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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과 "나"

[특집Ⅱ] 함께걸음 창간 11주년 축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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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먹은 마음으로 백년해로하는 "함께걸음"


  어느 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조금씩 지쳐가던 내게 "함께걸음"이란 의미심장한 이름표를 단 책 한 권이  날아들었다. 그들이었다. 생전 햇살 한줌 들 것 같지 않던 "장애우"란 음지에 희망을 보투느라 야무지게 입술 사려물던 살가운 이름들, 그로부터 10여년 함께걸음은 늘 내 곁에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글 끄적이며 밥술이나 먹고사는 지역신문 기자가 되기까지 내가 겪은 변화만큼이나 함께걸음도 많이 달라졌다. 마분지던 종이가 때때옷을 입었고 키가 커지고 몸무게도 늘었으며 나이를 무려 122살이나 잡수셨다.
  아직도 함께걸음이 좋다. 초지일관 사람들을 향해 보내는 따스운 시선이 그렇고 상기도 멀고 먼 평등평화로운 세상을 어둔 밤 골목길에 내 걸린 외등하나처럼 장애해방의 전형을 제시하는 뼈다구가 있어 참 좋다. 그리고 여전히 돈도 안 되는 일에 목숨거는 벅시겉은 장애우권익 문제연구소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살 맛 난다.
  그래, 장애우 시인 이선관이 "나는 초치일관이라 말하는데 세상은 초지일관으로 알아듣는다" 했지만 우리 세상이 뭐라 든 초지일관 살자. 더불어 사는 참 좋은 세상, 신새벽이 동터오는 그날까지.

글/  한관호(남해신문 취재부장)

 

 

함께걸음 속의 세상이 세상 밖에서도 이뤄지길...

  소외된 장애우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함께걸음을 받아 보며 적잖은 위로를 받곤 한다. 잡지를 처음 넘기면서 "함께걸음이 만난 사람"은 사회의 훌륭한 인텔리들과 지적인 데이트를 하는 느낌이 들어 좋고 "기획좌담"에서는 장애의의 실제적인 문제를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토론하며 해결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경증장애우 위주로만 토론하지 말고 중증장애우의 살길도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호에는 "장애인복지법개정법률안전문"을 게재해 장애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법률을 알 수 있도록 해줘서 좋았다. 시간이 있으면 천천히 잘 연구해 볼 것이다. "초점"에서는 최근 장애계의 시사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어줘서 좋다. 자칫 최근 정보에 처질 수 있는 지방의 장애우에게도 전국에서 벌어지는 최신의 긴급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장애우운동사"를 변역 연재하는 것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위도가 엿보여 좋다. 그러나 그 옆에 함께 실리는 "해외서적안내"에서 소개되는 책들이 전부 원서일텐데 영어가 짧은 사람은 일고 싶어도 읽지를 못 할 테니 걱정이다. 소개된 책들이 모두 번역돼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혼자 있어서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울 때 "사람사는 이야기"를 읽고 나보다 훨씬 더 외로운 사람들도 이처럼 훌륭하게 잘 극복하며 사는 것을 보고 많은 도전과 위로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이 있는 이야기"와 "문화"면은 수준 높은 문하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 해 주고 공개구직", "배우자를 찾습니다" 등은 장애우 개인의 필요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아서 좋다. "인터넷 속의 장애우세상"은 앞서가는 정보에도 눈을 뜰  수 있게 해줘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목욕, 화장실사용, 운전, 학교다니기, 직장생활 등을 혼자 해내는 것을 꿈꾸는 나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경제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에 갑자기 우울해 진다. 경제력이 없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오게될까? 함께걸음이 그 시기를 조금이나마 앞당겨주리라 믿는다.

 

글/ 정현정 (전주 완산구 서신동)

 


