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프로그램의 조속한 자막방송 실시를 요구한다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교육프로그램의 조속한 자막방송 실시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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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동아일보 사회면을 읽던 나는 죄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청각장애 여고생 쌍둥이를 둔 주부 고순복(42세 충북 충주시 연수동) 쌍둥이의 대학 입시 문제만 생각하면 애가 탄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농아인단체에 재직하면서 맡고 있는 나의 업무임에도 해결을 하지 못해 늘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처럼 남아있던 있던 문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에 실렸던 그 기사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청각장애우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과외 학원이나 가정교사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교육방송의 위성 1, 2 채널에서 송출하는 교과과정 방송 수업에서 조차 청각장애우를 위한 배려가 없어 강의를 들을 수 없다. 지상파방송인 교육방송에서는 교양프로그램에 자막방송을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청각장애 자녀들을 둔 고순복 씨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 때문에 대학 입시를 눈앞에 둔 딸의 앞날이 걱정이 되어 각계에 호소문을 보냈다."

1988년 잠시 실시했다가 중단된 문자방송 이후 우리나라의 폐쇄자막방송(이하 자막방송)은 지난 99년 2월 12일 MBC를 시작으로 KBS, SBS, EBS가 가세함으로써 실시하게 되었다. 자막방송이 지난 99년 2월에 실시되었으니까 벌써 우리나라의 자막방송도 이제 두 살배기가 되는 셈이다.

 

4대방송사에서 실시하는 자막방송은 17%에 불과해

 

일반적으로 자막방송이라 함은 TV의 대화자의 음성이나 오디오 신호를 TV화면에 자막으로 표시하는 기술을 말할 수 있다. 가끔 화젯거리가 되고 있는 오락프로그램의 자막은 개방 형태인 Open Caption이고 여기서 말하는 자막은 폐쇄형태인 Closed Caption 이라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 오락프로그램의 자막과 비교해 청각장애우를 위한 자막방송이 어떻게 다른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자막방송은 TV의 영상신호 사이사이의 빈 공간을 사용하는 숨어 있는 자막이기 때문에 오락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자막과는 다르게 일반 TV에서는 이 신호를 읽어 내지 못한다. 따라서 자막방송을 시청하려면 자막 수신용 칩이 내장된 TV를 구입하거나 별도의 칩이 내장된 수신기를 일반 TV와 연결하여야만 자막을 시청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TV중 자막을 수신 할 수 있는 TV는 29인지 한 종류이며 가격 또한 80만원 대를 웃돌아 자막방송을 시청해야 할 청각장애우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연결용 자막수신기 또한 20만 원대를 웃돌아 청각장애우들이 이 수신기를 구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자막방송은 TV화면 위에 덧씌우는 형태로 편집된 자막이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가 자막의 위치 이동이나 자막 줄 확대, 글자색의 변경 등을 리모콘을 통하여 임의적으로 조작할 수 있으며, TV의 화면과는 상관없이 지나간 자막을 불러와 다시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막방송은 방송 내용의 흥미를 돋구거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TV의 소리를 들으며 방송을 시청하듯이 자막을 통하여 청각장애우들이 방송을 시청하는 TV 시청의 필수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들의참여가필요하다
자막방송이 실시된지 두 해가 지났지만 자막방송을 실시하고 있는 방송사는 KBS, MBC, SBS, EBS 4개사 뿐이며, 4개 방송사에서는 평균적으로 주당 방영 프로그램의 17%정도만이 자막처리하고 있다. 대략 KBS-1 TV가 32시간, MBC가 31시간, SBS가 7시간, EBS가 9시간씩을 주당 실시하고 있는 셈이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자막방송을 실시하고자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미국 등 선진 외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평균 17%의 자막방송은 미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자막방송 프로그램도 보도 프로그램이 30%, 교양, 오락프로그램이 70%로 교양, 오락프로그램에 자막방송이 치중되어 있으며, 학령기 청각장애우들에게 꼭 필요한 교과 관련 방송프로그램은 전혀 자막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

 

현재 TV에서 실시하는 교과 관련 방송프로그램을 시청해야 할 청각장애 학생은 전국적으로 유치부 4백37명, 초등부 1천1백78명, 중, 고등부 1천4백8명, 전공과 82명으로 전체 3천1백5명(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2000년) 이 되며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많은 청각장애 학생들도 자막방송을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TV자막방송이 시급히 필요한 대상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청각장애 학생들이다.

