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사유화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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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우들 1백50명이 학교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한빛 맹학교 사태가 농성 일주일만에 막을 내렸다. 표면적으로는 시각장애우들의 핵심 요구사항인 족벌체제 해체가 재단측에 의해 받아들여져 사태가 수습된 것이다. 하지만 제2의 에바다 사태로 불리며 관심을 모으던 한빛 맹학교 사태는 끝난 게 아니다. 특히 사태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장애우 사립학교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은 장애우 교육의 현주소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장애우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일까. 한빛 맹학교 사태의 전과정을 취재했다.
이사장 아들과 며느리 요직에 취임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한빛 맹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알아 보자.
서울 수유 1동에 자리잡고 있는 한빛 맹학교는 지난 71년 설립인가를 받았다. 설립자는 고인이 된 시각장애우 한신경 여사이고, 현재 재학생이 1백20여명으로 교육부로부터 연간 12억 원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학교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내막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설립자인 고 한신경 여사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하다.
한빛 맹학교 동문들에 따르면 범시각장애우계의 존경을 받고 있고 한국의 헬렌켈러라고까지 불렸다는 한신경 여사는 19세 때 시력을 상실한 중도장애우였다. 국립인 서울 맹학교에 다니던 중 6·25를 겪게 됐고, 부산에 피난 내려갔다가 올라와 안마로 생계를 이어가며 어렵게 한국신학대를 졸업했다.
그런 한신경 여사가 같은 처지의 여성 시각장애우들을 모아 지금의 자리에 장애우 수용시설인 여맹원을 만든 것은 지난 60년 6월이다.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곳에서 혼자 힘으로 양계장을 운영하며 계란 팔고 채소를 키워서 파는 등 온갖 고생을 다한끝에 현재의 한빛 맹학교 기틀을 마련했다는 게 동문들 주장이다.
그리고 한빛 맹학교 설립 초기, 한신경 여사는 맹학교 교장과 한빛 맹아원으로 이름을 바꾼 수용시설 원장을 겸임했다. 대신 학교와 수용시설을 운영하는 재단 이사장은 오빠의 부인, 즉 올케인 김봉룡 씨에게 넘겼다.
말하자면 재단의 실질적인 주인은 한신경 여사이고 올케인 김봉룡 씨는 명목상 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었다는 것이다.
별탈없이 운영되던 학교는 그러나 지난 90년 한신경 여사가 지병으로 타개하면서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게 된다. 한신경 여사가 학교 교장은 반드시 시각장애우가 맡아야 한다는 유언대로 후임자인 2대 교장에 시각장애우 교사인 김부순 씨가 취임하고, 원장에는 30여년의 시간을 한신경 여사와 같이 보낸 반순자 씨가 취임해, 별 문제 없이 운영되던 한빛 재단은 3년 전 호주에서 귀국한 김봉룡 이사장의 외아들 한윤호 씨가 재단 운영의 전면에 나서면서 한빛 맹학교 졸업생들로 구성된 동문들과 심각한 대립을 빚게 되는 것이다.
현재 재단 이사장인 김봉룡 씨는 86세 라는 고령의 나이가 말해주듯 명목상 이사장직을 맡고 있을뿐 재단 운영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있고, 대신 실질적인 재단 운영은 이사인 아들 한윤호 씨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 이사장의 며느리 즉 한윤호 씨의 처 김은숙씨 까지 학교 운영의 전면에 나서면서 동문들과의 갈등은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단의 사유화 급속하게 진행
이번에 한빛 맹학교 사태가 발생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재단 운영에 있어서 이사장 친인척의 지나친 관여이다. 학교와 맹아원을 운영하는 한빛 재단이 재단을 사유화하려 한다는 의혹에 휩싸인 것이다.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이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9월 18일 농성에 돌입 하면서 내논 호소문에 이번 사태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다.
