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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다시 그 길 위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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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밖의 여정이었다. 쉬어갈 곳도, 종착지도 정해놓지 않은 채였다. 옛날 어느 CF 배경음악의 한 대목처럼, ‘바람 가는 대로, 햇살 닿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로 했다. 여전히 이 길의 끝을 알수 없지만 이제 잠시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학교가는 길 위에서 맞이한 지난 5년의 발자취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17년 7월 초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습관적으로 인터넷으로 뉴스를 살피고 있던 나는(다큐멘터리 감독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오감을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고 믿기에…. 단 아내는 남편의 인터넷 중독을 의심하고 있다) 짧은 기사 하나를 만나게 된다. ‘서울시 강서구에서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시작도 못 하고 무산되었다’라는 요지의 소식은 내 마음에 묘한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좋든 싫든 교육 하나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것 없는 국가로 성장했는데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어떤 학부모는 여전히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깊은 시름에 빠져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공감 능력이라느니, 이타심이라느니, 이런 류의 거창하고 고상한 표현은 감히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럴만한 깜냥의 사람은 전혀 아니다. 다만 나도 마로의 아빠가 되고 부모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아가던 시기이다 보니 우연히 마주친 그 뉴스에 시선이 빼앗긴 듯하다. 그 뒤로 채집 가능한 관련 소식은 모조리 찾아 읽고 또 읽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 나라에는 대략 10만 명 가까운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30%에 가까운 장애 학생이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고, 다시 특수학교 재학생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아이들이 날마다 1~4시간을 오직 학교를 오가는 데만 허비했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공평할 텐데 유독 장애학생들에게 세상은 극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곧이어 반가운 정보(?)를 하나 입수했다. 1차 토론회가 파행으로 끝났기에 두 달 뒤 2차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단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궁금증이 생기면 당연히 현장 방문은 필수! 그렇게 2017년 9월 5일,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간단한 촬영 장비를 챙겨 들고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으로 향했다.
 
어느덧 이후로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두 눈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인파가 분출하는 열기로 체감온도는 훨씬 높게 다가왔다. 시종일관 온갖 고성과 욕설, 야유와 조롱이 난무하는 전장(戰場)이었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출간한 도서 <학교 가는 길>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피아의 식별도 무의미한, 언어의 백병전이었다.”
 
특수학교를 세우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은 한치의 물러섬도 허락하지 않았다. 넓디넓은 토론회장 어디서든 말과 말이, 의지와 의지가 격렬하게 부딪혔다. 어느 편에 서 있건 사람들의 마음은 너무 비장해서 처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수적으로 열세였다. 한눈에 봐도 다수와 소수의 차이는 명백했다. 웅성거리는 소리의 크기조차 달랐다. 그러나 세상일이 언제나 숫자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비틀거리면서 나아갔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가끔, 진정성과 간절함은 그 어떤 현실적 제약과 불리를 이겨내기도 한다. 이때가 딱 그랬다. 단상에 선 이은자 어머니가 온 힘을 다해 빚어낸, 학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단호한 외침과 마주했던 순간, 나는 결심했다. 어머니들이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다큐멘터리로 꼭 만들고 말리라….
 
이렇게 나의 <학교 가는 길>이 시작되었다. 우연히 접한 단신 기사의 나비효과는 컸다. 우연이 또 다른 우연을 만나 더 큰 우연을 만들어냈다. 때로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기도 했고, 지름길을 놔두고 아주 먼 길을 헤맨 적도 많았다. 아쉬움이 어찌 없을까만은 이 또한 <학교 가는 길>의 일부였다. 본디 이 길은 멀고 험한 길, 그래서 인적이 드물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완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장애에 대해 아는 것도, 관심도 없었던 내가 충동적으로 괜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는지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포기로 인도하는 유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손짓했지만, 더 큰 힘이 내 손을 붙잡고 이끌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진심이었다.
 
장애아이를 낳고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 수만가지 이유를 떠올려 보다 결국 자책과 원망, 죄책감으로 흐느끼는 마음, 냉담한 세상을 보며 단 하루만이라도 아이보다 오래 살기를 간청하는 마음, 생사를 걸고서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마음, 다음 생애 다시 태어나도 기꺼이 너의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마음 등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굉장히 특별하고 희소한 심장의 파장을 처음 접했던 나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분들 곁에 머무는 영예를 얻고자 했다.
 
