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상잡담] "우리 이제 여기서 희망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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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년천이 밝았다. 그리고 새천년은 세기말에 이어졌다. 언뜻 보면 당연한 시간의 진행이지만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에 의해 세기말의 암울함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기대와 희망에 찬 새천년과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새시대의 희망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흑자는 다름아닌 "사람"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다른 누구보다 이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시대의 희망을 가장 근접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일 것이다.
함께걸음은 PC통신 나우누리내 장애우복지실천 동호회 "나누리(go nanuri)"에서 주맴버로 활약하고 있는 4인의 젊은 장애우들과 만났다. 과연 이들은 이 시기를 어떤 생각을 하며 보내고 있을까.(이 "상잡담"은 99년 12월 어느 날에 이루어져 그 때를 기점으로 기술되었음을 밝혀 둔다)
- 지금 여러분들은 다들 컴퓨터통신을 통해서 알게 되신 분들이라고 하셨는데요. 이제는 이렇게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통신으로 매일 만나고 그것을 매개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직접 대면하곤 하는 일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땋게 보면 참 신기하잖아요. 이런 환경 위에 컴퓨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자신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점들이 어떤 것이 있던가요.
민수: 컴퓨터 통신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알게되는 점을 제일 먼저 꼽을 수 있겠죠.
홍안: 그렇게 통신을 통해서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밖에 안나오는, 아니 못나오는 장애우들을 밖으로 나오게끔 하기도 하죠. 사실 바깥 외출을 자주 못하는 장애우들은 못나오는게 아니라 안나오는 거거든요. 자꾸 못나오니까 안나오게 돼죠.
대하: 술집 같은데 쉽게 못 가는 휠체어장애우들이 많을텐데 저희는 이렇게 집밖으로 나와서 자주 어울리다 보니 아주 지겹도록 가고(?), 콘서트같은 데도 여건만 되면 가는 거 좋아해요. 김경호 콘서트 갔다가 깔려 죽을뻔도 했지만. 앞으로 우리 목표가 나이트에 한 번 가보는 거예요. 암튼 그런 이유보다 그 이전에 컴퓨터통신 자체가 문명의 이기라고 생각하는 게 그 안에서는 장애우라고 해도 화면상으로 대화하는 데에는 아무 꿀림도 없고 그래서 서로 편견없이 다가서서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그냥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점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통신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컴퓨터는 20세기 최대 발명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민수: 컴퓨터 발명한 사람은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이니까(웃음)
- 컴퓨터로 인한 일상의 변화 말고요, 연배가 높으신 분들만큼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살아오는 동안 세상이 좀 많이 달라졌다거나 좋아졌다는 점을 느끼는 것들이 있으세요?
대하: 어느 정도 불평섞인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예전보다는 좋아지긴 했겠죠. 취업이나 이동문제도 자신이 노력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수 있는 여건이 그나마 좀 갖춰져 있잖아요. 특히 이동문제에 있어서는 저도 그렇고 여기 계산 다른 분들도 못 가는 데가 거의 없을 걸요?
민수: 아직 갈 수 없는데가 많지 그런데 정말 장애가 심해서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서 현재 인력이 남은 공익요원들을 차선위반이나 주차단속 요원으로만 활용하지 말고 동사무소에 배치해서 장애우들의 요구가 들어오면 그때 그때 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한 가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건 우리 또래의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특히나 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예요. 이제는 어딜 가도 휠체어타고 들어온다고 쳐다보고 그러는 사람들이 없어요.
대하: 오히려 우리가 뒤번거리면서 쳐다봐요. 어,저 사람은 술 잘 마시네, 저 여자 이쁘네, 하구요.
민수: 그래서 에이, 우리 좀 봐주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웃음) 통신상에서 동갑내기모임이 있어서 내 나이 도래의 비장애우들을 왕창 만난 적이 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술집 가려고 하는데 휠체어를 보고 뭐 꺼리거나 그러지도 않고 "이거 뭐냐, 이거 트렁크에 실어도 되냐" 그래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하다가 배려를 해야 할 때는 내가 느끼지 않게 배려를 해요. 오랜동안 본 친구들도 아니고 처음 만난 친구들인데도 의식이 다들 그 정도까지 돼있더라구요. 물론 간혹 가다 "오바"하는 친구도 꼭 있죠. 제가 화장실 가려고 하면 도와줘야 할 것 같으니까 꼭 따라와요. "안와도 돼", 하고 애기해도 걔속 오길래 "야, 너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데 한두 번 그러다가 다음부터는 내버려 두더라구요.
