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21세기, 몸은 80년대인 뇌성마비인의 현실
본문
98년을 맞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문제는 다시 중증장애우의 삶의 질이다.
IMF지원으로 연명하는 국가로 전락했지만 장애우대통령의 탄생과 새 정부의 출범으로 그래도 이전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애써 가져보는 이 때에 장애우복지 해법의 출발은 여전히 중증장애우에게 돌아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뇌성마비장애우의 영역은 독특한 성격을 갖는다.
다른 신체적인 요건과 상관없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극소수를 제외한 모두가 영락없는 중증장애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뇌성마비인들의 삶의 모습은 이전 70,80년대 장애우의 현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과연 희망의 단초는 찾을 수 있는지 알아 보았다.
중증장애우 중에서도 소외받는 뇌성마비장애우
"지능이 정상일지라도 그 지능의 정도를 표현하는 신체의 거의 모든 부분에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바롬회 이자영 사무국장(동산장애인종합복지회 사무국장)은 뇌성마비장애우의 특징과 현재의 문제점을 이렇게 단적으로 설명했다. 계속 뒤틀리는 얼굴과 팔다리만 보고는 그 아이에게 어떤 잠재력이 있을 지 모른 채 학교조차 보내지 않은 부모님이 많아 교육수혜율이 다른 장애우들보다 휠씬 낫다고 많은 뇌성마비인들은 지적했다.
낮은 교육률과 노동률에 있어 한없이 떨어지는 신체 조건을 갖고 있는 이들 중증뇌성마비장애우의 삶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노점상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은 그나마 운좋은 경우에 속한다. 청년뇌성마비인들의 모임인 바롬회에서 지난해 서울경기지역의 20세 이상 뇌성마비인의 취업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72명 가운데 생계수단을 갖고 있는 사람은 33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노점상을 하거나 복지기관의 작업장에 나가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한 숫자이다. 그나마 바롬회나 뇌성마비복지회와 연계를 갖고 있는, 남들보다는 활동력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 과반수가 넘는 39명은 직업이 없었다.
뇌성마비장애우의 정확한 인구가 얼마나 되는 지도 아직 파악이 안되고 있다. 지체장애에서 구분된 인구수를 공식적으로 처음 조사한 95년도 장애인구실태조사의 추산결과 1.7%인 약 1만2천3백여명으로 조사됐다. 뇌성마비복지회 오명원과장은 "그러나 장애특성상 뇌성마비인들은 언어장애나 정신지체, 중복장애 항목에 폭넓게 걸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수치 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게 때문에 뇌성마비인의 복지문제도 복합적인 접근과 개선이 필요하다. 이말은 곧 뇌성마비인만의 독특한 문제를 끄집어 내기가 어렵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장애영역과 마찬가지로 중증장애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뇌성마비인의 복지에 있어 보다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이 가장 드러나는 곳이 바로 지체장애 특수학교다. 소아마비가 거의 국내에서 사라지면서 특수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상은 쉽게 발견되는 사실이기는 하다. 그리고 경증장애학생들은 특수학교에 왔다가 특례입학의 실시로 인해 더욱 넓어진 대학문을 더욱 확실히 두드려보기 위해 일반학교로 돌아가고 있다. 결국 특수학교에는 신변자립도 불가능한 중증학생들만이 남겨지게 될 조짐이지만 아직도 교육환경은 경증중심의 체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개별화교육 및 사례별 서비스로 나아가야
지체장애특수학교 명혜학교 김주영 교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별화교육이 어쨌든 다가올 중증중심의 교육체계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를 보조해야할 교육정책과 재정 등의 뒷받침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증학생이 많아진 상황에서 개별화교육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급당 인원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신지체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스스로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 없는 학생들이 많아질 경우 학교는 덧셈 뺄셈을 가르치는 학습위주가 아니라 생활기능중심의 교육을 진행하면서 가정의 부담을 덜어주고 학교생활 이후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기능을 담당할 것이라는 것이 김 교사의 조심스런 전망이다.
뇌성마비복지회 김학묵 회장은 "앞으로의 뇌성마비인을 비롯한 중증장애우 복지문제는 광범위한 케이스 워크(사례별 지원서비스)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복지회가 진행중인 재활기기 보급사업이 기성제품을 일괄적으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신청자의 개별적인 신체조건과 요구를 수렴해서 그 사람에게만 맞는 특수의자와 특수휠체어를 제공하기로 한 것도 그러한 방침에 의한 것이다.
고용문제에 있어서도 특별한 접근이 필요하다. 중증장애의 신체조건을 갖췄다고 해서 복지기관의 보호작업장을 일괄적인 대안으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이자영 씨는 "물론 이들이 하루에 해내는 노동분량은 정신지체인등의 다른 장애우들 보다도 훨씬 적지만 지능은 정상인 뇌성마비인의 경우 보호작업장의 직종의 대부분인 단순 반복적인 일에는 금방 싫증을 내고 근로의욕만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뇌성마비인들은 차라리 노점상을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육재활센터 한창완 대리는 "기존의 작업장을 뇌성마비장애우와 같은 중증장애우 중심으로 전환하려면 각종 작업보조기가 우선 지원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작업장 체계에 그와 같은 보조기구를 설치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그것은 결국 국가정책적인 지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외국의 복지현실을 돌이켜볼 때 해법은 분명 있다. 사회 평균적인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준의 장애연금제도를 실시하여 소비자로서의 구매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손상된 기능을 보완하는 각종 재활기기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개별 장애우의 삶의 개선을 고민하는 복지서비스요원이 숫자가 더욱 많아져야 할 것임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다시 국내로 눈을 돌려 볼 때 현재와 같이 아무런 지원이 없다면 특히 취업의 측면에서 뇌성마비장애우는 극소수의 경증과 대부분의 중증으로 그대로 나뉘어질 뿐이다. 최근 중증장애우로 대변되는 정신지체인의 경우 부모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권리찾기운동과 함께 지원고용제도 도입 등 나름의 대안모색이 활발하지만 뇌성마비장애우 복지는 답보상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체 뇌성마비인들의 삶의 모습을 둘러보면 흡사 70, 80년대 장애우의 현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말 논의가 시작된 "장애인종합법(가칭)"은 그 근본체계를 중증장애우중심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논의진행에 따른 제정과정 추이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또한 장애인복지5개년계획에서도 "중복장애가 대부분인 뇌성마비, 뇌졸중을 별도로 분류"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제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아 나가려는 시도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체 장애우복지 수준의 실제적인 개선없이는 뇌성마비 장애우의 복지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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