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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새해에는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하고 싶어요"

재활용품 판매로 새로운 직업 모델 창출에 나서고 있는 장애우들

본문

새해에는 희망을 이야기하자.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말자. 희망의 작은 싹이라도 키워내자. 장애우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꼽는다면 단연 정신지체장애우의 직업 문제가 첫 번째를 차지할 것이다. 현재 성인이 된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가정에 이들을 묶어둘 수도 없다.

해결책은 어떻게든 정신지체인들에게 직업을 갖게 해주는 것인데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취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에서 혹 취업이 된다 해도 대다수는 영세제조업체에 들어가 있다. 그곳에서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혹사당하면서 하루종일 지겨운 단순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지체인들을 위한 새로운 직업 모델은 없는 것일까, 여기 서비스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한 무리의 정신지체인들이 있다. 취업 자체가 힘든 열악한 실정에서 이들의 도전은 절박감을 바탕으로 가능성을 탐지하는 새로운 실험이 분명하다. 과연 이들은 냉혹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새해 벽두 희망 하나만을 붙잡고 재활용품을 매개로 새로운 직업 모델 창출에 나서고 있는 일군의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만나 보았다.

 장애우들 단 하루도 결근하지 않아

 성남시에서 경기도 광주로 넘어가는 경계에 태재고개가 있다. 고개 정상에서 광주 쪽으로 이백여 미터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장수돌침대라는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그 곳 한켠에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일하고 있는 성남 작업장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업장은 광주군에 있지만, 장애우들은 작업장을 통칭 성남 작업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매장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재활용품을 수거해서 세탁하고 수선하는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우들이 모두 성남시에 살고 있는 장애우들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성남 작업장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임용옥 씨다. 정신지체 1급, 28세 장애우 임세훈 씨의 아버지, 그의 공식 직함은 성남장애인부모회 이사이다. 그런데 왜 그가 이곳에 있을까? 알고 보니 그이의 아들 세훈 씨가 이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임용옥 씨는 작업장 건물을 직업센터에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말이 나온 김에 부연하자면 세훈 씨는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가 10여년 가까이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정신지체인의 직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방방곳곳을 뛰어다녔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결국 모든 책임은 낙후된 우리 나라 정신지체인 복지정책에 있는 셈인데, 임용옥 씨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 유료 임대 형식으로 작업장 건물을 직업센터에 제공하고 아들을 취직시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 만난 임용옥 씨의 얼굴은 솔직하게 말하면 썩 밝지는 않았다. 추측컨대 작업장이 아직 확실한 기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그는 작업장에 거는 기대를 숨기지는 않았다. "일단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우리 아이들이 재활용품을 수선하고 판매하는 일은 교육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 이기 때문이죠. 또 이 일은 자재구입비 등 투자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제조업은 납기 일을 제 때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 일은 천천히 작업해서 판매장으로 보내면 되니까. 장애우들이 느긋하게 일을 할 수도 있고, 또 일의 성격상 많은 장애우들이 참여할 수 있으니까 정신지체인들의 직업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 그런데 성남시에 사는 장애우들이 일하고 있는데, 작업장은 왜 광주에 있는 겁니까.

"공간이 40평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성남시는 집세가 굉장히 비싸요. 우선 보증금이 몇 천 만원 있어야 하는데 돈을 만들기가 쉽지 않죠.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사실 오래전부터 다른 정신지체인 부모들과 함께 작업장을 만들자는 논의를 해왔어요, 부모들이 직접 나서 아이들 직장을 만드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뜻에 모두들 공감한 거죠. 그래서 제가 뜻을 가진 부모들 열 명이 모여 한 사람이 1천만원만 내면 된다. 그 돈으로 작업장 공간을 얻고 아무 일이라도 가져다가 하면 일단 최저 임금은 정부에서 나오니까 부모들이 손해는 보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하고 설득했어요. 그런데 부모들이 돈 얘기만 나오면 비협조적인 거예요. 결국 성남에 작업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포기해야 했어요."

