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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에게 “장애 운동…, 그 길을 묻다"

기획 / 장애계 30년 전과 오늘

본문

 
<함께걸음>은 올해 ‘장애계 30년 전과 오늘’이라는 제목의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복지 분야의 장애인복지법, 교육 분야의 특수교육진흥법 등 장애인과 관련된 주요 3법이 완성되었다.
 
이를 계기로 90년대에는 특수교육진흥법 전면 개정을 비롯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과 같은 접근성에 관한 법률이 최초로 제정되는 등 다양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욕구가 분출되고 각종 법률의 질적 성장을 요구하는 치열한 현장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 시대를 함께하며 장애운동의 현장을 기록해 왔던 <함께걸음>은 30년 전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장애계의 요구와 지향점이 무엇인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 후 변화된 것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점검하고자 한다.
 
단순히 반목과 갈등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30년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걸어온 발걸음 되짚어보고 이루어낸 성과를 평가하며 분야별 장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문을 특수교육 분야로 연다.
 
■ 꺼져가는 장애인 교육, 이제 그곳에 생명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30년 전 장애학생 부모들은 학교를 찾아 떠돌다
의무교육에도 장애학생은 학교가 없어 집에 머물러
특수학교 수백 대 일 경쟁, 3시간 통학도 감지덕지
 
특수교육은 1977년도에 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을 통해 특수교육의 정의는 물론 장애학생이 교육을 받는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 관한 규정을 명시해 놓았으나 법률의 시행은 지지부진했다. 1949년부터 교육법 제8조를 통해 모든 국민은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및 부모의 의무로 규정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은 취학통지서를 받아도 주변에 갈 수 있는 학교가 없어 교육을 포기하고 집에서 머물러야 했다. 법에 권리이자 의무로 명시된 초등교육도 장애학생들은 특수학교 진학을 위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의무교육은 말뿐이었으며 특수학교 입학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웠다.
 
통학을 위해 최장 3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도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고통을 감수하며 감사해야 했다. 부모가 장애 자녀를 업고 수차례 버스를 갈아타며 통학시키고 자녀와 같이 수업 듣기도 다반사였다. 학교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1990년 당시 전국 특수학교는 102개에 불과했고, 의무교육인데도 특수교육 수혜율은 고작 30%대에 머물렀다.
 
△ 1993년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한 서명 운동 모습 ⓒ함께걸음
 
인애학교 갈등, 장애인 교육권 투쟁 분수령
정치권과 행정의 민낯, 지역 이기주의 결탁
 
이러한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 현실에 대한 불만은 1990년 천안인애학교 사태를 계기로 폭발했다. 천안인애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은 그동안 참아왔던 장애인 교육권 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천안에 특수학교인 인애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학교가 없어 평택으로까지 ‘교육 구걸’을 다녀야 했던 충남 지역 장애학생 부모들에게 유일하고 간절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안인애학교 설립에 대해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며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게 일어났다. 또 지역주민들의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은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결탁해 천안 군수에게 학교 설립 철회를 요구하는 압박성 공문을 보내고 천안 군수는 통학조차 불가능한 인적 드문 산속으로 설립 장소를 변경하라 종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천안인애학교를 둘러싼 갈등은 그 당시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지역 이기주의와 대의나 정치적 신념보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몰염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정기관의 치졸함이 <함께걸음>을 비롯한 언론에 그대로 보도되면서 장애학생 교육권 투쟁은 들불처럼 번졌다.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이다’ 구호 아래
교육계, 장애계, 학부모 모두 하나 되다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이다’라는 구호 아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인애특수학교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이어 ‘장애인복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결성됐다. 장애인 교육권 투쟁의 구심점이 되었던 공대위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사무국을 설치하고 학교 설립을 넘어, 특수교육 제도 전반을 바꾸기 위한 법 개정 투쟁으로 나섰다.
 
