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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그들이 갈 수 없는 곳

우리가 가지 못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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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5, 6월호 특집 주제는 ‘이동권’이다. 지난해 <함께걸음>을 구독한 애독자라면 ‘지금, 장애계(현 장애계 이슈)’ 코너에서 1년간 다뤄온 주제 역시 ‘이동권’임을 알 것이다. 이제는 내려놓고자 했던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몇 달 만에 다시 끄집어냈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휠체어 이용자가 지하철을 탈 수 없다는 그런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지만¹⁾, 그런 뻔한 이야기를 또 하게 되었다.
 
장애인 자립생활에서 이동권은 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이동할 수 없으면 관계 맺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한다. 교육의 문제는 노동의 문제로 이어지며, 장애인을 시설 안에 갇힌 존재로만 머물게 한다. 이에 <함께걸음>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흐름을 짚어보고, 법에 근거한 장애인 이동권의 개념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와 대비되는 미국의 장애인 이동권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특집 세 가지 코너로 나눠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과거와 현재
어느 지하철 역사 안. 열차가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내릴 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함께 지하철 문이 열린다. 출발하지 않는 지하철. 안내 방송이 또다시 흘러나온다. “장애인 여러분의 집단 승하차로 인하여 열차가 많이 늦어져서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열차 안 몇몇 시민들이 플랫폼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장면이 바뀌고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이 줄지어 지하철에 탑승한다.
“시민들을 볼모로 해서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당신들 때문에 피해를 입잖아. 여기 있는 대다수 시민이 그렇잖아요. 불법이지 이게 뭐야.” 한 시민이 그들을 향해 소리를 친다.
장면이 바뀐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함께 외친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²⁾
 
지금의 이야기가 아닌, 21년 전 장애인 이동권 시위 때의 모습이다. 2001년 1월 오이도역,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역귀성길에 올랐던 70대 장애인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본격화되었고, 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이동권연대가 결성되어 2001년 3월 9일 ‘장애인과 지하철 탑시다’ 시위를 전개했다. 그들은 모든 역사 내 승강기 설치, 저상버스 및 특별교통수단³⁾ 도입 등을 요구했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서울시를 중심으로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가 도입되었다. 2004년에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이 제정되어 이동권의 개념이 처음으로 법에 명시되었으며, 이에 따라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이 2007년부터 수립되기 시작했다.
 
“우리 열차는 현재 장애인단체의 불법행위로 인해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우리 열차는 현재….”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세월만 바뀌었을 뿐 장애인단체가 요구하는 사항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2021년 12월 3일, 전장연은 세계 장애인의날을 맞아 교통약자법 개정을 요구하는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시위를 시작했다. 이후, 15년 만에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지만,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예산 반영이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으로 통과된 것이 문제로 남았다. 이에 전장연은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를 대상으로 장애인 이동권을 포함하여 평생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의 내용을 담은 4대 권리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지하철 시위를 이어나갔다. 아무리 권리가 법에 명시되어 있더라도 예산 없이는 권리도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21년간 지켜지지 않은 정치권 약속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사계절이 한 번 바뀔 동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이동권은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다. 2002년 5월 19일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또 한 명의 장애인이 사망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사건을 장애인용 휠체어 리프트 부실 설치·운영 및 공공기관의 소홀한 관리·감독에 따른 직무 소홀로 봤다. 이 사고가 발생하기 전 약 4개월간 발산역에서 접수된 리프트 고장만 무려 33차례에 달한다.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는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어떠한 보완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추락 방지를 위한 장치도 설치하지 않았고 역무원들에게 안내나 안전 수칙에 관한 어떠한 교육도 진행하지 않았다.
 
발산역 사고를 계기로 장애인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을 점거하고 39일간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같은 해 8월 29일 ‘장애인 여러분께 드립니다’란 보도자료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라며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장애인이동권 확보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5년이 되자 서울시는 지하철 역사 46곳은 설치 구조상 승강기를 설치할 수 없다며 말을 바꿨다. 현재는 당시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역사에도 승강기가 설치되어 21개의 역사만 남았다.
 
