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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의사결정지원제도,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 국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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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및 고령화로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한 경우 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성년후견제도’를 국내에 도입한 지 4년이 흘렀지만, 이 제도가 피후견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를 벗어나 당사자들의 법적 권리를 박탈하는 등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14년 UN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는 대체의사결정제도를 지원의사결정방식으로 전환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어 현재 한국에서 의사결정지원제도의 도입은 중요한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계 7개 단체와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은 ‘고령자 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 국제포럼’을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했다. 이번 국제포럼에서는 홍콩 등 장애인 및 고령자의 권익옹호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해외 선진사례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지원제도의 핵심 요소인 지속적 대리 등록제도의 입법과 실무에 관해 토론했다. 또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는 ‘의사결정지원제도’의 국내 도입방안과 사회복지현장에서의 실천방안을 모색했다.

 

개혁된 홍콩의 지속적 대리권제도

홍콩대학교 법학대학 루시나 호(Lusina HO) 교수는 홍콩의 지속적 대리권제도 내용과 개혁 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홍콩은 1985년 영국에 도입된 지속적 대리권 법을 채택해 적용하고 있다. 호 교수에 따르면 1997년 홍콩에 지속적 대리권제도 관련법이 도입된 초기에는 장애 당사자가 의사와 변호사를 모두 선임하고 자신의 장애 정도를 증명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도입 5년간 등록건수가 55건으로 저조했다. 이 문제를 인식한 정부가 절차를 일부 간소화한 결과 2013년에서 2016년까지 등록건수는 383건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홍콩의 지속적 대리권제도는 이미 영국에서는 30년 이상 된 예전의 방식이기 때문에 최근 법 제도 개혁위원회가 두 차례 요청되기도 했다. 그 결과 정부가 부처 간의 실무단을 구성, 지난해 12월 지속적 대리권과 관련된 법안의 초안을 작성했다.

초안에는 기존 지속적 대리권제도를 지칭하는 EPA(Enduring power of attorney)와 구분하기 위해 CPA(Continuing Power of Attorney)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명칭을 구분함으로써 이전 EPA의 유효성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CPA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변화된 내용으로는 대리권의 범위가 신상 보호 외에도 재산 관리와 관련해 광범위해진 점, 양식과 절차가 간소화됐다는 점, 후견위원회의 권한이 변화했다는 점 등이다.

 

발전 가능성 있는 싱가포르의 지속적 대리권제

싱가포르 역시 약 19년 뒤 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되면서 싱가포르 정부에서 지속적 대리권은 우선 과제가 됐다. 싱가포르경영대학교 항우 탕(Hang Wu TANG) 교수는 싱가포르의 입법 배경과 과정을 바탕으로 현행 정신능력법과 지속적 대리제도의 현황을 소개했다.

싱가포르의 정신능력법은 영국의 것을 본떠 그 기본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복지예산을 최소화하려는 사회와 인권에 대한 부족한 인식 등으로 인해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UN장애인권리협약(CRPD)에 따라 자유박탈에 대한 안전장치가 있는데, 여기에는 돌봄에 있어 제한을 최소화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고, 심각한 의료적 조치나 거주지 변경 제공 등 독립적 정신능력옹호라는 개념이 있는 반면 싱가포르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다.

한편 싱가포르에서는 개인이 의사능력을 상실하기 이전에 개인의 복지와 자산을 위해 지속적 대리권을 설정한다. 하지만 대리인을 선임하는 데 있어 약 3천 달러 이상의 비용이 소요돼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를 담당하는 공공후견청에서는 지속적 대리인 선임을 위한 간단한 양식을 제공하고 있어 스스로도 쉽게 작성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복잡한 양식을 작성하는 경우 이를 작성할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이 제도의 확산을 위해 공공후견청에서는 TV나 라디오 광고를 지속하는 등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독일의 지속적 대리제도…국내 도입 과제는?

영미법을 채택한 홍콩, 싱가포르와 달리 독일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륙법 계열이라는 점에서 국내에 주는 법적 시사점이 크다. 이날 토론회에서 국민대학교 법학대학원 안경희 교수는 독일의 지속적 대리권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도입 방안을 논의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1950년부터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비교적 시간을 가지고 고령화에 대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왔으며, 이미 1980년부터 지속적 대리제도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독일의 지속적 대리제도는 장차 신상과 재산에 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본인이 특정인에게 일정한 법률행위 등을 할 수 있는 대리권을 수여하고, 대리인이 수권 받은 범위에서 본인 이름으로 이 법률행위 등을 할 경우 당해 행위의 효과가 직접 본인에게 귀속되는 임의대리제도를 말한다.

안 교수는 독일식 지속적 대리를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대리권의 존재 및 범위와 관련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서면으로 대리권을 수여하도록 강제하거나 대리권을 등록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대리권 수여 문건에 대리행위의 범위를 분명히 적시하고 법무부에서 대리권수여양식을 마련해 이 제도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리행사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가족공동체의 결속력이 강한 국내의 경우 전통적으로 정신적 장애인을 보호하는 기능을 주로 가족 및 지역사회에서 담당했다. 하지만 핵가족화와 고령화 등 사회 변화로 더 이상 그 부담을 개인에게만 부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정신적 장애인 및 고령자 등에 대한 돌봄의 주체를 가족이 아닌 사회로 그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돌봄은 ‘보호’의 개념이 아니라 ‘자기 권리 행사의 옹호’가 돼야 하며, 제도적으로 이들의 권리 행사를 지원하는 여러 장치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의사결정지원의 한 방법으로 국가가 지속적 대리권 양식서를 개발해 등록하게 함으로써 영국의 영속적 대리권의 등록제도, 독일의 장래대리권의 등록제도, 싱가포르의 영속적 대리권 등록제도와 같은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는 것이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우에 따라 활용되고 있는 국내 지속적 대리권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손쉽게 등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신뢰를 위해 등록기관은 법을 바탕으로 국가가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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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대리권제도 둘러싸고 갑론을박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용표 교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조문순 소장 △홍콩대학교 법학대학 레베카 리(LEE, Rebecca) 교수 △경기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 송남영 관장 △한국장애인부모회 이길준 사무총장, 차전경 과장 △법무부 김나래 연구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국내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둘러싼 열띤 토론을 펼쳤다.

특히 이길준 사무총장은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발달장애인들이 기존 복지제도에서 소외됨에 따라 한국장애인부모회에서는 지난 2004년 후견제도 도입과 관련해 많은 활동을 이뤄왔으며, 지속적 대리제도와 비교해 후견제도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총장은 “지속적 대리권제도와 후견제도의 차이는 사실상 계약 여부와 비용 및 절차 정도다.

결국 당사자의 의사를 100% 반영할 수 있냐는 문제에 있어서 지속적 대리권제도 역시 한계가 있는 건 마찬가지다. 중요한 문제는 이 문제들이 홍콩, 독일과 다르게 정부 주도적으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제 교수는 “공공후견의 경우에는 앞으로도 꼭 필요한 제도이고 현재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지난 9월부터 독거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공공후견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걸로 알고 있는데, 공공후견이야말로 지원의사결정제도로서 활용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보충설명했다.

작성자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sousms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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