홍안: 보시다시피 제가 몸집이 작으니까 계단이 많으면 다른 사람이 저를 안아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자연스럽게 "야, 홍안이 안아라", 그리고 여자 친구들한테는 휠체어 들라고 그래요. 계단같은 건 신경 안쓰는데 휠체어도 안들어가고 죄변기도 없는 데는 피하려고 친구들이 먼저 그거부터 보고 술집을 잡고 그러니까.
대하: 가끔 저를 드는 친구들이 "야, 너 너무 무거워, 살 좀 빼", 그래요. 그러면 "야, 내가 지금 38kg인데 이런 나를 못들면 어떻게 자중에 신부 침대위에 내동댕이칠래", 하고 물어요. 그러면 "그래, 앞으로 내가 힘을 기르마", 그러면서 서로 웃죠. 그리고 처음 본 친구들도 화장실 갈 때 한두 번은 따라오다가 그 다음부터는 "그래 갔다 와라", 그래요. 턱이 너무 높아서 내 힘으로 못가게 되면 다시 와서 도움을 청할 줄 아니까.
- 여기 민수 씨 말고는 다들 지하철 타고 다니는 걸로 아는데 휠체어리프트가 그나마 있는 게 다행이지만 작동중일 때 너무 음악소리가 커서 괜히 사람들 시선만 끄는 것 같아요. 다들 사춘기 지난 지도 얼마 안됐으니까(?) 그럴 때 창피하다거나 그러지 않나요?
대하: 저는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쳐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장애우들도 외출할 수 있고, 이 리프트가 있어야 계단을 쉽게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아름다우니까 저를 더 봐줘야 해요.
- 흐음~ 하긴 오토다께도 자신이 초개성파라고 했으니까.
민수: 그것도 솔직히 좀 깨는 얘기야.
홍안: 그리고 음악소리가 필요하기도 해요. 시각장애우들이나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걸어오는 사람들이 미리 알고 패해야 되니까. 사실 리프트가 코너에서 휙 돌 때 부딪힐 염려도 있어요.
대하: 그런데 여름이랑 겨울에는 죽겠어요. 리프트 작동 시키면 너무 천천히 오니까 그거 기다리고 있을라믄.
- 나이든 장애우분들을 만났을 때 세대차이를 느껴본 적이 있어요? 제가 아는 어떤 40대 장애우는 극장이나 공원매표소 같이 어디 줄서야 하는 곳에서 자신은 의도적으로 장애우가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고 해요. 그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배장애우들을 생각할 때 그런 사회분위기를 자신부터 요구하면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서요. 선배들이 기울인 그런 노력의 수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한데요.
민수: 저는 장애우들도 같이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홍안: 저는 주우 장애우들한테 그래요. 상황을 봐서 그래라. 장애우라고 무조건 먼저 배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신체장애가 벼슬은 아니니까, 장애우라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하철에 리프트 같은 시설은 당연히 있어야겠죠. 그런 시설 없이 무료로 타게 해주는 것 보다 리프트같은 시설다 하고 돈 내라고 하면 기꺼이 내겠어요.
대하: 극장같은 데는 시설이 잘 돼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요구하고 밸하는 것 같은데 시설만 잘돼 있다면 우리처럼 양팔은 그래도 쓸 수 있는 장애우들은 혼자서도 이용할 구 있으니까 굳이 "장애우먼저"를 외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시설을 잘 해놓고 장애우먼저 스티카를 떼버리는 건 반대 안해요.
민수: 저도 편의시설만 잘 돼있으면 지금이라도 그냥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다니고 싶어요.
