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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디자인과 장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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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디자인이란 다수를 위해 획일적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수인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념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미국의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Ronald L. Mace)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로널드 메이스가 설립한 노스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유니버설 디자인 센터 홈페이지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특별한 개조나 특수 설계를 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된 제품이나 환경디자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보편적 설계라고도 일컬어진다.

오른손잡이만을 상정해 물건을 만들어 놓고, 왼손잡이를 배려한 물건은 별도의 특별한 형태로 만드는 것은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볼 수 없다. 처음부터 가능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학의 사회모델과도 일맥상통한다. 장애학의 사회모델은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특별한 배려’로 간주되거나 그렇게 행해지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 왔다. 일본의 사회학자인 이시가와 준은 ‘특별한 배려’로 간주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배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과 특별한 배려를 필요로 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는 확고한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이미 배려 받고 있는 사람과 아직도 그다지 배려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올바른 인식이다. 다수자에 대한 배려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배려라고 하지 않는다. 대조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특별한 것으로 가시화된다(이시가와 준, 2006: 136).

위의 예로 다시 돌아가 보면, 대다수의 물건들이 오른손잡이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고안돼 있다는 점에서 오른손잡이는 이미 ‘사회적 배려’를 받고 있다. 이러한 배려는 당연한 것이므로 배려라고도 인식되지 않는 반면, 왼손잡이에 대한 배려는 ‘특별’한 것으로 눈에 띄게 된다.

장애학의 사회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가 들을 수 있거나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배려하면서, 들을 수 없거나 걸을 수 없는 등의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배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장애인이 된다. 그래서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특별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처럼 유니버설 디자인과 장애학의 사회모델은 이미 배려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고정된 사회 환경이 아니라, 아직도 제대로 배려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사회 환경의 필요성을 공통으로 역설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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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디자인은 인식의 전환뿐 아니라 다양한 기술 개발과도 관련돼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무인자동차의 등장, 사람과 실력을 겨루는 인공 지능의 개발 등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실현되는 사회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되기 위한 기초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보다 복잡하다. 먼저 이와 같은 기술들은 무형무취의 비정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특정한 어떤 과학기술 개발에는 사회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예를 들어 장애인을 위한 과학 기술의 개발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개발은 이윤 보장과 맞물려 있으며, 개개인의 필요보다는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즉, 과학기술 개발에도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또는 어떤 영역을 개발해야 이윤이 남는가 하는 경제적 논리가 작동한다.

이러한 경제적 논리을 넘어 어떤 과학 기술이 개발됐다고 하더라도, 이용자가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구체적으로 구비돼야 한다. 먼저 이용자의 경제적 조건이다. 스마트폰은 볼 수 없는 사람, 특정 색깔을 구별할 수 없는 사람, 들을 수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차이를 지닌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를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또한 새롭게 개발된 과학기술을 이용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사용 방법을 익힐 수 있는 과정, 즉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는 그 사람 개개인이 살아온 삶의 경험에 따라 다르다. 때로는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이용의 필요성이 낮을 수도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장애인의 이동권을 예를 들어 보자. 휠체어를 탄 사람, 유모차를 끄는 사람, 실버카(보행 보조기)를 이용하는 사람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저상버스가 다닌다고 하더라도, 저상버스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돼야 한다.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면 운행하는 저상버스에 접근할 수 없다. 또한 저상버스가 극히 일부 노선에만 제한적으로 다닌다면 그것 또한 보편적인 설계가 아니라 예외적인 특별한 설계가 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물건을 만들고 환경을 구축한다는 것은 그것을 보편적으로 작동하고 이용하기 위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통합적으로 갖춰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니버설한 언어 디자인은 가능한가

지금까지 유니버설 디자인과 장애학의 공통된 문제의식에 대해 살펴봤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바탕으로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농인에 초점을 맞춰 유니버설한(보편적인) 언어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는 주류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관점에서 주류 언어와 소수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배려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말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미 언어에 대한 유니버설 디자인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기술이 투입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성언어를 문자언어로 전환하는 소프트웨어는 이미 개발돼 있으며, 사용량이 축적되면 될수록 오류는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음성언어와 시각언어인 수화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과학 기술의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손의 움직임을 추적해 수화언어를 음성언어로, 또 문자언어로 전환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개발된 ‘모션새비 유니(Motionsavvy Uni)’라는 특수 카메라를 통해 수어로 말하는 손의 미세한 움직임을 인식하고,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수화언어를 음성언어와 글로 변화할 수 있게 해 준다. 아직은 그 정확도에 한계가 있지만, 이러한 과학 기술의 개발과 보급이 충분히 이뤄진다면,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불편함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한계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다른 문법체계를 지닌 또 다른 언어이다. 한국수어를 자신의 모어(제1언어)로 하는 사람이 한국어에 기반한 문자언어를 학습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청인)이 문자언어를 학습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하는 농인과 한국어를 제1언어로 하는 청인의 읽기와 쓰기 능력은 차이가 있다.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농인은 주류 사회의 언어인 읽기와 쓰기를 배워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한국어와 같은 주류언어는 이미 배려 받고 있지만, 수화언어와 같은 소수언어는 여전히 배려 받고 있지 못하다. 장애학에서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쉬운 문서’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지적장애인을 위한 ‘쉬운 문서’는 기존의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속이며 일종의 규범인 언어에 대해서도 지금 보다 더 유연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유니버설한(보편적인) 언어 디자인은 농인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 제한적인 문해능력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 한국어를 제1언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고려해 언어를 설계한다는 것을 말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편적인 언어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표준화된 문법과 정형화된 언어사용과 같은 규범이 어떤 불평등을 낳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이며, 그러한 작업은 언어를 둘러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건을 구체화시키는 것으로 실현돼야 한다.

작성자글. 곽정란/리츠메이칸대학 생존학연구센터 객원연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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