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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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안전망을 확충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전에 벌써 "복지제도를 확충할수록 근로의욕을 감퇴시켜,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논리의 복지병 운운하는 기우가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현 경제현실은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저성장 고실업의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허선 교수의 주장을 들어본다.
현재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와 이에 따른 대량실업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잇다. 현재 정부에서 발표하고 있는 실업자수만 하더라도 1백70만명을 넘어섰고, 현 실업통계에서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 실망실업자나 무급가족종사자 그리고 불완전 취업자까지 포함하게 되면 4백만명 정도가 현 경제위기 하에서 생활곤란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과 부양가족끼리 포함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는 최소한 전 인구의 1/4이상이 현재 아무런 생계대책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업문제는 곧 빈곤문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해서 완전고용을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최근의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업은 없앨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줄이기도 무척이나 어렵고, 또한 실업을 줄이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고실업 사회에서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만큼 실업으로 인한 실업자 가정의 생활곤란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장기간 완전고용 상태에 있었기에 실업에 대한 대비책, 혹은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단기간 내에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함으로써 자살률, 이혼률, 결식아동 비율이 증가하는 등 많은 실업자와 그 가족의 몸과 마음이 안녕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생활상의 곤란으로 인한 가출 등으로 인하여 가족간의 이별이 급증하고, 생계형 범죄가 창궐하고, 전국적으로 결식아동의 수가 20만명에 육박하는 비참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안녕하게 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좋은 대책은 일자리를 늘려서 모두 재취업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구조는 실업자를 양산해 내게끔 되어 있다. 정부의 긴축재정과 외국 자본의 유출로 인해 국내의 자본 회전이 느리게 되었고,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들은 도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실업자수가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짧은 시간 안에 과거와 같은 원상복구는 기대하기가 힘들어졌고, 대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앞으로의 한국사회는 높은 실업률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즉, 실업자 모두에게 일자리를 새롭게 마련해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단기가 내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실업자가 직업훈련이나 기술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일자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취업할 곳이 없거나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일하던 사람이 실직을 당할 수 있다. 또한 벤처산업을 육성한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모험일 뿐, 일자리 창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이와 같은 반응은 연쇄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면 결국 자본과 기술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실업자군으로 남게 된다
그들은 실업자이면서 동시에 빈민이다. 결국 실업문제는 빈곤 문제가 된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어떻게 실직자 가족의 몸과 마음을 안녕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실업자 가족의 생존과 생계 보장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실직자(가족)에 대한 생계곤란 대책보다는 경제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미국과 영국의 경우 작은 정부, 각종 규제철폐 등으로 실업률이 감소되었지만, 오랜동안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해 온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어 왔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래서 일부 단체에서는 실업대책의 기본 방향을 임시 고용을 확대하기보다는 경제활성화를 통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불확실한 벤처기업을 육성하기보다는 흑자기업이 도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내수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경기를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늘려야 된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 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실업자 가족의 생존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용보험이 불과 4년 전에 실시되어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앞에서 예를 든 미국과 영국의 경우는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는 대상자의 비율이 전국민의 10%를 초과한다. 다시 말해 미국과 영국의 경우는 실업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가구의 기초생활은 정부가 직접 보장해 주는 반면, 우리 나라의 경우는 그러한 장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현 생활보호대상자는 전 인구의 3.4%에 불과함)
한달 공공근로 수입 50만원은 최저생계비에 못미쳐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방식의 경제 활성화 정책만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그러한 방식의 실업대책을 펴 나갈 수 있는 것은 공공부조라고 하는 사회안전망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실업자, 혹은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생계보조비는 매우 제한적이다.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만이 실업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나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번의 경제위기가 가르쳐 준 만큼 실업자에 대한 생계보장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현재 정부에서 마련한 실업대책 예산 중 저소득층 실업자와 기존의 극빈층에 대한 생활보장예산으로 일정비율을 할당한 다음 나머지 예산을 경제활성화를 위한 예산으로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생계 지원금을 직접 주기가 아깝다면 그들에게 공공근로사업과 같은 노동을 전제로 한 생계비를 지원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실직자가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더라도 1일 2만원 전후의 소득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실직자가 공공근로를 통해 한달에 최고 50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가족수가 4인 이상이라고 한다면 그 정도의 소득으로는 최저생활도 할 수 없다. 즉, 50만원은 해당 가구의 최저생계비(1988년 보건사회연구원 추정 대도시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84만 2천원)에 미치치 못하는 금액일 뿐이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정부에서는 최소한 해당 가구에게 최저생활을 하는데 부족한 부분만큼은 지원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헌법 제 34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현 경제 위기 하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이러한 법 원리를 우리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반드시 통과되어야만 한다. 특히 이 법안은 원칙적으로 노동 무능력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생계비를 지원하는 현행 생활보호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정하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는 못하는 저소득층에게는 예외 없이 국가가 생계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사회보장의 기본 골격을 갖출 수 있는 법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법안이 현 경제위기 항에서 날로 증가하는 가족해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최우선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사회정의의 원칙에도 부합한다는 점에서 이 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 "복지병" 운운하면서 이 법의 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통과될 경우,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실업장의 근로의욕이 저하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획 예산위 한 고위 관계자는"실업대책에 투입되는 예산은 도로 건설처럼 언젠가 회수되는 투자가 아닌데다 소득이전적 공적부조는 망국병을 초래한다"고 발언하여, 현재 우리 사회의 근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족해체와 이에 따른 사회적 불안에 대한 무감각성과 무책임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저소득 실직가정은 무엇으로 사나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복지병의 논리는 "복지제도를 확충할수록 근로의욕을 감퇴시켜,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훼손한다"라는 가정에 기초하여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학문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보장하고자 하는 생활수준은 결코 저소득자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킬 정도로 높지 않다. 그 정도의 급여수준 때문에 근로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이 근로를 포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 뿐이다.
비유를 하자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179cm의 신장에 몸무게는 43kg인 현 우리 나라의 사회보장 수준을 46kg 정도로는 늘려야 되지 않겠느냐는 내용이 담겨 있을 뿐이다. 키에 비해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사람들이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이나 성인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듯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어 저소득 실직자나 빈민들에게 현재보다 조금 높은 복지급여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보장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 때문에 급여대상자가 복지병에 걸릴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약간의 "복지병"이 우려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경제 상황하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현 경제현실은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저성장 고실업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복지병 운운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도대체 저소득 실직자 가정은 무얼 해서 어떻게 먹고살란 말인가?
글/ 허 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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