홍안: 어른들에 대해서 세대차이를 느끼는 게 뭐냐면 저나 다른 젊은 장애우들 보면 화장실으 가는데 한 번은 혼자 가보고 계단이 너무 높다거나 해서 도저히 안되는 상황이면 다시 돌아와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위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하는데 좀 나이 드신 분들 보면 화장실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지도 않고 아예 처음부터 딱 옆사람한테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화장실에 같이 가면 자원활동자들이 일을 볼 때까지 기다라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정작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시간에 그렇게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대하: 워낙 저는 나이 든 분들을 신경 안쓰니까 잘 모르겠는데 저보다 나이 어린 장애우들을 만나면 제가 먼저 겪어봐서 걔네들이 앞으로 겪을 일들을 어렴풋이 짐작을 하게 되니까 유난히 마음이 더 쓰여요. 병원이나 모임에서 만난 나이 어린 동생들이 가끔 자신들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도저히 밖으로 못나겠다고 그러면 제가 일단 나가고 정 안될 것 같으면 그때 가서 또 다른 방법을 찾아봐라. 하고 매몰차게 얘기하는데 그러면서 저도 좀 마음이 아프죠.
- 대하씨는 어떻게 살아왔어요? 그 얘기 들으면 세대차를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하: 초듷학교 다니던 중에 류마티스관절염이 발병을 했는데 수술이 잘못돼서 중3때부터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도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인식을 못했는데 고등학교 입학한 다음 날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대하야, 내일 너는 나오지 말고 아버지 오시라고 해라", 그래요. 그런데 다음날 아버지가 갔다 오시더니 "대하야, 자퇴서 썼다. 미안하다", 그러세요. 저는 담담하게 "뭐 검정고시 보면 돼죠", 했는데(정말 괜찮았어요?) 속으로야 괜찮지 않았죠. 그후로는 정말 폐인처럼 살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오락하다가 컴퓨터 좀 두드리다가 만화보고 텔리비전 보고 그러다 자는 게 하루 일과였어요. 그래도 그 삼 년 동안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도 많이 했어요. 솔직히 그 전에는 내가 장애우라는 걸 인정을 안했는데 그 3년동안 인정도 하게 됐죠.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고 그제서야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그 3년 동안 시간을 죽였던 오락이나 만화들이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문화적인 안목을 넓혀 주기도 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 캐릭터디자인일도 할 수 있는 것 같구요. 그 후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독학으로 패스하고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학 휴학중이에요.
홍안: 저도 15살에야 내가 장애우구나, 남들이 싫어하기도 하는 장애우구나, 하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15살때까지는 내가 그냥 좀 몸이 약한 사람이라는 정도로만 알았어요. 집안에서 사촌동생들이나 바로 집 앞의 동네친구들하고 놀기도 했는데 내가 잘 못 걷고 좀 많이 골골거린다는 것 외에는 다른 사람들하고 차이를 거의 못 느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통장이 와서 장애우등록하면 연금(? 수당이겠지)을 받는데 원래는 받을 수 없는 거지만 자기가 손을 써서 받게 해줄테니까 자기한테 그 중에서 몇 퍼센트를 떼달라고 그러더래요. 우리 아버지는 "더러버서 그 짓 안한다"고 하셨고 저도 속으로는 충격을 받긴 했는데 그 때는 무슨 맘이었는지 "아버지, 어차피 저 장애웁니다. 아버지가 인정 안하셔도 장애우니까 등록을 해야겠습니다. 그거 하면 뭔가 좋아질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사실 등록한 다음에 수첩 하나 생긴 거 외에는 달라진 게 없어요. 그러다 부모님이 저 때문에 신앙을 가지셨고 그래서 성당의 장애우모임에는 나가기 시작했어요. 한 번은 모임에 가야 되는데 비가 억수같이 오는 거예요. 그 빗속에서 한 30분을 기다려도 택시가 안 서는데 그 비를 다 맞으면서도 아버지가 포기를 안하셔요. 그래서 저도 어정쩡하게 같이 기다리는데 "아, 내가 다른 사람이 싫어하기도 하는 장애우구나", 하는 사실을 그떼 처음 깨달았죠. 전 부산의 한 장애우야학에서 공부를 배우다가 지금은 서울에 올라와서 야학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어요. 17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에 들어갔는데, 컴퓨터랑 배우는 것은 좋았지만 도움을 받는 거에만 익숙해지는 게 싫어서 그냥 서울로 올라왔어요. 지금은 공공근로를 하고 있는데 끝날 떼까지 취업 못하고 그래도 한시적 생보자 신청 같은 건 안할 생각이에요. 지금도 제 생활이 빝바닥이라고 생각하지만 웬지 저 보다 안된 분들의 몫을 뺏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은 생보자 신청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 이 두 분에 비하면 수동 씨는 특수학교 고등부 과정까지 나왔으니 비교적 정상적(?)인 과정을 보낸거죠?
