 우리가 설명을 해야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역무원들은 정기적으로 점검조차 하지 않는지 휠체어 리프트의 기능들을 거의 알지 못했다.그리고 이런 불편한 편의시설 외에도 사람들의 시선이나 장애우를 무조건 어린아이 취급하는 모습에서는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고 안전하게 보행할 권리가 있건만 왜 우리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으며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는지 모르겠다.이번 도시탐험을 하면서 느낀 점은 편의시설을 점검하는 우리의 모습이 세상에 대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계란들이 많이 모여져서 바위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해본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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