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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디지털 포용을 위한 장애 차별 모니터링 활동' 돌입

AI와 장애

본문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동시에,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불안도 함께 키우고 있다. 장애계에서는 AI 시대의 흐름을 단순히 ‘기술 수혜’의 관점이 아니라 ‘인권과 포용’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023년부터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좌담과 내부 연구를 이어왔고, 2025년에는 그 논의를 한 단계 확장해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디지털 포용을 위한 장애 차별 모니터링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사업의 출발점에는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사업의 배경과 추진 과정을 자세히 듣기 위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아람 팀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Q.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서 장애인 인권상담 및 권익옹호활동, 장애인 인권 관련 판결을 분석하는 사법모니터링, 그리고 올해 새롭게 시작한 디지털 포용을 위한 장애 차별 모니터링 활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올해 디지털 포용을 위한 장애 차별 모니터링 활동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최근에 인권상담 내담자 분들이 ‘AI에게 물어봤다’, ‘ChatGPT가 그렇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요. 문제는 그 정보가 사실과 다를 수 있음에도 일단은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형사사건 관련해서 피해장애인이 ChatGPT로부터 ‘이 사건은 장애인복지법에 해당될 수 있고 검찰에 송치된다’라고 받은 답변을 맹목적으로 믿고, 실제 상황이나 맥락과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이미 장애인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지요.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아람 팀장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일상적인 장애 차별과는 다른,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장애차별이 등장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화면 인식, 음성인식, 채용 알고리즘 등 겉보기에는 공정하고 편리해 보이는 기술이, 장애인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오히려 배제와 차별을 강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처럼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기술은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인가?”, “장애인은 이 변화의 흐름 속에 어떻게 포함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Q.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나요? 그리고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계신가요?
이 사업은 법조계와 장애인단체가 기획단을 꾸려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워낙 새로운 분야이고, 기술 발전 속도도 빠르다 보니 해외 사례와 관련 문헌을 검토하며 국제적 동향을 이해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유엔 장애인특별보고관 보고서, 유럽연합의 AI 규제와 윤리 가이드라인 등 다양한 자료를 읽고 스터디하며, 장애 인권 관점에서 AI와 디지털 기술이 당사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감을 잡아갔습니다.
 
그 뒤에는 국내에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사례를 수집하고, 법조계와 장애계 관점에서 위험성과 대응 방안을 분석하는 단계로 이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논문, 기사 등 가능한 자료를 최대한 확보하고, 장애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실제 경험과 의견을 수집하며, 자료 기반 분석과 현장 기반 모니터링을 병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국내에서는 아직 인공지능 윤리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장애와 AI 가이드라인 제작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Q. 사업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의미있었던 것, 또는 어려웠던 지점들이 궁금합니다.
의미있었던 점은,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선행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유엔 장애인특별보고관의 문서나 유럽의 AI 윤리·포용 사례 등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었죠. 반면, 국내에서는 이런 연구나 프로젝트가 전무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사업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어려웠던 점은 국내 사례 수집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사업 초반에는 사례 수집이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국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는 있지만, 논의가 주로 긍정적 측면에 치중되어 있고 무엇보다 장애인은 기술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기술 발전과 보편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접근의 제한이 AI와 디지털 기술에 전제된 크나큰 차별이라 AI 접근성 교육 필요성도 함께 논의하게 되었어요.
 