이처럼 청각장애 학생 수를 거론한 것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몇 천명이 되기 때문에 자막방송을 해야 한다는 숫자 논리를 내세우고자 해서는 아니다. 교과 방송프로그램에서의 자막방송의 실시 문제는 학생 수가 많고 적음을 따지기 이전에 그들에게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청각장애 학생들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TV방송을 통하여 알권리, 배울 권리, 방송에 참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활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서비스는 당연히 해주어야 한다.

 

자막방송의 안정적인 실시를 위한 선결과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국농아인협회는 지난 90년대 자막방송이 실시되기 이전부터 관련 정부부처와 방송사, 유관 기관에 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자막방송 실시를 건의해왔다. 하지만 정부, 방송사, 유관 기관 어디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현재 교육방송의 위성 1, 2 채널에서 초, 중, 고등부 과정과 청소년 교과학습으로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이 교과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 중 재방영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주당 대략 30회정도 방영되고 있다. 2001년 1월 기준. 그 외에도 일반 교육 프로그램으로 어학 프로그램과 교사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있다. 하지만 교육 관련 어느 프로그램에도 청각장애우이나 청각장애 학생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이 모든 교육이나 교과 관련 프로그램에 자막방송을 해 달라고 원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만 말하며 자막방송을 회피하기보다는 먼저 대학 입시를 눈앞에 둔 고등부 학생들을 위해 하루 한 두 시간만이라도 시범적으로 자막방송을 실시한다면 자막방송에 대한 해결책은 분명히 나올 수 있기 않겠는가.

교육방송에서의 자막방송실시 문제는 특정 기관이나 특정 방송사에만 매달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실시할 때까지 손을 놓고 마냥 기다릴 수 있는 문제도 분명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과 관련 방송프로그램에 자막방송을 안정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 문제 해결 방안은 어떻게 모색하면 좋은지 살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안정된 재원 확보다.
지상파방송사와 위성 TV, 라디오 등 4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교육방송의 경우 연간 예산의 30%를 외부에서 지원 받고 있으나 나머지 60%는 교재 판매, 광고 수입 등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방송 지상파TV에서 주당 9시간 정도 실시하고 있는 자막방송도 현재 어렵게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새로 위성 채널에까지 자막방송을 실시는 쉽지만은 않다.

물론 교육방송의 재정상태를 거론하면서까지 특정 방송사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자막방송실시 예산은 교육방송에서 30%, 현재 교육방송을 지원하고 있는 방송발전기금과 TV수신료를 증액하여 그 증액분으로 나머지 70%정도를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외에 소요되는 비용은 교육부와 기업 협찬을 통한 해결을 모색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둘째, 자막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자막방송을 실시하도록 규정한 법률은 장애인복지법 제20조 제2항과 동법 시행령 제11조와 방송법 제69조 제7항과 동법 제52조, 시행규칙 제14조이다. 하지만 이 법률에 규정된 자막방송실시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보도방송, 선거방송, 기념일의 행사, 재난방송 등으로 명시되어 있어 교육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들을 강제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위 법률에 근거한 자막방송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지침의 내용에는 방송사에 따라 자막방송실시 의무화 비율과 실시해야 할 프로그램의 종류, 운영 예산 출연의 정도, 속기사 수급, 운영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할 것이다.

 

셋째, 자막방송실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자막수신기의 보급이다.
현재 정부와 우리 협회에서 2001년 2월 현재 7천여명의 농아인에게 무료로 자막수신기를 보급했지만 정부 추정 청각언어장애우 13만 5천명에 비추어 볼 때 보급율은 5%정도밖에 안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현재 방송발전기금의 지원을 얻어내고 있지만 이 지원금 이외 기업 협찬 개발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속기사 양성 문제, 음성 인식 기술 도입 문제, 지난 1월에 방송위원회에서 위성방송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디지털위성방송 (KDB)"과의 관계 설정 등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지만 이러한 문제는 자막방송의 운영에 관한 중심 기구가 구성되어야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에 차후에 다시 거론함이 옳을 듯하다.

물론 제시한 문제 해결 방안들이 모두 타당하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방안들이건 간에 청각장애 학생들이 TV를 통해 교육을 받을 권리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통해서 닫혔던 귀가 열리고 배우고자 하는 갈증 해결을 통하여 청각장애 학생들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글 한국농아인협회 김철환 과장

 

작성자김철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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