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애우의 집,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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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면서 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장애우들이 가정에서 또 사회에서 직접 느끼고 있는 차별의 정도는 얼마나 될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국내 처음 전국 규모로 여성장애우 스스로 느끼는 차별의식을 조사한 결과 교육과 고용에 있어 37.8%, 34.9%가 각각의 소외와 차별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7백19명 가운데 5백30명이 직업이 없이 매우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여성장애우에 대한 정책은 어떤 것이 마련되어야 할까. 빗장 채은하 위원장의 제안을 들어본다.
조사해 봤자 뭐가 달라지겠느냐 격한 항의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 여성 분과에서는 8월부터 약 두 달간에 걸쳐 18세 이상 7백19명의 재가여성장애우를 대상으로 차별과 현실에서 느끼는 다양한 욕구 등을 조사하였다. 이는 여성장애우의 실태를 사회에 알리고, 이를 정부나 사회의 정책에 반영케 하여 현재적 삶의 질적인 향상을 꾀하려는데 궁극적인 목적을 둔 것이었다.
전국의 청각 및 시각과 지체장애우를 조사 대상에 참여시켰다는 점과 질문항목이 교육, 취업 및 직업 생활, 결혼, 폭력, 경제력 및 사회적 요구 등 다양한 데에까지 이르러 여성장애우의 현재의 삶의 상황을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 이 조사의 의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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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장애우정책대안마련실태조사 |
현재까지 여성장애우에 대한 실태조사가 거의 전무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95년과 96년에 걸쳐 여성장애우의 차별(가정 내 차별 등)을 초점으로 조사한 것이 한국 내에서 유일하게 이루어진 조사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조사 대상이 전국적이지 못했고 숫자가 제한되어 있어 하나의 공식 실태조사로서 통계자료로 사용하기에는 제한점이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번 실태조사는 앞으로의 기초 조사를 위해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여겨진다.
구체적으로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여성장애우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정, 직장, 사회, 정부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교육과 고용에 있어서 여성장애우의 소외와 차별(각각 37.8%, 34.9%)이 현재 생활에 불편함과 어려운 경제 형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성년 교육이나 직업 교육과 고용(7백19명 응답자 가운데 5백30명이 무직자(73.7%)였다)에 대한 강력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교육 혜택과 고용에 대한 욕구는 사회와 정부로부터의 지원과 정책적 배려가 있을 때라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교육과 고용의 기회는 남녀 구별없이 장애우의 상당수가 겪고 있는 차별이니 만큼 여성장애우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예를 들면 가정에 아들이 중증 신체장애우면 부모는 업어서라도 학교 교육을 받게 하는 경우가 여아의 경우보다 훨씬 빈번하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남자는 가장으로서 자기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 살려면 전문직을 위한 교육과 최소한의 교육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장애우의 경우 부모들은 그대로 집안에 머물게 하는 편이 훨씬 더 잦다. 본 조사에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경우가 불과 20.1%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이 조사의 제한점으로 지적했던 것이 주로 밖에서 활동하는 여성장애우를 조사 대상으로 했던 만큼 무학자가 20%선에 머물렀던 것이다. 하지만 1996년 2백30명을 대상으로 연구소가 조사했던 바에 따르면 무학이 41%였다. 빗장에 참석하는 여성장애우에게 학력을 물으면 무학이 상당수라는 사실을 보아서 특히 휠체어를 타는 중증 지체장애 여성의 경우 학교 출입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복지관에 마련되어 있는 교육 기회나 직업 훈련과 같은 기존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정보 부족과 불편한 교통 등으로 이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재 복지관과 그 프로그램 전망과 같은 책자가 분기별 내지는 연도별로 각 장애기관과 단체에 배포되어 그나마 있는 시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나 기존 시설은 장애우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을 기대하지 말고 필요와 욕구에 따라 새로운 프로그램과 시설 설비를 융통성 있게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육아와 살림 분담할 수 있는 가정 도우미 제도 절실하다
