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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질문과 상상을 품고 돌아오다 / 일본에 다녀와 다시 생각한 ‘공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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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질문과 상상을 품고 돌아오다
 
글. 동기욱 기자
 
비장애인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장애인이 하려면 두세 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경쟁 중심 사회는 이들을 비효율적으로 바라보곤 한다. 일본에서 만난 기관들은 그런 사회의 틀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개인의 성향에 맞는 직무를 배치하고,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곁들이는 배려 속에서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말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었다. 말은 쉽지만, 현실에서는 지키기 어려운 그 가치를 이어가는 이들의 노력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뜻깊었다.
 
한국에도 장애인의 일과 자립을 위한 시도들은 존재한다. 직업재활시설이나 발달장애인의 일터, 보호작업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돕는 소비’ 에 머무르기 일쑤다.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은 “품질이 좋아서 산다”고 말했다. 이런 차이는 단지 제도나 지원금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사회 전체의 문화와 인식이 바뀔 때 가능한 일이 아닐까.
 
 
간바컴퍼니의 쿠키 공장에서 한국과 다른 낯선 손 세정제 사용 방법에 당황해하자, 지적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사용 방식을 보여주고 세정제를 가리킨 뒤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도움을 주고 자연스럽게 일자리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은 작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배려였다. 왓빵에서 일하는 카와시키 씨가 목소리 높여 빵을 사라며 외치고, 빵을 사러 온 손님에게 기분 좋은 웃음으로 보답하며 자기 일에 진심을 다하는 그를 보며, 나도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자극도 받았다.
 
발달장애인들이 사이토 겐조 씨에게 “켄 짱~”이라며 인사를 건네고, 미타 씨의 볼을 다정하게 꼬집었다. 대표라는 직책에도 자연스럽게 당사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요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다양한 권리들이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교권과 학생권,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인권처럼 상충하는 권리들이 서로 부딪힐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입장만을 앞세운다. 자신들만의 권리를 내세우면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번 방문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나 문득, 이런 이상적인 장면들이 과연 지역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들었다. 과연 대도시에서는 이런 관계 맺음이 가능할까? 혹은 장애인에 대한 낙인이나 거리두기는 특정 지역에서만 덜한 건 아닐까?
 
일본 사회 역시 ‘장애’라는 단어를 둘러싼, 오래된 편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본 취재를 ‘답을 찾은 취재’라기 보다 ‘더 많은 질문을 품고 돌아온 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장애인의 삶을 ‘이렇게 하면 된다’고 설명하는 대신, ‘이런 장면도 가능하구나’ 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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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다녀와 다시 생각한 ‘공생’의 의미
 
글. 김영연 기자
 
“일본, 정말 뭐가 다르긴 할까?”
연구소 입사 초기부터 선배 활동가들로부터 공동련과의 교류 역사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진정으로 공생하는 삶을 추구하며 다양한 실험과 실천을 하고 있다고. 30년이 넘는 교류의 시간 동안 한국도 많이 배우고 도전을 받아왔다고. 그러나 한켠으로는 이런 의구심도 들었다. ‘한국과 일본의 복지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실제 당사자의 삶도 그만큼 비슷하지 않을까?
 
당사자의 직업적 소명의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
의구심에 대한 결론부터 적어보자면 이렇다. ‘제도는 닮았지만 실제 삶은 다르다.’ 차이는 디테일에 있었다. 장애인 노동자가 가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다. 일본 장애인들의 역량이 더 뛰어나서라기보다 당사자가 자신의 일에 애정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에 있었다. 작업장 곳곳에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이 작업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이나 그림으로 도식화해놓았다. 또, 하루의 목표 작업량을 지시하기 보다 함께 논의한다. 이런 구조들은 장애인 근로자들의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에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였다.
 
 
제도 안에 녹여진 ‘당사자주의’
또 하나는 일본의 장애인제도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당사자주의다. 모든 서비스의 내용을 깊게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활동지원제도’는 달랐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한 사람이 당사자 한 명을 하루종일 지원하는 형태가 아니다. 활동지원사도 휴게시간을 가져야 하기에, 하루를 오전과 오후 등으로 나누어 여러 명이 교대로 지원하게 된다. 물론 새로운 지원자와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어려움과 한계는 존재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활동지원제도처럼 권력관계가 한쪽에 쏠리는 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의 당사자들을 떠올리며
취재하는 동안 연구소에서 지원 중인 당사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발달장애인 성호 씨(가명)의 지역사회관계망을 살펴보면 하루에 4시간 근무하는 보호작업장과 활동지원사가 전부다. 성호 씨가 일을 잘하지 못하면 활동지원사에게 연락이 가고, 카드 분실 등 사건 사고가 발생해도 활동지원사가 중심이 되어 처리한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성호 씨는 늘 사고뭉치가 되기 마련이며 그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것은 물론 문제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일본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장애 당사자가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양국의 제도와 삶 속에서 더 깊이 비교하고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그 속에서 우리만의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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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글. 김영연·동기욱 기자, 사진. 함께걸음미디어센터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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