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차량 LPG 현행가격 유지 합의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장애우 차량 LPG 현행가격 유지 합의

본문

9월7일 오후 서울역… 선선한 날씨 속에 광장을 둘러싼 전경들의 검은 헬멧들이 햇빛을  반사시키며 긴장을 감돌게 하고 있다. 광장의 한 편에서는 ‘장애우이동권쟁취결의대회’라고 쓰여진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반대쪽 끝에서는 한나라당의  집회용 차량이 음향을 시험중이다. 조금씩 모여드는 장애우들. 휠체어에 붉은 머리띠, 오색 만장과 깃발을 손에 쥐고 어느새 광장을 가득 메운 채 집회가 시작되었다.

 

장애우 차량연료에 대한 완전면세유 제공 요구
 
정부가 LPG가격 인상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작년부터 장애우들은 줄기차게 ‘가격체계이원화’를 요구하여 왔다. 정부가 RV차량에게 LPG 사용을 허용한 후 세수감소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자 LPG가격을 인상시키겠다는 원칙 없는 정책을 논의한 것부터 원망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그래도 발생한 문제를 바로잡겠다는데 걸림이 되지 않기 위해 적절한 보완책이라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LPG가격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장애계의 갈등이 가시화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30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에너지 가격구조 개편을 위한 연구’ 결과를 산업자원부가 언론에 보도하면서부터였다.
분명한 장애우 피해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LPG가격을 2백50퍼센트까지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보도가 나간 후 한국장총을 비롯한 장애계는 ‘철저한 보완책이 없는 LPG인상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장애우들에게 있어서 LPG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이 부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사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차량을 무용화시킨다는 것이고 이는 곧 장애우들을 또 다시 집안에 격리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이 후 한국장총은 지속적으로 산업자원부와 재정경제부를 출입하며 정부가 추진하려는 보조금지급에 반대하는 장애우들의 입장과 장애우 차량연료에 대한 완전면세유 제공 요구를 전달하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보인 정부의 반응은 냉소적인 것이었다.
“정부가 보상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보조금을 지급해서 장애우들이 추가로 낸 세금은 전액 돌려주겠다는 것인데 무엇이 불만이냐”며 정책결정의 가장 주요한 영향을 받는 소비계층인 장애우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된 채 ‘돈이 지출되었으니 해결됐다’고 보는 정부의 행정편의적 발상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번 LPG 가격 면세투쟁의 과정에서 장애계가 보조금 정책을 고려해 본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차가 없는 장애우들에게도 소액의 교통수당이 지급될 수도 있다는 면에서 차를 가진 장애우에게 제한되는 면세유정책보다 포괄적인 복지시책이 될 수도 있다는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면밀히 정부의 보조금지급안을 따져보면 지극히 기만적이고 시혜적인 유인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초 정부는 LPG차량을 소유한 장애우로부터 추가 징수된 세금총액을 보건복지부를 통해 LPG차량소유자에게 나눠주는 방법을 검토했었다. 그러나 교통보조 수당을 차가 없는 장애우는 배재한 채 차량을 소유한 장애우에게 제한적으로 나눠주는 방식이 복지정책의 성격에 위배되어 장애우 다수의 반발을 살 것과 그에 따른 사회적 공감대형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자기모순에 빠지면서 지급대상을 전체장애우에게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 역시 장애계의 만만치 않은 반발에 부딪치게 되었다. 일부 장애우에게 징수한 세금을 가지고 정부가 생색을 내며 전체 장애우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차량을 가져야만 이동이 가능한 장애우들의 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 차량을 소유한 장애우를 중산층으로 취급하며 장애우를 우롱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수당의 지급대상을 소득과 장애정도를 감안하여 중증의 저소득장애우들에게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발상 역시 일반가구소득의 50퍼센트에 불과한 장애우 계층 내에서 소득재분배를 하겠다는 역진적 발상이라는 장애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에너지 가격 인상정책을 주관하는 산자부와 재경부는 ‘골치아픈 문제는 복지부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구체적 보조금 지급방식을 복지부에 떠 넘긴 채 에너지 가격구조개편을 위한 공청회를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공청회 무산, 장애계 대규모 집회 결정

 