 -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우들이 일을 지겨워하지는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전혀, 장애우들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단 하루도 결근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시키지 않았는데도 한 시간 일찍 와요, 우리 세훈이의 경우도 내가 가끔 늦잠을 자면 빨리 일어나서 작업장에 가자고 나를 깨우죠. 시계를 볼 줄은 모르지만 늦었다 이건데, 세훈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단 하루도 작업장 나오는 것을 거른 적이 없어요."

 - 당사자들보다 부모님들이 더 좋아하시겠네요.
"좋아하죠. 함께 모여 매달 한번씩 운영위원회의를 하는데, 모두 다 참석해요.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나와서 일도 도와주고. 또 매달 10만원씩 모으고 있어요. 멀리 내다보고 훗날 그룹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부모들 생각이죠. 그룹홈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후원금을 적립해두자, 그래서 돈을 모으고 있는데 네 명의 부모가 한 달에 40만원씩. 현재 약 2백만원정도 모았어요."

 "작업장에 나오면 재밌어요"

 임용옥 씨 얘기를 듣다보니 작업장 소개가 늦어졌다. 현재 작업장에는 세훈 씨 외에 중증정신지체인인 명구 씨와 성운 씨 이렇게 세 명의 정신지체 장애우가 일하고 있다. 얼마 전 까지 성룡 씨도 같이 일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서 지금은 세 명밖에 없다. 여기다 이들의 일을 도와주는 지체장애우 한 명, 그리고 직업센터에서 파견한 간사 한 명, 도합 다섯 명이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명구 씨나 성운 씨는 힘이 세서 운반하는 일을 주로 하고 세훈 씨는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행거에 옷을 거는 일을 주로 한단다. 장애우들은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하고 주 5일 근무하는데 한 달 월급으로 한 사람이 43만원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고용보험과 의료보험 등 4대 보험에도 가입해 있다. 어떻게 보면 장애우들이 보잘 것 없는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정신지체인들이 최저 임금이나마 받는 것은 드문 사례에 속하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부모들이 모두 만족하고 있다는 게 임용옥 씨 말이다.

직업센터에서 성남 작업장에 파견한 간사는 김은철 씨다. 실질적으로 작업장을 꾸려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 장애우들을 위해 일 외에 다른 프로그램은 없나.

"일단 정기적인 프로그램으로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성남 분당에 있는 고용개발원 체육관에 가서 수영을 하고 와요. 금요일 일과 후에도 체육관에 가서 놀다 귀가하고, 이 프로그램이 장애우들 근로 의욕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죠."

-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우리 식구들은 모두 순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특히 어머님들이 큰 도움을 주시는데 식구들이 채 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머니들이 채워주고 있어서 일하는데 어려움은 없는 상태예요."

- 작업장이 당면한 어려움은 없나.

"겨울이라 요즘 일거리가 잘 안 들어오는 게 큰 고민이죠. 한마디로 재활용품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김 간사의 말대로 실제로 기자가 둘러 본 작업장은 한산했다. 임용옥 아버지가 불안해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그런데 작업장 장애우들이 제일 겁내 하는 말은 다름아닌 "일하고 싶지 않으면 작업장에 가지 말고 쉬어라" 라는 말이란다. 그만큼 절실하게 장애우들은 작업장에 오고 싶어한단다. 그래서 일감이 없는 상황에서도 쉽게 휴업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게 작업장에 또 다른 고민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했다.

- 그러면 장애우들은 왜 한사코 작업장에 오고싶어 하는 것일까?

"일단 재밌잖아요. 여기 오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장애우들이 집에만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난리 나죠.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불편함을 주게 되고 아이들도 부모에게 불편함을 주게 되기가 십상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이 여기 나옴으로써 그런 불편들이 해소된다는 거고 그 점을 아이들도 느낀다는 거죠.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부모들이 너 죽고 나 죽자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이야기만 해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여기 나와서 돈을 버니까 이제는 부모들이 갔다 왔니,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격려해 준단 말예요, 그러니 아이들이 여기 나오고 싶어하는 거죠. 단적으로 얘기해서 최저 임금을 받고 일을 할 사람이 정신지체인 말고 누가 있겠어요.