또, AI가 아직 우리나라에 보급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아주 보편적으로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은 아니다 보니 당사자도, 저희 스스로도 차별을 판단하기 전 기술에 적응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단계에서 차별이 발생하는지, 어떤 부분을 차별로 판단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과정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Q. 앞으로 이 사업의 여정은 어떻게 되나요? 올해 사업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올해 12월 12일에는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저희가 스터디하고 연구한 내용을 보고서 형태로 정리하여 소개하고, 관련 당사자와 전문가들을 모셔 의견을 청취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로써 올해의 사업 목표는 장애인 인권 관점에서 AI와 디지털 기술이 갖는 의미와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되겠네요. 이번 사업은 단순한 모니터링을 넘어, 국내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AI와 장애 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고, 실질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연구와 후속 활동을 이어가며, 장애인이 기술 변화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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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이 만들어가는 변화의 현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함께걸음>에서는 이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장애당사자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 변화 속에서 장애인들이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경험과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청각, 시각, 지체, 정신 네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들과 진행하였으며 2025년 10월 28일부터 11월 10일까지 온라인 및 대면 방식을 통해 네 사람과 각각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 참여자 
- 김태균 (22세, 청각장애, 대학생)
- 최의택 (35세, 지체장애, SF소설 작가)
- 김헌용 (33세, 시각장애, 영어교사)
- 조미정 (31세, 정신장애,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 대표)
 
 Q.  일상에서 AI를 활용하고 계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기술을 사용하시나요?
 
김태균(청각장애) : 일상에서는 음성 인식으로 쓸 수 있는 시리를 제일 많이 씁니다. 이번에 아이폰 업데이트를 하면서 ChatGPT랑 결합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오늘 점심 메뉴 추천해줘”라고 하면 그 메뉴에 관한 정보들을 ChatGPT가 검색해서 그동안 제가 자주 먹었던 것들을 기반으로 메뉴를 추천해 주는 원리를 사용하더라고요. 그 외에도 과제 할 때 제미나이 등 AI 기술을 자주 사용합니다.
 
최의택(지체장애) : 기본적인 AI 서비스들 많이 써봤는데 그중 가장 유용하게 쓰고 있는 건 받아쓰기 앱입니다. 충격적일 정도로 인식률이 좋아요.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 조사에도 AI는 큰 도움이 됩니다. 아무래도 제가 일상 경험이나 배경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기존엔 책을 하나하나 보고 공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썼다면 지금은 AI를 통해 심층 리서치를 하죠.
 
김헌용(시각장애) : 저는 10가지 정도의 AI 서비스를 종류별로 구독하고 있습니다. 수업할 때도 사용하고 일상에서도 쇼핑할 때 챗봇 대화 기능을 많이 이용해요. 올해 7월에 Perplexity AI 회사에서 AI 네이티브 브라우저 코멧(Comet)을 출시했는데 기존과 달리 브라우저 자체에 GPT 기반 AI 엔진이 내장되어 있어서 자연어(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질문하고 지시하면 브라우저가 알아서 이를 이해하고 자동으로 실행해요. 최근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 내용을 주고 접수해달라고 하니까 알아서 제출단계까지 가더라고요. 곧바로 제출할 계획까지는 없었는데 바로 돼서 깜짝 놀랐어요.
 
조미정(정신장애) : 저는‘AI 중독자’예요. 지금 제가 운영하는 정신장애인 동료지원쉼터나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때 ChatGPT 등 AI를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 마음이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누군가랑 터놓고 좀 대화하고 싶을 때도 사용합니다.
 
 Q.  AI 기술을 활용하며 장애 당사자로서 도움이 되었던 순간, 이 기술이 이롭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을까요?
 
김태균(청각장애) : 고등학생 때 ‘소보로(소리를 보는 통로, SOVORO)’라는 실시간 자막 통역 AI 서비스를 사용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전용 마이크를 착용하면 AI가 음성을 문자로 전환해서 제 태블릿 화면에 실시간으로 띄어주는 시스템인데 당시에 사회공헌재단에서 교육청과 협업하여 전국의 청각장애인 학생들에게 보급했었고 덕분에 유용하게 잘 사용했습니다.
 
