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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선진국이라면,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필요하다

우리가 가지 못하는 곳

본문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의식주는 기본이고 교육을 받아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옷을 사기 위해, 외식을 하거나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나 직장을 가기 위해 반드시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이동’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자립생활을 보장받기 위한 운동보다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한 운동이 먼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이동권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이 선진국?
장애인식만큼은 후진국이다
 
경제나 IT기술의 발전 등으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이라지만, 우리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인 장애인은 여전히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이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짜’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실제 미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으며, 국내에서도 활동지원사와 근로지원인 등으로 일하며 장애인과 함께 생활해본 경험이 있는 이주랑 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본다.
 
“장애인들이 지하철 시위를 하는 게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 사실은 맞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그 불편을 왜 야기하는지, 왜 많은 사람들한테 욕을 먹으면서까지 그런 시위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돌아보면 촛불시위 같은 비폭력시위는 굉장히 드물고 촛불시위라도 그 자체로 힘이 있기 때문에(예를 들어 참여한 사람 수가 많은 점) 그 위력이 있는 건데, 장애인은 사회적 강자와는 거리가 있잖아요. 만약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는 게 아니라 20명이든 30명이든 지하철역에서 촛불을 들고 시위를 했다고 생각해 보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지하철을 타거나 촛불을 들거나 어떤 ‘방법’으로 시위를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의 생각은 ‘장애인들이 시위를 한다’, ‘불편을 초래한다’라는 사실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촛불시위를 할 때는 온 국민이 공감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의 장애인 지하철 시위는 그렇지 않다. 이미 사람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무언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다. 장애인은 우리 눈에 보이면 안 된다. 장애인은 지하철을 타면 안 된다. 장애인은 지하철 시위를 통해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면 안 된다는 시선 속에 이미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살았던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소도시는 대중교통이 그리 발달하지 않아서 한 시간 반마다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어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 서울 기준이면 버스가 오기까지 10분만 걸려도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한 시간 반이라면 타지 말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했다고 느꼈어요. 하루는 그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떤 정류장에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버스를 탔어요. 버스와 인도를 이어주는 경사로가 열리고 버스 기사가 직접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자리로 안내한 다음 안전벨트를 채우고 출발하기까지 거의 10분 가까이 걸렸어요. 버스에 타는 시간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경사로가 내려가고 올라오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것 같았어요.”
 
여기서 이 씨가 놀랐던 건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버스 출발이 늦어지는 상황에 대해 단 한 명도 불평하지 않았고 그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7일 열렸던 “장애인의 동등한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았던 임성택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소개했던 우리나라에서의 일화와 정말 대조되는 사례다.
 
휠체어를 타는 친구가 버스와 지하철 중 어떤 것을 탈지 고민하다가 30분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버스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공간이 마련된 최신형 모델 버스인데,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에서 경사로를 인도에 연결하고 버스 내에서 휠체어를 고정시키고 경사로를 닫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 상황에서 버스 안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휠체어 이용자에게 벌컥 화를 냈다고 한다. 휠체어 때문에 다들 기다려야 한다고. 휠체어 이용자는 얼굴이 붉어지고 후회했다고 한다. 30분이 더 걸리더라도 그냥 지하철을 타는 게 좋았을 거라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저상버스가 100%가 아니니까 휠체어 이용자는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더 오래 버스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버스를 타는 순간에도 엄청난 시선에 대한 불편함도 견뎌 내야 하겠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바쁘게 쌩쌩 달리는 버스들을 보면서 미국에서처럼 한 시간 반도 아니고 5분에 한 번씩 오는데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타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지하철·버스 타는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아침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로 장애인의 이동권이 이슈가 되면서 시민들에게도 장애인 이동권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이동권의 ‘역사’까지 다 알지 못하는 일부 시민들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 100% 설치, 저상버스 100% 도입 등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에 대한 관심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절대 이런 사안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외식을 할 때 방문한 식당 입구가 계단이나 높은 턱으로 되어 있다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접근할 수 없다. 식당에 들어가기 위한 ‘이동’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다. 휠체어 이용자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더라도 이번에는 식당 내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기본 욕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곳이라면 역시 ‘이동’이 보장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몇몇 지하철역은 스크린도어에 부착되어 있는 점자표시가 거꾸로 되어 있거나 오타가 난 채로 있는 경우가 있다. 시각장애인이 그 잘못된 점자표기를 믿고 지하철을 탄다면, 역시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지하철역은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 양옆으로 벽의 모서리가 돌출되어 있는 곳이 있다. 눈이 보이는 사람은 그 부분을 피해서 계단을 내려가면 되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은 계단을 내려가는 데에만 집중하느라 그런 장애물까지 신경 쓰기 쉽지 않다.
 
이 외에도 지역마다 운영 방식이 달라서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콜택시처럼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기본권 중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이동권이 온전하게 보장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단순히 장애인들의 지하철 타기 시위만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닌, 이 사회 곳곳에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해 처하는 어려움과 불편함은 시민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괜히 욕을 먹으면서까지, 또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주면서까지 이런 시위를 하는 게 아닌 것이다.
 
 
이동권,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앞서 임성택 변호사가 소개했던 일화에서처럼 ‘최신형 모델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대한 접근성이나 편의시설이 아주 열악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와 투쟁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20년이 지나도록 더디게 변화하는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기자가 취재를 가던 중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의 출구를 나서는데 어떤 광경이 눈에 띈 적이 있다. 그 출구는 나가는 길이 계단 10개와 경사로가 나란히 디자인되어 있다. 그런데 기자와 함께 지하철을 내린 시민들은 아무도 계단으로 올라가지 않고 경사로를 통해 지상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기자의 이야기를 들은 이주랑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겠어요? 다들 다리가 불편한 게 아니라 경사로가 편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만약 그곳을 처음 만들 때 경사로를 만드는 게 구조적으로 어려워서 계단만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요? 휠체어 이용자뿐만 아니라 무릎이 아픈 사람 혹은 일시적 상해를 입은 사람들이 불편하겠죠. 이 경사로의 예처럼 사람들이 좀 더 넓게 봤으면 좋겠어요. 코로나 시대에서 모두가 삶을 그리 편하게 살아가는 건 아니기에 나누고 양보한다는 게 힘든 것도 다 알아요. 그런 마음으로 계속 살면 결국 있는 사람만 더 쉽고 편하게 된다는 걸 조금만 생각하면 다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은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고 양보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를 100% 도입하자는 주장에 반박하는 측의 주장 중 하나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가 있다. 장애인이 왜 저상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 걸까? 아니, 실제로 휠체어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저상버스를 이용한다. 지하철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거나 지하철이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는 곳이라면 저상버스 이용은 필수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장애인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런 인식을 심어버린 우리 사회의 잘못이 더 크다.
 
장애인은 집에서 나오면 안 된다. 장애인은 집에 있어야 된다. 장애인이 시위한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는 바람에 버스 출발이 지연된다···.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이런 시선과 인식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전장연에서 아침에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젠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만 집중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 장애인 전체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우리 시민들의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한다면 더더욱 사회의 어떤 구성원도 배제되지 않고 포용하고 함께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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