진정한 변화를 가능케 하는 도구가 되길

  "함께걸음"을 꽤나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로서 "함께걸음"이 표방하고 있는 몇 가지를 요약해 보면 대개 이런 거들이 아닐까 한다.
  먼저 "함께걸음"은 참신하고 무게가 있어 보인다. 참신하다는 것은 광범위한 주제와 읽을 거리의 차원에서 독자의 관심을 미처 생각해보기 못했던 분야들을 소개해 주는 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무게가 있다는 것은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라는 조직의 재정적 연약성에도 불구하고 "비싸 보이는",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어느 주간지와도 비교가 될 수 없는 질 높은 인쇄매체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냉대와 편견과 무력함과 빈곤의 대명사처럼 간주되고 있는 장애우를 대변하는 대중매체가 반드시 궁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어려운 선택이었겠지만 이 참신하고 무게 있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긴박하게 추진되고 있는 입법, 서비스의 내용과 전달체계의 변화 등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셜명 해 주는 분석적 역할이 고맙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역학은 공식적인 정책차원에서의 진단과 움직임을 직접적인 수해자가 되는 장애우들에게 바로 알려야 된다는 사명감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추진되고 있는 변화의 내용을 바로 알지 않고서는 Empowerment(권리신장)라는 가치의 실현은 어려울 거이다. 이런 점에서 "함께걸음"은 이론과 실제, 정책입안자와 풀뿌리, 또는 구상(idea)과 행동(action)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함께걸음"이 표방하는 부조리(sense of injustice)에 대한 분명한 입장, 반드시 대변되어야 할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는 의지는 변화를 추구하는 힘찬 발걸음이다. 단순한 읽을 거리에서 변화를 가능케하는 도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글/ 김형식 (중앙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함께걸음"이 있는 세상

  나는 "함께걸음"이 좋다. 혼자가 아니어서 좋고, 멈추지 않아 좋다.
  내가 처음 "함께걸음"을 만난 것은 1991년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함께걸음"은 함께 할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애우였고, 장애우들과 호흡하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으니 표정도 단조롭고 목소리도 우울한 적이 많았다. 더러는 한풀이 같기도 했다. "함께걸음"을 넘기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함께걸음"은 함께이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름에 담긴 집념 못지 않게 장애계의 성원이 컸던 때문이리라, 내가 "함께걸음"을 만난 이후로 "장애"라는 명찰을 달고 많은 지면들이 생겨나 기도했지만, "함께걸음"의 잰걸음을 따르지 못했다. 때로는 날 세운 표창 같은 예리함으로, 때로는 오솔길의 풀잎 같은 정겨움으로 "함께걸음"은 쉼 없이 걸으며 사람들의  손을 끌었던 것이다.
  음지의 치부를 해부해 도려내고, 같이 사는 참 좋은 세상을 꿈꾸며 시지 않고 "함께"를 외쳐 온 것이 어연 11년이라고 한다. 인간이 위해한 것은 함께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냉혹한 자연법칙을 극복하고 높은 지성과 도덕성을 이루어낸 유일한 존재이다. 지성을 구축하고 발전시켜 온 두 힘이다.
  도덕성은 남을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언행이다. 반면에 지성은 그 언행을 가능케 하는 합리성이다. 그러기에, 문명인의 진실은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행위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그 동안 쉼없이 "함께"를 외쳐온 만큼, 이제부터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 하나 "함께"임을 확인할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손길마다 전해지는 온기로 신뢰를 엮고 서로 하나의 지평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 함께 걸어가길 소망한다.
"함께걸음"이 있는 세상은 지성과 도덕성이 넘치는 세상임을 믿기에.

 

글/ 김주영 (국립특수교육원 교육연구사)

 

 

장애를 자진 사람들끼리의 거리도 좁히는 함께걸음이 되길

  함께걸음은 각 장애 유형별 단체에서 그들만을 위해 발행하는 잡지들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사실 시각장애우들의 불편함과 생활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 그런 면에서 먼저 함께걸음은 다른 장애를 가진 장애우들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 갈 수 있도록 하고, 더 나아가 장애우와 비장애우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힘써주기를 바란다.
  우매한 백성은 망한다고 했듯이 우리 장애우들이 사회 보지가 구걸이나 동정이 아니라 당연히 찾아야 할 권리라는 것을 알아가도록 하는 의식을 형성하는 데도 일익을 담당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쉽게도 인쇄 매체인 함께걸음은 시각 장애우에게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아무리 좋은 잡지라도 읽히지 않으면, 아니 읽을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약시 장애우인 나로서는 중요한 것 외에는 큰 활자인 제목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간혹 "사랑의 소리" 방송에서 소개되는 글을 듣는 것에 만족해야 했었다. 그러던 중에 함께걸음을 녹음테이프에 담아 보내준다고 하여 무척 반가웠다. 비로소 깊이 있는 내용까지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정보 습득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각 장애우들은 점자로 된 책을 읽거나, 녹음도서로 듣거나, 스캐너나 약시용 확대보조기를 이용하여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점자도서가 녹음도서에 비해 목록을 찾아 읽기가 쉽기는 하지만 중도 실명 인에게는 읽기가 쉽지 않아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읽을 수 있는 녹음도서가 매우 유용하다.
  그런 면에서 함께걸음이 녹음테이프로 제작 된지 6개월만에 중단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쪼록 다시 제작되어 시각장애우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함께걸음의 한 가족이 되기를 바란다. 중단 이유가 제작비의 문제라면 다른 시각장애 기관들처럼 반송용 케이스를 만들어 녹음 테이프를 다시 활용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월간 "함께걸음"이 올바른 현장고발, 대안 있는 비판과 정책 제시로 장애계의 명실상부한 대변지로 자리 매김 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함께걸음이 창간 11주년을 맞이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글/ 이보훈 (서울맹학교 고등부 2년)

