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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신안 섬에서 인신매매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사건으로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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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맘 때, 국내 대표적인 장애인 인권유린 사건인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이 사건은 인신매매 사건이어서 장애인 관련 사건으로는 드물게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오랜 시일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사건이었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을 요약하면, 염주들이 판단 능력이 부족한 장애인들을 소금을 생산하는 전남 신안의 섬 염전에 데려가 평생 노예처럼 부려먹은 사건이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사건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오래 전인 2006년 신안에서 노예로 잡혀 있던 장애인 이모 씨와 박모 씨를 구출해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발달장애인 이모 씨는 9년간 매일 하루 4시간씩만 자고 일했는데, 9년 동안 월급이라고 받은 돈이 고작 2만2천 원밖에 되지 않았다. 같이 구출한 발달장애 2급 박모 씨는 12년간 노예로 일했는데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거기다 그는 섬에서 도망치다가 붙잡혀서, 마을 이장에게 맞아서 사흘간 앓아누운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당시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거리가 됐고, 철저하게 수사해서 인권침해를 근절시키자는 일부 움직임이 일었지만,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2014년 신안 섬 한 염전에서 감금당한 채 노역을 해온 장애인 2명이 구출되면서,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신안 염전 장애인 노예사건은 실종자 시각장애인 김모 씨가 염주 몰래 가족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됐다. 편지를 받은 부모는 지역 경찰서에 신고했고, 서울 구로 경찰서가 수사에 나섰다. 수사 결과 김씨는 집을 나와 10여 년간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 영등포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중, 2012년 무허가 직업소개업자의 꼬임에 빠져 염전으로 팔려갔고, 경찰에 구출될 때까지 임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김 씨는 그 기간동안 세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염주로부터 “한 번만 더 도망치다 걸리면 칼침을 놓겠다”는 협박을 받아 더 이상 탈출을 시도할 수 없었다. 김 씨와 같은 숙소에서 거주하다 구출된 발달장애인 채모 씨는 대전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역시 무허가 직업소개업자의 꾐에 빠져 염전으로 팔려왔는데,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면서 기약 없는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2명의 장애인이 신안 섬에서 구출되기 전인 2012년 4월 군산에서의 일이다. 몇 년에 걸쳐 발달장애인 수십 명을 외딴 섬 양식장에 팔아넘기거나 어선에 태워 노예처럼 강제노역을 시키고, 임금을 착취한 일당 6명이 해양경찰청에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해경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섬 지역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펼친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그 이후 해경의 장애인 인신매매 피해상황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은 그동안 열리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었다. 역설적이지만 경찰이 아닌 장애인권운동 활동가들이 장애인 인신매매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이 신안 염전에서 만난 장애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염전 유입경로를 보면 역전 등지에서 노숙을 하다가,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회유에 따라 무허가 직업소개소 직원을 따라 나섰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장애인들이 노숙을 하게 된 과정을 보면 가족과의 단절(행방불명, 가족의 외면), 아예 가족이 없이 고아원에서 자란 경우, 과도한 빚 부담 등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무허가 직업소개소 사람들은 장애인을 염전에 보내기 전까지 일정기간 소개소와 관련이 있는 여관, 식당, 유흥가 등으로 장애인을 데리고 다니며 부당하게 많은 돈을 지출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사용한 금전과 소개비를 염전주로부터 받는 대가로 염전주에게 장애인들을 넘겼다.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경유하지 않고, 장애인이 직접 염전주를 만나 염전으로 가게 된 경우도 있었다. 염전주는 직업소개소에 일정 비율의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직접 인부를 구하는데, 실제로 서울역·영등포역 등지에 가서 장애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해 주고 ‘일하러 가자’며 신안 섬으로 데리고 갔다.

게다가 가족에 의한 유입도 있었다. 가족과 아는 사람의 소개로 장애인이 염전에 보내졌는데, 염전 피해 장애인 가족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가족이 장애인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시설에 입소시키면 당사자가 도망치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는 섬에 보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자, 한 부모는 ‘신안 섬에 자녀가 머무는 것을 원하고, 자신이 직접 자녀를 맡긴 것이므로 이의를 달지 말라’는 취지의 각서를 경찰에 써주기도 했다.

장애계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섬에 들어가 상주하면서 일일이 장애인들을 면담해 구출해 내고, 가해자인 염전주들을 고발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국내 처음으로 장애인 인신매매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서 법원의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후 막을 내렸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후 1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신안 염전 노에 사건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사건이 근절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장애인 인신매매의 주된 원인은 사회에서 갈 곳없는 장애인 현실이다. 이 장애인의 갈 곳 없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장애인 인신매매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신매매 판도라의 상자가 또 어디서 열릴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심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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