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수화통역사보다 전문통역사가 더 낫지 않을까?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촉수화통역사보다 전문통역사가 더 낫지 않을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청각장애인-②

본문

연재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청각장애인>의 두 번째는 익명의 시청각장애인 당사자가 정우택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한국수어는 ‘수어’, 촉수화는 ‘수화’?
 
시청각장애인 A씨는 정우택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아래 법률안)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생각은 ‘왜 촉수화인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가 있단다. 
 
“가장 크게 와닿은 건, 앞에는 ‘한국수어’라고 하면서 왜 ‘촉수화’라고 하냐는 거예요. ‘수어’와 ‘수화’의 차이점을 굳이 표현하려고 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앞에 ‘한국수어 통역사’라고 했으면 뒤엔 ‘한국촉수어통역사’라고 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 않으니 두 통역사 간의 괴리감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게 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용어상으로 좀 와닿지 않는 느낌입니다.”
 
요즘은 단어나 용어 하나의 선택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대다.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수어’인데, 시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촉수화’라고 한다면 이는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촉수화, 즉 상대방과의 손을 촉각으로 만지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에서는 촉수‘화’가 올바른 표현일 수 있지만, 나누는 대화를 ‘통역’하는 사람인 통역사는 한국수어 통역사처럼 촉수‘어’로 통역하니까 ‘촉수어통역사’가 올바른 표현 아닐까? 더 꼼꼼하게 따진다면 ‘한국수어 통역사’는 ‘한국수어’와 ‘통역사’ 사이를 띄웠는데, ‘촉수화’와 ‘통역사’는 띄우지 않은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방법 중 하나인 손바닥필담 사진. 이은지 기자
 
촉수화를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은?
 
‘왜 촉수화인가?’라는 생각을 A씨가 했던 두 번째 이유는 시청각장애인의 다양한 의사소통과 통역 방법 중 촉수화만 언급되었을 뿐, 다른 의사소통 방법과 그에 따른 통역지원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시청각장애인이지만 촉수화를 의사소통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손바닥필담이나 근접수어를 주로 의사소통 및 통역 방법으로 사용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시청각장애인들 중에도 촉수화를 의사소통이나 통역의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이번 법률안은 촉수화통역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촉수화를 주요 의사소통 및 통역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시청각장애인에게는 좋은 소식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청각장애인에게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시청각장애인은 시각에도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어를 ‘보면서’ 대화를 하거나 통역을 받기 쉽지 않다. 전혀 보지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은 수어를 하는 상대방의 손을 촉각으로 파악하는 촉수어를 의사소통이나 통역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잔존시력이 남아 있는 시청각장애인은 자신이 볼 수 있는 만큼 가까이에서 수어로 대화하는 ‘근접수어’를 의사소통 및 통역의 방법으로 사용한다.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수어로 통역하는 걸 많은 청각장애인이 볼 수 있지만, 시청각장애인은 그렇지 않잖아요.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촉수어로 통역도 해야 하고 근접수어로도 통역해야 하고, 손바닥필담이나 점화 등 시청각장애인이 원하는 방법으로 맞춰진 통역을 해야 하는데, 이번 법률안은 유독 촉수화통역만 언급하고 있으니까 아쉬움이 커요.”
 
즉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안이라면 촉수화통역사뿐만 아니라 근접수어통역사, 손바닥필담통역사, 점화통역사 등 시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에 특화된 통역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다른 유형의 통역사도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촉수화통역사만 따로 언급하고 있는 이번 법률안은, 그래서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게 아닌 수어통역사의 일자리 창출을 확보하기 위한 법적 근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A씨는 덧붙였다.
 
“정말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과 통역을 지원하기 위해 통역사를 양성하는 목적이라면, 차라리 시청각장애인 ‘통합통역사’나 ‘전문통역사’라는 이름으로 통역사를 양성하는 게 어떨까요? 그럼 굳이 의사소통 및 통역의 방법별로 따로 통역사를 언급할 필요도 없고, 시청각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의사소통 및 통역에 따라 맞춤형 지원이 가능해질 테니까요.”
 
가장 큰 문제 : 당사자는 몰랐다
 
A씨가 ‘촉수화’라는 단어 하나에 집중해서 크게 두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문제는 이게 아니다. A씨와 같은 시청각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서 발의된 법률안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는 이 법률안의 발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청각장애가 아직 15가지의 장애유형에 포함되지 않으니까 실태조사에서도 제외되고 있죠. 그래서 시청각장애인이 몇 명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 그만큼 더욱 시청각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시청각장애인이 어떤 방법으로 의사소통이나 통역을 하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데, 정말 시청각장애인을 위해서 발의할 목적이었다면 발의 전에 시청각장애인들에게 법률안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묻는 간담회 자리라고 마련하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며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당사자만큼 전문가인 사람은 없다. 실태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더라도 뉴미디어 시대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시청각장애인 몇 명은 금방 찾을 수 있다.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법률안에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반영했다면, 적어도 ‘촉수화’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법률안의 통과 여부를 떠나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저희 시청각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고 있다는 사실로도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행법상 ‘시청각장애’는 언급조차 없었으니까요. 다만 시청각장애인과 관련된 어떤 체계를 구축하게 될 경우, 시청각장애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모두 반영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꼭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어떤 시청각장애인이 소외되지 않고 모든 시청각장애인이 적용과 혜택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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