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사회복지법인, 장애인 부재자선거 대리투표로 논란 빚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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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전 서구청장 보궐선거(2000.10.26)에서 이 지역 사회복지법인 한마음장애인생활시설에서 장애인의 의사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부재자허위신고를 하고, 1명의 생활교사가 장애인을 대신해 기표를 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시설에서 근무하는 생활교사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진 이번 사건은 그 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시설장애인 대리투표 문제가 표면화 된 것으로써 다시 한 번 장애인 참정권 침해 현황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연구소와 대전선관위가 고발에 들어가 수사가 진행 중인 이번 사건의 전말을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원장이 시설생활자들의 법적대리인?
10월 중순경 이 시설에서 근무하는 여 모 생활교사는 사무실에 부재자투표용지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순간 이 시설생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선거에 참여하는구나 생각했단다. 알고 보니 10월 26일 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있었고 그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선거에 참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날, 시설에서 유일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인철(가명. 25세, 지체1급) 씨에게 선거에 대해 물으니, 의외로 아니요, 무슨 선거요? 라며 선거 자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한 것이다.
다음 날 28일 전체회의에서 여 교사는 부재자투표용지가 사무실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인철이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며 공식적으로 엄 총무에게 질의했고, 엄 총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원장이 했다. 원장은 사람들의 법적대리인이니까 라고 이야기했다.
이 사람들이 금치산자, 한정치산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선거권까지 원장이 행사할 수 있느냐는 여 교사의 항의에 총무가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려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여 생활교사는 당사자들 모르게 선거가 이루어진 것은 결코 쉽게 덮어두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고는 며칠을 고민했다고 한다.
이후 연구소에 알려와, 우리는 동사무소의 부재자신고접수현황에서 47명의 시설생활자 명단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중에는 의사표현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었음. 47명 모두의 이름으로 회수된 선관위 부재자투표 접수 현황과 시설 생활자들과의 면담을 통한 증언을 확보한 상태에서 12월 13일 시설원장, 총무 등을 차례로 면담하여 다시 한 번 마무리 사실 확인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는 14일 이사장과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전지검에 고발했다.
혐의 내용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가 공직및부정선거방지법 제247조 부재자 허위신고와 제248조 사위투표죄에 근거한 것이다. 여기서 연구소는 대리투표를 스스로 했다고 이야기한 유 교사를 피고발인에서 제외했는데, 이유는 이 문제가 교사의 단순 실수라기보다는 시설측이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함에 있어 보다 확실한 책임을 가져야 하며 보다 확실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 한마음복지재단
인권침해 불감증에서 벗어나자! 처음 한마음시설을 방문했을 때 투표방법에 대해 엄 총무는 담당교사들이 있는데, 그들이 투표용지를 방안에 가지고 가서 그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기표를 대신한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마침 지나가는 유 교사를 불러 선생님도 하셨으니까 그 때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 내 말이 맞죠? 라고 이야기했고, 유 교사는 고개만 끄덕이며 동의의 표현을 했다.
그러나 워낙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이라 의사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데, 선생님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신 기표를 하신 건가요? 란 우리의 질문에 엄 총무와 유 교사는 말을 잇지 못했었다.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어 그럼 선생님이 임의대로 다 기표하셨습니까? 란 말에 네 라는 답변을 받았고, 전부 다 선생님이 했느냐 하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받았다.
이후 유 교사는 조사과정에서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워 3명만 1, 2, 3번 순서대로 기표하고, 나머지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은 채 빈 봉투를 보냈다고 답해, 실제 대리투표도 47명이 아닌 3명만 한 것으로 맞춰지고 있다. 사건 전체가 유교사의 개인실수로 몰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 원장도 처음에는 자신이 부재자신고서에 사인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선거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냐 라고 항변했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지난번에 지적당한 같은 필체를 이번에는 모두 다르게 했다 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날 밤 12시에 이사장, 원장, 총무, 유 교사 등 한마음시설의 요직에 있는 직원들 10여명이 이사장실에 모여 2시까지 대책을 논의했다고 하는데,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경찰수사에 들어가자 시설 측에서는 선거법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라며, 잘못이 있다면 장애인의 권리를 확보해 주려 한 점과 선거법을 잘 몰랐다는 점 두 가지밖에 없다는 당당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였고, 명분이 있고, 단순실수라고 해도 분명히 사람들의 권리를 무참히 침해한 사실을 두고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의식 부재가 극명히 드러나는 시설측 입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연구소 자체조사에 의해 4, 13총선에서도 이러한 대리투표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어, 시설 측에서 이야기하듯 단순실수라는 측면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시설측은 그 때도 유교사가 잘못한 것이다며 유 교사 한 명에게로 모든 것을 떠넘기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아직 수사 과정이므로 보다 자세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결과를 기다려봐야 하지만 시설측이 선거법을 제대로 몰라 벌어진 일이라기에는 몇 가지 의혹이 있다. 만일 투표장까지의 이동이 어려워서 시설 측에서 임의대로 부재자신고를 했다면 선거행위에 대한 권리도 분명히 보장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의사표현이 불명확할 정도의 중증장애인 선거권을 보장해 준다면서 대리투표를 자행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아무런 기표도 하지 않은 채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에도 부재자투표를 했다고 하는데, 그 때도 신고만 하고 용지만 받아서 장애인들에게는 보여주지도 않고 아무런 기표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되돌려 보낸 것일까? 유 원장 말대로 진정한 참정권 보장에 관심이 있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면, 그다지 의미 있게 진행되지 않는 일에 왜 그렇게 신경을 썼을까?
부재자신고는 원장과 총무단 회의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이렇게 당사자들에게 전달되지도 않는 의미없는 투표용지 왕복현상이 참정권 확보인가? 정말 참정권 확보를 위한다면 낙서를 해서 무효표가 되던, 찢던 그들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 특히나 조인철 씨는 유일하게 의사표현이 분명한 사람으로 투표의지 확인, 선거일정과 정보제공 등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일에 참정권 확보라는 명분을 걸 수 있을까? 아니 이는 명확히 참정권 침해이다.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 즉 인권에서 어떤 것이 보다 중요한가라는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민주주의 국가에서 참정권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권리로써 양도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19세기 선거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근대화의 상징처럼 부여된 대표적 시민권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될 귀중한 권리이다. 따라서 선거법 개정작업을 통해 보다 확실한 권리보장체계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은 힘든 상황에서도 내부문제를 알려온 여 교사와 조씨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주부습진이 생길 정도로 고생스럽긴 하지만 그곳 장애인들과의 생활이 좋고, 장애인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알려온 것이라며 지금도 변함없이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여 교사. 장애인공동체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원주의 작은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될 조씨. 좋은 공동체를 찾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연구소의 부탁이라고 한 번에 오케이 해준 작은집 식구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참정권 확보도 중요한 문제지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말동무나 또래 없이 8년 동안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해 온 조씨의 거처문제였다. 이제 그가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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