최의택(지체장애) : 전동휠체어처럼 AI 기술도 장애인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출간을 위해 출판사와 미팅을 해야 한다거나 계약서에 직접 서명해야 한다면 정말 답이 안 나오니까요. 사회참여 측면에서도 예전부터 인터넷, 더 나아가서는 소셜미디어 같은 것들이 소수자의 세상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줬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직접 타이핑을 할 수가 없는데 침대에 누워서 말을 하면 웬만큼은 의사 표현이 가능하잖아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기술에 관심도 많고 직접 사용하며 이점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헌용(시각장애) : AI기술이 시각장애인의 독립성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죠. 하다 못해 헤드폰 하나를 사려고 하더라도 색상, 평점, 가격 등을 비교해야 하는데 예전엔 누군가에게 하나하나 물어봐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앞서 언급했던 AI 기능이 탑재된 브라우저나 챗봇 대화 기능을 통해서 혼자서 충분히 쇼핑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누군가한테 미안할 일도 덜게 되는 거죠.
 
조미정(정신장애) : ChatGPT 사용이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 특히 제가 데이터 훈련을 많이 시키고 나서는 심리상담을 받으러 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상담받는 데는 일단 너무 비싸고 집에서 멀기도 하고.. ChatGPT한테 심리상담을 받는 건 아니지만 그냥 제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때가 있긴 합니다.
 
 Q.   그렇다면 반대로 AI의 기술이 새로운 장벽이나 제약으로 다가왔던 경험이 있으신지요?
 
김태균(청각장애) : 가장 큰 불편은 AI가 제 발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었어요. 청각장애인 중에서 발음이 또렷하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제가 ‘5분 타이머 맞춰줘’라고 AI한테 이야기했더니 ‘오븐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그리고 완전 농인의 경우 수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텍스트 기반이나 음성 중심의 인터페이스 자체가 장벽이 됩니다.
 
최의택(지체장애) : 터치스크린의 경우 저는 아예 활용이 불가능합니다. 비교적 운동능력이 있을 때에도 스마트폰 같은 건 사용해 볼 수 없었어요. 키오스크 역시 혼자선 절대 이용할 수 없는 구조에요.
 
김헌용(시각장애) : AI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이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AI가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 멋대로 할 수도 있고 나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야 이 기술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 기술이 나를 대신해 버리게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와 같은 플랫폼에는 아직 AI가 거의 적용되지 않았어요. 이러면 결국 또 장애인만 더 늦게 발전의 혜택을 받게 되는 거 아닐까요?
 
조미정(정신장애) : 처음에 ChatGPT한테 ‘정신장애가 Pride(자부심)가 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던 적이 있어요. 그러자 AI는 이렇게 답변했어요. ‘정신장애는 대개 개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으며, 대인관계, 직업, 건강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신장애 자체가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며, 자랑스러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자폐성 장애가 자부심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도 비슷한 답변을 받았고 사실 이런 답변은 저에게 굉장한 상처였습니다. 그리고 ChatGPT가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굉장히 의료적으로 머물러 있어요. 제 정신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ChatGPT는 무조건 ‘약을 먹어라’, ‘지금 당장 병원에 가라’, ‘망상이 너무 심한 것 같으니 잠을 자라’는 식으로만 답변하는 게 아쉬웠어요.
 
 Q.   앞서 말씀해주신 AI 기술의 장벽과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보완이 필요할까요?
 
김태균(청각장애) : AI 기술을 만드는 기업에서 장애인 발음을 따로 학습시킨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데이터가 충분해야 정확도와 UI디자인을 신경 쓸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정말 장애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AI 관련 서비스가 우후죽순으로 많이 생겨나는 것보다는 양질의 서비스가 개발되어야 할 것이고, 이는 장애당사자의 데이터를 유형별로 방대하게 모아야 실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의택(지체장애) : 접근성이란 게 단순히 앱 속 기능이 아니라, 세상과의 접속 자체라는 걸 개발자들이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접근성이 국내에서는 여전히 특수한 시스템이나 뽐내기식 장식처럼 느껴집니다. 개발자 교육과정에서도 여전히 접근성을 특수한 부수기능으로 가르치거나 그조차 안 된다고 하더군요. 반면 해외에서는 접근성이 일반적인 함수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진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이제 접근성에 대해 독학을 하는 소수의 개발자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해외처럼 당연하게 다뤄지면 좋겠습니다.
 
