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제일 많이 주는 복지공장을 만들겠습니다.
본문
경상북도 김천시에 장애우복지공장이 하나 있다. 사실 장애우 복지를 표방하는 작업장은 여기저기 많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고 김천에 있는 삼일장애우복지공장도 그 중 한 군데 일지 모른다. 이 점을 인정해도 삼일장애우복지공장을 특별히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많은 장애우 작업장이 대도시에 몰려있는 반면 삼일장애우복지공장은 중소도시인 김천에 있다. 따라서 일감 확보가 쉽지 않은데도 1년여를 버텨왔다. 그리고 정신지체 장애우 등 30명이 넘는 직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주고, 또 사장이 공개적으로 회사가 돈을 벌면 장애우들과 똑같이 나누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이런 이유로 이 작업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삼일장애우복지공장에 가봤다.
수익 똑같이 나눈다는 각서 써
김천역에 내렸다. "삼일장애우복지공장" 백봉현 사장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가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복지공장으로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참고로 그는 비장애우다.
복지공장에 도착하기까지 10여분 동안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천은 인구 12만의 중소도시다. 김천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지어 먹고산다. 공업도시가 아닌 농업도시이기 때문에 김천에서는 비장애우도 취업하기 힘들다. 그래서 장애우 취업은 더더욱 꿈도 꿀 수 없는 실정이다. 김천시는 도시지만 흔한 장애우복지관 하나 없고, 한 마디로 장애우복지가 낙후돼 있는 도시다. 그러다보니 복지공장에 취업해 있는 장애우의 80%이상이 직장생활을 처음 하는 장애우들이다.
-그러면 김천에서는 복지공장이 유일한 장애우 시설이겠네요?
"현재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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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장애우복지공장직원들 |
복지공장에 도착했다. 시 외곽 과수원들이 널려 있는 부지에 야트막한 가건물 세 동이 들어서 있었다. 제일 큰 건물은 작업장, 그 옆에 백 사장 숙소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사무실로 사용하는 작은 건물이 있다.
작업장 안에서는 한창 장애우들이 생산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느 공장처럼 기계음이 요란스럽지는 않았다. 몇 개의 작업대 둘레에 장애우들이 모여 앉아서 바쁜 손놀림으로 고무조각들을 떼내고 있었다. 장애우들에게 무슨 작업을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자동차 부품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단다. 다른 한쪽에서는 전자 부품 조립작업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작업장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은 느슨하고 한산한 분위기였다. 백 사장에게 까닭을 물었다.
"하청 일을 하고 있는데 일감이 떨어졌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일감이 없어서 공장을 활기차게 가동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삼일 복지공장 뿐만 아니라 현재 전국에 있는 모든 장애우 작업장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일 복지공장에 잔인한 얘기가 될 지 모르지만 이 부분은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삼일 복지공장도 다른 복지공장과 마찬가지로 "장애우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감이 없어서 고전하고 있다. 장애우복지공장은 일감 확보가 가장 큰 난제다." 이렇게 언급하고 나면 끝인가.
그렇지는 않다. 기자는 삼일 복지공장을 둘러 보면서 장애우복지공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부족한 면이 없진 않지만 장애우복지공장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확신, 이게 널려 있는 장애우복지공장 중에서 골라 삼일 복지공장을 소개하게 된 주된 이유다.지금은 운영이 어렵지만 훗날 삼일 복지공장이 제대로 운영된다고 가정할 때 이 복지공장은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을까. 지금부터 삼일 복지공장이 제시하고 있는 장애우복지공장의 새 모델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삼일 복지공장은 부정이 일어날 소지를 미리 차단하고 있는 게 돋보이고 있었다.잠시 작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소위 장애우복지공장 비리를 떠올려 보면 기자가 삼일 복지공장에 긍정적인 눈길을 보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애우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한다고 해놓고 고작 한 달에 5만원만 주면서 임금을 떼먹고, 고용촉진공단 직원과 결탁해 시설 자금을 받아다가 개인적으로 유용한 복지공장 사주의 비리에 넌덜머리를 낸 장애우들이 많을 것이다.
