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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기행문] 일본 구마도토 재활센터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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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5.·18일입니다."
 혼잡한 도심 속에서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이다. 1980년도 이 땅에 수많은 장애우와 사상자를 배출해낸 5월 18일.
 이 때문에 광주에서는 대부분의 주민이 제사 준비에 바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오늘은 대구사회복지연구소에서 장애우관련 시설이나 센터를 방문할 목적으로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다. 양재섭 이사님(대구대 교수)을 단장으로 하여 총 18명의 회원이 나름대로 부푼 기대를 안고서 모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비록 일본과 한국이 경제적 수준은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장애우 문화시설이나 제반 여건 등을 비교해보고 싶었고 또 특수교육인으로서의 견문도 넓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행들이 모두 모이자 곧 부산행 무궁화열차를 타기 위해 출구로 나갔다. 나는 누군가에게 "우리나라 법제도상 장애우들은 타기 힘든 무궁화열차니 구경 많이 하세여"라고 농담을 하였다. 그러니까, 그 친구는 왜 그런지 모르는 듯 웃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설명을 곁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장애우등록 수첩에서의 기차 비 할인혜택은 통일호까지니까 장애우는 통일호만 타라는 이야기 아니냐고 했다 그제 서야 그 친구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다는 듯이 씩 웃었다.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이상하게도 출구로 들어가는 행렬의 길이가 줄지를 않았다. 가만히 보니 우리 일행중 한 명의 휠체어가 출구가 너무 좁아서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휠체어 따로 사람 따라 기차를 타게 되었다. 언짢은 마음을 가슴한 구석에 남겨두고 차창을 내다보았다.

 "이것이 바로 장애우가 겪는 또 다른 사회적 장애이며 이런 것을 하나 둘 제거하는 것이 복지이구나"라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장애우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 복지선진국인 일본에서는 장애우를 어떻게 대하고 그 법적 제도는 얼마나 잘 되었을까, 특수교육은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등등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어 잠시 얘기하고 싶다. 장애우의 정의에 대한 것인데 일본이나 한국도 이런 식으로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하는 말이다. 현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진흥법이나 장애우관련 법에서의 장애우에 관한 정의를 볼 때마다 느끼는 생각인데 지금까지의 장애우에 대한 정의는 대개가 신체 또는 정신적인 결함으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스스로 자활하기 힘든 상태를 가진 자라고 되어있다. 나는 이 내용을 물론 뜻은 같겠지만 그 기준을 바꾸어 생각하고 싶다. 신체 또는 정신적으로 정상인데 비해 지체되어 있으나 사회적 제도적으로 물리적인 환경, 여건을 제공한다면 충분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고 자립이 가능한 자라고 그 정의를 규정짓고 싶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것에서 부족한 사람을 장애우로 규정짓는 것보다는 장애상태에서 어떤 물리적 환경을 더하여 비장애우의 범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차창 밖의 풍경이 지나가듯 여러 생각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김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나는 공항주위를 살펴보았다. 혹시나 장애우 관련시설이 갖추어져 있을까 해서였는데 역시나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야"하는 생각이 들었다.(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비행기가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상황은 대구에서 출발할 때와는 정반대였다.(계단이 별로 없어서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어디에선가 휠체어가 나가는 것을 보고서는 직원이 뛰어나와 길 안내 및 봉사활동을 하였고 공항 밖으로 나와서도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대하였다. "한국에서 오셨습니까"라고, 이런저런 광경들이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지고 있었는데 다만 버스를 탈 때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휠체어를 탄 사람은 매우 불편하였다. 여기에서 내가 한가지 더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국처럼 버스에 승강기가 설치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본다.

 참고적으로 미국은 "장애인재활법(The Americans with Disablities Act of 1990)" 이라고 하여 5인 이상 고용하는 업체에서는 장애우가 생활하는데 불필요한 장애물은 앞으로 3년 이내에 모두 제거하여 장애우가 모든 시설에 최대한 접근 가능하도록 하였고, 시내버스에서도 각 노선당 몇 대 이상은 휠체어 및 노약자가 타기 쉽도록 승강기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공중전화에도 청각장애우가 사용할 수 있게 청각 장애우용 전화기를 설치하게 하고 시각장애우용 전자점자기, 컴퓨터 등 최첨단시설을 널리 보급토록 하는 등의 재활법(일명 "접근가능성의 법")이 있다는 어느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구마토로 향하는 동안 줄곧 건물 앞과 보도를 살펴보았다. 보도와 차도사이에는 턱이 거의 없었고 각 중요시설 앞에는 시각장애우 유도보도 블록이 깔려 있었다. 비록 내나라는 아니지만 복지적인 측면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좋게 만들었다.
 일본에서의 첫 관광코스로 구마모토 섬을 둘러보았는데 여기서 나는 아시아신문기자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먼저 한국의 장애우복지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고 난 후 일본에서의 제반복지 문제는 어떠하며 장애우를 보는 시각은 어떠한 가라고 질문을 하였다. 기자는 웃으면서 아직도 장애우에 대한 시각이나 시설의 복지문제, 기타 제반시설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장애우 단체의 계속적인 노력으로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되었고 지금도 작은 것 하나라도 고치고 뜯어 맞추어 나가고 있다. 계단하나 출입문하나 고쳐나가다 보면 결국은 복지가 오지 않겠느냐 하면서 그러나 한국과는 복지라는 기본적 바탕이 다르지 않겠느냐, 1에서 2를 더하고 싶은 것과 3에서 4를 더하고 싶은 것이 같지는 않다라고 하였다. 첫날의 일정은 이로서 마쳤다.

