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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따뜻한 도시락으로 지역사회에서의 공생을 꿈꾸는 센트럴키친 카스가이

'FLAT86’을 통해 지역사회에 또 다른 공생사회를 꿈꾸다 / 특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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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와 수도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그 소리를 뚫고 이따금 ‘탁, 탁’ 칼질 소리도 들려온다. 하얀색 위생복에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그들 사이로는 은색 식기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이곳은 일본 아이치현 카스가이시에 위치한 도시락 생산 공장 ‘센트럴키친 카스가이’의 주방이다.
 
겉은 하얀 외벽의 단층 건물로 단순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하루 5,000개의 도시락이 생산된다. 식자재 손질부터 조미 계량, 조리, 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 과정에 장애인 근로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식사’가 전하는 가치
‘누가 만든 도시락인가’보다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전달되는가’
 
이곳의 도시락은 주로 노인생활시설에 납품되며, 주 소비자는 고령자다. 계절감을 살리고, 집밥처럼 익숙하며, 영양 균형을 고려한 메뉴 구성이 기본 원칙이다. 씹기 편하도록 재료를 잘게 썰고, 연화식이 필요한 경우엔 부드러운 식재료만을 사용한 특별 메뉴도 만든다. 알레르기 등 고객 개인의 기호에 맞춘 도시락 제공도 가능하다.
 
△ 센트럴키친에서 제작해 제공하는 연화식
 
센트럴키친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아오 다이스케 씨는 ‘맞춤형 식사 제공’을 센트럴키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영업을 갈 때도 ‘장애인이 만든 도시락’이라는 설명은 굳이 내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제품의 품질 자체로 평가받기를 원하며, 맛과 서비스 경쟁에서 다른 업체들과 당당히 맞서고 있다. 소비자가 선택하는 기준은 복지가 아니라 맛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묵묵히 센트럴키친 카스가이를 움직이는 이들
맞춤형 업무 배치와 청결 중심의 협업 구조
 
현재 센트럴키친 카스가이에는 60명의 장애인과 30명의 비장애인 등 약 90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장애인 직원 중 30명은 ‘취로계속지원 A형’으로 월 약 16만 엔(한화 약 160만 원)의 급여를 받고, 나머지 30명은 취로계속지원 B형으로 약 5만 엔(한화 약 50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장애 유형은 지적장애 53명, 정신장애 4명, 신체장애 3명이다.
 
센트럴키친 카스가이에 취업을 희망하는 경우, 2주 동안은 모든 과정의 업무를 경험하고, 이후 당사자가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맡게 된다. 당사자의 성향을 고려하여 배치가 이루어진다. 주 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며 센트럴키친에서 운영하는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도보로 출근, 공장까지 출퇴근이 어려운 경우 셔틀버스를 운행해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픽업한다.
 
△ 생선 구이를 준비 중인 센트럴키친의 직원
 
고객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만큼 철저한 청결 관리가 최우선이며, 센트럴키친은 식품위생 기준인 HACCP 인증도 획득했다. ‘청결은 곧 신뢰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곳의 기본 원칙이다. 이를 위해 센트럴키친은 ‘일방향 동선’이라는 조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재료뿐 아니라 작업자도 각자의 구역을 넘나들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 작업 동선과 공간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장애 당사자들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정해진 동선을 벗어나지 않고 익숙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칼과 불을 취급하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주방 환경에서 그들은 능숙하게 행동했다. 처음에는 보조기구를 이용해 칼질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각자의 역할에 숙련되어 보조기구들은 필요하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중간중간 비장애인 근로자도 있다. 비장애인 근로자는 장애인 근로자들을 지도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근로자가 재료 손질을 어떻게 할지 망설일 때 비장애인 근로자들은 작업 모델이 되어준다. 장애인 근로자들은 주변의 비장애인이 하는 것을 보며 따라 하고 다가가 물어보면 가르쳐 주는 식이었다.
 
△ 발달장애 당사자도 이해하기 쉽게 칼질 방법을 그림으로 설명해 놓았다.
 
주방 곳곳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조미료를 얼마나 쓸지’ 같은 간단한 업무 지시부터 작업 순서를 메모한 내용까지 다양했다. 레시피와 재료가 자주 바뀌는 주방의 특성상 탈부착이 용이한 포스트잇을 주로 활용한다. 벽면에는 재료를 자르는 방법, 조미료를 포장하는 방식 등을 설명한 안내문도 곳곳에 붙어 있다. 모두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과 함께 짧고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조리 방법과 함께 포스트잇으로 곳곳에 붙어져 있다
 
‘매일 5,000개의 식사’가 가능하기까지
계속된 적자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가다
 
센트럴키친 카스가이는 2009년 8월에 설립되어 올해로 16년째를 맞았다. 당시에는 센트럴키친의 운영법인인 ‘훈덕회(薰徳会)’가 운용하는 8개의 노인요양시설을 주 대상으로 도시락 납품을 시작했다. 설립 초기부터 근무해 온 발달장애인 당사자 다카하시 씨는 “그땐 같이 일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우리가 먹을 도시락만 만들어도 하루 일거리가 끝이 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공급처가 70여 곳으로 늘었다. 직접 도시락을 들고 시설을 찾아다니며 “저희 도시락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권한 수차례의 영업 덕이었다.
 