반면 삼일 복지공장은 투명한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부정이 일어날 소지가 작은 게 장점이다. 삼일 복지공장은 장애우 직원 네 명과 사주인 백 사장, 이렇게 다섯 명이 매일 아침 회의를 한다. 회의 주제는 제한돼 있지 않다.
복지공장 운영 전반을 논의하는데 이 과정에서 복지공장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가 낱낱이 공개된다. 이렇게 백 사장이 아침 회의에서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공개하다보니 때로는 장애우 직원들이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 받지 못했지만, 가령 정부에서 주는 고용 보조금의 경우 사업주에게 지원되는 보조금인데도 장애우 직원들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할 돈인데 왜 나눠준다고 생색을 내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단다.
이런 투명 경영의 연장선상에서 삼일 복지공장을 다른 복지공장과 구분 짓게 해주는 또 다른 점은 복지공장을 운영하는 사주인 백 사장의 남 다른 운영방침이다. 공장 설립 초기인 작년 5월 5일 백봉일 사장은 직원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각서를 썼다. 각서는 "적자는 사장이 메우고 회사가 돈을 벌면 장애우 직원들과 똑같이 돈을 나누겠다."는 내용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장애우복지공장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전체 기업을 통틀어 사주가 직원들에게 회사 수익금을 똑같이 나누겠다는 각서를 쓴 예가 거의 없는 실정에서 백 사장의 운영 방침은 단연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최저 임금 이상의 월급 지급
복지법인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장애우복지공장은 특성상 사주의 희생이 필연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일반 기업처럼 사주가 기업을 운영해서 이윤을 챙기겠다고 덤벼들었다가는 얼마 못 가 공장 문을 닫는 게 그 동안의 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복지 마인드가 없으면 장애우복지공장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이 점을 전제하고, 백봉현 사장이 척박하기만 한 김천에 복지공장을 세우게 된 저간의 사연을 알아보기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백 사장은 소규모 전자부품 하청 공장을 운영하면서 이웃한 도시인 구미시에 있는 한 장애우 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백 사장에 따르면 장애우복지공장을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단체에서 만나 친해진, 두 다리가 없는 한 장애우를 업고 태국 여행을 다녀오면서였다.
"그 분을 업고 태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장애우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몸이 불편한 분들에 비해 저는 호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다는 점을 깨달은 거죠. 그 때 제가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는데 내 어려움은 장애우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 끝에 몸이 불편하신 분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에 한 명 두 명 장애우들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작년 초에 비장애우들을 모두 내보내고 장애우복지공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백 사장이 장애우복지공장을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이런 개인적인 이유 외에도 사업장에 장애우를 고용하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가 무한대로 돈이 있는 건 아니니까, 제가 어느 정도 투자하면 나중에는 정부가 주는 고용 보조금으로 적어도 공장은 운영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죠."
그런데 이런 백 사장의 판단은 장애우만을 고용해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예상을 많이 비껴나 있다. 오죽하면 백 사장이 지난 1년을 회상하면서 "엄청나게 어려웠지요.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손사래를 칠까.
-그 동안 공장에 얼마를 투자하셨습니까?
"지금 공장을 운영한지 15개월째인데 모두 1억7천만원을 공장에 쏟아부었습니다. 제 개인 돈도 있고 빌린 돈도 있죠."
-흑자를 보리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그렇죠. 이윤을 남기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안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운영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지금 한 달 운영비로 얼마가 듭니까?
"약 2천만원 정도 들어갑니다. 임금 주고 차량 운영하는데 그 정도 돈이 들어가는데 수입은 한 달 평균 7백만원 정도입니다. 매달 1천3백만원 정도가 적자로 쌓이고 있습니다."
-쌓인 적자 때문에 임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없었을텐데.
