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럇샤이마세!” 오조네역을 울리는 목소리, 왓빵의 판매왕 카와사키 히로미치 씨의 하루
카와사키 히로미치 인터뷰 / 특별기획
본문
카와사키 히로미치 씨(52세)는 지적장애인 당사자로 6살 때 부모님을 모두 여읜 그는 30년 전에 왓바의 가족이 되었다. 가끔 화내는 모습이 ‘타코야키 빵’을 닮아 왓바 내에서는 ‘타코’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는 왓바에서 운영하는 ‘오조네 주택(믿음하우스)’에서 다른 장애인 1명과 함께 살고 있으며 25년 동안 ‘왓빵’공장에서 이동판매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동식 손수레에 왓빵을 한가득 실어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열차 역사나 병원 앞에 서서 직접 사람들에게 빵을 판매한다. 이는 왓빵의 전통적인 판매 방식이기도 하다.
카와사키 씨는 손님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잘 나누지만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대해서는 쉽게 풀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가끔은 질문과 전혀 다른 내용의 답변을 하기도 하고, 한 주제로 오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주체적이고 계획적으로 사용한다.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킬 뿐 아니라 빵이 가장 잘 팔리는 시간이 다가올 때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도록 목소리를 높인다. 계산기가 없어도 간단한 암산 정도는 가능하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도 언제나 2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왓빵의 판매왕, 지역에서 축제가 열리면 주민들이 그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올 정도다. 빵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왓바 내 근면성실의 아이콘, 카와사키 씨의 하루를 함께 따라가 본다.
모두에게 그렇듯 분주한 아침,
자전거 타고 출근길을 나서다
9시까지 왓빵 공장에 출근하는 그는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이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옷을 챙겨입었지만 자전거 헬멧의 풀어진 버클이 잘 채워지지 않아 말썽이다. 마음이 급하니 더 잘 안되는 것 같다. 때마침 그의 집을 찾은 왓바 동료(비장애인)에게 버클을 채워달라고 부탁한다.

△ 출근을 준비하는 카와사키 씨
헬멧 버클을 해결한 그는 다시 분주하게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하루종일 마실 물이 담긴 큰 보온병을 가방에 챙긴다. 신발을 신고 문밖으로 나섰다가 급히 다시 방 안으로 유턴한다. 출근카드와 자전거 열쇠가 달린 목걸이를 깜빡했다. 함께 사는 룸메이트 요코 오사베리 씨(자폐성 장애)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자전거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믿음 하우스 1층에 위치한 소네 상점을 이용하러 온 지역 주민들과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자전거 타고 빵 공장까지는 20분 남짓. 오늘 판매할 빵을 가지러 가기 위해 그는 매일 같은 길을 달린다. 빵 공장에 도착한 그는 오늘 판매할 빵을 손수레에 차곡차곡 담는다. 동료들과 함께 오늘 빵을 어디서 팔지 이야기를 나눈 후, 해당 장소로 이동한다. 오늘의 근무지는 빵 공장에서 도보로 약 20분 정도 떨어진 오조네 역이다.

△ 출근길, 집 앞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오조네역을 가득 메운 그의 목소리
“이랏샤이마세! (어서오세요!)”
‘달달달달--’요란한 소리를 내는 80여 개(여섯 상자)의 왓빵이 들어있는 손수레를 끌고 그는 오조네역에 도착한다.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카와사키 씨의 걸음으로는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다닐만한 곳에 적당히 서서 보기 좋게 빵을 정리한다. 종류별로 2개의 빵 상자를 꺼내놓고 나머지는 아래로 쌓아놓는다. 손수레 뒤쪽으로는 빵 상자 뚜껑을 내려놓고 그 위에 아침에 챙겼던 보온병과 빵 공장에서 받아온 점심도시락 통 가방을 내려놓는다. 돈이 들어있는 보조가방은 목에 메고 있으며 거기엔 ‘헬프마크(장애인 등 도움이나 배려가 필요한 상황임을 알리는 마크)’가 달려있다.

△ 빵을 구매한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카와사키 씨. 그의 가방에는 헬프마크가 달려있다.
판매 준비를 모두 마친 그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어서오세요! 왓빵입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오조네역을 가득 메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안녕하세요”를 작게 외치기도 했다. 그는 점심 먹을 때나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서서 손님을 맞이한다.
한 학생이 다가와 달콤한 빵이 있냐고 묻자, 그는 “네 그럼요!”하고 큰 목소리로 답하며 단맛의 빵을 앞으로 보이게 꺼내놓는다. “300엔입니다.”라고 이야기하니 손님이 천 엔을 건넸고 카와사키 씨는 돈이 들어있는 보조가방에서 100엔짜리 7개를 꺼내 돌려주었다. 빵을 비닐봉지에 넣어주진 않는다. 손님은 계산한 빵을 본인이 챙겨서 가져간다. 카와사키 씨는 손님이 빵을 여러 개 사가지 않는 이상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빵을 판매할 때마다 따로 장부를 작성하지도 않았다.