“1997년 1월 이사장의 며느리인 김은숙 씨는 재단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한빛맹학교의 행정실장까지 겸임하여 교장을 초월하는 힘을 갖게 되었고, 학교 예산을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학사일정 및 인사 문제에까지 개입하는 전횡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설립자가 임명한, 그리고 학생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김부순 교장 선생님을 정년까지 재임하기 못하고 스스로 학교를 떠나도록 온갖 비굴한 방식을 모두 동원하였고, 1999년 3월에는 특수교사 자격도 없이 일반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편법으로 교사가 되면서 곧바로 교육과정 부장 교사가 되었으며 조재훈 선생님을 교장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1999년 9월에는 재직중인 교감 선생님을 거의 내몰다시피하면서 스스로 교감 서리가 되었고, 2천년 8월말에는 조재훈 선생님마저 교장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명예퇴직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지금은 자신이 교감과 교장 대행을 모두 맡는 기형적인 학교 인사행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체 30명이 채 안되는 선생님들 중 13명이 1년 사이 학교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재훈 선생님의 퇴임식에는 학교에 불만을 품은 중고등학생들이 불참하였고 졸업생들도 참석을 하지 않는 비교육적인 상황까지 초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한빛맹아원장으로 수고하던 반순자 원장마저도 정상적인 직무를 하지 못하도록 온갖 압력을 행사하여 스스로 그만두도록 했고, 그 자리에 이사장의 아들이자 김은숙 교감 대리의 남편인 한윤호 이사가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맹아원은 아동복지시설이기 때문에 원장이 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소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자격증도 없는 한윤호 이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원장의 취임예배에도 중고등학생들이 참석을 하지 않는 불행한 사태가 연속해서 벌어졌습니다....(중략)”
동문회측은 이어 재단이 사유화 됐다고 주장하면서 사유화로 인한 피해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최근의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빛맹학교는 올해 중고등부와 초등부에 추가로 입학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 사태를 겪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약간명의 학생이 추가로 입학하여 수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 김부순 교장 선생님 재임시에 전국 2위의 규모로 성장했던 본교가 2년만에 학생수가 약 20퍼센트 가량 격감하는 우려할만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학생 유치에 대한 홍보나 학교 발전에 대한 기본적인 청사진이 형성되어 있지 못한 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재단의 재정 운영에 있어서 투명성이 없고 재단 이사진이 거의 모두 친인척으로 구성되어 있어 합리적인 재정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사장, 그리고 그 며느리인 학교의 교감, 교장대리 그리고 그 아들인 원장으로 구성된 구조 속에서 바람직한 장애인 시설의 전형을 발견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장애우 복지는 무엇보다도 봉사정신과 사명감이 중요한 영역입니다. 사업체를 꾸려나가듯 운영하는 족벌체제는 투명하고 정상적인 방식의 재단 및 학교 운영에 걸림돌일 뿐입니다.”
정리하자면 호소문에도 나와 있듯이 이번 사태가 일어난 데에는 8월말 김은숙 씨의 학교 교감 대행 취임과 9월 3일 한윤호 씨의 맹아원 원장 취임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장의 아들은 원장, 그리고 이사장의 며느리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학교 교감 대행으로 취임 하면서 재단이 족벌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난이 가능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그런데 농성에 참여한 한 동문에 따르면 학교 점거 농성이라는 극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 동문들은 재단측과 네 차례에 걸쳐 접촉을 갖고 친인척이 학교를 맡든지 아니면 원을 맡든지 한 군데에만 관여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라는 협상안을 내놨다고 한다. 그러나 동문들이 내논 협상안은 재단측에 의해 거부됐고 “가서 더 배워가지고 오라”는 모멸섞인 말 까지 듣게 되자 동문들이 실력행사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이와같은 저간의 사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한빛 사태는 한빛맹학교 졸업생들로 구성된 동문회가 주도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자퇴서를 내고 교사들도 사직서를 내며 농성에 동조 했지만 어디까지나 주역은 동문회였다.
그러면 이렇게 동문회가 전면에 나서게 된 이유는 뭘까,
한 동문은 그 이유를 맹학교의 특수성에서 찾고 있다. “맹학교는 다른 학교나 단체와는 다르게 동문들과 학교가 엄청나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특히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하는데 선배들을 통해야만 취직이 가능하죠. 선배들은 또 후배들에 대해 혈육과 같은 애정을 갖고 있고, 그래서 학교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해요.”
여기에다 동문들은 오늘날의 한빛 맹학교가 있기까지 자신들도 큰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 한신경 여사가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당시 재학생들이었던 동문들도 교회를 찾아 다니며 악기 불고 북 치면서 구걸하다시피 해서 건축비를 마련해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랬는데 설립자가 사망하면서 사재 출연도 하지 않은 친인척이 득세하고 전횡을 일삼아 할 수 없이 동문들이 전면에 나서게 됐다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가 일어난 데에는 한빛 맹학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놓고 재단측과 동문회가 서로 해석을 다르게 하고, 견해 차이가 심해서 결국 물리적인 방법이 동원 됐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빛 재단측은 이사회가 재단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사회가 결정한 한윤호 씨의 원장 임명이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동문들은 친인척의 지나친 관여는 재단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은 장애우들이 피해를 입는다며 친인척의 요직 임명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동문들이 분노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이번 사태에서 동문들이 재단측에 요구한 사항은 다음의 세 가지다. 우선 현 이사회를 해산하고 재단 설립취지에 맞도록 애맹 정신에 입각하여 이사진을 구성하고, 설립자의 유지대로 이사의 50퍼센트 이상을 시각장애우로 구성하며, 이사장 교감 원장은 족벌식 운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주의깊게 보면 알 수 있지만 동문들의 주장은 한빛 재단의 현 이사회를 헤체하고 이사의 50퍼센트 이상을 시각장애우로 해서 새롭게 이사회를 구성하라는 요구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문들이 이렇게 이사회에 집착하는 건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고 한신경 여사가 재단을 만들 당시 한빛 재단의 이사는 7인 이었고 그 중 4인이 시각장애우였다. 그런데 한신경 여사가 타개하고 난 후 현 재단 이사회는 11인으로 이사가 늘었는데 반대로 시각장애우 이사는 4명에서 2명으로 오히려 줄어든 것이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다 한창호, 한신호 라는 이름에서 보듯 현 재단의 다수의 이사가 재단의 실질적인 주인인 한윤호 씨의 친인척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시각장애우를 배제한 채 이사회가 구성 되면서 재단의 사유화가 급속도로 진행 됐다는 것이 한빛 동문회 주장이다.