<학교 가는 길>은 제작부터 개봉까지 대략 5년가량 소요되었다. 그 기간은 곧 내가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기도 했다. 많은 일을 겪었다. 바꿔 말하면 예기치 않은 만남의 연속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사한 것을 꼽으라면, <학교 가는 길> 덕분에 평소라면 만나기 쉽지 않았을 분들과 인연이 닿게 된 점이다. 수도권은 물론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귀한 분들을 만났다. (오직 제주도에만 가보지 못한 것은 좀 아쉽다….) 대단한 작품성을 지닌 다큐멘터리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꽤 유의미한 규모의 관객이 <학교 가는 길>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셨다. 그동안 무심해서 미안했다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갑작스러운 고해성사(?)를 여러 번 듣기도 했다. 과분한 평에 몸 둘 바 몰랐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마음이 이렇게라도 널리 헤아려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반응의 이유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모든 게 오롯이 이름도, 빛도 없이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신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공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겠다. 서진학교 설립에 앞장선 부모님 대부분은 자녀가 이미 성인이 되었기에 냉정하게 말하면 이 학교가 지어지든 말든 크게 상관이 없다. 내 아이가 갈 수 없는 학교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데도 오랜 시간 서진학교 설립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쳤다. 참으로 기이하고 비효율적인 현상이라 언젠가 한 번은 여쭤보았다.
 
“지현이와 현정이, 혜련이와 재준이가 다닐 수 있는 학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그들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젊었을 시절, 내 아이가 어렸을 때 겪었던 어려움과 아픔을 후배 부모들에게, 입학을 앞둔 어린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그뿐이라고 하셨다. 모든 장애아이가 내 자식 같았고 그들의 안녕을 곧 나의 안녕으로 여겼다. 또 하나의 소중한, 길이 빛날 마음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관객이 호응했을 것으로 쉬이 짐작한다.
 
이 자리를 빌려 꼭 소개하고 싶은 기쁜 소식이 있다. 벌써 작년 가을 일이다. 선선한 기운이 아침저녁으로 찾아들 무렵 서진학교를 설계한 유종수 건축사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진학교가 2021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한 해 동안 서울에서 신축된 건물을 대상으로 건축적으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건축물에 수여하는 이 상은 대한민국 건축계의 가장 영예로운 시상식 중 하나로 꼽힌다. 비범한 건축가들의 역작이 즐비했던 가운데 서진학교가 일반 학교 건물로는 서울시 건축상 출범 이래 최초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단의 평을 옮기자면 ‘제한된 조건에서 완성도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 낸 건축가의 노력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서진학교가 가지는 공공성과 사회적 의미를 고려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만 같았다.
 
상패는 서진학교 중앙 통로 한편에 고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가끔 서진학교를 방문할 때면 빼놓지 않고 상패를 한 번 살펴본다.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거룩한 의식처럼 여긴다. 그 앞에 설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 학교는 단순히 철근과 콘크리트로만 지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 그리고 교육계 관계자들 의 땀과 눈물, 열망과 애정으로 세워졌다고 믿는다. 그 어떤 폭풍우와 시련이 몰려온다 한들 학교는 굳건히, 견고히 서 있을 것이다. 내게는 물론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서진학교는 그저 또 하나의 학교가 아닌 기적과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
 
김정인 감독 
 
이제 나는 예전만큼 가양동에 자주 가지 않는다. 가끔 허전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즐겁게, 건강하게 생활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최근에 새로운 근심이 한 가지 생겼다. 서진학교 입학 경쟁률이 벌써 3:1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물론 일반 학교에서 장애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더불어 배우고 성장하는 통합교육의 내실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특수학교 정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은 그 문제대로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멀고 험한 길은 서진학교 개교 이후에도 아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앞이 캄캄하고 막막한 것은 그대로다. 당장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재주가 빈약한 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길동무가 되어 함께 걷기. 다시 그 길 위에 선다.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초대의 손길을 내밀고자 한다.
 
“길동무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작성자글. 김정인/영화 ‘학교 가는 길’ 감독 & 도서 ‘학교 가는 길’ 저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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