그러니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최저 임금이라도 받으며 직장에 다닐 수 있게 정부가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해요. 그래서 부모들이 용기와 희망 그리고 가능성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도록 해줘야 하는 거죠. 지금 정부가 그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으니까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수용시설에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보세요. 현재 수용시설에 수용돼 있는 대부분의 장애우들은 바로 정신지체장애우들입니다. 정부가 탈시설화 정책을 실시해서 장애우들이 지역에서 비장애우들과 더불어 같이 살도록 해줘야 하는데 이게 안 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성남 작업장이 어떻게든 성공 모델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패는 있을 수 없는 거죠. 이 작업장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서 많은 정신지체인과 부모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예요."

다소 길게 인용했지만 임용옥 씨가 강조한 이 말은 왜 정신지체 장애우들에게 작업장이 필요한지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겠다. 어쨌든 작년 6월에 처음 문을 연 성남 작업장은 지난 6개월여 기간을 별 어려움 없이 잘 버텨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가 문제인데 긍정 속에서도 한올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정신지체인 직업으로 재활용품 작업장이 생소한 분야이고 연장선상에서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그 모델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느끼는 생소함 때문일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주로 판매

광주에 작업장이 있다면 서울에는 판매장이 있다. 서울 방배동 옛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건물 1층에 자리잡고 있는 보물찾기 매장이 바로 그 판매장이다. 서울 판매장에는 성남 작업장보다 훨씬 더 많은 장애우들이 일하고 있는데, 특징 하나는 성남 작업장에는 1, 2급의 중증장애우들이 일하고 있는 반면, 서울 판매장에는 주로 3급의 상대적으로 장애가 경한 장애우들이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직업문제에 있어서 정신지체장애우를 중증 경증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재활용품 판매라는 일의 특성상 그래도 장애가 조금이라도 경한 장애우들이 고용되어 있는 건 당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쯤에서 서울 판매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성남 작업장과 서울 판매장을 합쳐 재활용품 사업 전체를 개괄해 보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현재 부설 기관으로 장애우직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직업센터는 설립 후 사업 아이템을 찾다가 99년 9월 처음 재활용품 판매 사업 구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계기로 작용한 것은 그 해 여름 일본에서 열린 한일장애우교류대회였다. 이때 일본에 건너간 김태웅 직업센터 팀장은 일본에서 지역마다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일하고 있는 재활용품 판매 사업장이 있고, 운영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 나라에서도 같은 사업을 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이 오래 전부터 지역사회와 밀착되어 있는 상태에서 재활용품 수거 판매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우리 나라는 재활용품 판매 사업 자체가 이제 시작 단계여서 우선 어디서 어떻게 재활용품을 수집해야 할 지 난감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생각해낸 것이 바로 지하철 유실물이었다. 승객들이 지하철에 놓고 내린 유실물은 일정기간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으면 사회단체에 양여되는데 그 유실물을 받아다가 분류와 수선 작업을 거쳐 판매하면 괜찮겠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지하철공사와 경찰청에 공문을 보냈는데, 고려는 해봤는데 힘들겠다는 답변만을 받았다. 판매에 대한 법규정이 없기 때문에 유실물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작년 1월 직업센터는 IMF때 실직장애우 구호사업을 대행하며 인연을 맺은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로부터 제안을 하나 받게 된다. 구호사업이 아닌 장애우 자활사업을 해보라는 제안이었다.

실업극복의 제안을 받은 직업센터는 곧바로 지하철 유실물 재활용 사업을 하겠다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했고, 직업센터가 낸 사업계획서는 실업극복에 의해 지하철공사의 양여 동의서를 받아 오면 사업자금을 대주겠다는 조건을 달고 받아들여졌다.

다급해진 직업센터는 최종적으로 청와대에 민원을 냈고, 청와대에서는 바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마침내 지하철공사의 유실물 양여가 가능하다는 공문을 받아내기까지는 기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식 명칭이 중증정신지체장애우의자립생활을위한재활용품판매사업인 직업센터 사업은 이런 과정을 거쳐 시작됐다.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로부터 지원 받은 3천만원의 종자돈을 사업밑천으로 해서,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 유실물을 받아오고, 앞에서 언급한대로 성남 작업장도 마련됐지만 또 하나 난관이 가로막고 있었다. 사업에서 가장 절실한 변변한 판매처가 없었던 것이다.

