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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제다] 장애우 결혼, 왜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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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 그리고 풍요와 넉넉함으로 상징되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과 계절의 변화 못지 않게 가을은 또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결혼의 계절이기도 하다.
결혼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생의 다른 모든 면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각각의 시대나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서 성숙한 남·여가 종족보존과 확산을 위한 생물적 본능충족을 위해 갖게 되는 성적결합과 가족이라고 이름 지워지는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결혼을 결혼당사자의 성격이나 가치관 그리고 다소간의 경제적 조건 등의 일치에 의한 전적으로 개인적인 선택이나 결정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한 개인의 가치관이나 경제적 조건 등을 결정하는 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구조 즉 생산관계의 구조들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결국 결혼도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회제도의 하나일 것이다.
전통적인 봉건사상이 물밀 듯 밀려드는 서구사상에 밀려 붕괴되고 이제는 물질만능의 풍조가 매 매춘, 인신매매 등 성(性)의 상품화, 성도덕 타락의 극한까지 몰려있는 작금의 세태에서 과연 결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더욱이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인간적인 생의 모든 부분에서 끊임없이 차별과 비인간화를 강요당하고 있는 우리 장애우가 결혼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과연 무엇일까.

<결혼에 관한 3가지 견해>
역사적으로 결혼에 관한 전통적인 동양의 태도는 바람직한 축복으로서의 정력이나 수태력의 측면과 종교적인 구원에 이르기 위해 피해야만 하는 "악"으로 간주되는 이율배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결혼의 주된 목적은 아들, 곧 가문과 가계를 이을 남자 후손을 낳는 일로 여겨졌으며 성적 즐거움(특히 아내 편에서의)은 전혀 부수적인 것이 된다.

결혼에 대한 기독교 적인 태도는 이와는 달라 창세기 1,2장에 나타났듯이 결혼을 통하여 남녀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자치적인 생활, 환경을 다스리는 동력, 남녀의 성적충족 그리고 인간종족보존이 가능하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존재에 있어서 최상의 성취는 결혼에 있는 것이 아니며 보다 위대하고 영원한 생명 즉 궁극적이고 인격적인 가치와 만족을 결정하게 되는 영원한 절대자와의 관련 속에서 자신의 생을 어떻게 책임 있게 살아내느냐 하는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에 비해 마르크스는 그의 사적유물론에서 결혼이란 일정한 방식으로 서로의 관계를 조정하고 아이들의 출산을 보장하는 다소 안정되고 친밀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인 가족을 만드는 과정이며 이 결합은 사랑, 공통이해 및 아내와 남편의 정신적 친밀 을 전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가족은 자연적(생리적)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남성과 여성사이의 관계, 부모와 자식사이의 관계, 인구증가 등 사회관계, 무엇보다도 경제관계 즉 생산양식에 의존하며 이 모든 기능은 계급사회에서 계급적 내용을 획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결혼의 두 가지 형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자기가 선택하는 자유」에 의한 "자유결혼"이라는 결혼 방법을 "연애결혼"이라는 이상한 말로 부르며 마치 그것이 여러 가지 결혼의 형태 중 한 가지인 것처럼 느끼도록 왜곡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의한 자유결혼이 아닌 중매인이나 부모, 친척의 권유에 의한 결혼, 즉 타율 혼은 우선 "조건"이 중히 여겨지고 "사람"은 제 2차 적인 것으로 여겨져 그것에 맞지 않는 상대는 사람을 볼 필요도 없이 제외되며 조건에 맞는 사람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조건을 자세히 조사한 결혼일수록 격식이 있는, 그리고 책임을 동반한 결혼인 것 같이 평가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는 오히려 책임의 소재를 애매하게 해놓는 무책임한 결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모가 권하기 때문에」, 「학력이 좋기 때문에」, 「인상도 좋고」, 「집안도 좋고」, 「무엇보다도 훤칠한 것이 매력」이라는 등의 조건들이 우선하는 결혼은 어떠한 이유든 결혼 생활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당당히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 책임을 바로 그들 조건에 갖다 붙이며 책임 전가를 하는 식으로 도피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이 "거기에서부터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있는 것으로", "괴로운 것"이 아니라 "쉬운 것"으로, 또 그것이 "인간성장의 장소"가 아니라 단지 "목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그것이 먼 여행을 생각하기 위한 심사숙고 끝의 "결단"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종착역"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조건우선의 타율적인 결혼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애우의 결혼 실태>
이러한 사회 일반의 결혼 양태가 장애우의 결혼문제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장애우의 결혼실태와 비장애우가 가지고 있는 장애우와의 결혼문제에 관한 몇 가지 조사 결과를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이 조사표는 1985년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 장애우와 일반인의 의식"에서 발췌한 것임)

