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불임수술, 남의 집 불 구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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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체인의 불임수술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얼마 전 뒤늦게 공개된 세계 각국의 정신지체인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 사실이 각 언론과 세계인권운동단체의 지탄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국내 모자보건법은 정신지체인의 불임수술을 합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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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지체인 보육시설 |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에는 유전성 정신지체를 가진 자는 인공임신 중절수술을 허용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 동법 제15조 3항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로 수술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시설 원생의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고아나 기아들에게 시설 원장은 법적 후견인이 된다. 더욱이 장애우를 받아들일 때 거액의 돈뿐만 아니라 친권포기 각서까지 요구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강제 불임수술은 시설 관계자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
전남의 한 시설 보육사 서 아무개 씨는 "몇 년 전 성인이 된 남자원생과 여자원생을 결혼시켰는데 아이를 낳을 경우 마땅히 돌볼 사람도 없고, 또 정신지체인을 낳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남자원생에게 불임수술을 시켰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그 원생이 수술을 거부하지 않았냐고 묻자 "정신지체인은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 못하기 때문에 수술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가정에서 결혼적령기의 정신지체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부모들 역시 자신의 아이가 결혼이 가능할지, 마땅한 배우자는 누가 될 수 있을지 등등의 고민이 때로는 자연스럽게 불임수술 쪽으로 연결될 때가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정신지체인 권익실천을 위한 성남부모회 김희경 회장은 이에 대해 "태어난 아이가 또 정신지체아일 가능성이 높고, 정신지체인은 아이를 낳아도 기를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 부모들이 그 아이마저 책임져야 한다. 부모로서는 또 하나의 짐만 느는 것일 뿐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울정신지체인복지관 박신구 계장에 따르면 "결혼 후 자녀의 2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지 않은 부모들이 진지하게 물어온다. 복지관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의학적인 정보만 제공할 뿐 판단은 부모들이 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의 결혼자체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아이를 갖는 것도 원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정신지체인이 아이를 가졌을 때 또 다시 정신지체 자녀를 낳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연구자료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존에 나와있는 자료의 수치들도 모두 제 각각이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홍강의 박사는 "정신지체가 유전될 가능성은 20% 미만"이라며 "대부분의 정신지체는 임신 중 약물을 잘못 복용하거나 출산사고 등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석대 특수교육학과 이영철 교수 역시 "정신지체인을 장애정도에 따라 중증 3%, 경증 85% 그리고 그 중간급을 12%로 나눌 수 있는데 사회 계층별로 정신지체 장애발생 비율을 조사해 보면 경증의 경우 사회 하류층으로 갈수록 비율이 높아지지만 중증은 계층과 상관없이 나타나 정신지체가 발생하는 원인 중 유전에 의한 것은 15% 정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답없는 메아리, 아이는 누가 기르나
사실 정신지체인이 자녀를 가질 수 없도록 막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아이의 양육에 대한 부담이다. 적당한 배필인 것 같아 서로 결혼 말이 오고 갈 때도 양가 가족들이 가장 신경전을 벌이는 부분이 바로 이들 가정을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한다. 이들이 따로 나가 살 경우 처음에는 양가에서 서로 비슷하게 관심을 쏟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그 부담이 점점 여자 쪽으로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대개 자녀의 결혼에 대해 아들을 가진 집안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희망하는 반면 딸을 가진 집안은 더 소극적이고 회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청주의 한 복지관 관계자는 말한다. 딸을 가진 자신들의 부담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당사자들이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지체인이 자녀를 양육하는데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북장애인복지관 교사 백순이 씨는 "정신지체인이라고 해서 아이를 전혀 못 키우는 것은 아니다. 정신지체인의 불임수술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앞서 국가에서 하루 속히 정신지체인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적인 지원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정신지체인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불임수술을 시키는 것은 아이를 시설에 맡기거나 중절하지 않는 대신 선택할 수 있었던 궁여지책이었는지 모른다. 따라서 이제는 정신지체인의 가족들만이 모든 책임을 떠맡는 사회풍토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조만간에 세계언론과 인권단체의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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