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우리는 이날을 왜 기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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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4월호 <함께걸음> 표지
매년 4월 20일이 되면 대한민국은 ‘장애인의 날’을 맞이한다.
이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를 환기하고,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날이다. 4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장애인의 날을 ‘제대로’ 취지에 맞게 기념하고 있는가. 곧 다가올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민간에서 기념하던 재활의 날
1991년, 장애인복지법 개정하며 법정기념일로 지정
처음부터 4월 20일이 지금처럼 국가 차원의 법정기념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날을 처음 기념하게 된 것은 1971년 5월 15일 한국불구자협회(현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정기총회 당시 결의문을 통해서 해당 날짜를 ‘재활의 날’로 선언하면서부터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이때에는 장애에 대한 개념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다. 당시 생활보호법에는 장애를 가진 몸을 ‘불구’나 ‘폐질’로 사용하고 1967년 한국일보는 ‘성한 사람이 돌보자, 소아마비 어린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캠페인을 진행한 것이 그 예다.
그러던 중 1976년 UN은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천명하며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선포하며 세계 모든 국가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도 1981년 ‘장애인의 재활·자립·밝아오는 복지사회’라는 표어를 내걸며 심신장애자복지법(현 장애인복지법)을 제정, 민간단체에서 기념해오던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했다.
초기에는 정부의 법정기념일 축소 방침에 따라 법정기념일로는 지정받지 못했으나 1989년 12월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1991년부터 4월 20일이 법정기념일(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포함됨)로 공식 지정되었으며 이날부터 1주간을 장애인 주간으로 정하고 있다.
정부 주관의 장애인의 날 기념식
장애인 정책 발전과 인식개선의 역할
대한민국 정부가 지정한 장애인의 날은 그동안 어떻게 기념되어 왔을까. 장애인복지법 제14조에 제2항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날의 취지에 맞는 행사 등 사업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1991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장애인의 날 기념식은 정부뿐만 아니라 장애인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4년부터는 27개의 장애인단체로 구성된 ‘장애인의날행사추진협의회’가 기념식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 주관의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는 장애인 인권 헌장낭독, 장애인복지 유공자에 대한 표창 수여, ‘올해의 장애인 상(1997년부터 제정)’시상 등이 진행된다. 행사는 ‘91년 당시 장애인복지법에 명기된 유일한 법정단체였던 재단법인 한국장애자복지체육회(현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주관을 위임받아 현재까지 주관을 해오고 있다.
장애인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당시 활동했던 장애인 언론사 기자들에 따르면 초창기에는 주요 VIP들의 참석 여부가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즉,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지, 영부인도 함께 오는지, 아니면 국무총리가 오는지가 큰 화젯거리가 된 것인데 장애계에서는 이 기념식에서 고위관계자가 한 번이라도 더 장애계 주요 과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시 장애인 언론사 기자들은 기념식 당일 새벽부터 VIP가 배석하는 자리를 미리 파악하여 그 자리에 장애인 신문이나 잡지를 비치하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러한 작업들이 장애 관련 정책을 만드는 데 주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애인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장애 문제를 다루는 언론 보도가 이전보다 증가했으며, 장애인 고용, 교육, 이동권, 참정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법안 발의와 정책 토론회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부는 2005년부터 장애 인식개선 방송자료인 <대한민국 1교시>를 제작하여 전국 학교에서 방영하도록 했으며, 각 지자체도 장애체험, 수어 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장애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 제44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전경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들도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2006년 한국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기업들이 기존에는 장애인 시설에 금전적 기부를 해왔다면 점차 장애인 초청 영화 관람, 거주시설 방문 및 봉사활동 등 장애인의 날을 활용하여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참여형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며 장애인의 날이 가진 의미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형식적인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대한 우려
장애인 복지와의 괴리
이처럼 장애인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당시 많은 대중들에게 인식 제고의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념식과 같이 일회성의 형식적인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그쳐 궁극적인 장애인 복지 증진과는 무관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하기도 했다.
첫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여했던 지체장애인 고 이현준 씨는 함께걸음 1991년 4월호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올림픽공원에 들어서자 장애인의 날 주제가처럼 되어버린 <사랑으로 가는 길>이 울려 퍼졌고, 행사장은 5천여 명의 장애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 유공자 표창과 공연이 이어졌고, 인기가수들의 콘서트가 시작되자 10대 팬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 올림픽공원을 빠져나오니 조금 전의 열기는 간데없이 한적한 정적이 감돌았다.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행사장의 열기는 극히 한정된 장소에서의 우리들끼리만의 잔치가 아니었는가? 평소에 이 거리에서 장애우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남의 눈총 안 받고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장애 해방아닌가?’그는 이어서 ‘대목을 만난 듯 하루 날 잡아 헤세 부려 봐야 장애우 복지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과연 그날을 비장애우들이 얼마만큼 알겠는가? 장애인의 날이 장애우에 대한 비장애우 인식제고에 더 기여를 하겠는가? 아니면 정부의 홍보에 더 큰 기여를 하겠는가? 장애인의 날은 장애우보다 당국이 더 흐뭇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정 그렇다면 장애인의 날은 없는 것이 낫다. 장애우복지에 오히려 방해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형식적인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우려했다.
