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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단 한 사람도 배고프지 않은 삶을 향한 왓바의 크고 작은 실천들

왓바,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다 / 특별기획

본문

△ 소네 오조네 전경
 
일본 나고야시 오조네역 인근에는 400여 명의 사람들이 능력에 상관없이 함께 벌고 나누어 가지는 생활을 5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왓바 공동체가 있다. ‘왓바’는 일본의 복지제도에 의존하기보다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일반적이지 않은’ 실천들이 눈에 띄는 곳이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1971년 작은 목조주택에서부터 시작된 왓바는 현재 장애뿐 아니라 국적, 학력,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소외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기여하며 함께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며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왓바의 사업들은 ‘복지, 주거, 노동, 환경, 농업’ 분야로 운영되고 있다. 복지와 관련해서는 상담을 통해 서비스를 설계하는 상담지원센터, 주간보호센터, 공공후견서비스, 활동지원서비스 사업 등을 하고 있으며 주거와 관련해서는 공동생활주택, 자립체험홈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노동과 관련해서는 빵을 생산하는 ‘왓빵공장’, 나고야 직업개척학교 ‘노리우치 우동가게’, 오소네 맥주양조장, 소네 오조네 상점 등을 운영하며 환경과 관련해서는 재활용센터와 리사이클링숍이, 농업과 관련해서는 무농약 쌀과 밀을 생산하는 치타농장이 있다.
 
△ 왓바의 다양한 사업들의 선순환 구조를 나타내는 흐름도
 
노동력을 창출하는 왓빵 공장은 치타농장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밀가루로 만들어진다. 이 밀가루는 나고야 직업개척학교의 노리우치 우동가게에서도 사용되며 빵 공장과 우동가게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들은 왓바에서 운영하는 재활용센터와 에코스테이션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퇴비를 다시 치타 농장으로 보내어 계속해서 자원을 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내 왓바의 사업들을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모두가 배부를 수 있는 삶을 위한 왓바의 중요한 가치,
함께 번 돈의 지갑을 하나로 모아 균등하게 나누어 갖다
 
지금으로부터 54년 전, 지역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는 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에 의문을 품었던 왓바의 설립자 사이토 겐조 씨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체장애인 1명과 2명의 비장애인, 셋이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왓바의 첫 시작이었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왓바의 철학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금세 20명으로 늘어났다. 그 중 10명이 장애인이었고 대부분 지적장애인이었으며 3명은 어린이, 나머지 7명은 비장애인이었다.
 
이들이 모여 산지 반년이 지나자 낮에 갈 곳이 없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청소 일부터 여러 가지 일을 조금씩 해보기 시작했다. 소일거리로는 돈이 벌리지 않아 중고 차량을 매입해 물건을 싣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판매하기도 했다.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각자 노동을 통해 수익을 벌다 보니 어떤 사람은 능력에 따라 돈을 많이 벌지만 다른 사람은 그러지 못해 생활면에서 차이가 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왓바는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원칙을 세웠고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금액을 분배금으로 받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장애가 있든 없든 모두가 같은 금액을 나누어 가졌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분배금에 차이를 두기 시작했다. 비장애인의 경우 가정을 꾸리면서 소비처가 많아짐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고 장애인은 그에 비해 소비처가 적어 적금만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왓바는 1980년대부터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원칙으로 하지만 분배금액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차이를 두고 있다. 장애인의 경우 기본적으로 분배금 액수는 연금과 수당을 포함해 모두 129,280엔(한화 약 126만 원)으로 동일하게 분배한다. 연금을 받지 않는 장애인도 똑같이 129,280엔을 받는다. 비장애인은 기본분배금에 급식 여부에 따른 차이와 더불어 가족 형태 및 구성원의 연령, 거주형태, 근속기간, 책임 여부 등에 따라 기본분배금에 가산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배금 기준과 경력 등에 관한 가산 기준은 아래 표와 같다.
 
<왓바 분배금 기준표>
* 장애인의 경우, 연금 유형과 수급 여부에 따라 기본급이 달라지며, 비장애인의 경우, 급식 형태에 따라 기본급이 달라짐
* 왓바 회비는 파트타임 근무자 제외 모든 왓바 회원이 내며 왓바상호 회비는 왓바 회원들의 결혼, 장례, MT 명목으로 사용됨
 
<분배금 가산 제도>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작업장 운영
서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
 
왓바는 능력주의에 기반하여 누군가가 지도하고 훈련받는 형식이 아닌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하며 일을 수행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장애인이 하는 일과 비장애인이 하는 일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누군가 집중을 잘하든, 하지 못하든, 자격증이 있든 없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작업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현재 50명의 사람들이 함께 빵을 만들어내는 ‘왓빵 공장’은 1982년, 왓바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우연한 기회로 제빵회사를 퇴사하고 화학성분 무첨가 제품의 빵을 만들어보겠다는 사람을 만나 빵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다운증후군 여성장애인과 사이토 겐조 씨가 함께 만든 식빵과 버터롤. 그렇게 지금의 왓빵이 탄생하였다.
 
 
현재 50명의 왓빵 근로자 중 반 이상이 장애 당사자이다. 위생 옷과 위생모자를 착용하고 들어선 빵 공장은 체계적인 질서 속에서 다채롭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공존했다.
 
인기 메뉴인 동물 빵은 자폐성 장애인 유타 씨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9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유타 씨의 작업 노트에는 벌, 양, 코끼리, 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어떤 색감과 재료, 그리고 얼만큼의 무게를 사용할지도 적혀있었다. 유타 씨가 만드는 빵은 유치원에서도 인기가 많아 나고야시립유치원 등으로 납품되기도 한다.
 
