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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이야기] 때론 신선과 같이 때론 바보처럼 88년을 머물다 가신 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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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의 거목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화백이 1월 23일 오전 9시35분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자택에서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듣지 못함을 더 큰 행복으로 보다듬고 하나님이 주신 침묵의 시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한국화단의 거목이자 사재를 털면서까지 청각장애우복지 향상에 일생을 바쳤던 농아계의 대부.

그는 공식적으로는 초등교육과정의 기초학문이 배움의 전부였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대학교수, 신문기자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을 하는 등 거칠 것 없이, 막힘없이 불같은 인생을 살다가신 분이다. 또한 구 상 시인도 조시에서 낭독했듯이 운보는 “숫되기소년”처럼 처음 시작부터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순진무구하게 살아왔다.


1913년 금광업을 하던 김승환씨와 한윤명씨 사이에 태어난 그는 7세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장애우가 되고 만다. 운보가 구원을 얻은 것은 자신의 교과서에 꽃과 새, 개를 그리는 것을 보고 당대 최고 화가 이당 김은호의 휘하에 아들을 데리고 간 어머니 덕이였다. 그때부터 운보는 붓을 입으로 삼고 억눌린 열정을 거침없이 토해낸다. 이당의 문하에 들어간지 6개월만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널뛰기’로 입선해 스승이“나에게 천재 한 명이 들어왔다”며 대견해했다고 한다. 이후 1937년 선전에서는 ‘고담(古談)’으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다. 화가가 된 운보는 계속 자신의 작품세계를 바꾸면서 끊임없는 창조적 실험을 이어간다. 특히 70년대에는 초록색으로 우리 산하를 표현한 ‘청록산수’ 시리즈, 80년대에는 우리 민화를 계승해서 현대적으로 해석한 ‘바보산수’ 시리즈로 우리 시대의 거장으로 떠오른다. 자신의 ‘바보산수’에 대해 “바보란 덜 된 사람이지. 내가 바로 바보야. 그러니 익을 때까지 계속하는 거야. 관속까지 붓을 가지고 갈 거야. 예술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어”라며 유명한 바보미학을 펼치기도 했다.


운보의 열정은 예술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장애우복지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바로 청각장애우의 복지 향상을 위해 주저없이 사재를 털어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 초대 회장을 맡고 청음회관과 운보원을 설립했던 것. 생전에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인데 궁극적 아름다움은 남을 위한 자원활동에서 찾을 수 있어요. 화가가 예술만을 위해 살면 환쟁이로 전락하지만 자원활동이 곁들여지면 정말 예술가가 되지요” 라고 말한 그는 자신의 거처이기도 한 ‘운보의 집’에 나란히 ‘운보공방’을 만들어 농아들의 재활을 돕기 위한 도자기 기술을 가르쳤다. 이처럼 농아인들의 자립과 권익옹호에 힘쓴 그는 우리나라의 모든 청각장애우의 등불이자 상징적 존재였다.


글 정승희 | 사진 백윤국 (한국청각장애인복지회 청음회관)

 

작성자정승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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