△ 1991년 <함께걸음> 4월호에 고 이현준 씨가 첫 공식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여한 소감을 실은 글
현재를 살아가는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
낙인과 대상화가 아닌 서로에게 스며드는 계기 되어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한 지 40년이 흘렀다. 고 이현준 씨가 40년 전 첫 기념식에 참석한 날에 가졌던 수많은 질문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본다. 그의 걱정어린 질문들에 40년 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한 세대가 지난 현재의 장애 당사자들은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장애인의 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간 장애인의 날을 경험하며 보내온 세월에 대해 장애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었다.
시각장애인 당사자 송민섭 씨(30세)는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발전해온 과정을 인정하면서도 “장애인의 날이 점점 장애인 당사자를 ‘상품화’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4월 20일 단 하루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매일 동등하고 평등하게 국민으로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강조했다.
지체장애인 당사자 김남영 씨(27세)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우리 사회가 한 번이라도 장애인에 대해서 기억하려면 장애인의 날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해요. 비장애인은 물론 장애인 입장에서도 다른 장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장애인의 날이나 그 시기에만 장애 이슈를 챙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때만 장애인에게 집중하고 똑같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죠. 그날을 기점으로 점점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김 씨는 기존의 장애인의 날 기념식 방식을 꼬집으며 더 건설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길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가 하는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항상 상을 주는데, 이게 ‘장애를 가진 몸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기특해서’ 주는 것 같아요. 이게 행사에 계급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더라고요. 장애인을 ‘낮은 계급’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는 것만 같은 거죠. 행사가 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화합하는 밝은 분위기면 좋겠어요. 건설적으로 장애 관련 정책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는 날이 되어도 좋겠고요.”
학교에서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 환기하는 당사자들의 답변도 있었다. 지체장애인 당사자 정은지 씨(29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함께 다녔던 친구에게 “너 내가 장애가 있는 걸 알고 만나는 거지?”라고 물었을 때 친구의 대답이 “아니? 난 그냥 너여서 만나는 건데?”라고 돌아왔던 것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장애인의 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우대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똑같이 지내면 안되나요?”라고 되물었다.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유지민 학생(지체장애)은 장애인의 날마다 진행하는 학교 행사를 회상하며 “전 학교에 지금까지 10년 넘게 다니면서 장애 학생이 학교에서 저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장애인의 날이라고 선생님이 언급하면 자연스럽게 모든 시선이 저에게 오고.. 포커스가 저한테 맞춰지는 경험이 많았죠. 저처럼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수업 듣는 사람한테는 ‘장애인에게 집중되는 날’ 자체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날 하는 행사의 방식도 의문이 들고요. 영상 보는 활동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봐요. 통합교육이라는 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된 느낌을 줄이려고 하는 건데 장애인을 더 부각시키는 느낌이에요. 오히려 이런 행사들이 학교 친구들이 저를 볼 때 장애라는 정체성을 먼저 보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해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지민 학생은 장애인의 날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장애인의 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소수자성을 띠는 날은 장애인의 날 말고도 많잖아요. 오히려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학교 안에서는 연대감을 경험할 일이 없는데 사회에 나오면 장애인이 나 말고도 있으니까 소수자집단의 연대감 차원에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장애인의 날을 어떻게 학교가 대하느냐겠죠.”
하루로 끝나는 기념식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가 장애 문제를 고민하는 발판이 되어야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40년 동안 장애인복지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고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다양한 법률과 정책들이 생겨났다.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문가 중심이 아닌 당사자 중심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고용의무제도 등 미비하지만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향해 진보하고 있다.
그러나 40년 전의 고 이현준 씨의 고민과 현시대를 살아가는 장애당사자들의 고민은 크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장애인의 권리를 환기하고, 인식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방식에는 40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모두 함께 치열하게 노력하여 만들어낸 제도적 성취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장애인의 날에는 40년 전과 동일하게 표창과 공연 위주의 기념식이 이루어진다.
장애인의 날 기념식은 본래 취지에 맞게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생각해야 하는가. 이제는 본질적으로 그 방식과 의미를 시대의 변화에 맞게 진화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리고 질문해야 할 때다. 기념식이 매년 서울 중심 지역에서 진행되어야 하는가. 일부 장애계 인사들을 제한적으로 초청하는 형식이 아닌 전국의 장애 당사자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장애 문제를 점검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될 순 없는 것인가. 장애인이 특별한 대상이 되기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보다 건설적으로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면 어떨까.
궁극적으로는 하루를 법정기념일로 지정하지 않아도 365일이 ‘장애인의 날’이 되어 자연스러운 일상을 누리고 장애와 비장애 구분없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일 것이다.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는 장애인의 날을 단순한 행사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의미있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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