수동: 특수학교 고등부 과정에서는 대학아니면 취업 이게 다에요. 특수학교에는 기숙생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고등부 과정에서까지도 수업마치고 아이들끼리 기숙사에서 어울려 노는데 졸업한 다음에는 그냥 집에 있거나 특례입학제도 때문에 대학에 매달리기도 하는데 정작 대학에 가서 뭘 할 지를 모르는 거예요. 애들이 중3, 고3때가 되면 장애가 이런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일반학교 다니는 애들보다 특수학교 다니는 애들이 더 심각해요.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학준비를 하다가 집안상황 때문에 진학을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반도체제조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특수교육도 조기에 장애특성에 맞게 직업재활 같은 걸 시켜야 돼요. 그 분야의 전문적인 리더가 있어서 시간때우기식이 아닌 적성에 맞게 비전도 있는 직종으로 교육을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 생가많은 수동 씨가 평소에 느낀 점이 많았나 보네요. 그런데 이제21세기, 그것도 밀레니엄이라고 하는 새로운 천년이 되잖아요. 일각에서는 서양중심의 양력을 기준으로 한 시대기준일 뿐이라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시대 구분을 하는 것은 흐르는 강물에 깃발을 꽂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들은 머 밀레니엄이라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새악이 드세요.
대하: 밀레니엄에 대해서는 좀 특별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이 세기말인데 보통 세기말도 아니고 열 세기가 가고 새로운 열 세기가 시작되는 거잖아요. 내 자신이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그 역사적인 순간을 같이 나누고 함께 한다는 게 참 특별한 느낌이나 애정을 갖게 해요. 우리는 참 특별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뭔가를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밀레니엄이라는 의미를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수: 우리는 시간의 연속선상에 서 있지만 새천년이 시작되는 시기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생각의 전환점을 만드는 거죠. 저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20세기의 답답한 구태를 버리는 전환점으로서 깃발을 꽂는 것, 그래서 밀레니엄이라고 호들갑을 ㅎㄴ 번 덜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 21세기에는 버리고 갔으면 좋겠는거 없어요? 우리 사회나 자기 자신 모두에게.
홍안: 밀레니엄 얘기가 나왔는데 비장애우들도 바뀌어야 겠지만, 장애우들이 먼저 바뀌어야 해요. 뭐 무슨 장애우, 무슨 장애우 하면서 나뉘어 가지고 집단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거 다 버려야 돼요. 어차피 다 똑같은 장애우잖아요.
민수: 사회적으로나 제 개인적으로도 별 무리 없이, 사고 없이, 되도록 나쁜 일 없이 좋으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오늘 대하얘기를 들으니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교육문제인 것 같네요. 왜 학교에서 안 받아줘서 대하같은 어린 사람의 기를 겪어버리냐 그 말이죠. 대하야 제 자리로 잘 돌아왔지만 21세기에는 당장 그런 것부터 바뀌어야돼요.
대하: 저는 새천년이 오면 사람들이 좀 느긋해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지하철 많이 타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람들이 뭘 하든 너무 바빠요. 하날가도 더 갖지 못해서 안달이고, 조금이라도 빨리 뭘 못해서 안달이죠. 이제 그람 좀 느긋해지고, 한 걸음 천천히 가면서 주위의 풍경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바보들이 좀 대접받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묵묵히 열심히 자기일 하고, 손해보더라도 한 번 하하 웃고 툭툭 텰어버리는 바보들이 인정받게 된다면 장애우문제는 뭐든 모든게 다 해결이 될 것 같아요.