이튿날부터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날도 어제와 같이 구마모토 YMCA 대학에서 볼런티어들이 왔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전문대와 비슷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각종 복지시설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준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이과의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학부과정에서 공부하는 것은 대략 장애인에 필요한 볼런티어교육과 노인들에게 필요한 볼전티어교육이었다 그러니까 각각의 간호방법과 거기에 따른 관련법 등을 배운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학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기독교측의 선교적측면에서 이와 비슷한 볼런티어대학을 만든다고 들었다. -반드시 육성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볼런티어 학생들과 애련원이라는 복지시설을 방문하였다 이 애련원은 복지기관으로 만 15세에서 65세까지의 중증장애우만 수용하도록 되어있는 사회복지법인이다. 여기에 수용하도록 되어있는 사회복지법인이다. 여기에 수용되려면 여러 판별을 통하여 중증장애에다가 기타 가정환경, 자립정도 등을 합하여 수용대상자라고 판명이 되었을 때 비로소 수용될 수가 있다. 이 애련원은 수용인원 70여명에 직원 50여명으로서 그 경비는 국가 및 지방 시·도에서 전액 지원해 주고 있었다.(구마모투 시(현)안에는 이런 시설이 7개소나 된다고 한다.)

 내부구조는 십여 개의 방과 위락시설, 상담실 등으로 되어 있으며 모든 제반시설이 이 시설의 수용장애우에게 맞도록 되어 있었다 누운 상태에서나 앉은 상태에서도 하고자 하는 일을 다할 수 있고 각 방마다 전동휠체어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동식 목욕탕을 보았는데 이것은 중증장애우가 침대차(바퀴 달린 차)위에 누워있으면 이 차를 전자식으로 시스템이 되어있는 욕조위로 가져간다. 그러면 이 욕조에서 밑에서 위로 물이 뿜어져 쉽게 목욕할 수 있고, 그리고 목욕이 끝나면 그 욕조에서 스팀이 나와 몸을 말려주도록 되어있었다. 여기 일본에서는 돈만 많으면 장애우라 할지라도 장애를 받지 않고 생활 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좀더 알아보고 배우고 싶었지만 언어상 시간상 부족하기 때문에 못내 아쉬움을 남기며 또 하루를 보내야 했다.
 다음날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전에는 휠체어를 만드는 공장을 방문하였다. 이 공장의 사장은 옆 건물의 병원원장이었는데 아주 친절하고 차림새가 수수한 노동자의 인상을 품기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직원이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 또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이 공장의 사장은 이제 휠체어도 신사복과 마찬가지로 개개의 장애우에게 체형, 몸무게, 장애부위와 정도에 맞게끔 조립되어져 나와서 그냥 한 사회인의 생활도구 일뿐이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정말 어쩌면 악세사리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견학을 하였다. 여기 구마모토에서는 휠체어 및 기타 보장구가 전액 국가보조로서 지급되고 있었고, 전동휠체어나 조금 비싼 보장구는 국가보조액에서 초과되는 액수를 지불하면 된다고 하였다.  

 오후에는 구마모토 기능병원을 방문하였다. 이 병원은 그 시설이 실로 최첨단을 걷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노인간호복지기능, 기능재활, 리헤비리테이션 기능의 3가지 기능을 맡고 있었는데 그 치료방법은 정확한 진단아래 아주 세밀하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한 사람이 한 달에 수십 번의 검진을 받는다고 한다.) 또 노인이나 장애우의 체력훈련을 실시하여 다른 장액 오지 않도록 각별히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었다. 이 병원의 주목적은 장애우가 다시 건강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환원하는데 있으며, 아직까지도 완전한 사회로의 참여가 힘들기 때문에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병원 내에서의 이념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존엄성의 존중
 2. 강제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프로그램 진행.
 3. 개인에 적합한 방법 적용.
 4. 자립이 충분히 되도록 개호함
 5. 생활의 즐거움을 가지도록 한다.
등이며 병원이 진료비는 전액 의료보험으로 처리가 다된다고 한다.
 이 병원을 끝으로 공식적인 견학은 모두 마쳤다. 모두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피곤한 것도 잊어버리고 모두들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간단한 음식을 짧은 시간 긴 생각들을 서로가 교환이라도 하듯이 모두들 각자의 느낀 소감을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본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루빨리 한국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하소연도 하였다.

 나는 일행들의 감탄 섞인 넋두리가 아련히 들리며 첫날 아사이 신문기자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다.
 "3에서 4를 더하고 싶은 생각이나 1에서 2를 더하고 싶은 생각은 같다. 그러나 그 과정과 기본에 깔린 환경은 한국과 다르지 않느냐"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깊게 남았다.
 그렇다. 우리도 이제는 뜬구름 잡는 식의 복지를 외치지 말고 작은 1에서 2로 그리고 3으로 단계가 나갈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근본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고쳐나간다면 언젠가는 진정한 복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기간은 우리나라의 장애우가 얼마나 요구하고 어떻게 한목소리를 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복지는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을 새삼 느끼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일본과 한국의 하늘은 똑같이 푸르게 보였다.

글/이헌규
 

작성자이현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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