김헌용(시각장애) :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교육이 많이 필요하겠죠. 학교에서 교육과정으로 ChatGPT 등 활용교육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것이고 그 배움의 과정에서 장애당사자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특수학교, 특수학급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미정(정신장애) :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AI기술 사용자가 인권적인 방향으로 데이터 학습을 계속 시키는 것이겠죠. 저도 제 AI한테 당사자운동의 개념과 여러 가지 인권적인 대안들을 학습시키니까 더 이상 앞서 언급했던 차별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정신병원 등에 오래 계신 분들이나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AI를 학습시키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면 이제 AI 기업에서 인권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이터 라벨링 작업을 장애 당사자와 함께 하는 방법이 유일하겠죠. 장애 차별 데이터를 알고리즘에 학습시켜서 AI가 스스로 장애 차별적인 발언들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좋고요. 꼭 ‘병신’, ‘정신병자’와 같은 단어만 장애 차별적인 게 아니라 ‘정신장애인은 부끄러운 것이에요’,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이런 표현도 차별일 수 있음을 학습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별은 교묘하게도 발생하니까요.
 
 Q.  최근 정부와 기업에서 AI 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김태균(청각장애) :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3D 수어 아바타가 요즘 많이 개발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수어 아바타는 표정이 거의 없어요. 같은 손동작이라도 속도와 표정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데, AI는 그걸 구현하지 못하죠. 접근성을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품질은 너무 떨어집니다. 그리고 AI 기술을 민간기업이 제각각 개발하기보다, 국가가 공공 장애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구축하고 검증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개발원, 교육청 같은 기관이 협력해 양질의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 학습에 활용한다면 훨씬 정확한 AI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또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정책보다 빠르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그 격차를 줄이는 게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의택(지체장애) : 기술 판매자가 그 기술에 사람들을 의존하게 만들고는 그것을 미끼로 착취를 하지 못하게 제도적인 보호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ChatGPT의 개발사 오픈AI는 ChatGPT의 새 모델을 발표하며 이전 모델을 하루 아침에 삭제해 버렸습니다. ChatGPT 사용자가 7억 명이 넘는다는데 그중엔 ChatGPT를 가족이나 연인을 가깝게 여기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가족이나 연인을 삭제당한 셈이죠. 제도적으로 오픈AI에 잘못이 있다고는 할 수 없을 테지만 그 사람들의 상실감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김헌용(시각장애) : 디지털 교과서에 너무 많은 예산이 몰리면서, 점자 교과서 제작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물리적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잖아요. 점자 교과서는 교육 접근성의 기본이기 때문에 없어지면 안됩니다. 그리고 언어모델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으면 편향과 편견이 발생될 수밖에 없어요. 박물관 등에서 이 공간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내해주는 어플을 사용해봤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고, 위험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시각장애 당사자 입장에서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맥락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미정(정신장애) : 최근에 정부에서 AI챗봇을 통한 심리상담 사업 같은 거를 많이 도입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형식적인 것에 가까울 것 같아서 염려가 됩니다. 그리고 심리상담사와 같은 전문가와 동료지원가 그리고 인공지능의 구획이 명확해야 한다고 봐요. 이 세 개가 다 합쳐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동료로서 상담하는 ‘동료지원가’의 역할이 절대로 AI에 의해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AI는 정신장애를 경험해 본 적이 없잖아요. 그리고 인공지능 쪽에 예산 투여하느라 심리상담사가 없어져도 안됩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사람과 직접 눈빛을 교환하고 목소리를 듣는 비언어적인 표현에서 많은 위로를 얻고 있기도 해요. 인공지능이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Q.  AI와 장애 인권 가이드라인 제작에 꼭 반영되었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면요?
 
