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장애 현장은 무엇이 멈췄고 어떻게 버텼나 >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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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장애 현장은 무엇이 멈췄고 어떻게 버텼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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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지난 9월 26일,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 대전 본원에 화재가 발생해 국가 행정 서비스 전반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각종 증명 발급 등 민원 업무가 지연되면서 많은 국민이 불편을 겪었고, 금융기관과 기업에서도 업무 중단이 이어졌다. 온라인 민원 창구 ‘정부24’와 각종 복지 포털, ‘나라장터’ 등 수십 개 시스템이 동시에 마비됐다. 이 대혼란 속에서 장애계도 깊게 타격을 받았다. 전산이 멈추자, 행정은 물론 활동지원서비스·자원봉사 배치·직업재활시설 계약 등 장애인의 생활 시스템이 정지됐다.
 
‘손으로 쓰고, 다시 입력하고’
사회서비스전자바우처 마비, 수기 노동으로 버텨
 
국정자원 화재로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시스템 서버가 전소되면서, 장기간 정상화가 어려웠다. 장애인활동지원, 발달재활, 아이 돌봄,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등 각종 복지서비스는 이 전자바우처 시스템을 통해 비용 청구를 진행한다.
 
활동지원사는 시스템에 출퇴근 시간과 근무 내역을 입력하고, 기관은 이를 통해 서비스 제공 기록을 관리하며 급여를 지급한다. 장애당사자는 해당 시스템으로 결제 내역과 잔여 금액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으로 처리되던 이 업무가 마비되자 기관과 활동지원사, 장애당사자 모두 혼란에 빠졌다. 가장 큰 변화는 한 번의 터치로 해결되던 일을 종이에 수기로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중노동의 시작이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A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시스템으로 처리하던 모든 업무를 수기로 바꾸다 보니 혼란이 컸습니다. 서비스 구분과 제공 시간을 직접 기록해야 해서 현장 부담이 상당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서울시 소재 B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전산망 문제로 문의 전화가 너무 많이 오고, 일이 밀려서 답변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바우처 결제나 시간 입력 등 모든 과정이 멈춘 상황에서 대응조차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중노동뿐 아니라 행정상 문제도 뒤따랐다. 활동지원 급여는 국가·지자체 단위로 잔여 바우처를 계산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산이 멈추면 이용자의 잔여 시간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일부 기관은 급여 지급을 보류하기도 했다. 더불어 국가·시도·시군구별로 작성 양식이 달라 업무 혼선도 컸다.
 
추석을 앞둔 시기였기에 급여 지급에 관한 긴장도가 올라갔다. 복지부에서는 ‘전월 급여 수준을 기준으로 추정치 지급 후 재정산’ 방침을 내렸지만, 구체적 산정 방식이 제시되지 않아 현장에서는 “주무관에게 문의하라”는 식의 개별 대응이 이어졌고, 결국 지급 시점과 금액이 기관마다 달라졌다.
 
기관들은 전달 기준으로 급여를 지급하거나, 화재 발생 전인 9월 25일까지 확인된 근무 일지까지만 지급하는 등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전달 기준으로 지급한 기관의 경우 실제 근무시간과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재정산이 필요했다. 재정산을 통해 근무시간이 달라지면 환수나 공제 절차가 뒤따를 우려가 있다.
 
발달재활서비스에서도 혼란은 비슷했다. 결제가 중단되자 보호자 문의가 폭주했고, 기관은 수기 기록 후 복구 시 소급 청구를 진행해야 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우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록지를 수기로 작성하여, 시스템 복구 후 예외 청구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지만, 현장의 행정 부담과 인력 피로는 그대로였다.
 
발달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의 C 장애인복지관에 따르면 “시스템 마비로 인해 보호자 분들이나 이용자분들 모두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거 왜 안 되냐’는 문의가 빗발쳐 정신없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서비스 제공에는 큰 차질이 없었지만, 행정 부담은 가중된 것이다.
 
“1365포털 멈추자 행사도 멈췄다”
자원봉사 시스템 마비로 현장 행사 차질
 
국정자원 화재는 복지 행정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 현장에도 연쇄적인 혼란을 불러왔다. 행정안전부의 ‘1365자원봉사포털’이 마비되면서, 각 지역 장애인 이용 시설이 운영하던 프로그램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서울시 소재 D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내 담당자는 “행사 전날까지 봉사자 모집이 진행됐는데, 갑자기 시스템이 멈춰 신청이 반려됐다”며 “행사를 취소할 수 없어 결국 직원들이 직접 물품을 나르고 정리해야 했다”고 말했다. 센터는 예정된 행사를 취소할 수 없어 내부 인력으로 공백을 메워야 했다.
 
