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픈 처녀총각들 이곳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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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어쨌든 새로운 출발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이맘때가 되면 인생에 있어서도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라는 주위의 충고를 더욱 자주 들어야 하는 결혼 적령기의 성인 남녀들은 괴로운 심사가 되기도 한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됐다지만 "올해는 결혼을 꼭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노처녀 노총각들도 적지 않다.
더욱이 남들보다 이성을 만날 기회 자체에 제한을 받기 쉬운 장애우들의 속고민은 해가 갈수록 더 깊어진다. "자신의 머리를 깎지 못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오작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이들이 있다. 결혼에 대한 정보 제공은 물론 상담까지 해주고 있는 전국의 장애우결혼상담소 몇 곳을 찾아가 보았다.
이성을 만날 기회 거의 없어
결혼은 두 가지 얼굴의 양면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하면 이해가 빠르다. 한쪽은 결혼을 할 당사들간의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남녀 결혼 당사자를 포함한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를 융합시킬 수 있는 것은 이성에 대한 애정과 서로에 대한 신뢰, 바로 그것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장애우의 결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정작 장애우의 결혼과 관련된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대답은 다르다. 장애우에게 있어서 결혼에 관한 문제는 개인과 가정의 차원을 넘어 이 사회가 함께 해야 할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장애우에게도 결혼이 쉽고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지만, 장애우에게는 더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아직 장애우와 비장애우의 결혼이 무난할만큼 사회가 성숙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결혼문제를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 필요한 거구요. 결혼은 둘 사이의 문제지만 사회적 편견에 둘러싸여 있는 장애우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는 분들이 적지 않죠. 그럴 때는 적절한 조언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불수레사랑나눔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인회(34·지체장애우)씨의 말이다. 김인회 씨 역시 결혼은 결국 본인들의 문제라는 면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가족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결혼 이전에, 이성을 만나고 서로의 마음을 내보이면서 애정을 확인해가는 과정 자체가 장애우들에게는 어렵다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저희 상담실을 찾아오는 장애우의 대부분이 남성들입니다. 그런데다가 결혼상대자로는 지체장애우를 선호한다는 것도 난점이에요. 갈수록 여성 지체장애우는 줄어들고 있거든요. 만남을 희망하는 여성장애우도 모자라고 거기다 지체장애우를 선호하는 경향마저 있으니 만남의 자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사실 어렵습니다."
카톨릭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결혼상담실"에 근무하는 지명화(44)씨의 고민이다.
"장애우들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직장생활을 하는 남성장애우들도 자신의 장애를 너무 인식하기 때문인지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데, 자신감을 갖기 전에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그리고 여성장애우들의 신청이 늘어나야 만남의 자리도 생기는 것이고, 그래야 장애우의 결혼문제도 실마리를 잡아갈 수 있거든요."
김인회 씨는 여성장애우들이 무조건 결혼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미리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가 없는데도 여성들이 결혼을 포기해 버리니 남성장애우들도 결혼이 힘들다는 것이다.
책임의식과 용기가 결혼성공의 비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장애우의 결혼문제를 같이 고민해 주는 기관들이 있다. 결혼을 원하는 장애우들이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이 열려져 있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결혼을 위한 몇 가지 조언을 들어봤다.
"결혼에 앞서 우선 자기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혼은 상대를 만나서 서로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 유리하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려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어야 저희 센터에서 마련하는 모임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더라구요."
"장애인결혼생활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이희경(30) 간사의 말대로 자신을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책임이라는 것이 정신적인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상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책임도 무시못할 요건이 된다.
"대단한 작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일을 하는 사람이면 됩니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든, 청소부일을 하든 생활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주위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경우는 몰라도 저희 같은 기관에서 사람을 소개하려면 직업이 있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건 필수조건이죠. 재산을 원해서가 아니라 생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니까요. 부모님 중에 "계산이라도 할 수 있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가계를 차려주겠다"며 소개를 부탁하는 분이 있는데, 그런 경우 먼저 가게를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그 차이가 크거든요."
야유회나 영화보기 행사 통해 자연스런 만남 주선
두 번째는 결혼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신청서만 내놓고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담원이 좀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자신을 알리라는 것이다.
"상담실에 근무한지 6년째지만 한 눈에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건 아니거든요.
신청서에 써 놓은 것들은 아주 객관적인 정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신청자를 제대로 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전화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이 좋죠. 빨리 그 사람을 알아야 적당한 상대를 찾아 볼 수 있으니까요." 지명화 씨의 귀띔이다.
서로의 이익과 조건만을 따져서 만남을 주선하는 곳이 아닌데도, 간혹 전화를 해서 무조건 "여자있냐"고 묻는 장애우들도 있다고 한다. 상담원과 통화하면서 신청서에 써 놓은 사실 이외에 자신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지, 무턱대고 여자있냐고 덤비는 사람은 누구라도 소개하기를 꺼릴 것이 분명하다.
셋째는 눈높이를 낮추라는 당부다. 상담소를 찾는 거의 모든 장애우들이 자신보다 장애가 덜하거나 장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집안에 장애우가 있는데 또 장애우가 들어오는 것은 싫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신청자 모두가 좀 더 좋은 조건만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라고 지명화 씨는 말한다.
"결혼을 한 사람들 중에는 살아보니 비슷한 사람이 좋더라는 말을 하는 분이 많아요. 본인이 편하대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적다는 거죠. 또 한가지는 부모님들은 상관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결혼을 할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데 부모님들이 절대 장애우 며느리나 사위는 안된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서로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이들 기관들은 나름대로의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야유회나 영화보기, 만남의 날 행사, 소그룹 모임, 결혼식 올려주기 등 서로를 가까이서 느끼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이성교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년계획으로 결혼을 결심한 장애우가 있다면 이런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직접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서현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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