또 다시 도전에 나선 직업센터는 이번에는 서초구청을 찾아갔다. 서초구청이 주최해 매주 토요일 여는 벼룩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담당자는 난색을 표시했다. 관내에 장애우 단체들이 많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 단체만 벼룩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줄 수는 없다는 게 불가 이유였다. 결국 연구소 김활용 이사장이 서초구청장을 직접 만나 협조를 부탁해야 했다. 이렇게 모든 민원이 아래보다는 위를 통해야 해결되는 이 나라는 정말 피곤한 나라가 아닐 수 없는데,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겨우 직업센터는 서초 벼룩시장 귀퉁이 한 자리를 배정 받을 수 있었단다.

"자립생활을 꿈꾸죠"

성남 작업장과 마찬가지로 역시 작년 6월 문을 연 서울 판매장에는 현재 3급 민수 씨, 2급 영래 씨, 3급 일재 씨, 3급 전일 씨, 3급 재현 씨, 3급 기태 씨, 3급 준석 씨 등 일곱 명의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일하고 있다. 연령은 모두 이십대다. 이들과 함께 일선에서 판매에 나서고 있는 이는 바로 직업센터 박진옥 간사다. 그를 만났다.

- 장사는 일주일에 몇 번 나가나.

"정기적으로는 두 번 나가요. 수요일은 보라매 정신지체복지관에서 앞마당에서 장사하고, 토요일은 서초벼룩시장에 가죠."

- 월 얼마를 파는지.

"2백만원 정도가 평균 매출액이에요. 장애우들에게 월급을 주려면 최소한 월매출이 4백만원은 되어야 하는데, 매출을 늘리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어요."

-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사람들을 상대로 제대로 장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인데.

"솔직하게 얘기하면 처음에는 주로 제가 많이 팔았어요. 사람들이 급하게 왔다갔다하는 어지러운 장터에서 식구들이 직접 장사하는 건 어렵더라구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냐면 벼룩시장에 가면 우선 행거들을 분리해요. 이 행거에 걸린 옷은 3천원, 저 행거는 5천원. 이런 식으로 분류하고 행거마다 장애우들을 판매원으로 세우는 거죠. 하지만 아직 손님이 다른 사이즈 옷을 찾으면 그것까지 찾아주진 못해요. 그래도 얼마예요? 라고 손님이 물으면 값을 얘기하고 돈은 받아요. 다행히 식구들 중에서 셈을 할 수 있고 한글을 쓸 수 있는 친구가 두 명 있어서 판매 장부도 적고 있어요. 이렇게 식구들이 직접 장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이 사업이 수익사업이기 때문에 그리고 돈을 꼭 벌어야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경우 제가 직접 나서서 파는 경우가 많아요."

- 보통 장사를 나가는 인원은 몇 명인지.

"간사 두 명과 식구들 서너명이 한 조를 이뤄서 나가죠. 그런데 요즘은 너무 추워서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있어요. 벼룩시장에 가서 식구들 세명은 밖에서 팔고 나머지 세명은 안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30분마다 교대하는 거죠."

- 지난 토요일엔 얼마를 팔았나.

"가을에는 최고 25만원까지 매출이 올랐는데 지난 토요일은 정말 열심히 팔았는데 8만9천원어치 밖에 못 팔았어요."

- 장사가 안돼서 걱정이겠다.

"그래서 대안으로 천원 짜리 김밥을 팔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칠백원에 떼어다 천원에 파는 김밥이 있어요. 그리고 커피를 할인점에서 사와서 한 잔에 2백원에 팔 예정이에요. 그러면 하루에 1, 2만원이라도 더 벌 수 있을 것 같고, 식구들 대인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어요."

- 성남 작업장에서도 한 질문인데 장애우들이 일을 힘들어하지는 않나.