8월31일은 태풍 ‘프라피룬’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이미 관련부처 장관회의를 통해 ‘보조금 지급’이라는 큰 틀을 정해 놓고 하루 전에 통보해서 형식적으로 실시하는 공청회에 동의할 수 없다는 열의는 쏟아지는 비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들을 남대문 상공회의소 앞으로 모이게 했다. 그러나 이미 상공회의소를 겹겹으로 둘러싼 전경들은 외관상 장애가 식별되는 사람을 색출하여 출입을 통제했다. 생존의 절박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여든 장애우들은 휠체어에 앉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또 한번 정부가 자행하는 명백한 차별의 비애를 맛보며 싸워야 했다. 두 시간 가까운 실랑이 끝에 진입한 공청회장. 장애우들은 이미 좌석의 삼분의 일을 메운 정체불명의 머리 짧은 청년들을 보며 급기야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겠다는 공청회장에 장애우의 의견은 필요 없다고 출입을 제한시키고, 다리가 불편한 장애우들은 좌석이 없어 서있는데 사복전경을 자리에 앉혀 놓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들을 내보낼 때까지 공청회를 시작할 수 없다.”
결국 장애우들의 격렬한 항의에도 불과하고 전경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이날 공청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공청회가 무산된 후 한국장총은 국회와 한나라당 등을 방문하며 장애계의 건의를 전달하였다. 다급해진 정부는 장애계와의 대화를 제의하였다.
그러나 9월1일 실시된 산자부, 재경부와의 연석회의에서도 정부는 면세유와 관련된 장애계의 의견은 절대 검토할 수 없고, 기존의 ‘보조금’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 주겠다는 일방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산자부와 재경부의 이러한 제안 역시 ‘요식적 행위인 공청회만 넘기고 보자’는 사탕발림이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산자부와 재경부가 당근으로 제시했던 ‘플러스 알파’에 대해 기획예산처가 난색을 표명하며 반대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결국 한국장총은 정부의 기만적 처사에 철퇴를 가하기 위해 9월7일 범장애계 대규모 집회를 확정하고 서울경찰청에 집회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집회신청을 먼저 내 놓았던 스위스그랜드호텔 노조에게 양보까지 받아가며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니 이번에는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같은 날 서울역 광장에서 규탄대회를 개최한다며 양해를 구해 왔다. 제1야당의 대규모 집회에 장애계의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와 고민이 거듭됐지만 ‘더 이상 시기를 늦출 수는 없다’는 판단으로 한나라당과 시간을 조율하고 집회신청서를 다시 제출했다.
이렇게 한국장총의 집회가 현실화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경찰 정보계통을 통해 한국장총과 회원단체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엄연히 합법적 집회신고를 마쳤음에도 각 지방의 회원단체에 ‘불법집회’를 운운하며 집회에 참석하지 말 것을 강요했고, 여의도에 있는 한국장총 사무처는 정보계 형사가 아예 상주하며 직원들의 업무를 감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9월5일 한나라당은 LPG인상 관련 장애우 LPG차량에 대해서는 면세유를 공급하라는 정책성명을 발표했고, 연이어 6일 산자부가 경기도 의왕의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숨어서 개최하려던 2차 공청회도 장애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자 속이 타기 시작한 정부는 이날 밤 ‘8일 재경부차관 면담’을 제의하며 집회를 철회할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한국장총은 ‘일단 집회를 막고 보자’는 정부의 회유책에 굴하지 않고 7일 집회를 강행할 의사를 분명히 했고, 이날 밤 11시 급기야 정부가 재경부차관 면담을 7일 오전으로 앞당겨 실시하자고 연락해 오기에 이르렀다.

 LPG, 할인카드를 통한 현행가격유지방침 확정
 
 추석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온 9월 7일. 약 2천여명이 모여든 이날의 집회는 아무런 충돌 없이 평화롭게 치뤄졌다. 이날 오전 재경부 차관과 민주당 대표가 한국장총의 대표단을 만나 ‘장애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LPG세금인상으로 인한 추가 손실이 없도록 환원시켜 주겠다’고 약속한 극적 타결이 보고되며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때문이다.
그리고 결의대회가 개최되던 시간 벌어진 당정협의를 통해 정부는 당초의 ‘보조금지급’정책에서 선회하여 ‘장애우 LPG차량연료 할인카드를 통한 현행가격유지’라는 방침을 확정하게 되었다. 밀레니엄의 첫 여름을 뜨겁게 가열시키던 LPG 투쟁은 이렇게 일단락이 지어졌다.
이번 ‘장애우 LPG 현행가격 유지 투쟁’도 ‘직업재활법’, ‘중증장애우 1종면허 취득허용’에 이어 장애우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킨 또 하나의 기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열띤 싸움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장애우를 정책결정의 주권을 가진 소비자 계층으로 보지 못하고 정부의 시혜적 정책의 수급자로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재활 서비스계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강조되기 시작한 소비자 주권(Consumer sovereignty)의 원칙이 재활 시설이나 기관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서도 지켜질 때까지 장애우들의 지속적인 정책 소비자 권리운동은 전개되어야 한다.
LPG 투쟁에서 한 걸음 더 나간 장애우들의 ‘정책 소비자 권리’는 LPG를 현행 가격으로 공급받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동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도록 시설과 대중교통의 편의시설 설치를 강제하여 우리의 ‘이동권을 쟁취’해 내는데 분명한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글 남세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홍보팀장 l 사진 김학리 기자

작성자남세현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