직업재활시설도 타격… “나라장터 오류로 계약이 멈췄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생산품 납품과 계약 대부분을 조달청의 ‘나라장터’를 통해 진행한다. 국정자원 화재로 인한 피해는 공공계약 시스템까지 번졌다. 화재 당일 시스템이 중단되면서, 계약체결·대금 지급 등 모든 행정 절차가 정지됐다.
 
인쇄, 판촉물 생산 등의 사업을 하는 E 직업재활시설의 사무국장은 “고객과의 계약을 ‘나라장터’ 시스템을 통해 진행하는데, 시스템이 마비돼 모든 절차가 멈췄다”고 말했다. 계약 진행이 중단되자 행정 업무가 마비됐고, 거래처와의 소통도 긴박해졌다. 사무국장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될 뻔했지만, 국가적 사고였기에 거래처가 이해해 줬다”고 전했다.
 
나라장터 시스템은 화재 직후인 9월 26일부터 중단돼 10월 10일경 복구됐다. 그러나 복구 이후 밀린 계약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직원들의 추가근무가 이어졌다. 그는 “상위 기관으로부터 별다른 지침은 없었고, 홈페이지 공지를 보며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했다”며 “전국 시스템이 마비되자 대안이 없어 당황스러웠다”고 덧붙였다.
 
 
교통·복지 행정,연쇄적 영향
코레일 장애인 승차권 할인 인증도 오류 발생
 
화재는 철도 이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장애인은 승차권 구매 시 중증장애인 50%, 경증의 경우 30%를 할인받을 수 있다. 사전에 홈페이지에서 장애인 인증을 완료한 이는 온라인으로 할인된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정부24’ 장애인 인증 시스템과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의 연계가 끊기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코레일은 화재 직후인 27일, 기존 인증자의 유효기간을 30일(365일→395일) 연장하는 조치를 빠르게 시행했다. 그러나 이는 기존 인증자들에 대한 대처일 뿐, 신규 인증 및 갱신이 필요한 자의 경우 역 창구를 방문해 장애인 등록증을 제시해야만 했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추석 연휴를 앞둔 시기였던 만큼 당시 주요 역에서는 장애인을 비롯해 임산부, 노인 등 할인 인증을 받으려는 이용자들이 몰리면서 창구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고, 발권이 지연되는 혼잡이 발생했다. 기존에는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수행했던 것을 시스템 마비로 인해 직접 방문 절차를 밟아야만 하는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코레일은 ‘창구에서 직접 인증을 해야 해 시간이 다소 지연될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으며, 한편 할인율이 적용되지 않아 일반 운임으로 결제된 장애인에 대한 별도 환급 조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복지 행정망 일시 마비, 장애인 생계 지원에도 ‘위험 신호’
정부24 마비로 복지서비스 신청·증명서 발급에 차질
 
국정자원 화재로 일시적인 접속 장애가 발생했지만,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 등 주요 복지 급여 관련 서비스는 하루 만에 복구됐다.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장애인연금과 장애수당 등 정기 급여는 이미 20일경 지급이 완료된 상태로, 실제 지급 차질은 없었다. 복지부 역시 “급여 지급 시스템은 영향이 없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복지 행정과 민원 서비스가 통합된 정부24의 중단이었다. 정부24는 장애인등록증 재발급, 복지카드 신청, 각종 수당 변경 및 증명서 발급 등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대표적인 통합 창구다. 그러나 화재 직후 접속이 중단, 9월 29일까지 나흘간 접속이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온라인으로 신청·갱신을 진행하던 장애인 당사자들이 절차를 이어갈 수 없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경우 주민센터 방문이 어려워, 신청 자체가 일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또한 장애인증명서, 복지대상자 확인서, 소득·재산 증명서 등 각종 증빙서류의 발급이 중단되면서 복지서비스 이용에도 차질이 생겼다. 교통·통신 요금 감면, 장애인 콜택시 신규 등록, 유료도로 통행료 감면, 교통카드 등록 등 서류가 필요한 절차들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지연됐다.
 
한 번의 화재가 멈춘 복지
단일 행정망의 위험이 드러났다
 
이번 화재는 국가 전산망이 얼마나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드러냈다. 단일 전산망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그리고 2025년 국정자원 화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일반 기업이 아닌 국가 기관에서 운영되는 전산망의 화재는 단순히 이용의 불편을 넘어 장애인의 일상과 권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화재가 복구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잊힐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전산망의 문제로 또다시 장애인의 일상이 멈춰 서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행정망의 분산과 오프라인 대체 절차의 제도화를 통해 재난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작성자글.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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