1. 결혼실태
13-55세에 이르는 6백여 조사대상 장애우 중  결혼한(동거포함) 장애우는 전체의 34.3%였으며 미혼은 62.5% 무 응답 0.5%로 나타났으며 결혼한 장애우(동거포함, 2백 6명)를 대상으로 알아본 결혼방법은 자유결혼 58.3% 중매결혼 29.6% 반반 10.7%로 과반수가 자유결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형태별로는 시각 장애우와 청각 장애우와의 자유결혼 비율이 높았으며, 특히 청각장애우의 자유 결혼 율은 83.8%로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 지체 장애우는 중매 결혼의 비율이 50%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배우자의 장애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장애가 있다는 응답이 65.5% 장애가 없다는 응답이 34.5%로 배우자의 3분의 2가 장애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장애 형태별로 보면 지체 장애우는 특히 비장애우와의 결혼비율이 높으며(71.4%), 같은 장애형태의 장애우끼리 결혼한 비율은 청각 장애우가 81.3%로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 시각 장애우가 59.5%였으나 지체 장애우는 16.7%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또한 위의 3가지 형태의 장애우 모두 자신과 다른 형태의 장애우와 결혼한 비율은 모두12%미만으로 낮았다.

이상은 장애우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였다.
그러면 장애우와 비 장애우의 결혼에 대한 장애우 자신과 사회의 태도는 어떠한지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자녀(친척)와 장애우와의 결혼에 대한 장애우 자신의 태도에서는 자녀에게 "다시 생각해 보도록 권한다"가 62.5%로 가장 많고 "반대 할 수밖에 없다"가 22.5%, 기꺼이 찬성한다는 14.2%의 순으로 나타나 응답자의 85%는 찬반유보 내지는 적극적 반대를 표시함으로 장애우와 결혼을 꺼리는 태도를 취했다.
장애형태별로는 기꺼이 찬성한다 의 지적률은 지체 장애우가 21.3%로 가장 높았다.
동일한 질문에 대한 비장애우의 대답을 살펴보면 "다시 생각해 보도록 권한다"가 67.5%, 기꺼이 찬성한다. 15.6%가 반대할 수밖에 없다가 15.4%의 순으로 나타나 장애우에게 질문했을 때와 거의 비슷하게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위의 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장애우의 결혼은 여전히 거부되어야 할 그 무엇, 회피해야할 것이란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결과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장애우의 결혼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 중에서 사회적인 측면,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분석과 해결을 위한 방안들이 나름대로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으나, 사회일반의 부정적인 이미지형성에 결정적(?)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장애우 자신에게 더욱더 커다란 악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성(性)적인 측면 특히 사회 심리학적인 접근이 부족해 장애우에 대한 비뚤어진 성 관이 고쳐지지 않고 장애우의 성적표현은 기괴한 것, 추한 것으로 상상하며 그러한 표현자체를 불가능하거나, 죄악시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억압받는 장애우의 성적표현>
장애우에 대해 가해지고 있는 이러한 그릇된 상상은 장애우의 건강한 성적표현을 지나치게 억압하고 이로 인해 그 장애우의 일상의 모든 영역 즉 직업적인 성취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기본적인 삶의 욕구, 자아개념 등 생의 모든 동기 등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하는 잠재적이고, 심리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회일반이 장애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성적인 상상을 살펴보면 첫째 "신체장애우에게는 성(性)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인 장애가 모든 면의 장애로 확대 해석되는 그릇된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장애우는 그가 가진 장애 때문에 욕구나 욕망이 비장애우와 다르거나 아예 성적인 능력이 없는 중성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 "장애우는 의존적이기 때문에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우가 스스로를 장애우의 보호자로 여기는 것은 자신이 성에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의 왜곡된 표현이거나 장애우에 대한 그릇된 우월감에서 나오는 것일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주체적으로 성적인 표현을 하고 경험을 누릴 수 있는 많은 장애우의 이성과의 접촉과 관계를 제한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호주의적 관점에서 야기되는 의존성과 무기력함은 가족, 친지, 사회에 의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조장될 뿐만 아니라 특히 재활원 등 집단 수용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우들이 종종 당하게 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장애우는 장애우를 낳는다" 는 것이다.
유전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이러한 미신 때문에 70년대 중반 정신지체 장애우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되 강제불임을 시키자는 움직임이 일어 이에 대한 토론이 전개 된 적이 있으며 실제로 85년 전남 곡성에서 정신지체 장애우를 결혼시키며 재활원 측에서 이들의 축산을 방지하기 위해 규정에 의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불임을 시키는 등 인권유린을 자행한 일도있다.