"그래도 저는 처음부터 장애우들에게 최저 임금 이상의 월급을 지급했습니다. 지금 최저 임금이 올라 41만5천원인데, 그래서 직원들에게 월급으로 작게는 42만5천원부터 많게는 80만원까지 지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삼일 복지공장에 고용돼 있는 장애우 현황을 살펴보면, 모두 35명의 장애우가 일하고 있는데, 청각장애우가 5명, 지체장애우가 16명, 정신지체 장애우가 14명이다. 연령은 만 19세부터 노인까지 있다. 그리고 특징은 고용돼 있는 장애우의 대다수가 중증장애우라는 것이다.그런데 중증장애우들이 일하고 있으면 당연히 생산성이 문제가 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당연히 생산성에 문제가 있지요. 그렇지만 일을 즐겁게 하는 것과 억지로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직원들에게 일은 안 해도 좋으니까 대신 직원들이 웃을 수 있는 소재를 하루에 하나씩 꼭 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바깥에 있다가 작업장에 들어갔을 때 작업장 분위기가 싸늘하면 제가 불안합니다. 반대로 작업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면 당연히 작업 능률은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생산성도 따라서 향상되기 때문에 저는 늘 직원들에게 웃으면서 일 하자는 방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노파심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삼일 복지공장이 처해 있는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어쨌든 고용돼 있는 장애우들에게 제때 월급을 지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임이 분명했다. 사주의 희생이 뒤따른다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정말 그 동안 한 번도 월급 밀려 본 적 없으세요?
"있습니다. 사실은 이번 달 월급이 밀려있습니다. 공장 운영한지 1 년이 지났으니까 고용촉진공단에서 고용 보조금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나오면 숨 좀 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 월급을 못 줘서 머리 아파 죽겠습니다."
백 사장은 이어 공단의 불친절을 성토했다. "우리 경리 직원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공단이 너무 애를 먹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줘야지 전화만 하면 짜증부터 내는 겁니다. 우리는 시골에 있기 때문에 솔직히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떤 서류를 갖춰야 하는지 공단에서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와보지도 않고, 전화하면 짜증부터 내니 과연 누구를 위해 공단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장애우 복지 공동체 만드는 게 꿈
솔직히 얘기하면 삼일 복지공장을 둘러보면서 기자는 복지공장이 이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온다지만 어려움 없이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지원금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뚜렷한 수익 모델도 없는 실정이 아닌가, 기자는 어쩔 수 없이 백 사장에게 내키지 않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살아남을 방안은 가지고 있나요?
"그래서 부가가치 있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버섯농장과 장갑공장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세탁업에도 진출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장애우가 만든 물품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도 해당 상품을 만들어서 김천시청에 납품하겠다는 겁니다. 제가 경험이 있어서 아는데 장갑 공장은 잘만 운영하면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장애우들의 특성에 맞게 버섯따기를 좋아하는 장애우들에게는 버섯따기를 시키고. 활동적인 장애우들에게는 세탁업을 맡기면서 장차 기숙사도 건립해서 장애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 공동체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 김진홍 목사입니다. 내심 마음속으로 그 분이 운영하시는 두레공동체를 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큰 이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까?
저는 이 공장을 만들 때부터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는 주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주인입니다. 사주가 진짜 마음을 비운다면 공동체가 가능합니다. 사실 저는 월급으로 매달 30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시골에서는 30만원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평생 30만원만 보장된다면 저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대기업에서도 흉내 못내는, 우리 나라에서 장애우에게 월급을 최고로 많이 주는 공동체 복지공장을 만들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 사장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백봉현 사장은 자신하고 있지만, 당장 복지공장에 닥친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할 지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지역 특성상 일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그리고 계획하고 있는 버섯농장과 장갑공장의 투자 자금은 또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믿고 싶은 것은 가능성이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복지공장을 개방적으로 운영하고 사주가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빠른 시일 내에 삼일 복지공장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척박한 중소도시인 김천에서 장애우들의 소중한 일터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글/ 이수지,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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