당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간사였던 박옥순 씨는 “당시에는 교육이 의무인지 잘 몰랐어요. 장애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서 과태료를 낸 적이 있는지 전화로 물어보면 대부분 ‘그런 적 없다’고 답했죠. 장애학생을 의무교육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인식된 부분이 있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예비 특수교육 교사 연합회(전국 특수교육과 학생연합)에서 부터 학계, 장애계를 비롯해 장애인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앞장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27개 시민사회단체들도 장애학생 교육권 확보에 동참했다.
 
1993년 5월에 공대위와 범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는 명동성당 앞에서 장애인 교육법 제정을 위한 가두서명을 벌이며 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내고, 10월에는 전국의 특수교육관련학과 학생 및 시민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애우 교육권 확보’와 ‘보수교육 철폐’ 등을 요구하는 거리 집회와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머물지 않고 공대위와 범국민대책회의는 장애학생 교육 개선을 위해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장애인 교육에 관한 기본법안(이하 장애인 교육법)’을 마련하여 공청회와 토론회를 진행하는 한편, 특수교육의 목적과 용어를 새롭게 정의하며 통합교육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워크숍도 개최되었다.
 
특수교육진흥법 전면 개정 성과 이뤄…
조기․의무교육 명시, 통합교육 명문화
 
이러한 노력은 교육부와 기득권의 반대에도 1994년 특수교육진흥법 전면 개정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장애인 의무교육과 조기교육이 법제화되었고 통합교육이 명시되어 일반학교 내 특수교사 배치와 특수학급 설치가 보편화되었다. 나아가, 개별화 교육의 의무가 신설되고 순회교육 등 학교 외 지원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 장애학생의 교육을 열망하는 부모들의 활동도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천안인애학교 갈등 후에도 여전히 지역구 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던 정치인이 존재했다. 장애학생 부모들은 그런 정치인이 소속된 정당의 중앙당사(다시 평화민주당)를 점거,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받아내기도 했다.
 
△ 1996년 3월 장애인신문 기사 '특수교육 지원자 줄고 있다'
 
특히 전면 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을 통해 특수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통합교육이 명문화되면서 통합교육을 갈망하는 부모들의 발걸음을 빨라졌다. 1996년 3월 4일 장애인신문에 특수학교 시설의 낙후와 낮은 교육의 질로 특수학교 지원자가 줄고 있으며 통합교육을 선호해 일반 학교를 지원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기사화된 바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어렵다는 특수학교가 오히려 모집인원이 미달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장애학생의 교육권 확보를 위한 1990년대 뜨거웠던 투쟁으로 지금은 당연하게 인식되는 장애 조기발견과 치료, 장애학생의 보육과 유치원 교육, 통합교육을 위한 환경 개선, 특례입학제도 등의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2007년에는 특수교육의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향상을 모색하기 위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하 특수교육법)’이 제정되어 시행되었다.
 
△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위한 교육 주체 총력 투쟁 결의대회(2007.4.14.) ⓒ함께걸음
 
특수교육법은 교육 매체 및 설비 지원, 편의시설 제공, 가족 지원 등을 ‘관련 서비스’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도입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도 단순한 시책 강구 수준을 넘어 생애주기별 지원과 부처간 협력까지 포함한 적극적 책무로 명시했다.
 
전문인력 체계 역시 변화했다. 과거에는 특수교원과 일부 치료․상담 인력에 한정됐던 지원 구조가 현재는 치료사, 상담사, 보조인력 등 다직종 협업 체계로 확대되고 특수교육지원센터를 설치, 조기발견, 진단․평가, 정보관리,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 지원, 순회교육 등 구체적인 역할을 맡도록 규정했다.
 