우리는 뭔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한빛 사태는 동문들과 재학생, 그리고 학부모까지 가세한 격렬한 점거 농성이 닷새째 이어지고 난 후인 9월 23일 재단측과 동문회측이 우여곡절끝에 사태 종결에 합의 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다행히 사태가 조기에 수습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전날인 22일 동문 중 한 명인 이아무개(38) 씨가 유리조각으로 자해를 하고, 또 다른 동문인 김아무개(25) 씨가 5층 창틀에 매달려 투신 하겠다고 소동을 벌이는 일이 일어나면서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부담을 느낀 재단측이 서둘러 이사회를 소집해서 상당부분 동문회 측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9월 23일 재단측과 동문회가 합의해서 발표한 이행확약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회복지법인한빛재단 현 이사장 김봉룡씨는 2001년 9월 16일자로 임기만료와 동시에 자진퇴임하기로 한다. 이사 총 정족수 11명 중 4명을 한빛동문회에서 추천하는 자로 선임하며 이를 정관상에 명문화한다. 동문회 추천이사 전원은 후임 이사장직을 한윤호씨 또는 그의 직계로 승계됨을 서약한다.
한빛맹학교장과 한빛맹아원장은 한윤호씨 내외 또는 그 친인척으로 선임하지 않을 것이다. 단, 친인척의 범위는 일반관례에 따른다. 한윤호, 김은숙씨는 사회복지법인한빛재단 산하 한빛맹학교와 한빛맹아원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을 것이며, 다만 본 재단의 제3의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해도 무관하다.
이상의 합의서 내용을 풀어보면 애초 동문회가 요구한 학교와 원 운영에 있어서 친인척 배제 요구는 관철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사 선임에 있어서도 과반수는 아니지만 11인 중 4인을 시각장애우 이사로 선임하기로 합의해 이 부분도 동문회측 요구가 일정 부분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대신 동문회가 양보한 부분도 있다. 후임 이사장직을 한윤호씨 또는 그의 직계로 승계됨을 서약한다고 합의한 부분은 동문회가 현 재단의 주인이 한윤호 씨 라는 것을 받아 들이고 그의 기득권을 인정해준 부분이다.
정리해 보면 결국 동문회가 이번 농성으로 얻은 것은 문제가 됐던 이사장의 며느리 김은숙 씨의 교감 대행 취임과 아들 한윤호 씨의 원장 취임을 저지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즉 재단 운영에 있어서 친인척 배제를 관철시킨 것인데 이 점이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에바다 사태와 다른 점이다.
똑같이 재단 운영에 있어서 친인척 배제가 주요 이슈였지만 에바다는 주인의식을 가진 동문회가 없었고, 한빛은 주인의식을 가진 동문들이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얻어 냈다고 말하면 지나친 예단일까.
한편 기자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재단측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한윤호 이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재단의 실질적인 주인인 한윤호 씨는 의혹에 대한 대답은 생략한채 “다 잘됐으니까 기사화 하지 말아달라, 합의를 해 놓고 다시 문제를 얘기할 수는 없다. 잘못 하다가는 문제가 다시 불거질 위험이 있다. 합의한대로 실천하면 그만아니냐”며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부했다.
돌이켜보면 시각장애우 학교의 사유화가 문제가 된 것은 작년 목표 은광맹학교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목포 은광학교도 아버지가 이사장, 아들이 교장을 맡는 등 지나치게 친인척 중심으로 재단 운영이 이뤄져 시각장애우들의 시위를 촉발시킨 바 있다.
당시 목포 은광학교 사태는 여기에다 더해 맹학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신지체 장애우을 학생으로 받아들여 시각장애우들의 분노를 샀다.
은광학교측은 시각장애우가 없어서 정신지체 장애우를 학생으로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올해 동문들의 노력으로 은광학교에 입학한 시각장애우가 30여명에 이르러 은광학교측의 주장을 일거에 무색하게 한 바 있다.
결국 재단측의 사유화는 학교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게 시각장애우들의 주장이다. 한빛맹학교의 경우도 동문들 주장에 따르면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지난 2년 동안에 학생수가 20퍼센트나 줄어들었는데 재단측은 은광학교와 똑같이 시각장애우 학생이 없어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재단의 사유화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정반대의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책임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친인척의 관여는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친인척의 지나친 관여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번 농성에 참여한 한 시각장애우는 그 부정적인 면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할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재단과 친인척이 학교와 원을 자기들 개인재산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만약에 학교와 원이 개인재산이라면 우리는 뭡니까? 우린 그들의 필요에 따라 쓰이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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