 

 

"함께걸음" 창간 11주년을 축하드리며

  사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팔 다리가 다르고 걷는 자세까지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특성상 "함께 걷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학창시절 교련시간에 사열이란 걸 해 보고 군대에 가서 행군을 해 본 사람이라면 똑같은 길이라도 함께 가기가 얼마나 힘드니 일이라는 걸 쉽게 공감할 것이다.
  "함께걸음"이란 책제목이 말해 주듯이 함께 하는 운동을 11년째 벌이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함께걸음의 열 한 번째 생일을 축하드리며 부족하나마 졸필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충북대하교를 다닌 때 행글라이더 추락 사고로 경추를 다쳐 사지마비 장애우로 20년 넘게 누워지내고 있는 중증 장애우이다. 덕분에 별로 장애우들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이 없던 사람이 장애 당사자가 되어 함께걸음이란 잡지도 초창기부터 접하게 되었다. 게다가 충청남도 등록 정기 간행물 "참소망"(24∼32면) 회보의 편집인으로서 다른 잡지들을 통한 정보습득과 편집기술 등을 배워야 하는 입장이어서 열심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함께걸음은 장애우에 대한 정보나 문헌을 접하기 어려운 중소도시 지방 아마추어 회보 발행·편집인에게 큰 도움과 지침서가 되었다.
  아부성 발언은 그만하기로 하고, 함께걸음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장애계의 토양에서 81년 "세계장애인의 해"와 88년 반짝했던 장애우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이해를 지속시키고 계몽하는데 나름대로의 몸부림을 치며 큰 기여를 해온 게 사실인 것 같다.
  한편 돌이켜 보면 함께걸음의 초창기는 비판적인 기사와 장애계의 문제점들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함으로써 국민의식을 일깨우는 광야의 소리였다고 한 수 있다. 그래선지 다수인 비장애우 사회에서 함께걸음을 통해본 장애계는 온통 문제 투성이의 골치 덩어리였고, 함께 걷기엔 좀 어려운 이방인 취급을 당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장애우들 사회에서도 너무 솔직한 자기고백과 적나라한 자기노출로 오히려 부끄러움과 웃기지도 않는 자기 체면치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항아 취급을 당했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꼭 장애우가 아니더라도 함께 할 수 없는 외로움과 함께 해 주지 않는 집단적 배타주의의 극치인 "왕따"는 참을 수 없는 아픔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하듯이 열한 살이 된 함께걸음은 어느새 장애계를 대변하는 월간지로 우뚝 서서 큰 나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열한 살 난 소년보고 큰 나무라면 모두가 웃을 것이다, 변변한 장애우 문화 때문에 이런 억지도 가능할 것이다.
  11년은 사람으로 치면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 뛰어 다니는데 조금 자신이 붙은 소년으로 성장하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나 전망은 밝다고 본다. 열 한살박이 소년에겐 너무 큰 기대일까? 한동안 연재되던 "철학단상"이 빠져 아쉬운데 꼭 장애우들에 관한 글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글과 좋은 편집으로 누구나 함께 볼 수 있는 잡지이길 소망한다면...
  꼴불견이란 편견도 자주 보다 보면 친숙해지듯이. 어느새 광야의 소리가 우리의 소리가 돼고, 왕따가 10년지기 이상의 친한 벗으로 다가온 "함께걸음"이 쉽지 않은 걸음이겠지만 모드가 함께 걷는 사회를 이루는데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

 

글/  정상용 (공주 소망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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