그는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유동인구가 많아질 퇴근시간이 되자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이랏샤이마세!”를 외친다. 이번엔 단골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단골손님을 보자 아주 환한 웃음을 보이며 안부를 묻는다.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런 장면에 지나가던 다른 손님들이 관심을 갖고 빵을 사러 오는 모습도 보인다.
그의 단골 손님 중 한 명인 M씨(60세)는 “오늘 카와사키 씨가 나오는 날인 것 같아서 일부러 지나갔다”고 말한다. 왓빵이 맛도 있지만 카와사키 씨로부터 이 빵이 천연 밀가루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듣고 난 후 더 자주 사 먹게 됐다고. 오조네역 근처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는 “왓바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복지 쪽 일을 하는 곳이라는 건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루의 마무리와 가벼운 발걸음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일에 대한 열정
오후 6시가 되자 카와사키 씨는 남은 빵 개수를 세고 다시 빵 공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80개 중 53개를 팔았다. 보온병과 도시락 가방을 챙겨 손수레 위에 싣고 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빵 공장으로 돌아간다.
“하루종일 서 있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한다.
“25년 동안 이 일을 했어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그리고는 덧붙인다. “오늘은 빵이 잘 팔린 편이라 기분이 좋아요.”

△ 빵 판매를 마친 뒤 빵공장으로 복귀하는 모습
25년 전, 그가 왓빵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판매 일을 맡았다고 한다. 처음엔 낯선 사람들에게 빵을 판매하는 일이 부끄럽진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25년이 지나서 기억은 안 나는데요. 사람들한테 말 거는 게 부끄러웠던 적은 없어요.”
왓빵을 판매하는 일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허가받지 않은 구역에서 갑판 대를 차려 오랫동안 판매하면 불법이지만 카와사키 씨처럼 카트를 이용하여 돌아다닐 경우에는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십여 년 전, 오조네 역에서 판매할 때 역무원이 와서 판매를 금지시켰던 적이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당시 문제를 해결해주었던 것은 지나가던 왓빵의 손님들이었다. 손님들이 오히려 역무원에게 판매 제지를 시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그래서 지금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카와사키 씨는 가끔 화장실 갈 때만큼은 교대로 빵을 팔아줄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본인에게 아주 잘 맞고 즐거운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때때로 왓바 외부 사람들이 이러한 판매 방식을 ‘장애인을 이용해 앵벌이(구걸)하는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카와사키 씨에게 있어 이 일은 스스로의 가치와 존엄을 지키는 자존이다.
그는 다시 빵 공장으로 돌아가 점심 도시락 통과, 남은 빵 그리고 오늘의 수익금을 가져다 놓았다. 남은 빵을 놓기 위해 공장 안으로 들어갈 때는 위생을 위해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썼다. 그후 동료 직원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뒤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빵과 수익금을 전달하는 카와사키 씨
야구, 그리고 춤과 함께 하는 저녁
내일을 살아갈 힘을 충전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룸메이트와 아침보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인사를 나눈다. 가끔은 차를 사와서 함께 나누어 마신다고 한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가 TV를 켜고 야구경기를 시청한다. 그의 방 안은 야구 관련 포스터와 다녀온 티켓들로 가득하다.

△ 카와사키 씨의 방 벽면
저녁은 공동주택의 왓바 회원들과 함께 먹거나 가끔은 도시락을 챙겨 혼자 식사하기도 한다. 저녁 먹을 때 즈음 헬퍼가 그의 집으로 온다. 왓바의 헬퍼 제도는 일본에 활동지원제도가 도입되기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기존의 제도와 조금 다르게 운영된다.
정부의 제도는 활동지원 자격이 있는 사람이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하고 돈을 받는 형태이지만 왓바 헬퍼의 경우는 활동지원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할 수 있고 이들은 협동조합처럼 헬퍼와, 헬퍼의 지원을 받는 당사자들 모두 회비를 내고 정해진 시간 이외에도 필요한 사람들이 지원 받을 수 있게끔 운영된다. 카와사키 씨의 헬퍼는 그의 금전 관리, 양치질, 안약 투여 등을 지원한다.
카와시키 씨의 경우, 왓바에서 받는 분배금 중 숙식비를 공제받는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약 5,000엔(한화 약 5만 원)의 용돈을 받아 1주일 동안 사용한다. 주로 외식 및 간식 비용이나 야구 관람 비용으로 사용한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오조네 주택 사람들 10명 정도 모여서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카와사키 씨가 일주일 중 가장 사랑하는 시간 중 하나다. 예전에 함께 왓바 회원이었다가 이제는 밖에서 라멘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카사하라 카츠미 씨가 춤 강사로 와서 약 2시간 정도 함께 춤을 춘다.
카와사키 씨는 빵을 판매할 때와의 모습과는 또 전혀 다른 표정으로 진지하게, 그렇지만 아주 자유롭게 춤을 춘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이들은 지역축제나 행사 때 초청되기도 한다.
빵을 통해 건네는 ‘맛있는 위로’
그의 위로로 일상을 살아내는 지역 주민들
카와사키 씨의 오랜 동료 치하루 씨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퇴근 후 저녁, 춤 모임에서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 카와사키 씨 오른쪽 파란색 잠바를 입은 사람이 그의 룸메이트 오사베리 씨다.
“카와사키는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너무 잘해요. 진심이 담긴 말이요.” 최근에는 한 손님이 그에게 다가와서 “지난번 병원 앞에서 제가 빵 샀을 때, ‘기운내세요’라고 말해주셨잖아요. 그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됐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도 그는 나고야 시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위로’를 건네고 있을 것이다. 일상을 정성껏 살아내는 그의 모습은 그저 빵을 파는 일을 넘어, 하루를 다정하게 견뎌내는 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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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취재. 이미정 편집장, 김영연·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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