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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당사자주의는 독일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2)

독일의 UN CRPD 이행

본문

     
 

2) 당사자주의 실현을 위한 법적, 제도적 토대와 공적 영역에서의 접근성 강화

당사자주의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다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차별금지를 포괄하는 평등권의 가장 기본적인 실현 형태 중 하나다. 나치 통치에 근거가 된 바이마르 헌법은 ‘공화국’, ‘민주주의’, ‘여성의 선거권’ 등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규범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구조적 취약점으로 나치의 범행을 방조하는 역할을 했다. 우생학에 근거한 나치의 인종청소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2차 대전을 거치며 “생존 가치가 없는 생명의 근절”이라는 미명하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그 규모도 30만 명에 달한다. 특히 학살 전에 부분적으로 진행된 강제불임조치는 인간 존엄성의 침해는 물론 당사자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행됐다는 점에서 독일인에게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로 깊이 각인돼 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독일연방은 1949년 제1조에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제3조에 평등을 규정한 기본법(Grundgesetz, GG) 1) 을 제정했다. 이어 1994년 기본법 개정 시 동법 제3조 제3항 2문에 장애인차별금지규정을 특별히 삽입했다. 이를 기반으로 이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재활과 참여를 위한 사회복지법전(Sozialgesetzbuch, SGB) 제9권, 장애인평등법(Behindertengleichstellungsgesetz, BGG), 일반균등대우법(Das Allgemeine Gleichbehandlungsgesetz, AGG) 등이 제정되며 당사자주의 실현의 근거가 마련됐다. 또 독일연방은 2006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후 2007년부터 전면적인 사회복지제도개혁을 착수해 2017년 마침내 연방참여법(Bundesteilhabegesetz, BTHG)이 제정됐고 이로써 당사자주의를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정비가 가능해졌다.

우리나라 헌법의 경우, 제10조에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규정을 그리고 제11조에 평등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금지규정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연구원(2017)은 장애차별금지에 대한 규범들이 즉자적인 필요에 의해 개별적으로 입법됨에 따라 각 법마다 일관되지 못한 경우들이 있기에 헌법의 차원에서 장애차별문제를 다시 조명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에 당사자주의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데 이념적 기반이 된 독일의 기본법과 그를 기초로 제정된 법률과 제도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현재를 평가하고 그에 기초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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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전

 

● 기본법(GG) 개정 – 독일연방은 1994년 기본법 제3조 제3항에 일반적인 차별금지를, 그리고 동조항 2문에 "누구도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특별한 차별금지규정을 명시했다. 이 조항을 기반으로 장애인평등법과 일반균등대우법이 제정됐다.

● 사회복지법전(SGB) 9권 제정 – 사회복지법전 2·3·7권 등에 사회보장영역별로 흩어진 장애인 관련법들은 2001년 사회복지법전 9권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재활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삶의 영위(참여)와 관련한 독자적인 법으로 통합 제정됐다. 이는 당사자주의를 실현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제도와 정책 입안에 중요한 근거가 됐다.

● 장애인평등법(BGG) 제정 – 독일기본법 제3조, 제3항, 2문에 명시된 장애인에 특화된 차별금지규정은 2002년 제1조에 차별반대규정을 둔 장애인평등법 제정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차별금지기구(Antidiskriminierungsstelle, ADS, 2018)에 따르면 장애인평등법은 공공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기존의 당사자주의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했던 불평등한 사회생활의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 일반균등대우법(AGG) – 이 법은 공공 영역에서의 차별 반대와 평등을 규정하는 장애인평등법에 대해 보완적으로, 직업 생활 등을 포함한 사적인 영역에서 전반적인 장애인에 대한 평등권에 기반한 차별 반대를 원칙으로 하는 법으로 2006년 제정됐다. 라베-로젠달(Rabe-Rosendahl, 2017)에 의하면 특히 일반균등대우법은 기존에 사회복지법전 9권의 규정에서 지원이나 혜택과 관련해 연계됐던 ‘장애의 정도’에 대한 규정이 없어 오히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선택과 결정의 주체로서 직업 생활을 영위(참여)하도록 하는 그 자체를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이로써 주체적인 측면에서 당사자주의를 실현하는 데 토대가 되는 경제생활자립의 가능성이 확대된 셈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후

 

독일연방은 2007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서명과 비준 이후 장애와 관련하여 변화된 패러다임에 조응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 결정과 선택에 기반한 참여와 inclusion(인클루젼)을 유도하기 위해 연방·주정부 노동사회복지부장관회의(Arbeits- und Sozialministerkonferenz, ASMK) 2) 를 중심으로 전면적인 사회복지개혁을 착수한다. 그 결과물로써 연방참여법을 제정하고 2017년부터 2023년까지 4단계의 개혁과제들을 추진한다.