"그렇진 않아요. 가령 식구들 중에 민수 씨는 예전에 박스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었는데, 반복되는 일이 너무 지겨웠대요. 그런데 여기서는 일을 재미있어 해요. 판매 일이니까.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가고, 또 돌아다니는 일이니까 재미있어 하는 거죠. 또 식구들이 월급을 받으면 회식도 하고, 영화 보러도 같이 다녀요. 노래방에도 같이 가고. 그러니 재미있어 할 수밖에 없죠.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장애우들을 학교나 복지관에 보낼 때는 가라고 재촉해야 겨우 집을 나섰대요. 그렇지만 지금은 너 매장에 가야지 라고 말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대요."

- 역시 부모님들이 많이 도와주겠다.

"일단 운영위원회를 매달 열고 있어요. 우리가 향후 바라는 것은 식구들의 자립생활이거든요. 식구들이 언제까지나 부모들 곁에서 살수는 없으니까 자립생활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모님들의 협조가 절실하게 필요하죠."

- 만약 사업이 실패한다면 어떤 상황인가.

"상상하기도 싫지만 일단 판매가 안돼서 식구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 하는 상황이겠죠."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직업센터에서 받아 오는 지하철 유실물은 헌옷과 가방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유실물 중 돈이 되는 고가품은 직업센터 차지가 아니다. 지하철공사는 고가 유실물은 별도로 모아뒀다가 경매를 통해 일반에 매각한단다. 그래서 직업센터가 큰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헌옷이 가져오는 유실물의 80%를 차지하는데, 아무리 세탁과 수선과정을 거친다지만 헌옷을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업센터는 현재 수익구조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데, 예를 들어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이용한 판매는 현재 진행중이고, 나아가 약간의 돈을 주고 기업의 재고상품을 사다가 판매하는 계획 등을 세우고 추진하고 있다는 게 직업센터 최흥수 간사 말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이 사업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최흥수 간사는 재활용품 판매 사업이 주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재활용품 판매 사업은 우선 정신지체장애우의 직업 능력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으로 인해 그 동안 정신지체인이 처해 있던 단순하고 지루하며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노동 형태를 벗어난 새로운 직업 모델이 창출될 수 있기를 바라고 사업을 하고 있는 거죠. 즉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도 정신지체인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하고 싶은 거죠.

답은 1년이나 2년 정도 지나면 나오겠지만 현재까지는 전반적으로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실제로 수치적인 목표도 달성했습니다. 처음 우리가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 달에 평균 2백만원 어치를 팔겠다고 계획을 세웠는데 지난 6개월을 결산해 보면 계획대로 이루어졌어요. 비수기인 겨울 3개월을 대비한 예산도 이미 확보해 놓았고, 앞으로 관건은 장애우들에게 최저 임금 이상의 월급을 지급하는 것인데 어떻게든 수익을 늘려 최저 임금 이상의 월급을 식구들에게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생뚱하지만 지난해 연말 성남작업장과 서울 판매장 식구들, 그리고 부모들이 모두 모인 직업센터 송년회가 열린 자리에서의 일이다. 그 자리에서 한 부모는 아래와 같이 감회를 피력했다.

"우리 자녀들이 취업을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부모들의 평생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 거의 취업을 하지 못하고 모두 수용시설로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데 이제는 재활용품 수거와 판매 사업을 통해 우리 자녀들이 당당하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설 수 있게 됐고 또 수용시설로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부모 입장에서는 아주 획기적인 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쩌면 정신지체인 자녀들과 부모들이 가지고 1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이 사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성공과 실패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서두에 기자는 새해에는 희망의 작은 싹이라도 키워내자고 했다. 그런 말을 한 것은 정신지체인 직업 문제에 있어 정부의 대책 없음을 탓하고 있기에는 지금 정신지체인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자가 열거한 재활용품 판매 사업이 정신지체인 직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가 재활용품 판매 사업을 취재하면서 느낀 게 있다. 바로 정신지체인 직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활용품 판매 사업처럼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손놓고 속수무책으로 있는 것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은 있지만 부모와 장애우 단체들이 용기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평범한 사실이 현실에서는 왜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건 시도들이 쌓이고 모이면 시냇물이 바다가 되듯이 언젠가는 정신지체인 직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날이 꼭 온다는 것이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또 다른 재활용품 판매 사업장이 많이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봤다.

작성자김경희, 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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