넷째 "성적 극치감으로 이끄는 성교만이 성적만족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장애우 뿐 아니라 사회일반에 널리 퍼져있는 미신 중의 하나로 성기와 질의 접촉, 전통적인 남성상위 체위, 성적 극치감의 도달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성적 표현과 능력을 제한시켜 왔으며 받아들여질 수 있는 다양한 성적표현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러한 제한적인 태도는 척추손상이나 기타 장애로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장애우를 좌절시키고 다른 대안적인 성적접촉과 만족을 구하려는 노력을 방해하게 된다.
위와 같은 성과 장애에 대한 그릇된 믿음과 편견은 지금까지 장애우의 성 문제를 접근하기 어려운 미신과 환상의 대상으로 방치해 놓은 원인이다.

성의 신비에 도전하자. 장애우 스스로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성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실체파악을 위한 도전과 노력이 없이는 사회 일반의 그릇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장애우의 만남과 결혼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몇몇 단체들의 활동사항을 살펴보면 모두 "그리 큰 성과가 없다"고 밝히고 그 이유로 "결혼신청 장애우들이 하나 같이 자신보다 장애가 가볍거나 비장애우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며 "대다수의 장애우가 전자조립이나 단순 노동직에 종사하고 있어 생활기반이 취약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남·여의 신청률에서 10대 1정도의 압도적인 비율로 남성들의 신청이 많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특유의 소극적 사고, 경제활동 참여에의 차별, 육아 등 가정주부로서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인식개선이나 경제적 기반 마련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지 거기에다 「이것만 좀...", 이나 "저것만 조금 덜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희망이나 원망은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 끝없이 불만이 생기게 되어 결국은 관계 그 자체를 파탄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로이드는 인간의 모든 행동 뒤에는 성적인 욕구가 숨어있으며 이러한 성적인 욕구의 억압은 그의 전 행동양식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후에 많은 비판과 수정을 겪었으나 지금도 상당부분 그 당위성을 인정받고 있다.
장애우의 자유로운 성적표현은 작금의 방종한 세상에 차고 넘치는 무책임한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지금까지 객체화되어 온, 비인간화되어 온 장애우의 인간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받아 들여져야 하며 이러한 주체적인 성적표현을 바탕으로 한 자유 결혼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으로 바로 서는 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전흥윤/기자

작성자전흥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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