이에 맞물려 「여성장애우의 집」과 같은 종합 복지관이 있으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이는 성년이 지나 일반 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여성장애우에게 교육과 숙식(집단보다는 개인의 특성을 살려서)을 제공하고 나아가 직업 훈련에 이어 고용까지 이어질 수 있는 종합복지관이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특수성을 살려 이 안에서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성들에게 살림과 임신과 육아와 같은 문제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임시적이고 단기적인 "쉼터"와는 차별성을 두어야 할 것이다. 여성장애우가 장기적으로 자기의 삶을 구상하고 계획할 수 있는 그런 복지 기관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장애인고용촉진공단 내에 여성장애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여성장애우가 할 수 있는 직업들을 고안하고 계발시키고, "여성장애우 고용"을 위한 책임 부처가 생겨 좀더 여성장애우 고용이 영역을 전문화시킬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예민함 그리고 이내 그리고 전문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직업들을 만들어내고 여성장애우 고용에 많은 관심과 직업 창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장애우 가운데 많은 수가 독신으로 살고 있다. 결혼을 하더라도 살림과 육아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살림과 육아가 남녀 분담제로 이루어진다 해도 여전히 아내와 엄마의 역할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한 달 동안 일정 시간에 가정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 쿠폰제가 있다고 한다. 가사나 육아나 외출을 위해 자신에게 할당된 쿠폰제를 사용하면 가정도우미는 장애우 개인이 아닌 정부로부터 일정한 금액의 급료를 받는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자원봉사제든지 국가의 도우미제도든지 이 제도를 활용하게 될 때 여성장애우가 살림과 육아로 인한 부담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제도는 여성장애우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혼자 사는 남성장애우와 노인 가정과 같은 곳에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여성장애우에게 가정도우미제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될 때 여성장애우도 결혼에 대한 부담감을 훨씬 적게 받을 것이다.
비장애 남성과 여성, 장애우 남성과 여성의 상호 비교 필요성 제기
이번 실태 조사를 중심으로 정책마련 논의를 위해 열린 11월15일 워크숍에는 정무 제2장관실의 장애우담당자와 보건복지부 재활지원과장이 참석하였다. 전자는 여성이라는 측면에서 여성장애우를 위한 정책 결정에 필요한 부분을, 후자는 장애우의 측면에서 여성장애우의 문제를 정책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참여한 것이다.
이들의 제언은 이번 조사를 통해 여성장애우에게만 해당된 특별 문제가 돋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 문제 전반에 해당된 문제가 여성장애우에게도, 마찬가지로 장애우 전반에 걸친 문제가 여성장애우에게도 같은 조건을 수반하므로, 이런 조사가 여성장애우만의 특별한 문제를 들춰내고 정책까지 반영하려면 여성장애우 특유의 문제가 발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장애우라는 사실이 이중의 장애를 겪어야 하는 위치라고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까지 이르려면 여성장애우로서 특별히 겪어야 하는 고유한 영역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교육으로부터 소외나 실업은 남성장애우도 마찬가지로 겪는 일이다. 이를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여성장애우들이 고유한 영역으로 특수화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한 관건으로 다가왔다.
이번 조사를 마치면서 다음의 조사는 비장애우 남성과 여성의 비교, 장애우 남성과 여성을 서로 비교하는 일이 여성장애우의 문제를 구체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임이 인식되었다.
여성장애우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이번 조사에도 물론 여러 한계와 문제점이 있다. 11월15일 조사 결과 분석에 따른 워크숍에서도 지적된 것이지만, 이번 조사는 비례 추출이 아니라 편의 추출이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전국적인 여성장애우들과 분포에 대해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기 때문에 편의추출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장애여성들이 무작위로 조사 대상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주로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장애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여성장애우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구나 조사자들에 따르면 여성장애우들과의 접촉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여성장애우들이 응답을 거부하거나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경우나 반발이 많았고 심지어 칼부림도 있었을 만큼 아직도 여성장애우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신체적 장애는 상당한 개인 및 사회적 장해(障害)로 인식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가지 첨부할 것은 이번 조사에서 정신지체장애우가 제외되었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는다. 가족들이 정신지체여성을 대신하여 응답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차별과 같은 가족간의 미묘한 문제를 언급하기가 매우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신지체여성이 차별을 겪는 상황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장애우단체와 정부의 관계 부처 기관들은 여성장애우들의 욕구와 바람을 더욱 경청하여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떳떳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적어도 여성장애우들이 필요와 요구가 있으면 정부와 시설들은 이를 경청한다는 신뢰를 쌓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럴 때 장애우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와 복지사회로의 길은 훨씬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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