수동: 제가 최근에 다시 취업을 하면서 절감한 거지만 공단 사람들 사고방식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저랑 취업상담하는 분은 휠체어탄 걸 보더니 "(취업업체에) 층계 없어야 되겠군요. 화장실 수세식이어야 되겠군요", 하면서 따지고 들어가며서 마땅한 업체가 없대요. 없는게 당연하죠. 그런 데가 과연 어디 있겠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통신으로 알아보고 이번에도 혼자 힘으로 취업했고 제가 알아봐서 다른 친구 두 명도 소개해주고 그랬어요. 공단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인식이 좀 더 바뀌고 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 개인적으로는 뭐 바라는것들은 없어요?
수동: 저는 사실 2000년이라고 해서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한 해가 시작하는 거죠, 뭐. 그 동안 힘들었던 것이나 제가 생각했던 것, 계획했던 것이 막히지 않고 풀려나갔으면 좋겠어요. 직년부터 대학에 가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직장생활하면서 틈틈이 공부도 하고 돈도 좀 모았는데 갑자기 한 석달간 입원을 하게 되는 바람에 병원비로 모아놓은 돈을 다 날리고 말았어요. 그래도 그 동안 사회복지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이유같은 것이 안정되게 잡혀서 좋아요. 그래서 이제 다시 본격적으로 준비를 할 거예요.
대하: 내년에 반드시 결혼해야 합니다. 제가 스무살에 스물다섯살까지 장가 못가면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맹세한 바가 있기 때문에 말이죠.
민수: 경험에 의한 바로는 스물여섯부터 여자가 생기기시작하던데.(웃음) 암튼 다들 새천년 해돋이 본다고 동해로 가는데 나는 어떤 계획을 세웠냐면 1월1일 첫해지는 걸 보러 서해로 가는 거야, 괜찮지?
- 99년 12월 31일 자는 해 보러 서해로 가려는 사람들도 주위에 보니까 많더라구요.
민수: 야, 그건 더 괜찮네. 나도 그 계획으로 바꿔볼까.
흑자는 어찌 보면 허상에 불과한 "2000년" 이라는 이미지에 우리가 이렇게 "속아주는" 이유를 "계획적인 시간개념으로 삶을 더 잘 요리해 보자는 것" 이라고 현명하게 해석하고 있다. 사실 새천년을 둘러싼 모든 공론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꿈꾸면서 모든 인류가 잘 살아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개인들에게 있어서는 앞으로의 삶의 시간을 잘 보내자는 것이고, 함께걸음은 이 4인의 젊은이를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들의 앞날은 우리 모두의 앞날과 전혀 무관하달 수 없기때문이다.
스스로 가로되 나는.
김민수
산업재해로 인해 척수장애우로 살게 된 스물 일곱의 청년, 대한산재연합중앙회라는 곳에서 잠깐 일했었고, 또 주위 장애우들과 어울리며 사격이라는 스포츠를 알게 돼서4년 전부터 사격선수를 하고 있다. 웹마스터로 잠깐 취직었는데 실력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잘렀다. PC통신이란 곳을 기웃거리다가 현재의 "나누리"라는 동호회의 시삽까지 하고 있는 참한 청년(?)
윤대하
제품명 : 윤대하/ 구분 : 남자/유통기한 : 현재까지 24년, 앞으로 얼마나 있어야 상할지는 두고 봐야함/ 판매업소: 대하네 집/ 특정 성분: 음주가무에 능하고 잡기에 도통한 1급 지체 장애우로 특별히 잘 하는 것은 없지만 특별히 못 하는 것도 없음/ 사용처: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데 쓰면 그럭저럭 쓸만함/ 크기: 내용량:165Cm, 39kg/*바람이 잘 드는 곳에 보관하시고, 가금 별의 기운을 받도록 해 주서야 함. 그리고 비오는 날은 비 맞게 놔두어야 사용에 편리함.
황수동
나이 : 22살
성별 : 남
거주지 : 인천
성격 : 착하고(?) 모든 것에 열심이다.
특히 : 없는 게 특기임
박홍안
나이 : 25세
성별 : 남
거주지 : 천호동
성격 : 터프(?)한 부드러움(?)
특기 : 음주가무
(편집자주 : 이름 게재를 거부해 홍안으로 명명됨(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같이 술을 먹으면 알게 됨)
*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나머지 두 사람의 너무도 짧은 소개
진행 및 정리 한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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