△ 왓빵의 인기상품, 동물 모양의 빵을 만들고 있는 모습
 
중증의 자폐성 장애가 있는 마도카 씨는 집중력이 짧다. “마도카 상, 여기로 와서 반죽 떼는 것을 도와주세요” 동료의 부름에 마도카 씨는 다가가 반죽을 10개 정도 떼다가 금방 지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동료에게 다가가 어깨를 만지고, 그 동료는 익숙한 듯 마도카 씨를 안아주며 다독인다. 그러고는 다시 마도카 씨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왓빵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대부분이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에 가끔씩은 도전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있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에 갑자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출근길에 기분 좋지 않은 일을 경험하면 공장에서 일하는 내내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럴 때는 빵 만드는 일을 잠시 멈추고 동료의 도움을 받아 잠시 쉬거나 낮잠을 자고 오곤 한다.
 
장애인 뿐 아니라 지역의 모든 소외계층과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는 왓바
지역주민들의 사랑방 ‘소네 오조네’를 만들다
 
왓바의 활동은 점차 지역사회 전체로 확대되며 장애인뿐 아니라 아동, 노인, 외국인 노동자 등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 개소된 ‘소네 오조네’는 지역교류의 거점지로 주택단지재생을 축으로 한 지역사회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본래 건물 1층에 큰 슈퍼가 있고 그 위에 아파트가 세워진 주상복합건물 중 70여개를 타 법인에서 노령자 공용주택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왓바가 인수, 소네 오조네를 만들었다. 이 공간을 지역주민들이 사랑방처럼 오며 가며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 처음 공간을 만들 때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였으며 현재까지 크고 작은 실천들이 이어지고 있다.
 
원목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네 상점에는 왓바에서 생산하는 빵과 밀, 그리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채소와 반찬들을 판매한다. 상점 한 켠에는 장애인 등 소외계층들이 일하는 작업장에서 생산한 가방, 손수건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 지역의 아이들이 쉼터 공간을 찾은 모습
 
상점의 또 다른 한 켠에는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간식들이 즐비해 있고 그 앞으로는 학생들이 하교 후 언제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은 쉼터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곳을 찾은 아이들은 누워서 책을 보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보드게임을 한다.
 
소네 상점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식당이 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지역 주민들이 와서 한 끼를 해결한다. 그 옆에는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자녀들이 노는 것을 보면서 이웃이나 친구들과 식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아동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몇 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온 케이코 씨는 이 지역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소네 매장을 즐겨 찾다가 최근에는 캐셔직으로 취직하여 왓바의 식구가 되었다.
 
△ 소네 상점에서 캐셔로 근무하고 있는 케이코 씨와 이곳을 찾은 손님들의 모습
 
식당의 벽면에는 ‘미래 티켓’이 붙어 있다. 하루에 정해진 개수만큼 지역의 아이들(1세부터 중학생까지)에게 식사(튀김, 카레, 우동 등)를 제공하는 쿠폰이다. 하루에 최대 30장까지 소득과 관계없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 본래 정부 보조금 사업으로 시작되었으나 올해 2월 종료돼 현재는 왓바의 실천적 가치에 동의하는 기업의 후원으로 지속되고 있다.
 
△ 소네 식당 벽면에 붙어 있는 '미래 티켓'
 
식당 뒤로는 소강당이나 프로그램실처럼 공간을 마련해 지역사회 누구든 해당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낮에는 지역의 노인들이 여가프로그램을 하고 저녁에는 댄스 클럽 등이 진행된다.
 
소네 상점과 붙어 있는 바로 옆 공간엔 ‘소네 시게’라고 하는 재활용센터가 있다. 이른 아침부터 왓바 회원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전날 나온 박스, 캔 등 재활용한 자원들을 들고 이 센터를 찾는다. 신문, 잡지, 우유 팩, 알루미늄 캔, 봉제인형, 플라스틱 병, 금속, 자동차 배터리, 자전거 등을 매입하는 이 센터에서는 각 자원별로 무게를 재서 ‘왓피’라고 하는 포인트로 돌려준다. 왓피는 소네 상점이나 식당 등에서 사용 가능하며 리사이클링 숍(한국의 아름다운가게와 유사한 형태)에서도 물건 구입이 가능하다.
 
이렇게 왓바는 이들만의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교류하면서 신뢰를 쌓아갔다. 현재는 본래 노령자 주택으로 운영하던 70개소 공용주택을 장애인, 노인, 외국인 노동자 등 지역사회에서 생활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운영 중이다. 타 법인이 노령자 주택을 운영할 때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거셌지만 왓바가 지역사회와 교류하기 위한 정성 들인 노력 끝에 지금은 모두가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한다고 한다.
 
△ 인근에서 식자재마트를 운영 중인 주민 케이 씨가 이른 아침 박스 더미를 들고 '소게 시게' 재활용 센터를 찾은 모습
 
단단하고 견고하게 지켜져가고 있는 왓바의 가치들
그러나 젊은 세대의 유입에 대해서는 의문점 남아
 
왓바는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 사람도 배고프거나 가난하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합친다. 때로는 일이 많거나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내 이웃, 나의 동료와 함께 배부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괜찮다. 왓바는 사회주의의 이상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왓바 바깥의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다. 개인의 실적과 업적을 인정받고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어떤 이들은 왓바의 철학과 가치에 동의하더라도 선뜻 함께 하기로 결정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왓바의 회원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왓바는 국가에서 정부가 했어야 할, 또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민간이 작게나마 실천하며 사례들을 쌓아가고 있다. 왓바는 지역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게 최소한의 돈을 주는 것 이상으로 한 시민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왓바가 걸어온 50년 이상의 역사는 우리가 함께 힘을 합치면 모두가 배부르게, 한 사람의 몫을 다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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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취재. 이미정 편집장, 김영연·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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