△ 장애인등에대한특수교육법 통과 축하 사진 ⓒ함께걸음
 
■ 30년이란 세월, 교육기관과 예산 등 숫자는 늘었지만,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 갈 길을 잃다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해 특수교육학과 학생들을 비롯해 장애계, 학계, 부모들이 모두 합심해 거리에서 때론 토론장에서 치열한 투쟁과 논쟁을 벌였던 그 시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특수교육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특수교육예산, 교육부예산의 4.1%로 늘어 18배 증가
특수학급 및 교사 4배 확대, 특수교육지원사 추가배치
 
우선 특수교육 예산과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보였다. 특수교육연차보고서에 따르면 1994년에는 2,240억 632만 8,000원이었던 특수교육비가 2025년에는 4조 282억 896만 5,900원으로 약 18배 증가했다. 교육부 전체 예산 중 특수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1994년에는 약 1.8%에 불과했으나 2025년에는 4.1%로 늘었다. 또 전체 특수교육비 예산을 장애학생인 특수교육 대상자 수로 나눈 1인당 특수교육비를 계산하면 1994년에는 421만 7,000원이었으나 2025년에는 3천 396만 2,000원으로 8배 증가했다.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기관과 지원인력도 크게 늘어났다. 1994년 106개에 불과했던 특수학교는 195개로 약 1.8배 늘어났으며 특수학급은 3,400개에서 1만 3,981개로 4배 이상 확대됐다. 특수교사는 6,672명에서 2만 7,084명으로 4배 이상 늘었으며, 특수교육 대상자 수도 4만 8,931명에서 11만 5,610명으로 2.4배 증가했다. 1994년 당시에 존재하지 않던 특수교육지원사 1만 6,725명도 추가 배치되었다. 현재 전체 장애학생의 약 74%인 8만 5,220명이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197개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통한 진단, 평가
개별화교육계획 수립을 통한 맞춤형 교육
 
전달체계에도 변화가 있었다. 30년 전에는 없었던 특수교육지원센터가 2025년 현재 전국에 197개소가 설치, 특수교육 대상자의 조기 발견과 진단·평가한 학교 배치 등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어떤 학교에 보내야 할지 막막할 때 진단과 평가를 통해 필요한 교육을 자문해주고 있다.
 
또 특수학교가 설치되지 않는 경우 방문을 통해 치료지원 및 교육을 지원하는 순회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학생과 가족을 위한 상담, 필요한 학습 보조기기 등의 대여, 진로·직업교육과 문화예술·체육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법제화된 개별화 교육을 통해 특수교육 대상자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 제공을 목적으로 개별화교육지원팀 구성, 개별화교육계획(IEP) 수립 등 장애학생의 상태와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제도화되었다.
 
 
교사와 장애학생 부모와의 신뢰 관계 붕괴
통합교육 아닌 분리교육 선호 목소리 증가
 
지난 30년간 특수교육에 대한 예산, 교육기관 및 전문인력, 전달체계의 변화 및 개인별 교육계획 등 장애학생을 위한 행·재정적 지원이 증가했지만 일선 특수교육 현장은 오히려 교사와 학부모 간의 의심과 갈등이 난무하고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특수교육 방향을 역행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일명 주호민 씨 자녀의 사건에서 보여지듯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 자녀가 혹여 학교에서 학대 당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해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상황을 확인하려는 부모들과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특수교사. 30년 전 장애학생 교육권을 위해 서로 한목소리를 냈던 교사와 학부모간의 신뢰가 어느새 깨져 있다.
 
또 특수학교처럼 장애학생만 모여 공부하는 분리 교육을 지양하고, 장애학생이 비장애학생과 더불어 같이 공부하며 또래와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특수교육의 방향이 최근에는 오히려 특수학교 설치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방송과 언론을 통해 특수학교 설치를 요구하며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장애학생 부모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30년 전 장애학생 교육권 확보를 위해 한마음 한뜻을 가진 동지였던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반목하고 통합교육보다 분리 교육에 대한 목소리를 높아지는 지금, 특수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90년대 단식농성과 거리 투쟁을 통해 얻어낸 장애학생 교육권 확보를 위한 몸부림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함께걸음미디어센터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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