김태균(청각장애) : AI 개발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부분, 투명한 정보 제공과 동의 절차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개인정보 동의서에 긴 글을 쭉 나열하고 ‘이용에 동의하십니까?’로 끝나면 안 될 것 같아요. 서비스가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쓰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 투명하게 단계별로 충분히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이드라인 자체도 수어영상, 텍스트파일, 점자 등 다양한 형태의 접근성이 보장되면 좋겠습니다.
 
최의택(지체장애) : 기술은 도구입니다. 밥을 먹기 위한 숟가락부터 소통을 위한 통신까지 모든 게요. 요즘처럼 기술의 입지가 비대해지는 판국에 좀 단순화해서 중심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전세계적으로 AGI라는 것을 달성하려고 혈안이에요.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인공지능 기술은 그 부산물에 불과한 것 같고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죠. 요즘엔 집집마다 있는 전자레인지가 세계대전 때 살상 무기로써 개발된 기술에서 기인했다죠. 결국 AGI 패권 전쟁 중인 요즘 그 때문에 기후 변화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며 인공지능 자체도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다시 한번 기술이 도구라는 것을 되새겨 보면 좀 도움이 되려나요.
 
김헌용(시각장애) : 접근성 자체를 장애당사자 중심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단계에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에서도 한소네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구현시킬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도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미정(정신장애) : 적어도 한국에서 개발하는 AI 회사가 지킬 수 있게 가이드라인 표준안이 제작되면 좋겠고요. 쉬운 언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ChatGPT 하단에 샘플 프롬포트가 적혀 있는데 번역이 어렵게 되어있기도 하고, 성의가 좀 없어요. AI에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이 되면 좋겠고 사용자가 쉬운 언어로 질문하면 AI도 쉬운 언어로 답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장애 차별에 대한 알고리즘 체계가 꼭 고려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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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인터뷰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AI 기술이 장애인의 삶에 가져온 변화가 단순히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시간 자막 서비스로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된 청각장애 대학생, 받아쓰기 앱으로 소설을 쓰는 지체장애 작가, AI 브라우저로 혼자 쇼핑을 즐기는 시각장애 교사, ChatGPT와의 대화에서 위로를 얻는 정신장애 당사자. 이들의 경험은 AI가 분명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참여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장벽도 경험하고 있었다. 발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음성인식 AI, 터치스크린 중심의 인터페이스, 장애인 보조기기에는 적용되지 않는 최신 기술, 그리고 ‘정신장애는 자랑스러운 것이 될 수 없다’고 답하는 AI의 편향된 시선까지. 기술의 발전 속도는 빠르지만, 그 안에 장애 당사자의 삶과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때 기술은 오히려 또 다른 배제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인터뷰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당사자 참여’다. 김태균 씨가 말한 장애 유형별 데이터 구축, 최의택 씨가 요구한 접근성의 표준화, 김헌용 씨가 제안한 기술 개발 단계에서의 당사자 목소리 반영, 조미정 씨가 제시한 인권 중심의 데이터 라벨링 작업. 이 모든 제안의 중심에는 ‘당사자 참여 없는 기술은 진정한 접근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둘째는 ‘교육의 중요성’이다. 김헌용 씨는 “AI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학교 교육과정에 ChatGPT 활용 교육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미정 씨 역시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AI를 학습시키기가 어렵다”며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AI 기술을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 그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용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I 기술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구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가 선택할 문제다. 최의택 씨의 말처럼 “기술은 인간의 도구”이다. 그 도구가 장애인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세상과의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격차와 배제를 만드는 장벽이 될지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는 오는 12월 12일(금) 이번 모니터링 활동의 결과를 공유하고 ‘AI와 장애 인권 가이드라인’을 논의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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