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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정신장애인의 탈시설을 외면하는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에 대한 유감

정신장애와 사회통합

본문

탈시설 로드맵의 근거, 미국의 사례
보건복지부는 2021년 8월 2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탈시설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아래 로드맵)”을 확정하고 발표하였는데, 그 대상은 시설거주 장애인 2만 4천 명과 단기・공동생활가정 거주자 4천 6백 명이다. 해당 시설에 대하여 연 1회 실태조사를 하고 20년에 걸쳐서 지역사회 거주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위 로드맵에서는 장애인들에게 주거・돌봄・의료 등 통합 연계를 통해 지역사회 내 생활을 지원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정책 로드맵에 정신요양원과 정신의료시설을 오가면서 평균 수년에서 수십 년 지역사회 자립생활과 통합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시설 거주자와 비자발적으로 정신의료기관인 요양원에 수용된 정신장애인을 제외한 것은 큰 결함이고 그 자체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며 인권침해적인 로드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위 로드맵의 근거가 되는 해외의 정책으로써 맨 먼저 미국 연방대법원의 옴스테드 판결을 들고 있다. 이 판결은 정신병원에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정신장애인들이 제기한 소송의 판결로써 미국에서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거주의 권리에 대한 내용이 된 것이다.
옴스테드 판결은 1995년 미국 조지아 주립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두 장애여성이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루이스 커티스(Lois Curtis, 정신분열증)와 일레인 윌슨(Elanie Wilson, 인격장애), 두 장애여성은 주치의가 지역사회 기반 프로그램을 통한 치료가 적절하다고 진단했음에도 시설 측이 지역사회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자, 자신들이 격리된 환경에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주정부는 이들을 시설에 계속 수용하도록 한 것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 부족한 재정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4년이 흐른 1999년 6월 22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정당화되지 않은 시설 격리는 미국장애인법(ADA) 아래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며 두 장애여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옴스테드 판결은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미국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에 새로운 전환점을 준 역사적인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2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그런데 위 판결이 있은 지 만 20년이 더 지난 시점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정신장애인이 제기한 탈시설의 권리를 인정한 옴스테드 판결을 기초로 하면서도 정신장애인들은 제외하고 있다. 반면 이미 상당한 자유가 허용된 시설 거주 비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20년의 기간 동안 “탈시설 지역사회 거주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선 것은 매우 아이러니할 뿐만 아니라 이미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지 20년이 더 지난 대한민국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는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장기수용 또는 치료를 핑계로 비자발적으로 장기입원된 정신장애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고 인권침해적이며 허울만 있는 정부의 파퓰리즘적인 정책 쇼로 보인다.
한국정신장애연대(KAMI)를 비롯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들과 가족협회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WHO(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에 대한민국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현실을 공식・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보고하였다.
2014년 10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정신장애인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이 이루어진 장기간 시설 수용화를 포함한 시설 수용화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당사국이 정신・지적장애를 포함하여 장애를 근거로 한 자유의 박탈을 허용하는 기존의 법률 조항을 철폐하고 모든 정신보건서비스를 포함한 보건서비스가 당사자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를 바탕으로 제공되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채택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보장하는 정신장애인의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대한민국에 탈시설을 권고한 것이다.
2020년 2월 코로나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강타했을 때 최초의 집단감염은 정신병원에서 일어났다. 이 중 최초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 60대 환자인데, 20년만의 첫 외출은 그의 장례식이었다. 이는 희망도 없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라는 허울을 씌워 수용된 정신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적이고 인권침해 피해의 슬픈 사례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 바로잡아야 한다
장애계 비례대표 여당의원인 최혜영 의원은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2020년 12월 10일 「장애인탈시설지원등에관한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는데, 그 법률안의 대상에서도 정신장애인은 누락되어 있다.
정신장애인을 시설과 병원에 수용하는 동안 2000년대 초반부터 병상 수를 줄여야 한다고 본 대한민국의 정신병원 병상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료비 지출은 약 20년간 10배 이상 늘어나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있는 반면 정신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생활이라는 인권에 부합하는 정책과 서비스의 예산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에서 1960년대부터 시작된 탈원화와 지역사회 자립생활의 물결이 일어났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정신보건법」이 실행된 2000년대 초반부터 정신병원 병상 수의 증가와 시설 수용의 증가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수치다.
이러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대한민국의 차별과 소외에 대하여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은 장애단체들과 함께 우리 모두의 반성과 정책의 재고가 있어야 하겠다.
작성자권오용/카미 설립자, 사무총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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