● 연방참여법의 제정과 사회통합부조(Eingliederungshilfe, EGH)의 개혁 – 독일연방은 2017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3조에 따라 차별 반대와 동시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inclusion과 완전한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연방참여법을 제정했다. 연방노동사회복지부(2018)에 의하면 사회복지제도개혁의 핵심은 연방참여법을 통해 일반균등대우법과 사회복지법전 9권을 점검하고, 핵심적으로 기존 가족부양적인 사회기초생활보장의 틀에서 운영되던 사회통합부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개선·강화하는 것, 근로지원금을 두 배로 증액하는 것, 다양한 혜택에 대한 지원 신청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일원화하는 것, 기존 혜택과 지원의 기준이 되던 가족과 자신의 수입이나 재산의 상한선을 단계적으로 높이면서 궁극적으로는 가족부양제를 없애는 것 등이 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 가족들을 위해 연방 전역에 독립적인 상담소 500개를 설치해 5천 8백만 유로(약 754억 원)를 지원하고, 상담원도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배치함으로써 당사자주의를 실현하는 데 더 구체적인 맞춤형 정보 제공과 간접적 경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로써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개인 맞춤형으로의 시스템전환을 통한 삶의 개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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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정책 또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관련 정보 제공을 위한 홈페이지 운영사례

 

● 정보에 대한 접근성 강화 –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한 정책 결정 과정의 주도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판단과 관련한 정보의 접근성이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몇 차례에 걸친 장애인평등법 개정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2002년 제정된 장애인평등법 제6조 수어, 제9조 수어 및 다른 소통보조기구들의 사용에 관한 권리, 제11조 인터넷 영역에서의 자유로운 접근성 보장 등이 규정되어 공공기관의 정보와 관련한 접근성이 강화되고 있다. 2016년과 법 개정 시에 동법 제11조와 관련해 지적·정신적 장애를 포함한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독일어 초보자 그리고 이민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본문과 그림을 삽입해 제작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에 대한 규정의 근거가 마련돼 접근성에 대한 장애 영역의 범위가 확대됐다. 이어 2018년 동법 제11조 개정으로 공공기관에서 이 규정의 실행이 더 강화돼 행정과 관련한 모든 정보와 서류와 서식 등의 장벽으로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접근성이 개선돼 공공영역에서 당사자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마련되고 있다.

또 장애인평등법은 정보의 접근성뿐만 아니라 실제로 제8조를 통해 이동과 접근성에 있어 교통은 물론 공공 건축물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법 규정을 둬 교통 계획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부터 설계자나 기술자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이동과 접근성을 고려하게 했다.

이상으로 당사자주의 실현의 기반이 되는 독일의 법 제·개정과 제도 정비 과정을 간략히 살펴봤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가 중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법과 제도 마련에 능동적으로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보통 당사자들의 강력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통한 요구가 있어야 마지못해 개별적 법이나 제도에 대해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을 때가 적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그때그때 즉자적으로 요구하는 것만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로 인해 법과 제도가 일관된 정책적 방향성과 흐름 속에서 제정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법과 제도의 효용성에 비해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다.

독일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법과 제도 정비는 절대적인 숙고의 기간이 필요하고, 기본법에 기초해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최고의 가치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며 제정된 다양한 법들의 상호 보완이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가져오는 데 필수적이라는 교훈을 준다.

법과 제도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우리는 최소한의 것에 갇혀 그것을 전부로 생각하는 극단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데 그 이상의 것만 좇아가는 다른 극단도 경계해야 한다.

 

각주)

1) 독일 헌법에 해당하지만 전후 동독 쪽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통일될 때까지의 과도기 법으로서의 역할

2) 주정부의 독립성이 강한 연방정부의 특성상 헌법기관은 아니지만 연방차원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주 정부와 연방정부가 함께 협의하는 회의가 상설적으로 개최됨. 예를 들면 연방·주정부 노동사회복지부 장관회의, 연방·주정부 교육부장관회의 등.

작성자이명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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