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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승리라고요, 왜죠?"

뇌성마비장애우 5인의 특별할 수밖에 없는 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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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장애 때문에 정신지체인으로 오인받는 일이 빈번한 뇌성마비장애우들은 면접에서 번번이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다.
장애도 가볍고 최고 교육과정까지 마치고도 일반 사업장에 취업을 한 뇌성마비장애우가 아직까지 손에 꼽을 정도인 것은 바로 그 이유다.
그런데 여기 어려움 속에서도 비장애우들과 어깨를 함께 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한 장애우의 특별한 사례라고만 치부하지 말고 이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또 주위동료들과 함께 겪은 시행착오를 눈여겨 보고 되풀이 하지 말자.

96년도에 처음 탄생한 뇌성마비택시기사

  전 국민의 양심검증을 실시했던 "이경규가 간다"의 첫 양심냉장고 주인공이었던 뇌성마비장애우 부부 이종익(37) 김유화(35)씨. 이종익 씨의 경우 곰두리차량봉사대원으로 활동을 할 만큼 운전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얼굴근육에 경직이 자주 일어나고 언어장애가 있는 그에게 생업으로 삼고있는 인형장사가 아닌 택시영업을 하도록 권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순용 씨(36)도 마찬가지였다. 봉고차에 자동차용품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 일이 자본이 넉넉치 않았던 그에게는 여러모로 무리가 되는 사업이라고 판단하고 다음 직업으로 영업택시기사를 생각했을 때 주위의 많은 뇌성마비인들까지 해도 안될 일 같다고 말렸다. 이미 적지 않은 지체장애우를 기사로 채용하고 있던 어느 택시회사 운영주도 뇌성마비장애우는 곤란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많은 사람을 대할 일이 없는 중장비기사가 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가 소속돼 활동하던 동산장애인 종합복지회가 인맥을 총동원해 적극적으로 백제운수의 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자 결국 "어쨌든 한 번 해보자"고 회사 경영자가 마음을 돌렸다. 그 당시 그에게 너무나 중요했던 취업은 그렇게 주위 사람들이 잠시만 생각을 바꾸면 되는 간단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순용 씨와 같은 뇌성마비장애우의 경우 운동신경이 아무래도 늦어 사고위험이 많을 것이고, 언어장애가 있는데 손님들을 많이 대해야 하는 영업을 어떻게 하느냐는 선입견의 벽이 무척이나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차량에 핸드클러치를 달아야 하는 다른 지체장애우와 달리 그의 경우에는 운전할 때 어떠한 보조장치도 필요없다. 따라서 택시회사 차원에서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적법한 시험을 거쳐 영업택시기사 자격증을 따놓았던 그가 거절당한 것은 순전히 뇌성마비장애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다. "한 일간지에 보도된 것처럼 제가 처음 영업을 나갔을 때 세 번째 손님까지 저를 보고 그냥 내리더란 얘기는 거짓입니다. 손님들과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

 

"여성과 뇌성마비장애의 조건을 뺐다면..."

  사회복지법인 정립회관에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안상희 씨(35)도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경우가 많은 치료레크리에이션을 석사과정에서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너는 아무래도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분야가 맞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선택할 때 휴먼서비스 즉, 인간과 인간을 서로 이어주는 사회복지학에 대한 매력이 컸는데 이 분야에서 대인업무를 하지 않는 일은 없거든요. 치료레크리에이션이라는 전공도 그 연장선상에서 봤기 때문에 망설임은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아직 전화업무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발음이 분명치는 못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뭐라고 그러는 거야"라며 뚝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미국유학 시절 손쉽게 이용했던 릴레이서비스와 TDD 전화기가 그립기만 하다. 이 두 서비스는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의 말을 교환원을 통해서나 문자를 입력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이 문자로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정부가 모든 지원을 해서 대부분의 사무실에서 손쉽게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공부를 계속하는 것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따고도 미국에 남아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박사학위를 따봤다 저같은 여성 뇌성마비인의 경우 한국에서 교수가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면 박사학위가 취업만 더 어렵게 할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했죠."
  그는 현재 미국에서 직접 경험하기도 한 자립생활운동을 한국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연구작업등의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이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고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제게서 여성과 뇌성마비장애라는 조건을 뺀다면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가끔 처연해지기도 합니다."

 

"실패했었던 삶이 오히려 두렵습니다"

  그에 비해 삼일회계법인의 자회사인 삼일세무정보주식회사 과장으로 재직중인 최지영씨(31)는 현재까지의 삶에서 장애라는 조건이 때로는 플러스로 작용하기도 했던 점을 인정한다. 아마 많은 뇌성마비장애우들에게는 연봉 4천만원대의, 회사에서 두둑한 인정을 받고 있는 그와 같은 컴퓨터프로그래머가 꿈같은 존재일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하게 된 컴퓨터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너무 컴퓨터에 몰입하다가 성적이 떨어져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됐지만 다시 부산대 전산학과에 편입해 컴퓨터속 드넓은 바다를 마음껏 탐험해 나갔다.
  재학 중 국제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은메달 뿐만 아니라 각종 대학생컴퓨터프로그램 공모전에서 수상의 영예를 몇 차례 거머쥔 실력파로 인정받았고, 대학 최종 평점4.1의 성적표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취업을 앞두고 일반 기업체에 입사 원서를 내면서는 남모를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실력으로야 자신있었지만 긴장을 하면 얼굴근육이 더욱 뻣뻣해지고 언어장애가 심해지기 때문에 어떻게 면접을 통과할 것인지 낙관만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입사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져서 결국 취업이 안되면 일단 대학원으로 도망가려고 했죠. 취업실패의 악몽을 2년간 미룰 수 있었을테니까요."
  대학시절 두 차례나 입상한 공모전의 주최기업체가 바로 현대전자였기에 "이 회사만은 설마"라는 마음에 제일 먼저 그곳에 원서를 냈다. 그리고 다행히 그는 합격했다. 대기업에 뇌성마비장애우가 취업한 사례는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에 그의 사연은 지난 94년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장애우인식개선을 위해 TV방송용으로 만든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그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웃 돼 현재의 직장으로 옮겨왔다. "제가 과장이라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영업이나 관리업무가 아니라 오로지 프로그램 개발 업무만하도록 회사측으로부터 배려를 받는 것이 사실 장애라는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더 좋습니다. 기술개발에 전념하면서 계속 실력을 쌓아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장애까지 갖고 있는 자신의 삶이 이제까지 너무 순탄해서 왠지 갈수록 더 큰 좌절을 앞두고 있는 것만 같아 때로는 두려워진다는 남모를 고민도 갖고 있었다.
  이들 외에도 고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황윤성 교수나 보국사 주지인 혜광스님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뇌성마비장애우로서는 드물게 성공한 사례로 뇌성마비인들에게 그나마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최지영씨를 소재로 한 드라마의 제목처럼 이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흔치않은 사람"이 될 우려가 높다. 기업체 취업에서 번번이 떨어진 고학력 뇌성마비인들 가운데 특히 전산직 장애우공무원 채용에 기대를 걸지만 92년 7번째의 공무원채용시험에서 합격한 최일권 씨와 같이 국가기관에서마저 뇌성마비라는 장애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혜영 기자

작성자한혜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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