△ 센트럴키친 카스가이의 미타 아키히로 씨
 
설립자이자 대표인 미타 아키히로 씨는 “법인 훈덕회의 사무장으로 일할 때 환자들이 ‘먹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걸 자주 봤어요. 법인인 훈덕회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죠. 그러다 법인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던 나고야의 한 대학교수가 중증 신체장애가 있는 자신의 아들을 위한 돌봄 시스템을 제안해 법인 내부에서 논의가 시작됐고, 그렇게 설립이 되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운영은 순탄치 않았다. 매년 약 4천만 엔(한화 약 4억 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했다. 미타 씨는 병원 사무장으로 평생을 안정적이고 대접받는 삶을 살아왔지만, 센트럴키친을 운영하면서는 상황이 달랐다. 빚이 많아져 은행의 집중관리 대상이 되었고, 주변에서도 점점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일하는 곳도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는 의지로 이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비로소 흑자로 전환됐다며 미타 씨는 “적자가 계속되던 시기에 ‘지금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든 직원에게 솔직하게 공유했어요. ‘우리가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공유되면서 ‘그러면 안 되지 않나’는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요. (…) 그건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서로를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동료’로 인식해 온 관계 덕분이 아닐지 생각합니다.”라고 그 과정을 설명했다.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가장 의미있는 수익을
‘3년 계획’, ‘임금인상’, ‘모두를 위한 일터로’
 
앞으로의 과제도 분명하다. 적자는 벗어났지만, 센트럴키친은 이제 장비와 설비의 노후화를 하나씩 마주하게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여기에 작업 공간의 확장을 위한 증축 계획도 필요하다. 현재 계획은 출하 공간을 넓혀 생산량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렇게 출하량 증가로 확보되는 수익은 제일 먼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취로계속지원 B형의 장애인 직원들의 임금 인상에 사용할 계획이다.
 
△ 센트럴키친 공장 앞에 직원들이 오손도손 모여 있다
 
센터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하다.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선택받는 구조. 그리고 그 수익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는 일이다.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라 여겨지는 센트럴키친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라 불리는 장애인 노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미타 씨는 이 실천이 장애인의 노동을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 ‘시장 안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가치’로 바라보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길 바라고 있다.
 
15년간의 적자의 늪을 벗어난 센트럴키친 카스가이
‘FLAT86’을 통한 지역사회에 또 다른 공생사회를 꿈꾸다
 
센트럴키친은 ‘일과 삶의 공존’을 고민하며 오는 6월, ‘FLAT86’이라는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미타 씨는 “일본 사회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매우 큽니다. 지역 주민들이 ‘정신장애인인 걸 알 수 있게 가방이나 뱃지를 달고 다녀라’는 식의 무례한 말을 하기도 했었죠.”라며 현실을 전했다. 그리하여 FLAT86이라는 40명의 정신장애인을 위한 일터를 만들고 있다.
 
정신장애인들이 소규모 빵집 등에서 저임금으로 일을 하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미타 씨는 이들을 위한 일터를 고민했다. 지하철역 주변으로 야구장과 쇼핑몰이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의 건물을 매입, FLAT86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곳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1층은 교자와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공간으로 통유리를 설치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정신장애인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2층은 청년과 지역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예술 활동이나 소규모 이벤트 등 다양한 용도로 개방할 계획이다. 3층에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직업상담실이 마련된다.
 
이곳에서 판매할 교자는 일본의 유명 셰프에게 전수받는 중이다. 앞으로 5년간 해당 셰프로부터 꾸준히 컨설팅도 받으며 ‘장애인이 만들었기 때문에’가 아니라 ‘상품이 뛰어나서’ 소비자가 선택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미타 씨는 FLAT86의 실현을 위해 약 10억 원의 연대보증까지 서며 진심을 쏟고 있다.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15년간 적자를 감내하며 운영해 온 센트럴키친, 이제 FLAT86을 통해 또 한 번의 여정에 나서고 있다. 
 
△ FLAT86 건물. 올해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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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취재. 이미정 편집장, 김영연·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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