2015년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 장애인이동권선언’을 통해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승강기 100% 설치 및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을 또 한 번 약속했다. 그러나, 두 번째 약속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시가 당해 본 예산안에 승강기 설치를 위한 어떠한 예산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이동권은 정부가, 국회가 스스로 약속한 법정 기준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제3차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계획(2017~2021년)에서 저상버스 보급률 42%를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2020년 교통약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7.7%에 불과했다. 교통약자법에서 정하고 있는 특별교통수단의 경우 중증장애인 150명당 1대를 법정 운영 대수로 설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80명당 1대꼴로 운영되고 있다. 구체적인 예산이나 방법 없이 ‘보장하겠다’라는 형식적인 약속은 언제나 ‘예산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지킬 수 없었다’라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들을 불법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모든 편리함에는 누군가의 불편 또는 결핍이 우선한다. 우리가 편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쩌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누리고 있는 호사일지 모른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과물인 지하철 승강기는 유아차 이용자, 보행이 서툰 노인과 어린이 모두가 이용하는 편의 시설이 되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 당사자의 불편과 결핍이 모두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목소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우리 사회는 이들의 삶에 무관심했고, 무책임했다. 불법, 볼모, 선량한 시민, 부당성.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규정하는 그 시선 이면에는 그들의 문제에 관심 가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여전히 내재해 있다.
 
그들은 특별한 편의나 편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갈 수 있고,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를 찾고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잘못된 시위 형태만을 가지고 그들에게 되레 책임을 묻는다. 정책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을 몇 퍼센트 이뤄냈는지 언급하기 바쁘며, 나아지고 있는데 왜 시위하냐고 질책한다. 비장애인과 같은 선상에만 서게 해 달라는 그들의 요구에 우리 사회는 그것마저도 정책적 우선순위를 이유로, 예산을 문제로 ‘어렵다’라고 말한다. 어린아이 달래듯 언젠가는, 나중에는 보장해줄 테니 ‘기다려’라고 한다. 그렇게 21년의 세월이 지났다. 2021년 기준 수도권 지하철역 승강기의 설치율은 92.2%다. 2001년 설치율인 13.7%에 비하면 진일보한 기록임은 틀림없다. 혹자는 이러한 수치를 들먹이며 장애인단체의 요구를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헐뜯는다. 만약 하루아침에 지하철 모든 역사에 출입구가 단 하나만 존재하게 된다면, 심지어 21개의 역사에는 한 개의 출입구조차 없다면, 비장애인에게도 92%라는 수치를 들먹이며 만족을 운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지하철 모든 역사에 승강기가 한 대씩 설치되어 100%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치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 이동권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의 이동을 위한 건축 구조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시혜나 배려가 아닌 생존과 권리의 문제이며, 장애인 이용자에 대한 안정성과 편의성이 담보된 문제여야 한다.
 
지하철이 연착된 그 60분.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지 않고 빠르게만 달려가는 우리 사회에 대한 연착을 일으키고자 한 그들의 처절한 절규가 아니었을까.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함께 발맞춰 가자고.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잊혀지고 지워지지 않는 존재가 되려는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장애인 시위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도시 설계 단계에 왜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것인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라에 예산이 없는 게 아니라 장애인에 쓸 예산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시민의 권리보장 앞에서 정치적 우선순위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한 정치인으로서 장애인의 권리가 왜 그동안 우선순위 밖의 문제였는지에 대해서 반성해보아야 한다. 그들이 갈 수 없는 곳은 결국 ‘우리도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1) 박관찬, “장애인콜택시, 그 이용의 어려움에 대하여” 「함께걸음」, 2021.1·2.
2) 출처:(YouTube·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2002.04.03). 장애인이동권 투쟁보고서_(영화) 버스를 타자_2002. [Video file] Retrieved from. https://youtu.be/g16toHkM1L8)
3)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휠체어 탑승 설비 등을 장착한 교통수단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장애인콜택시가 있다. 
작성자이은지 기자  lonely_lo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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